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의 정원
다치바나 다카시.사토 마사루 지음, 박연정 옮김 / 예문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다치바나 다카시와 사토 마사루라는 두 일본인의 대화를 담은 책이다.

 

책의 내용을 살피기 전에 우선 이 두사람에 대한 이해없이는 책내용을 알기가 어렵다

 

먼저 다치바나 다카시.역자의 소개글에서 인용한다.

그는 인류가 이룬 모든 지식을 한 몸에 삼켜버리겠다는 듯이 탐욕적으로 읽어 내고,

또 삼킨 것들을 잘근잘근 소화시켜 폭포처럼 쏟아 내는 그의 저작들을 보고 있자면 매번

그 왕성한 지식욕에 주눅이 들면서도 동시에 신선한 자극을 받게 된다. 그래서 그는

'지의 거인'이라 불린다.

 

사토 마사루.

그는 지의 괴물이라 불리우는데 도시샤대학신학부를 졸업하고 일본외무성에 들어간 후

러시아에서 1988년부터 1995년까지 주러 일본대사관에서 근무하면서 구소련의 정계,경제게, 학계등에

폭넓은 인맥을 형성하여 주목을 받았다. 귀국후에 러시아의 일본북방 4개섬반환협상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먼저 2개섬부터 반환받고 추후 나머지를 논의하자는 러시아측의 제안에 동의하였으나 일본우익의 극렬한 반대로

4개섬반환은 원점으로 돌아간다. 2002년 협상대표였던 스즈키 무네오의원의 부패스캔들에 연루되어

본인은 무죄라고 주장하였으나 징역 2년6개월, 집행유에 4년형을 선고받고 외무성을 그만두게 된다.

사토는 이 사건을 겪으면서 외무성을 비롯한 일본 관료조직의 경직성, 일본 정치의 후진성, 언론의 선동성에

눈을 뜨게 된다. 이후 사회적 발언을 거침없이 토해내어 외교 비평과 시사평론을 하면서 논객으로 확고히

자리를 잡는다.

 

이런 두 사람은 서로가 많이 다르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근대국가 일본에 대하여 탐사 저널리스트로서 고착화된 거대 권력을 해체하고자 하는

시대의 지성인 반면 사토 마사루는 기본적으로 천황제 지지자이고 국가주의자이다. 독도문제를 국제적인 이슈로 끌고 가

일본의 영유권을 주장해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만 기독교는 독약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두 사람이 아래의 주제들을 갖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독서란 무엇인가

지(知)의 전체상을 파악하자

20세기는 과연 무엇이었나

가짜에 속지 않는 법

진정한 교양응 해독제가 된다

 

위 큰 주제에 관하여 또 다시 네 다섯개의 소제목을 통해 몇 페이지에 걸쳐서 나누는 대화가 기록된다.

 

한 주제에 대하여 깊이 있는 대화는 오고가지 않는다. 대신 한 마디 말을 할 때마다 그 근거인 책이름이

술술 나온다. 두사람이 각각 자신의 책장에서 100권씩을 추천하고 서점에서 각각 100권씩을 추천하여 총 400권이 공식적으로

추천도서로 소개가 된다. 게다가 대화중에 나오는 책까지 합하면 대략 500권의 책이름이 줄줄 나온다.

 

이 책의 미덕은 온갖 주제에 대하여 막힘없는 대화가 어떻게 가능한지 그 이유를 우리가 구경꾼으로서 보는 즐거움이다.

보통의 독서로는 어찌 할 수 없는 다양한 분야의 책, 특히 인류가 인정한 고전은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을 볼 때

우리가 어떠한 독서방향을 갖고 책을 읽어야 하는지 방향타가 될 수 있는 점이다.

 

끝으로 둘이 서로 모든 주제에 대하여 이견을 표출하지만 서로가 비판하면서 동의하는 부분이 바로 교양에 대한 것이다.

다치바나는 교양이 ' 인간 활동 전반을 포함한 이 세계의 전체상에 대한 폭넚은 지식'이며

'개인의 정신적 자기 형성에 도움이 되는 모든 것' '현대사회를 지탱하는 모든 이념의 총체'이지만 빵을 위한 학문이 아니고

실생활에 도움이 되지는 않지만 '모르면 부끄러운 지식의 총체'라고 하는데 비해,

 

사토 마사루는 위 말을 인정하되 마르크스주의와 기독교 사상이 갖는 독약같은 것에 버틸 수 있는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기에

교양은 꼭 필요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교양이란 지금 자신이 어떤 미지의 문제와 맞닥뜨렸을 때 그것을 읽어낼 수 있는 힘이기에

마르크주의와 기독교라는 독약을 해독하는 힘이 바로 교양이라고 한다.

 

다치바나를 좋아하든지 사토를 좋아하던지는 각자 개인의 취향이겠지만 끊임없이 나오는 책이름에 주눅들 필요는 없다.

어떤 책을 읽더라도 그 책의 소화성은 각자의 몫이니 말이다.

 

다만 교양인이 되어야 겠다는 느낌만 이 책을 읽고 느낀다면 이 책의 효용성은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특히 많은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많은 책을 읽은척 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유용할 것이다.

 

지의 정원/다치바나,사토/박연정옮김/예문 201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한민국 걷기사전 - 서울에서 제주까지 걷고 싶은 길 200
김병훈 외 지음 / 터치아트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왜 사람들은 걷기에 열광하는 걸까?

 

한국사회가 성공과 부의 확대에 미쳐 돌아가던 시절,

어떤 일을 하던지 정상에 오르고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는 생각이 우리네 일상을 지배하였다.

 

산을 올라도 꼭대기까지 오르지 않으면 산에 간 것이 아니었으며,

낚시를 하여도 고기를 잡지 못하면 사다가 채워 넣어야 체면을 살리는 것이었다.

 

어떤 일을 하던지 결과에 목숨을 거는 세상과 그러한 삶.

 

이제는 그런 경쟁의 세상,목적에 좌우되는 삶이 아닌,

 주위를 돌아보지 않았던 삶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나를 둘러싼 주위를 돌아보고 목적이 아닌 과정에 주의를 돌리고 살아가는 삶에서 행복의 의미를 찾는

그런 태도의 변화가 길을 걷는 행위에 열광하지 않았을까?

 

또는 이제 경쟁의 소용돌이에서 아무리 해도 이길 수 없음을,

이겨도 이긴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에

걷기 행위를 통해 스스로의 삶을 돌아다보고픈 생각이 걷게 만드는 건 아닐까..

 

등산보다는 숲을 걷는 트레킹이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도 다 마찬가지 이유가 아닐까..

 

자 그런 마음이 들었으면 어떻게 걷기를 할까.

어디가 걷기에 좋을까..

걷는데도 종류가 얼마나 많이 있는지를 알려주는 책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이 들때가 되었다.

 

그저 제주도의 올레길과 지리산의 둘레길만 걷기 여행의 전부라고 알고 있는 이들에게

그렇지 않다고, 그 외에도 너무나 많은 길이 있다고 이야기 해주는 책이 나왔다.

 

이름하여 대한민국 걷기사전이다.

서울에서 제주까지 걷고 싶은 길 200군데를 엄선하여 6가지 주제별로 항목정리를 하였다.

 

그 하나하나를 일일이 열거하기보다는 제목만 들어도 솔깃한 느낌이 드는 주제들이다.

 

자연과 함께하는 산길, 들길, 물길

가슴까지 시원해지는 바닷길과 섬

피톤치드 가득한 숲속길

조상의 숨결을 느끼는 역사문화 답사길

테마가 있는 마을길, 골목길

발길이 이끄는 만큼 걷는 일주길

 

각각의 주제밑에 구체적인 장소에 대한 멋진 설명한페이지와 그 걷기길의 코스,

그곳을 찾아가는 방법과 돌아오는 길까지, 마지막으로 여행정보를 압축하여

설명해놓았다.

 

자! 떠나자..동해바다로~ 가 아니라 천천히 삶의 의미를 생각하고

혼자라도 좋다. 둘이라도 좋다. 목적이 아니라 과정에서 행복을 찾고자 하는 이들은

떠나라.

 

대한민국걷기사전/터치아트/201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0권의 책으로 노무현을 말하다
김병준 외 지음 / 오마이북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지난 해 5월,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다.

이제는 고 노무현 대통령으로 불러야 한다.

(이하 존칭과 호칭을 생략하고 노무현이라 칭한다)

 

2002년 대통령선거는 참으로 드라마틱했고 그 결과는 이 나라의

소위 진보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람들에게 많은 희망과 기대를 주었고

서민과 약자들에게는 무언가 생활이 달라질 것이라는 변화가 올것이라고 기대를 주었다.

 

그러나 집권한 후 노무현에게 많은 기대와 희망을 품었던 사람들은

등을 돌리기 시작하였다.

 

왜 그랬을까?

 

한미FTA를 시작해서?

한나라당과 연정을 하자고 해서?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해서?

부동산가격이 폭등해서?

노동자 농민등 서민들을 위한 정책이 부족해서?

조중동등 보수신문들의 허무맹랑한 공격을 많이 받아서?

 

이 책 [10권의 책으로 노무현을 말하다]에서 소개하는 책 10권은 다음과 같다

책소개 이후의 이름은 그 책을 소개하는 사람이다.

 

[국가의 역할] 장하준/부키  2006

김병준 전청와대 정책실장, 부총리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폴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 폴 크르그면/현대경제연구원 2008

김창호 전 국정홍보처장

 

[슈퍼자본주의] 로버트 라이시/김영사 2008

이동걸 한림대 재무금융학과 객원교수, 전 한국금융연구원장

 

[더 플랜] 람 이매뉴얼·브루스 리드 / 리북 2008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미국학과 교수

 

[빈곤의 종말] 제프리 삭스/21세기북스 2006

박능후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전 양극화민생대책위원회 위원

 

[유러피안 드림] 제레미 러프킨/민음사 2005

김성환  전 청와대 정책조정비서관, 현 노원구청장(2010)

 

[이제 당신 차례요, Mr.브라운] 앤서니 기든스 /인간사랑 2007

김용익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 교수 , 전 청와대 사회정책수석비서관

 

[역사를 바꾸는 리더쉽] 제일스 맥그리거 번스/지식의 날개 2006

조기숙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전 청와대 홍보수석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 요시다 타로/들녘 2004

고철환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전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

 

[생각의 오류] 토머스 키다 / 열음사 2007

윤승용  노무현 재단 운영위원 , 전 청와대 홍보수석

 

지난해 5월 노무현이 평소 읽었던 책을 오마이뉴스에서

시민강좌로 개설하면서 함께 읽은 후

이 책의 내용소개와 더불어 노무현은 왜 이 책을 읽었나 하는 것을 청중과 함께

토론한 내용이 담겨 있다.

 

각각의 책 내용은 이 글을 읽는 독자가 알아서 찾아보도록 하는게 나을 것 같다.

 

나는 처음에 한 질문, 왜 사람들은 집권시 노무현을 지지하지 않았나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위 열권의 책을 보면 참 너무 좋은 내용이 많다. 한권 한 권이 모두 시대의 걸작들이다.

각자의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는 책이다. 이 책들은 노무현이 집권시에 읽은 책도 있고

봉하마을로 내려가서 읽은 책도 있다.

 

문제는 저 책의 내용대로 하기만 하였더라면 우리는 아마도 지금보다는 훨씬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았을 가능성이 매우 컷다는 점이다. 최소한 지금의 상황보다는 나았으리라 믿는다.

 

강연자는 이구동성으로 이야기 한다. 노무현은 진정성이 있었으나 그를 인정하지 않는 세력이

너무 많았고 힘이 없었다고. 그 진정성만은 인정해주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누가 진정성을 인정하니 않는다고 하던가?

 

정치권력을 잡은 상태에서 제일 먼저 하여야 할 일은 우선 무력(총칼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즉, 내 뜻을 펼칠 힘을 갖추고 그 다음에는 국민들을 포함한 정치세력들에게 설득력을 갖추어야

제대로 된 정치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은 그 중 가장 강력한 무력을 풀어주어 버렸고 그 권력을 자본에 맡겨버렸다.

그러니 누가 노무현을 따르고 일을 하겠는가. 게다가 정책적 최우선 순위도 신자유주의의

틀을 오히려 앞장서는 정책을 펼치게 되었다.

 

그런 후 봉하마을로 내려가서 다시 찬찬히 책을 읽어보고 집권시의 정책을 살펴보니

많이 부족했다는 점을 느꼈다고 술회하지 않았던가....

 

진정성만으로는 정치는 이루어지지 않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무력과 설득력을 필히

갖추어야 한다고 500년전에 이미 마키아벨리도 이야기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런 말을 해도 무슨 소용이 있나..

최소한 이 정도의 인식과 공부를 한 대통령은 김대중 전대통령이외에 우리나라 역사에서

누가 있었나 생각을 하면 없었다고 본다. 바로 그 점이 너무 아쉽다.

 

이 책은 노무현이 무엇을 고민하였고 어떻게 그 고민을 풀어나갈려고 했는지에 대하여

당시 노무현과 함께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였던 사람들이 직접 그 이야기를 하는데 미덕이 있다.

 

즉, 당시 상황을 직접 당사자에게 듣는 귀한 이야기들이 많아서 노무현을 이해하기에

이만큼의 책은 없다고 본다.

 

우리는 저 책 열권중 몇권이라도 읽었나?

 

연탄재 함부로 차지마라! 넌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적이 있었느냐! 하는 싯구절이 있다

여기에 인용하기에 어떨지 모르지만 노무현이 어떤 고민을 했었나 하는 점을 알고자 한다면

저 위의 책들을 한 번 읽어보아야 할 것이다.

 

다 읽기 어렵다면?

이 책이라도 읽으시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헤이, 바보 예찬 - 당신 안의 바보를 해방시켜라!
김영종 지음 / 동아시아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우선 우리가 갖는 '이성'(理性)에 대한 비판이다.

 

우리는 지금 근대의 세상(현대는 그 근대의 연장선상이다)에 살고 있다.

근대와 전근대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이 책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전근대는 신의 존재하에 인간은 신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하는 것이

올바른 삶이라고 이해하였다. 모든 물은 어떤 목적이 있고 그에 따라 존재하여야 한다고 하는 것이

고대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이었는데 거기에 신의 존재를 대입하게 되면 인간 삶의 목적은

신의 뜻을 충실하게 따르는 것이 바로 올바른 삶이라고 알아왔고 그것이 바로

세계를 바라보고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이었다.

이것을 목적론적 세계관이라고 전문적인 말로 이야기 한다.

 

그러나 르네상스이후, 특히 갈릴레오와 데카르트를 필두로 하여 신의 뜻에 따라 세상을 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이성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고 살아야 한다는 관점이 나타나게 되었다.

 

대표적인 철학자가 바로 데카르트이고 이 사상의 핵심은 내 안의 이성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바라보고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사상은 당시 발전하고 있었던 자연과학적 지식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갈릴레오의 천문학과 특히 하비의 '심장운동에 대하여'의 혈액의 흐름에 대한 지식을 통해

자연과학적으로 입증이 되지 않는 것은 올바른 것이 아니라는 생각과 모든 사물의 작동원리를 이해하면

모든 사물 즉, 자연을 소유하고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을 기계론적 세계관이라고 전문적인 말로 이야기 한다.

 

이것이 바로 근대의 세계관이고 관점이다. 이제 인간의 이성은 자연을 지배하고 소유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었고 이러한 능력은 자연과학적 지식으로 만들어지게된 것이다.

 

전근대의 목적론적 세계관이 더 나은것이냐 또는 근대의 기계론적 세계관이 더 나으냐는 가치판단은

할 수가 없다. 전자에서 신의 뜻을 배제하면 삶의 목적에 대한 질문은 나름대로 의미있는 질문이며 점검해야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후자도 신의 뜻에 억눌려진 인간자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만든 위대한 사상이기에

가치가 있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인간이성으로 모든것이 다 해석되고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지식을 연마해야 하고 그 지식연마에서

뒤떨어지는 사람은 삶의 행복에서 멀어지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에까지 이르게 된다면 그 지식은 과연

인간에게 어떠한 의미를 갖게 되는가?

 

인간은 그렇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미래를 준비하고 지식의 유무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당연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살아있는 그 자체로서의 기쁨과 즐거움을 느껴야 한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현대인의 생활은 평생 돌을 밀어야 하는 시지프스의 신화에 나오는 것처럼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럼 그 원인이 뭘까?

 

이 책의 저자는 그것이 바로 이성이라고 한다. 지식이라고 한다.

그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에라스므스의 [우신예찬]을 빌어서 이야기 한다.

 

에라스므스는 [우신예찬]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고 있다.

 

" 어리석음은 '생명의 씨앗이자 샘'이다. 어리석음 없이는 남녀가 몸을 섞을 수 없고, 해산의 고통을 치른 뒤 또 다시 아이를 가질 수 없다. 사람은 어리석고 미칠수록 즐겁고 어리석을수록 타인과 잘 어울린다.

백성이 지배자를, 상전이 하인을, 마님이 하녀를, 선생이 학생을, 아내가 남편을, 지주가 소작인을
견뎌내는 이유 역시 어리석음이다. 정치엔 어리석음이 필요하다. 바보같은 수작과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써야 "민중이라는 거대한 짐승"을 이끌어 갈 수 있다.

반면, 지혜로운 사람은 어떠한가.

지혜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은 어리고 젊은 시절을 학문 연구에 써 버리고, 가장 화려한 시절을 밤샘과 근심걱정, 끝없는 노고로 망가뜨려 얼굴은 창백우울하고, 몸은 수척병약한 사람일 것이다. 즉, 좋을 것 하나 없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어리석음이 지혜로움보다 세상을 즐겁고, 살만한 곳으로 만들고 있다."

 

즉, 당시 15세기 중세종교의 허위와 위선으로 인해서 백성들이 고통받는 것을 풍자적으로 표현한 것이

에리스므스의 [우신예찬]인데, 이 책의 저자 김영종은 현대의 '이성'과 '지식'이라는 허위로 인해

고통받는 현실에서 벗어나라는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해 이 책 [헤이, 바보예찬]을 만든 것이다.

 

혹자는 "그건 서양이야기고~" 동양은 다르다고 이야기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서구의 근대국민국가시스템이지 조선을 계승한 나라도

아니며, 이 세계는 서구의 근대시스템으로 굴러간다는 사실을 이해하여야 한다.

동양적 사고, 동양적 철학이 있더라도 현재 우리는 서구가 만들어낸 시스템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기에 이성에 대한 비판은 지금의 현실에 대한

정확한 비판이 된다.

 

당신은 지금 행복한가?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려면 어떻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과 그 답을 얻고자 한다면 일독을 권한다.

 

현재 저자는 이 책의 내용을 매우 상세하게 보충하는 글을 인터넷사이트 '프레시안'에서

[김영종의 잡설]로 연재중이니 함께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

 

헤이, 바보예찬/김영종/ 동아시아 201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대표적인 예를 몇가지 들어보자..

 

1)로마제국시대에 모든 시민의 즐거움과 쾌락을 위해 그리스도인을 원형경기장에서

사자에게 던져주어 그리스도인이 사자에게 물어뜯기어 죽어가게 만드는 경우.

 

2)내 몸의 일부인 콩팥을 내가 필요한 일(이 일은 범죄나 타인에게 해가 되는 것이 아님을 전제)을 위해

적정한 시장가격으로 거래를 하는 경우.

 

1)의 예는 공리주의의 주장을 극단적으로 하였을 경우에 발생하는 모순을 지적하는 것이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추구하는 것, 소수가 반대의견이나 다른 생각을 갖더라도 다수가 그렇게 주장하거나

다수가 좋을 경우에 소수는 그 뜻에 따라야 하는 경우를 주장하면 이런 경우에도 용인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2)의 예는 자유주의의 주장을 극단적으로 하였을 경우로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에서 내 몸에 대한

어떤 선택도 존중받아야 하며 그것은 천부적인 개인의 권리다라는 주장에서 오는 모순을 지적하는 것이다.

 

우리는 위의 두가지 예가 범죄이며 용납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법을 떠나서 도덕적으로도 용납이 안되며

두 가지 예 모두 범죄로 악용될 소지가 있기에 허용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공리주의적 입장에 있던, 자유주의의 입장에 있던 극단은 피해야 하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대개 사람들이 많이 주장하고 또 생각하고 말하는 경우가 '극단은 피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것이므로.

 

그렇다면 법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며, 사회는 어떻게 조직되어야 하는 질문 , 다시 말해 정의를 묻는 질문에

대답이 '그때 그때 달라요'할 수는 없잖은가.

 

즉, 이럴때는 공리주의, 저럴 때는 자유주의 또 다른 주의 내지는 도덕과 법이 상황에 맞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겠다. 꼭 어떤 주의를 떠나서 말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일정한 기준이 없는 법과 도덕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그때 그때 달라요로 법이 만들어지고

사회조직과 정치, 경제가 운영이 되는 것이 가능할까?

 

다른 예를 들어보자.

 

국가의 간섭을 최대한 줄이고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발휘하고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어야만 모두가 행복해

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신자유주의주장을 한번 보자.

 

시장에 맡기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면, 현재 징병제를 하고 있는 한국의 상황에서 모병제로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지 않을까?

 

전쟁을 가장 잘 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군인 수와 자질을 고려해 적절한 급여와 복리후생 수준을 결정하고

그에 맞추어 군대를 유지하는 것이 시장이 최고의 선이라는 주장에 가장 합당하지 않을까

 

이것은 자유주의의 입장에서도 환영할만 하지 않겠는가. 누구도 자신의 의지를 거슬러 강요받아서는 안 되며,

군에 복무할 의사가 있는 사람이라면 모든 조건을 고려한 뒤 다른 일보다 병역이 나은지 스스로 결정하면 되는데 말이다.

공리주의적 입장에서도 사람들은 자신의 공리를 극대화할 수 있을 때만 군 복무에 응하게 되니 공리를 잃는 상황에

놓이지 않아도 된다.

 

한국의 특수한 상황에서는 국가의 역할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경제문제는 자유주의이고 국방은 국가주의인

상태가 어떻게 합리적인 사회일수 있는가. 경제가 모든것이고 최고의 것이라고 한다면 대학입학생도 경매나 입찰을

통해 하는 것이 어떤 잘못이 있을까?

 

대학이나 군대의 존재이유의 특수성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면 경제에서도 모두가 함께 사는 공동체의 특수성을

말해야 하지 않을까. 불평등과 불공정, 차이와 차별이 경제에서만 용인되고 다른 것에서는 용인되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그때그때 달라요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자. 샐던교수의 강의를 더 보자.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샐던은 칸트의 순수이성과 존 롤스의 정의론을 설명하면서 칸트와 롤스의 도덕과

정의의 설명에도 해소되지 못하는 딜레마를 설명한다.

 

행동과 사고를 움직이는 그 동기에서 이성의 힘으로 제어와 설명이 가능하다는 칸트와,그것을 승계하여

서로간의 합의를 통한 평등세상을 주장하는 롤스의 정의론이 갖는 한계도 설명한다.

 

저자는 이러한 도덕과 정의에 대한 다양한 관점들을 설명하면서 본인이 주장하는 공동체주의를 마지막에 이야기 한다.

 

미국내 소수자우대정책을 통하여는 사회적우연이나 신분적우연이 갖는 불공정성의 해소,

삶에 대한 , 사회와 국가에 대한 최선의 행복이 무엇인지 이야기 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텔로스(사물의 존재목적)를

이야기하면서 정의로운 사회는 단순히 공리를 극대화 하거나 선택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으로는 만들 수 없다고 이야기 한다.

 

좋은 삶의 의미를 함께 고민하고, 으례 생기기 마련인 이견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문화를 가꾸어 나가야만이

가능하다고 결론지어 강조한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을 한번 보자.

 

'도덕에 개입하는 정치는 회피하는 정치보다 시민의 사기 진작에 더 도움이 된다. 더불어 정의로운 사회 건설에

더 희망찬 기반을 제공한다. "

 

인류가 2500년동안 이야기해온 도덕과 정의와  부의 분배문제에 대하여 그 모든 주장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면서

그 정리한 것을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질문과 대답이라는 형식으로 우리에게 친절히 설명하는 샐던교수의 강의는

사람을 전율하게 만든다.

 

하버드대학에서 30년동안 정의란 무엇인가란 최고의 명강의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마이클 샐던교수의 강의를 한국말로 듣는다고 생각하면 될것이다.

 

개인의 삶에서도 느끼게 되는 도덕적 갈등과 사회정치적갈등의 문제해결에도 너무나 많은 해답을 제시해준다

근래 보기드문 역작을 만난 행복으로 머리속이 맑아짐을 느끼게 된다.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샐던/김영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