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술 넘어가는 우리역사 4 - 임진왜란부터 갑오개혁까지
한우리역사독서연구회 지음 / 해와나무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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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7년에 선조는 열여섯의 나이로 임금이 되었다.   어릴 적부터 학문을 가까이했던 선조는 청렴하고 학식 있는 사림을 좋아했다.   그래서 이이와 이황을 스승으로 삼아 훌륭한 임금이 되기 위해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선조는 쉴 틈 없는 경연이 힘든지 이이에게 잠시 쉬었다 오라며 휴가를 내렸다.   이이는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동호의 독서당에서 한 달 동안 머무르며 동호문답 이라는 책을 지었다.   1583년에 이이는 병조 판서가 되어 북쪽 국경을 돌아 봤다.   병조 판사는 오늘날의 국방부 장관과 같은 것이다.   국경을 돌아보는 동안 그는 병사들이 사기도 떨어 지고 훈련도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이는 선조에게 상소문을 올려 10만 양병을 주장했다.   앞으로 10년 안에 외적이 쳐들어올 것이니 조선 팔도의 각 도에 1만씩 8만, 수도인 한양에는 2만, 총 10만의 병력을 갖춰 전쟁을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그 약속을 끝내 지키지 않고 정말로 외적이 쳐들어 와서 망하게 되었다.   그때 원균은 경상 우수영에서 30척으로 200 여척의 왜선을 침몰 시켰다.   이순신이 옥포 앞바다에서 왜적선 수십척을 부수고 대승을 거두었다.     1592년 7월에 드디어 일본은 100척이 넘는 군함을 이끌고 다시 조선 앞바다로 침입해 왔다.   이순신은 바다를 살피다가 견내량에서 왜선70척을 발견했고, 거북선으로 멋지게 60여 척의 배를 잃고 도망을 갔다.   이순신이 전투마다 승리를 거두며 바닷길을 장악하고 있을때 육지에서는 의병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일본군과 맞서 싸웠다.   하지만 일본군은 3만 명의 병력으로 행주산성을 곡격했다.   권율 장군이 이끄는 조선군과 의병은 일본에 비해 수가 훨씬 적었지만 수차례 공격해 온 적군에 맞서 있는 힘을 다해 싸웠다.   그래서 결국에는 행주 대첩에서 멋지게 승리했다.   우리나라가 옛날에서 지금으로 오기 까지에는 얼마나 많은 전쟁이 일어났는지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를 지키려고 희생하시는 모든 사람들 덕에 지금에 우리가 있는것이 아닐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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