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공 붕괴
해도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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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진공붕괴』는 해도연 작가가 선보이는 세 번째 소설집이다.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하고 천문학으로 박사를 받은 사람이 보여주는 SF는 과연 어떤 세계를 보여줄 것인가. 그러한 독자들의 기대감에 충실한 보답을 내보이며 작가는 자기만의 SF적 세계관을 확장시켜나가고 있다. 지구라는 공간에서 벗어나 우주라는 광활한 무대에서 펼치는 정통SF서사가 지금 한국이라는 공간에서, 해도연 작가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진공붕괴』는 6편의 소설이 수록된 선집이다. 기억상실의 상태로 새까만 우주에서 의식을 차린 라미의 우주탈출기 「검은 절벽」, 진공붕괴로 멸망을 앞둔 지구에서 삶의 기로에 놓인 상미의 「텅 빈 거품」, 인공적으로 기억을 주입해야만 의식을 가질 수 있는 마리와 그녀의 곁을 지키는 유진에게 남겨진 순간에 대한 이야기 「마리 멜리에스」, 현아들과 윤아를 지키기 위했던 '유슬'의 이야기 「콜러스 신드롭」, 한동안은 오징어먹물 스파게티를 먹지 못하게 만드는 「에일-르의 마지막 손님」, 타임루프에 갇혀 거북이의 뒷모습을 쫓는 「안녕, 아킬레우스」​가 수록되어있다.

무엇보다도 해도연 작가의 풍부한 과학적 지식은 읽는 독자로 하여금 세계관에 대한 강력한 설득력을 전달한다. 이는 「검은 절벽」, 「텅 빈 거품」과 같이 우주를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 그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특히 「텅 빈 거품」은 '진공붕괴'를 앞두고 멸망만을 기다리고 있는 인간들의 철학적인 고민을 SF적인 세계관에 녹여내어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텅 빈 거품」의 주인공 상미는 계속해서 삶의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뒤 폐허가 된 세계에서, 그리고 멸망을 앞둔 세계에서 상미의 선택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작가는 소설이 끝남에도 독자가 계속해서 결말을 곱씹어볼 수밖에 없게 만든다.

「콜러스 신드롬」과 「안녕, 아킬레우스」는 타임루프를 소재로 추리와 스릴러까지 함께하고 있는 소설이다. 주목할만한 점은 한 권의 소설집에 같은 소재를 사용한 소설이 두 편이 동시에 수록되었음에도 각기 상이한 전개와 매력으로 저마다의 색을 뽐내고 있다는 점이다. 「콜러스 신드롬」은 작가의 자전적 소재를 사용한 작품인 만큼 여타 작품들과 두드러진 차이를 보일정도로 강력한 몰입감을 선보인다. 뿐만 아니라 「안녕, 아킬레우스」는 작가의 물리학 지식을 곳곳에 배치하며 이를 타임루프라는 소재와 스릴러적인 매력을 잘 녹여내었다.

소재와 완성도 등 소설을 판단하는 기준은 다양하지만 무엇보다도 SF소설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첫 번째는 작품의 세계관이 독자들에게 얼마나 설득력있게 다가가는가이다. 그러한 점에 있어 해도연 작가의 소설은 최적격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풍부한 과학적 지식이 뒷받침할 뿐만 아니라 적절한 소재 선택의 센스까지. 추천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정통 SF 소설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SF소설을 처음 읽는 이들조차도, SF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이들에게 조차도 추천을 권하고 싶은 책이라고 가히 평할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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