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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독은 축복이 될 수 있을까 - 1인분의 육아와 살림 노동 사이 여전히 나인 것들
김수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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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는 게 뭐 어때서』에 이은 김수민 작가의 두 번째 에세이집인 『이 고독은 축복이 될 수 있을까』가 한겨레출판을 통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SBS 아나운서 김수민으로 익숙하던 이름이 이제는 작가 김수민이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해진 순간이 한발자국 더 가까워졌다. 퇴사, 자유, 결혼, 출산, 그리고 꿈을 쫓는 여정에 대한 이야기를 펼치던 김수민 작가는 이제는 조금 더 성숙해진 언어들과 감각들로 다시 한번 독자의 곁으로 찾아왔다.


『이 고독은 축복이 될 수 있을까』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포함하여 총 35편의 짧은 글들이 수록된 에세이집이다. 1부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일들에서는 육아에 대한 김수민 작가의 고독한 성찰이 돋보이는 글들이 모여있다. 2부 가족이 된다는 것의 진짜 의미는 한국의 제도적인 측면 안에서 엄마가 된다는 것과 가족이 된다는 것, 그리고 아이를 기른다는 것이 가지는 개인적인 고찰을 보여주고 있다. 3부 여전히 무모하게, 자유로워지고 싶어서에서는 앞서 자신에 대한 성찰에 대한 이야기들과 가족 안에서 '나'에서 더 나아가 이제는 '진정한 나'를 마주하는 단계에 이르고 있는 김수민 작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작중 김수민 작가는 니체의 말을 인용하며 낙타, 사자,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자유'없이도 그저 현실에 충실하며 마치 어린 아이처럼 삶이라는 놀이를 마주하겠다는 작가의 선언이자 다짐은 우리의 삶에서의 '자유'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만든다. '나'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김수민 작가의 굳은 의지는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이미지로 독자에게 다가온다. '엄마'라는 이름이 가지는 '이미지'에 비판적으로 다가가며 엄마인 김수민 작가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고유한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계속해서 스스로가 스스로의 의미를 재정립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작가의 삶은 끝없는 자유의지로 가득차 있음을 알 수 있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20대의 나이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진 이들은 상대적으로 소수에 속한다. 김수민 작가는 이러한 점을 인지하고 있음과 동시에 이를 '극복'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엄마, 출산, 육아, 아이라는 이미지들을 극복해야할 부정적인 대상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의 '고독'은 축복이 될 수 있었다. 그 존재들은 존재 자체로 김수민 작가의 삶을 부정하고 후회스러운 것들로 만드는 것이 아닌 의미있고 삶을 살아가는 데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가치들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멈추지 않는 그녀의 삶은 무수한 가능성의 세계로 구성되어 있다. 어쩌면 이는 김수민 작가가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가질 수 있었던 또 다른,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가 열린 것은 아닐까. 영화 《어바웃 타임》을 언급하며 아이를 가진 이들은 '후회할 수 없는 존재'들이라고 말하는 작가의 말처럼, 그녀에게 있어 아이의 존재는 인생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게 해준 또 하나의 커다란 사건이자 새로운 계기가 되어준 존재들이다. 어쩌면 김수민 작가의 삶 그 자체가 우리 한국사회에서 엄마로 살아가기를 선택하는 이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건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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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 붕괴
해도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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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진공붕괴』는 해도연 작가가 선보이는 세 번째 소설집이다.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하고 천문학으로 박사를 받은 사람이 보여주는 SF는 과연 어떤 세계를 보여줄 것인가. 그러한 독자들의 기대감에 충실한 보답을 내보이며 작가는 자기만의 SF적 세계관을 확장시켜나가고 있다. 지구라는 공간에서 벗어나 우주라는 광활한 무대에서 펼치는 정통SF서사가 지금 한국이라는 공간에서, 해도연 작가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진공붕괴』는 6편의 소설이 수록된 선집이다. 기억상실의 상태로 새까만 우주에서 의식을 차린 라미의 우주탈출기 「검은 절벽」, 진공붕괴로 멸망을 앞둔 지구에서 삶의 기로에 놓인 상미의 「텅 빈 거품」, 인공적으로 기억을 주입해야만 의식을 가질 수 있는 마리와 그녀의 곁을 지키는 유진에게 남겨진 순간에 대한 이야기 「마리 멜리에스」, 현아들과 윤아를 지키기 위했던 '유슬'의 이야기 「콜러스 신드롭」, 한동안은 오징어먹물 스파게티를 먹지 못하게 만드는 「에일-르의 마지막 손님」, 타임루프에 갇혀 거북이의 뒷모습을 쫓는 「안녕, 아킬레우스」​가 수록되어있다.

무엇보다도 해도연 작가의 풍부한 과학적 지식은 읽는 독자로 하여금 세계관에 대한 강력한 설득력을 전달한다. 이는 「검은 절벽」, 「텅 빈 거품」과 같이 우주를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 그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특히 「텅 빈 거품」은 '진공붕괴'를 앞두고 멸망만을 기다리고 있는 인간들의 철학적인 고민을 SF적인 세계관에 녹여내어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텅 빈 거품」의 주인공 상미는 계속해서 삶의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뒤 폐허가 된 세계에서, 그리고 멸망을 앞둔 세계에서 상미의 선택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작가는 소설이 끝남에도 독자가 계속해서 결말을 곱씹어볼 수밖에 없게 만든다.

「콜러스 신드롬」과 「안녕, 아킬레우스」는 타임루프를 소재로 추리와 스릴러까지 함께하고 있는 소설이다. 주목할만한 점은 한 권의 소설집에 같은 소재를 사용한 소설이 두 편이 동시에 수록되었음에도 각기 상이한 전개와 매력으로 저마다의 색을 뽐내고 있다는 점이다. 「콜러스 신드롬」은 작가의 자전적 소재를 사용한 작품인 만큼 여타 작품들과 두드러진 차이를 보일정도로 강력한 몰입감을 선보인다. 뿐만 아니라 「안녕, 아킬레우스」는 작가의 물리학 지식을 곳곳에 배치하며 이를 타임루프라는 소재와 스릴러적인 매력을 잘 녹여내었다.

소재와 완성도 등 소설을 판단하는 기준은 다양하지만 무엇보다도 SF소설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첫 번째는 작품의 세계관이 독자들에게 얼마나 설득력있게 다가가는가이다. 그러한 점에 있어 해도연 작가의 소설은 최적격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풍부한 과학적 지식이 뒷받침할 뿐만 아니라 적절한 소재 선택의 센스까지. 추천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정통 SF 소설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SF소설을 처음 읽는 이들조차도, SF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이들에게 조차도 추천을 권하고 싶은 책이라고 가히 평할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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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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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들은 있다가 없어진다(14쪽)는 책속의 문장처럼 사람에게 있어 죽음은 필연이다. 죽음이라는 필연의 과정을 현대 사회에서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죽은 다음』은 소외되고 배제된 죽음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전통과 고정관념이라는 이름에 가려진 현시대 장례의 주소를 다시금 확인해볼 수 있는 기회를 건네주고 있다. 책이 주장하고 있는 바처럼, 죽음 앞에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말에 가려진 불평등함을 세상에 드러냄과 동시에 지금 현대에 있어 장례의 가치가 어떻게 재정립되고 있는지를 설명하며 작가는 우리가 '죽은 다음'에 가져야할 태도에 대한 이야기 또한 전하고 있다.

『죽은 다음』은 르포르타주 형식의 작품으로 인터뷰를 기록한 작품이다. 장례 과정에 참여하는, 노동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기록하며 세간에서 잊혀지는 그들의 노동과 돌봄이 잊히지 않도록 하는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다. 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와 오은 시인의 추천의 말은 이 책이 지닌 의미를 계속해서 곱씹어보게 만든다. 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가 말한 것처럼 이 책이 궁극적으로 독자에게 던지는 것은 "우리가 추구하는 삶과 돌봄과 사회과 어떤 것인지에 관한 독자들의 질문"(5쪽)을 확장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책을 구성하고 있는 글들의 내용이 좋은 것도 사실이나, 개인적으로 조금 더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은 책의 차례이다. 고복, 반함, 성복, 발인, 반곡, 우제, 졸곡으로 나눠져 있는 본문 구성은 장례의 절차에 따른 구분이다. 실제로 새로운 장이 시작될 때에는 각 절차의 의미와 현실적인 절차─고복의 경우 시신 검안, 사망진단서 발급이 해당된다─를 함께 병기하고 있다는 부분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장례 노동자들의 업무에 대해 더 자세한 이해를 도울뿐만 아니라 책의 연출적인 부분으로서도 굉장히 매력적인 구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장례의 절차를 따라가다보면, 우리는 장례 노동자들의 삶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들을 수 있게 된다. 앞에서 형식적인 측면에 대해 이야기해보았다면, 이제는 내용적인 측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장례 '노동'자들의 이야기들 뿐만 아니라 사라져가는 전통 장례 문화들, 또 이 책의 후반부에서 주목하고 있는 부분은 무연고자의 장례와 가부장적인 장례 문화를 균열을 내고자하는 시도들, 반려동물 장례지도사의 이야기와 코로나 팬데믹 시기의 장례와 애도에 대한 이야기까지. 다양한 죽음과 다양한 '죽은 다음'의 이야기들, 어디서도 본적 없는, 볼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희주 작가는 이제 공공연한 것으로 이야기해보려 한다.

죽음에 대한 감각이 둔해지고 있는 요즘, 충분히 애도할 수도 없이 각박해진 요즘. 그런 요즘에 『죽은 다음』이 세상에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언제나 죽은 이는 산 자를 구한다"(378쪽)는 희주 작가의 말처럼 우리에게 죽음은 먼 이야기이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느 누군가의 '죽은 다음'의 순간을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여러 삶들이 겹쳐지고 때로는 끊어지며 사람들의 인생을 흘러가고 세상은 흘러간다.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 죽음이 있었기에 삶의 순간이 있을 수 있다는 그 말처럼, 많은 현대인들이 『죽은 다음』의 첫 장을 넘겨보기를 권하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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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가 아닌 노동자로 삽니다 - 건설 노동자가 말하는 노동, 삶, 투쟁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외 기획, 이은주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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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1일 양회동 열사의 분신소식으로부터 2025년 4월 4일 윤석열 파면까지. 그리고 다시 현재 2025년 5월 1일 노동절을 앞두고 『노가다가 아닌 노동자로 삽니다』가 책으로 출간되었다. 2022년도 부터 시작된 건설노조 건폭 몰이와 윤석열 정부의 탄압정치에 맞서 3년간 이어진 건설 노동자들의 저항은 말그대로 전쟁과 다름이 없었다. 건설환경 개선을 위해 이룬 모든 것들이 25년 전으로 퇴보하는 것처럼 느끼게 만든 3년간, 그간의 건설 노동자들의 삶은 어떠했는지, 얼마나 지난한 과정을 견뎌냈고 지금도 견디고 있는지를 생생한 증언의 기록으로 남기며 어째서 우리가 이들의 삶에 주목해야하는지, 그리고 정부의 탄압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삶과 희망을 짓밟아왔는지 샅샅히 증언하는 생존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노가다가 아닌 노동자로 삽니다』는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가 흔들리지 않을 용기(1부), 행복을 짓는 노동(2부), 연대를 향한 발걸음(3부)로 각 장에는 4명의 각기다른 노조원들의 구술인터뷰를 기록하고 있다. 이탄희 제21대 국회의원과 이영철 민주노총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 위원장의 추천글로 시작되는 책의 페이지를 넘기면, 양회동 열사의 유서로 머리말과 독자들은 마주하게 된다. 전태일 열사를 떠올리게 하는 양회동 열사의 분신은 누군가의 목숨을 건 투쟁 없이는 바뀌지 않는 한국 노동환경의 열악한 현실을 보여주는 슬픈 비극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이 보여주는 투쟁의 열의를 통해 함께하던 동지들은 살아가야만 하는 이유를 얻게 된다.

놀랍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인터뷰에 응한 인물들은 스스로를 노동 운동가라 생각하기도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살아가는 데에 있어 당연하게도 필요한 아주 기본적인 조건들이었기 때문이다. 저녁이 있는 삶, 휴일이 있는 삶, 근무외수당이 나오는 삶,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삶. 노조원들은 건설 현장이 매우 열악하고 위험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하지만 동시에 이 일을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여기기에 현장에 계속 남아 목소리를 내기를 선택한 이들이다. 내가 쌓아올린 기술과 건물들이 그들의 가슴에 자랑으로 남아있기에 그들은 자신들의 일을 포기하지 않고 청년 세대들이 일할 수 있는, 일하기 좋은 환경으로 만들어 계속해서 명맥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남아있는 것이다.

특히 이 책은 노조가 미처 챙길 수 없는 이들의 이야기까지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이주 노동자들은 불법 체류자들이 많아 노조에 가입한다고 하더라고 실제로는 법적인 문제로 인해 그 혜택은 온전히 받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민주노총이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부분임과 동시에 정부차원에서의 적극적인 정책지원이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또 여성 건설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으며 여성으로서 겪었던, 소수자들의 고난과 애환을 기록하고 있는 아카이브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많은 이들이 '건폭'이라는 정부의 선동에 의해 휘둘렸고, 그로 인해 건설 노동자들은 다시 과거로 돌아갈 위기에 처해있다. 현장에서의 건설 노동자들의 인권은 이미 점진적으로 퇴보하고 있는 상황에 놓여있다. 그러나 주디스 버틀러가 이야기했듯이, 혐오 표현은 침묵시키고자 하는 행위이지만 침묵당한 자의 어휘내에서 예상치 못한 응수로서 회복될 수 있다. 건설 노동자들의 증언은 그간 정부의 선동에 의해 가려져 있던, 침묵될 수 밖에 없었던 이야기들을 세상에 이끌어냄으로서 혐오정치에 맞서는 새로운 대안책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는 비단 노동권에 관해서만 해당되는 문제는 안될 것이다. 우리의 이야기가 아니라 생각하고 외면할 때, 그때는 결국 돌이킬 수 없는 결말이 예견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힘을 보태며 연대해야할 것이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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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골동품점
범유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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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골동품점』은 범유진 작가의 장편 소설로 기담의 형식을 한 옴니버스 소설이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의 흥행과 『불편한 편의점』 시리즈가 성공가도를 달리며 한국에서 옴니버스 소설은 이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작품이 되었다. 범유진 작가의 『호랑골동품점』 또한 앞서 말한 두 작품과 마찬가지로 옴니버스 소설이나 기담의 형식을 취하며 한국적인 요소를 매력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차이점을 지닌다. 특히나 한올의 하얀 눈썹을 가진 골동품점의 주인에 대한 신비한 설정은 소설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어주는 요소이기도 하다.

「19세기, 영국 브라이언트앤드메이 성냥」, 「19세기 그림자인형 와양쿨릿」, 「1977년, 체신 1호 벽괘형 공중전화기」, 「1950년대, 럭키 래빗스 풋」, 「17세기, 짚인형 제웅」, 「연도 불명, 콩주머니」까지. 서막과 후일담 그리고 작가의 말까지 함께 셈한다면 9편의 글이 실려있는 작품이다. 목차를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소제목은 골동품점에서 다루고 있는 물건들의 이름들로 구성되어 있다. 『호랑골동품점』의 가장 매력적인 점은 골동품점이라는 장소에 걸맞게 목차에 나와있는 모든 골동품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사건, 물건에서 따온 것이라는 점이다. 상상으로, 가상으로 만들어낸 소재 또한 매력적인 점이 존재하지만 현실과의 접점이 있는 소재가 만들어내는 강하게 독자를 이끌어내는 힘은 절대로 가볍게 여길 수가 없는 류의 것이다.

얼핏보면 상상으로 만들어냈을 것만 같은 물건들이 실제로 존재했던 골동품이었다는 점, 골동품을 통해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이 저마다 삶의 무게를 지고 살아나가는 점, 그리고 실제로 존재하는 골동품과 등장인물과의 사건을 통해 다시 현실을 환기하게끔 한다는 점에서 『호랑골동품점』의 서사구조와 전략은 독자를 끌어들이는 탁월한 힘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작가의 센스가 엿보이는 톡톡 쏘는 대사들이 소설을 한층 더 풍부한 매력을 지니게 만들어준다.

범유진 작가가 어째서 '골동품'이라는 소재를 선택했는지에 대한 생각도 해볼 수 있는데, '골동품'은 희소성이 있는 오래된 물건들을 일컫는 말이다. 여기서 희소성이라는 건 역사적, 사회적 사건을 겪은 물건일 수도 있고 혹은 미적으로 가치가 있는 물건들을 뜻할 수도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골동품들은 대체로 전자에 속하는 골동품들이다. 역사적, 사회적 사건을 겪은, 다르게 말하면 지나간 시간의 흔적을 담고 있는 그릇인 골동품을 다시 현대에 이르러 역사적, 사회적 사건의 가치를 떠올림과 동시에 현실의 사건을 환기하게끔 만들어낸다. 특히나 「19세기, 영국 브라이언트앤드메이 성냥」은 현대 직장인들의 근무 환경에 대한 문제를 과거 성냥공장 총파업문제와 연결지으며 희망적인 미래를 암시하고 있기도 하다.

『호랑골동품점』은 기본적으로 권선징악을 필두로 내세움과 동시에 삶을 살아가는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골동품을 통해 우회적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있다. 범유진 작가의 문장을 보고 있으면 계속해서 페이지를 넘기게 되듯, 등장인물들이 계속해서 삶을 살아가기로 다짐하게 되듯이 우리의 삶 또한 그렇게 이어지고 있음을 깨닫게 만든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골동품들은 완전히 허상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이미 수많은 물건에 수많은 이야기들을 부여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 세계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호랑골동품점을 떠올리며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접하기를, 그리고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작가의 따뜻한 온기를 전해받기를 바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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