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의 시선 창비청소년문학 125
김민서 지음 / 창비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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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인관계에서 방황하는 청소년들에게

사람이 너무 어려운 사람들에게

변화의 힘을 믿는 사람들에게


이도해는 경건하게 손을 하늘로 뻗었다. 그리고 어느 지점에서 멈추더니 손가락을 쭉 펼쳤다.

"W에서 한뼘."


나는 사람과 이야기를 할 때 상대방의 무엇을 바라보고 있었나. 『율의 시선』을 모두 읽고 책을 덮자마자 내 머릿 속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학교가 전부인 10대의 아이들에게 사람관계에 대한 문제는 아이들의 세상의 전부와도 마찬가지다. 특히나 어린 아이들끼리 얽히고 설킨 문제는 어른들의 개입으로 무조건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아이들의 시선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이건 타인의 발을 보던 율의 시선이 사람의 눈으로 향하기까지의 성장과정을 담은 이야기이다.

세상에 나를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이라 단정짓던 안율은 이도해를 만나며 그의 세상이 크게 일렁이기 시작한다. 율은 자신보다 서열이 높고 반 아이들에게 인기도 많은 서진욱, 여기저기 남의 소문을 퍼뜨리기 좋아하는 김동휘, 그리고 자신을 뽐내는 것을 좋아하는 김민우와 함께 4명이서 한 무리를 이루고, 그렇게 학교에서의 율만의 안정적인 울타리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며 생활했다. 그러나 죽은 고양이를 들고 있는 맨발의 이도해를 만난 순간 율의 세계는 새로운 변화의 씨앗을 틔우기 시작했다.


언제나 멋있고 자신감 넘치는줄 알았던 진욱의 집안이 실제로는 가난했다는 사실, 자신의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진욱에게 고백했으나 차인 뒤에도 당당하게 학교를 다니는 지민, 그리고 언제나 밝은 모습으로 율이에게 희망의 목소리를 노래하던 도해까지. 도해의 세상에는 그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점점 등장하기 시작했다. 가족조차도, 의사조차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율의 세상이 도해를 기점으로 모든 것이 급격하게 변화하기 시작한다. 율은 그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한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언제나 스스로의 문제에 갇혀살 수 밖에 없다. 마치 지구를 중심으로 공전하는 달과 같이 타인과의 관계란 역시 진정한 나의 모습을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다. 율과 친구들은 아직 학생이지만, 그들이 겪는 고민과 걱정은 그들의 온세계이자 전부라고도 할 수 있다. 과연 그들의 세상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그리고 앞으로 그들이 어떻게 변화할지 우리는 막연하지만 긍정적인 기대감을 가지고, 따뜻한 눈길로 율이와 도해를 기다려보고 싶어진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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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면 ADHD와 헤어질 줄 알았다 - 나이 먹어서도 절대 차분해지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가장 친절하고 사려 깊은 안내서
캐슬린 네이도 지음, 장혜인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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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 즉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는 주의력이 결핍되어 이를 유지할 수 없거나 어떠한 활동에 집중할 수 없는 증세를 일컫는 병증이다. 한국에서 ADHD는 주로 어린 시기의 아이들이 발병하는 장애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성인 ADHD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이와 더불어 '얌전한 ADHD' 증상과 어린 남자 아이의 과잉행동을 중심으로 판단되었던 ADHD에 대한 시각이 다시금 재조명 되며 ADHD에도 매우 다양한 증상이 나타나며 특히나 여성 ADHD의 경우는 사회적으로 알려진 일반적인 증상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는 사실이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동시에 성인 ADHD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며 큰 이목을 끌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성인 ADHD가 존재한다면, 성인 이후의 노년의 삶은 어떠할까? 노년이 되어서는 ADHD가 마법처럼 사라기고 흔히들 말하는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인가? 그러한 질문에 『나이 들면 ADHD와 헤어질 줄 알았다』의 저자 캐슬린 네이도는 아직 중년과 노년의 ADHD는 진단을 받지 않은 환자가 많아 정확히 그 수를 집계하기 어려울 뿐이지 청소년보다 노년 세대가 더 많아질 고령화 시대에서는 어린이 ADHD 환자보다 성인, 더 나아가 노인 ADHD 환자 수가 더 많아질 것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나이 들면 ADHD와 헤어질 줄 알았다』는 총 14개의 장과 3개의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책의 구성은 ADHD 환자들도 쉽게 집중할 수 있도록 한 장의 내용조차도 짧게 끊어 읽을 수 있도록 단을 구분해놓았으며 각 장의 마지막 부분에는 '이 장의 핵심 교훈'이라는 소제목과 함께 각 장에서 다루었던 중심내용들을 요약하여 한 번 더 내용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단순히 텍스트로만 정보를 전달하는 곳이 아닌 이미지와 표, 텍스트 박스를 이용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시각적으로 전달하며 ADHD 환자들에게 더욱 효과적으로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나이 들면 ADHD와 헤어질 줄 알았다』는 ADHD 환자, 혹은 ADHD가 의심되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이를 진료하고 치료하는 전문의와 상담사들에게도 충분히 도움이 될만한 전문적인 진료기록과 다양하고 풍부한 환자 케이스를 다루고 있다. 비록 필자는 이와 관련된 업종의 종사하는 전문가가 아닌지리 정확한 판단은 불가능하지만 ADHD로서 전문가를 만날 때, 여자이자 성인으로서 ADHD에 관한 훨씬 다양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전문의를 만나고 싶어하는게 환자로서 기본 욕구이지 않나. 사회에서 흔히 가지는 ADHD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으로 고통받았던 환자라면 더욱더 그러한 욕구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욕구를 기반으로 이 책을 바라보았을 때 『나이 들면 ADHD와 헤어질 줄 알았다』는 환자가 원하는 치료를 담고 있는 일종의 교과서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바는 아주 확실하고 명료하다. ADHD'치료'는 약물을 복용하거나 상담을 통해 개인이 노력하는 바로만 한정되지 않고 더 넓은 사회적 관계망을 통해 ADHD환자도 쉽게 적응할 수 있는 체계와 풍족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강조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속적인 사회적 연결망을 형성하여 끊임없이 사회와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사회에서도 ADHD에 대한 더 폭넓은 지식을 계속해서 연구하고 공부하며 끊임없이 그들과 함께할 수 있는 사회를 구성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할 것이며, 그것이 우리 사회가 성인 ADHD와 더 나아가 노인 ADHD와도 함께할 수 있는 삶을 구축하는데 필요한 커다란 과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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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잉 홈
문지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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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문지혁 작가의 『고잉 홈』은 비행기 한 번 타본 적 없던 나를 덩그러이 미국 한 가운데에 놓아두고는 홀연히 끝이 난다. 『초급 한국어』와 『중국 한국어』로 부터 이어지는 '헤이코리안 플롯'(「해설-슬픔의 생애」)은 한국을 한 번도 떠나본 적 없는 이들에게도, 즉 자신의 안정을 찾을 수 있는 귀착의 장소를 찾아 떠나는 이들이라면 모두가 쉽게 공감하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읽게 만드는 힘이 있다.

『고잉 홈』은 급성 패혈증으로 쓰러진 장인어른 호철을 보러가기 위해 한국행 비행기 오른 사위 브래드의 여정을 담은 「에어 메이드 바이오그래피」, 뉴욕으로 돌아가기 위해 수상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가난한 배우지망생 「고잉홈」, 결혼기념일을 맞이해 방문한 호텐 '돈 세사르'에서 벌어지는 판타지적이고 어쩌면 음울한 현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핑크 펠리스」, 다시 한번 혼자가 되어보기 위해 디즈니월드로 떠난 에밀리의 그의 삼촌 「크리스마스 캐러셀」, 김치찌개가 묻은 바지로부터 시작된 두 가지 인연 「골드 브라스 세탁소」, 맹선생님에 대한 추모와 애도 그리고 만남의 인연에 대한 이야기 「뷰잉」, 새해 저녁에 일어난 부상이 만들어낸 다사다난한 신년 맞이 「나이트호크스」, 목회자로서 현실과의 괴리를 느끼는 늘봄의 「뜰 안의 볕」, 지적장애인인 아버지를 찾는 여성을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하고자 하는 「우리들의 파이널 컷」이 담겨 있다.

본래 문지혁 작가가 『고잉 홈』의 표제작으로 염두에 두었던 작품은 「뜰 안의 볕」이었으나 편집자의 권유로 「고잉 홈」을 표제작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고잉 홈(going home)'은 '집으로 가다'라는 의미와 함께 또다르게 이야기 하자면 '집으로 돌아가다'라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는 '귀환의 플롯'과 '도피의 플롯'(「해설-슬픔의 생애」)에서 의미의 뜻을 함께 찾아볼 수 있다. 뉴욕으로 돌아갈 돈 조차 없어 수상한 아르바이트에 임하게 된 '나'는 AI자동차에게 살아있는 '소스'로 활용된다. 하지만 '나'의 이야기는 전부 거짓말로 지어낸 이야기였다. 손 안에 쥐고 있던 종이 유니콘을 두고 내렸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이미 뉴욕에 내려 더 이상은 유니콘을 되찾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배우로서 성공한 삶을 꿈 꾸며 도착한 미국이었지만 궁핍한 생활에 불확실한 미래. 불안정한 모든 것에 불안해 하며 속에 품어두었던 희망적인 꿈이 결국 자신의 헛된 상상뿐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그는 진짜 유니콘을 봤다."(p.46)을 통해 모든 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모호한 상태에서도 그가 꿈꿔왔던 미국의 삶이 아니더라도 그의 선택 자체에는 의미가 있음을 암시한다. 뉴욕을 향하는 AI자동차는 그가 상상했던 미래지향적인 삶이 아닌 자신이 돌아갈 수 있는 장소를 찾아내는 귀착점을 향한 여정이었던 것이다. 그가 도착한 장소가 뉴욕이든 한국이든 그 사실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종이 유니콘은 진짜 유니콘이 되어 그는 결국 자신의 선택에 의해 어떠한 삶을 살아낼 것이라는 결심이 되었기에. 어쩌면 귀환과 도피는 종이 한 장 차이일지도 모른다.

「뜰 안의 볕」은 새로운 길을 향해 나아간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도전 자체 보다도 도전 이후의 안정된 삶이 선택지가 되어 나의 손에 들어왔을 때라면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까에 대한 내용이다. 늘봄은 목회자로서의 삶에 망설임이 생긴다. 보수적인 교회의 분위기와 퀴어로서의 정체성이 자신이 꿈 꿔왔던 '보통'의 삶과는 거리가 멀어보였고, 망설임 자체가 배부른 소리라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도 늘봄은 여전히 고민한다. 그러나 이웃주민들과 둥글레차를 나눠마시는 늘봄의 모습에서 이미 미국이라는 낯선 장소에서 본인도 낯선 이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었음을 깨닫고 이제는 모두와 어울려 살아가는 사회를 살아갈 것이라는 긍정적인 암시와 함께 소설은 끝이 난다. 크리스마스를 기념하지 않는 늘봄에게 결혼은 안하냐고 묻던 전전도사와 유대인에게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를 건넸던 늘봄. 하지만 늘봄은 더 이상 유대인 이웃에게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인사를 건네지 않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비주류에 해당하는 유학생, 사회에서 비주류에 해당하는 퀴어, 미국의 종교에서는 비주류에 해당하는 유대인까지. 그러나 이들이 모여 함께 살아가겠다고 다짐하는 순간 그들의 만남은 인연이 되어 삶을 살아가는 데에 강력한 뒷받침이 되어줄 것이다.

가끔은 익숙한 장소에서 내가 마치 낯선 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이건 비단 소설 속 인물들만에게 한정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네모 반듯한 길 뿐만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마저도 길을 잃어버린 것처럼 낯선 공간에서 무작정 헤매기만 하다 어딘가로 나아간다는 감각조차 없이 그저 계속 한 방향으로 걷고 또 걷는다. 온갖 복잡한 문제가 뒤엉켜 있는 현대 사회에는 이정표가 없다. 그렇기에 결국 길이란 내가 밟고 걸어가는 곳이 길이 된다. 누군가가 닦아놓은 반듯한 길만이 길은 아니다. 새로이 길을 개척해나가겠다는 소설 속 인물들의 삶에 박수를 보내며, 이제는 우리가 직접 선택하고 길을 찾아야 함을 문득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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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짝홀짝 호로록 - 제1회 창비그림책상 대상 수상작
손소영 지음 / 창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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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러운 동물들이 나오는 이야기를 사랑하는 사람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를 둔 집

#귀엽고 다양한 타이포그래피를 보고 싶은 사람


손소영 작가의 『홀짝홀짝 호로록』은 제1회 창비그림책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오리, 강아지 그리고 고양이. 세 주인공이 함께 등장해 여러가지 사건사고(?)를 겪으며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귀엽고도 따뜻한 색감을 가진 그림책이다. 배가 고팠던 오리와 쓰레기통을 뒤지던 강아지가 따뜻한 집 안에서만 지내던 고양이와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을 따뜻한 색감의 그림과 함께 각양각색의 타이포그래피가 주인공들의 행동을 발랄하고 감각적이게 만들어준다.

『홀짝홀짝 호로록』의 가장 독특한 부분은 주인공들의 모든 발화가 의성어와 의태어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작품에 사용된 의성어, 의태어는 주인공들이 더욱더 생동감있게 느껴지게 한다. 특히나 양쪽 면을 가득 채우는 새빨갛고 날카로운 '버럭', 시원하게 출렁이는 파란 '첨벙' 등의 연출은 보는 독자로 하여금 온몸으로 책을 읽게 하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뿐만 아니라 의성어와 의태어로만 채워진 이야기는 인간의 언어없이도 그들의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림책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주 독자층이 어린이임을 생각해보면 흔히 볼 수 있는 강아지나 고양이 이외에도 오리라는 다소 낯설 수 있는 동물이 서두를 여는 연출은 낯선 동물임에도 쉽게 아이들이 이야기에 감화될 수 있는 안내자 역할을 함과 동시에 오리라는 동물을 이야기의 서술자로 보게 하여 친숙함을 느끼게 한다. 또한 책을 열자마자 책의 제목이나 소개없이 바로 이야기가 진행되며 표지를 넘기는 행위가 마치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과 같은 행위가 된다.

개인적으로 책을 받자마자 느꼈던 '향기'가 너무 기억에 남아 꼭 이야기를 남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릴 적 표지를 비비면 향기가 나는 비타민 종합장에서 맡아보던 뭔가 그리운 향기. 이 책에서는 내지에서 향기가 느껴졌다. KC인증마크를 받은 만큼 책을 읽는 독자(어린이)들도 안전하게 책을 읽고 향기를 맡으며 즐길 수 있는 귀엽고 따뜻한 이야기가 담긴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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