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술 넘어가는 우리역사 3 - 조선 건국부터 을사사화까지
한우리역사독서연구회 지음 / 해와나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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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을 읽고 조선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 알았고 그때 어떤 일이 일어 났는 지도 알게 되었다.   조선 시대에 안좋았던 일도 있었지만 그래도 조선시대가 있어서 글을 쉽게 쓸 수 있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알게 된 사실 

한양 도성은 처음부터 철저한 설계로 지은 계획 도시이다.   인구가 약 10만 명 정도였으니 당시로서는 세계적인 대도시에 속했다.   한양 도성이 완성되자 대부분 사람들이 개경에서 온 관리들이나 공을 세운 사람들, 귀족들이었다.    

조선은 유교를 국교로 정한 양반 중심의 사회였다.   양반은 관직에 나아가 벼슬을 하는 사람과 앞으로 벼슬을 할 수 있는 신분을 가진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조선 초기에는 신분이 양인과 천인으로 나뉘었다.   양인에는 직업에 따라 선비, 농민, 기술자, 상인의 구별을 두었다.   왕권이 확고해지고 관료 조직이 정비되면서 높은 벼스에 오른 관리들은 사회 지배층으로서 양반의 지위를 굳히게 되었다.    

16세기 이후 노비들은 군대에 나아가 공을 세우거나 돈을 내는 등의 방법을 통해 끊임없이 상민으로 신분을 상승하였다.   뒷날 조선 후기에는 6만 명의 공노비를 양인 신분으로 올려 준 일도 생겼다.   그리고 차별적인 신분 제도는 1894년 갑오개혁으로 완전히 사라진다.    

1420년에는 집현전을 다시 설치하였다.   한때 폐지했던 집현전을 다시 설치하여 새롭고 대단한 인재들을 등용해 수많은 책을 펴냈다.   그리고 9년후 전국의 농민들을 찾아다니며 농사 경험을 듣거나 보고 그 방법을 책으로 엮어만든 농사직설을 편찬하였다.    

세종대왕은 천한 신분인 장영실이 인재임을 눈치채고 신분의 차별 없이 등용하여 측우기, 자격루 등의 천문 기구, 금속 활자, 화포의 주조 및 화약 제조 기술을 발전 시켜왔다.     

세종은 최만리를 비롯해 훈민정음 반포에 반대한 신하들을 모두 귀양 보냈다.   그리고 젊은 집현전 학자들을 중심으로 백성들에게 한글을 널리 알릴 수 있는 방버을 연구하게 했다.  그 뒤에도 훈민정음을 만들어 놓고도 무려 3년 동안 반포하지 못했다.    

세종은 훈민정음을 과거 시험 과목에 넣기도 하였다.   관리들도 훈민정음을 알아야 한다며 따로 시험을 치르게 했다.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제일 먼저 만든 책이 용비어천가이다.    

조선 시대는 다른 시대보다 훨씬 길었고 많은 일이 일어났고 좋은 일들이 정말 많이 일어난 것같다.   그리고 조선시대가 현대 시대 바로 전이라서인지 친근감이 더 가는 것 같다.   그래서 조선시대를 많이 알면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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