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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들 그래픽 노블 : 스커지의 탄생 ㅣ 전사들 그래픽 노블
에린 헌터 지음, 서현정 옮김 / 가람어린이 / 2022년 5월
평점 :
우리는 성장스토리를 반긴다. 대상이 영웅이든 반영웅이든 말이다. 요즘은 진지하고 엄숙한 도덕군자 스타일의 영웅보다도 개성 넘치는 빌런을 더 선호하는 것 같다. 빌런의 잔혹한 범죄나 악행에 대한 스토리에 집중할 수도 있지만, 악당에 대한 독자들의 동정심과 측은지심을 어느 정도 끌어내려면 빌런의 성장 스토리를 일종의 감미료처럼 추가해야 한다. 문제는 빌런의 성장 배경이 대개 엇비슷하다는 데 있다. 가령 애정 결핍, 육체적 감정적 학대, 유기, 왕따, 신체적 열등감, 가난 등이 그러하다. '불량 고양이'의 대표 빌런인 스커지의 탄생도 역시나 그런 맥락이다.
스커지는 질 나쁜 길고양이들의 무리인 피족의 지도자다. 작고 약한 반려묘 ‘꼬마’에서 '재앙'이라는 뜻을 지닌 길고양이 '스커지'로 흑화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내가 보기엔 그리 친절하지도 세심하지도 못해 뭔가 허전한 느낌이 남는다. 저자는 "영리하고 용감하고 야망이 큰 젊은 고양이가 어떻게 피에 젖은 어둠의 길로 들어서게 됐는지, 그 과정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미리 밝혔지만 말이다. 천둥족 타이거스타를 해하는 스커지의 복수혈전이 과연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복수였는지 다소 불투명하다. 숲 고양이들에게 당한 한때의 치욕을 되갚기 위해서였다는 시시껄렁한 이유가 다일까.
악당은 두 번 만들어진다. 무력한 희생자에서 난폭한 가해자로. 최고의 악당 스커지도 예외는 아니다. '꼬마'로서의 애정결핍과 열등감 때문에 스커지는 남을 지배하고 두려움에 떨게 하는 힘을 악바리처럼 추구했다. 그런 지독한 근성과 패기가 바른 길로 향했다면 보다 품격 있는 지도자로 거듭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