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술 넘어가는 우리역사 2 - 후삼국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
한우리역사독서연구회 엮음 / 해와나무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고 잘 몰랐던 후삼국 시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주로 삼국 시대만 보다 보니 후삼국 시대에는 관심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후삼국 시대도 정말 재미있고 새로웠다.    

내가 알게 된 사실 

신라의 땅이 조각나고 나서 견훤이 후백제를 건국했다.   이때부터 후삼국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궁예가 후고구려를 세웠다.   궁예가 국호를 태봉으로 정하고 자신을 미륵불이라고 했다.   승려 출신인 궁예는 자신을 미륵불이라고 주장하는 등 종교를 앞세운 정치를 해서 차츰 신하들의 믿음을 잃어 갔다.    

궁예의 부하였던 왕건이 신하들의 지지를 얻어서 궁예로 부터 무서움을 해방시켜주었다.   궁예를 왕자리에서 몰아낸 것이다.   후삼국을 통일한 인물은 나중에 등장한 왕건이었다.   발해는 926년에 거란족에 공격에 의해 멸망했다.   발해 태자 대광현을 비롯한 많은 유민들이 고려로 넘어왔다.     

고려의 제 6대 임금인 성종은 나라를 더욱 잘 다스릴 방법을 찾고 있었는데 이때 최승로가 시무 28조를 올렸다.   최승로는 불교의 나쁜 점들은 비판하면서 불교는 종교로만 삼고, 나라를 다스리는 데는 충, 효, 질서 등 유교 사상을 따르자고 주장했다.   중앙 정부의 힘이 강해져서 정치가 안정되기를 바라면서도 실제로는 왕의 권력이 너무 강해져서 귀족들의 이익이 줄어드는 것은 반대했다.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하겠다는 목표를 가진 나라였다고 해서 북쪽으로 영토를 넓히려고 서경의 수도로 발전시키는 등 여러모로 준비를 했다.   그런데 북쪽으로 영토를 넓히면 거란이 막고 있던 것이다.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고 얼마 안 되서 거란이 고려에 낙타 50마리와 사신 30명을 보내 국교를 맺자고 한 적이 있었는데 거절을 했다.    

요나라를 멸망시키고 동아시아 최강국이 된 금나라가 고려에게 자기 나라를 섬기라고 요구했는데 자존심이 강한 고려의 신하들은 절대 그럴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이때 왕을 능가하는 권력을 가졌던 이자겸이 홀로 금나라의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하고는 사신을 보내 버렸다.   요나라와 세 차례나 전쟁을 벌일 때와는 달라진 모습이었다.    

고려는 과학 기술이 발달했는데 금속활자본을 최초로 만들어 내었다.   고려를 대표하는 문화재는 팔만대장경판이라고 할 수 있다.   팔만대장경판은 고려의 출판 문화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불편한 점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금속활자를 만들었던 것이다.   금속활자는 몇 개든지 찍어낼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역사의 사진을 보면서 책을 읽으니 정말 술술 넘어가는 것 같고 역사의 현장에 와 있는 것같기도 했다.   그럴 만큼 이해가 잘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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