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겪는 모든 상실의 슬픔은 그 슬픔이 크든 작든, 예상된 것이든 갑작스러운 것이든, 모두 우리 삶의 저류를 흐르는강으로 흘러들어 갑니다. 그 검은 물이 땅 위로 분출되면 우리는 처절한 고독감에 빠집니다. ˝나처럼 이런 고통을 겪는 사람은 없을 거야.˝ 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반만 진실입니다. 왜냐하면 슬픔과 비통함은 모든 곳에 펴져 있지만, 자신이 몸소 체험할 때만이 진정으로 이 슬픔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대부분도 두려워하던 수행승들처럼 통증과 괴로움이 가까이 있을 때 처음에는 반감과 혐오를 느낄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병들었을 때, 우리는 그와 접촉하거나 그를 보살피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질병은 우리 자신의 허약함,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 사랑하는 사람과의 피할 수 없는 이별을 너무도 강하게 상기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괴로움의 단단한 매듭을 풀어헤치고 우리 주위의 드넓은 괴로움의 세계로 들어갈 때 비로소 깨달음이 일어납니다. 결국에는 연민이 우리의 행동 속으로 침투하여 진정한 해방이라는 황금 과실이 생겨납니다."나"라는 이야기를 유지하는 것은 아주 힘듭니다. "나"를 지키고, "나"를 드높이고, "나"를 위해 축적하는 것은 지치는 일입니다. 반면 "나"가 없는 연민은 "나"에게 원기를 줍니다. 우리는 세상 그 자체를 통해서 세상을 느낍니다. 이것은 우리가 만든 이야기의 한계를 넘어서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체험을 허락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손에 넣으려고 하거나 두려움에 자기 방어적인 노력을 더 이상 하지 않습니다.
세계적인 종교학자인 휴스턴 스미스(Huston smith)는 임종에 직면한 유명한 심리학자의 이야기를 들려 준적이 있습니다. 그는 성질이 고약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그가 화장실에 힘들게 가려고 해서 간호사가 도와주려 했지만, 그는 갑자기 간호사에게 "내가 할 수 있어!" 라고 매섭게 대꾸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바닥에 넘어져 사망했다고 합니다. 스미스가 이 이야기를 저에게 해 준 이유는 자신에게 필요한 도움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방어적으로 반응하는 경우가 많은지를 보여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이런 반응을 "고슴도치효과"라고 부릅니다. 우리들 중에는 의존성의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도 많고, 타자로부터 지원과 도움을 받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고통을 농담으로 승화시킨 유머감각의 최고봉은 따로 있다. 바로 양쪽가슴에 유방절제술을 받은 내 이웃이다. 그는 브래지어에 작은 호박으로 된 ‘뽕‘을 넣고 할로윈 파티에 나타났다. 욜란다의 어머니 이브는 임종 직전까지도 농담을 던졌다.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약을 믿지 않았고, 출산할 때를 제외하고는 의사를 찾아간 적도 거의 없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했고, 힘든 육체노동을 견뎠으며, 누구나 때가 되면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이브의 생각은 옳았다. 그는 만 98세에 우리 어머니가 항상 ‘노인의 친구‘ 라고 불렀던 폐렴에 걸려 중환자실에 입원했고, 의사는 고통스러워하는 그에게 모르핀을 처방했다.처음에는 강하게 거부했지만, 얼마 후 통증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해지자 이브는 결국 마지못해 의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주사를 놓은 지 몇 초 만에 그의 몸은 편안해졌다. 이브는 딸을 향해 말했다. "나는 지금껏 바보같이 살았어. 오래전에 마약을 시작했어야 했는데." 모녀는 웃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