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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모토 무사시
시바 료타로 지음, 김성기 옮김 / 창해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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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오래 전 시바 료타로가 지은 <몽골 기행>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그의 글에 빠졌던 기억이 떠올랐다. 게다가 미야모토 무사시의 <독행도> (지금 기억으론 정확하지 않다) 를 읽고 나서 최고 고수로서의 품위와 내공이 느껴져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었다. 그러던 차 무사시와 료타로가 만났으니 정말 멋진 한 편의 인생 역전 드라마가 나오지 않나 기대 속에 책을 펼쳤다. 그런데 결과는 의외로 실망 쪽에 가까웠다. 왜였을까?

나는 무사시가 최고 검객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공인된 살인을 하는 과정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신분이 낮은 그로서는 어차피 제한된 야망을 펼칠 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이름을 날리기 위해서는 목숨을 건 결투의 승자가 될 수 밖에 없는데 그 과정이 전혀 감동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는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울 수도 없었다. (전쟁이 종료됬으므로) 그는 무엇을 위해 최고의 검객이 되었던 것일까?

사실 무사시의 인생엔 극적인 드라마가 없다. 그는 평생 여자를 가까이 한 것도 아니었고 의리를 나눈 벗이나 친구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오직 최고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안되는 비장함만이 있을 뿐이었다.(내가 보기엔) <베가본드>라는 만화에선 오히려 드라마틱한 요소를 살려서 무사시의 일생을 그리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만화를 보면 사나이다운 그의 냄새가 느껴진다.

지극히 건조하고 딱 있는 그만큼의 사실을 고증하여 그려낸 료타로의 무사시! 아마 다음에 다시 읽게 된다면 그 땐 지금 보지 못한 감동을 찾아내는 눈이 생기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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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차이
알리스 슈바르처 지음, 김재희 옮김 / 이프(if)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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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책을 읽은지 한 3주 정도 지난 것 같다. 책을 다 읽고 나선 두 가지 점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첫 째는 이 책이 25년 전 처음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비추어봐도 별반 차이가 있지 않다라는 점과 두 번째는 선직국이든 후진국이든 여성들의 위치는 결국 비슷한 언저리지 않나 하는 생각이었다.

이 책은 이론이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 억압을 당하고 있는 여성들의 경험을 제시함으로써 그들의 문제를 우리의 문제로 바꾸어 놓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았다. 물론 세월이 흐르면서 경제적 독립으로 인한 선택의 폭이 넓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결혼이란 제도는 여전히 여성들에게 벗어나기 힘든 굴레이다. 남녀 평등이 많이 실현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그 속을 들여다보면 남성은 여성을 돕는다는 것과 같이 한다는 인식의 차이를 잘 극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관계의 지속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새로운 시도를 할 용기가 없기 때문에 두려움 속에서 관계를 지속하는 경우는 안타까운 사례들이었다. 남자나 여자나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설 줄 아는 독립심과 먼저 자신의 인격을 존중할 줄 아는 자세가 아닐까?

더불어 아직도 성이 신성시되고 있는 우리 상황에 비추어 볼때 단지 성을 통과 의례로 생각하고 버려야 한다는 젊은이들의 생각은 상당히 뜻밖이었다. ( 25년 전 상황속에서 ) 또한 부분적이긴 하지만 레즈비언 성향이 짙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관계는 남녀만이 만들 수 있다는 사회 원칙에 괴로워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도 일정 부분 이해할 수 있었다.
아직도 호주제를 가지고 시끌벅적한 대한민국이란 세상 속에서 사는 불평등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내놓으면 세계의 다른 여성들은 무어라고 반응할 지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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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의 아이들 - 바깥의 소설 25
가브리엘 루아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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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는 책을 볼 때 딱 두 종류로 구분한다. 일주일, 혹은 한 달 이상 질질 시간을 끌며 보는 책들, 그리고 손에 잡은 즉시 단숨에 읽어버리는 책들로 말이다. 이 책은 손에 잡은지 몇 시간만에 작파한 책이다 (사실 이럴 때 작가에게 좀 미안한 생각이 든다. 문장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작가가 기울이는 노력에 비하면 내 책읽기는 순식간에 끝나버리니까. 아무튼 각설하고...)

이 책은 작가가 인생의 중년기에 이르렀을 때 쓴 책이다. 그러니까 막 신참내기 여교사로서 깡촌에 발령 받고, 아직까진 세월에 녹슬지 않는 그런 열정으로 아이들과 교감했던 시절을 담고 있다. 그래서 왠지 책을 읽는 내내 조금 슬펐던 기억이 있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반복되는 일상과 습관들이 얼마나 삶을 지치게 하는 것일까? 닫혀진 책의 이면에서 생의 쓸쓸함을 느끼면서도 마지막 페이지를 접을 때까지 그래서 이 책은 희망과 사랑으로 우리의 가슴을 촉촉히 적실 수 밖에 없는 셈이다.

세상에 첫 발을 내딛는 모든 선생님들이 읽어보았으면 싶다. 첫 기억과 경험은 아이들에게나 선생님에게나 똑같이 삶의 중요한 그림이 될 수 있으니까. 상대적 박탈감에 이미 노출되버린 대한민국이지만 그래도 아직까진 사랑과 신뢰로 존재하는작은 세상이 있다고 믿고 싶다.

초보 선생님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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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는 꽃이 있는 발코니에서 안니를 기다린다
티우노 일리루시 / 문화문고 / 199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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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내용의 소재를 다루더라도 작가의 세계관에 따라 결과물은 아주 달라질 수 있다. 나는 이 작품을 읽는 내내 박상륭의 '평심'중 <와튼슨 부인의 죽음>편을 떠올렸다.(지금 그 제목이 정확히 맞는지는 좀 아리송하다>

이 소설은 아주 단순하다. 40여년을 넘게 해로한 노부부의 아내가 병에 걸려 죽음을 앞두고 있다. 늙은 남편 역시 심장이 안좋다. 고민하다가 결국 그는 아내와 함께 자살을 결행한다. 사실 20대때 40대의 삶을 말한 소설을 읽노라면 그 배경이나 사건들이 그닥 가슴에 와닿지 않는다. 주로 사랑에 목매는 20대의 감성으로 볼 때 40대의 지지고 볶는 얘기는 궁상맞고 답답해보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늙음과 죽음 역시 아직은 현실적인 느낌으로 와닿질 않는다. 단지 가끔은 건강하게 살다가 잘 죽었으면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을 골랐던 이유는 노부부의 눈물나는 사랑 얘기라는 글귀 때문이었다. 사람이 평생을 함께 아름답게 해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축복인가! 그러다 죽음이 찾아 오면 자연스럽게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내내 (책은 아주 쉽게, 그리고 빨리 읽힌다) 내가 보았던 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감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남편의 모습과 혼자 남게 되었을때 삶의 무의미성을 견딜 수 없어 하는 외로운 인간의 모습이었다.

죽음 앞에서 누가 의연할 수 있을 것인가? (깨달은 사람이 아닌 이상..) 또한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은얼마나 큰 상실인가? 그 고독감과 고통은 시간이 흘러야만 비로서 망각되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 토르에게는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 그리고 그가 아내의 죽음을 망각할 때까지 기다려야 할 이유도 없다. 그는 충분히 늙었기 때문이다. 즉 그에게는 삶을 계속 이어가야 할 또 다른 희망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을 덮고 났을 땐 아름답다거나 하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주인공은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한다. 왜 죽음이 아내를 데려가야만 하는 것인가? 사람이 아무리 40년을 행복하게 잘 살았어도 결국 결론이 비참하면 그건 삶에 대한 기만이 아니냐고? 그것은 주인공의 목소리가 아니라 마치 작가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죽음은 인간의 의지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숙명.그 천형 앞에서는 어떠한 해결책도 없다.

남편의 죽음 앞에서 혼자 견딜 준비를 하던 와트슨 부인은 결국 자신이 먼저 죽어 버린다. 죽어가는 사람 앞에서 의연하게 죽음을 받아 들일 준비를 했던 그녀는 남편의 생존이 지속됨으로써 오히려 자신이 말라비틀어진 것이다.(박상륭의 평심 중) 토르는 안니와 함께 60평생을 행복하게 살았다. 그래서 그는 뒤에 홀로 남겨지는 고통을 맛보지 않기 위해 함께 자살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내게 <평심>이 더 가까이 오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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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에 버린 사랑 - 동양문학총서 2
풍몽룡 지음, 김진곤 옮김 / 예문서원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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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사람 사는 이야기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여기 숱한 남녀간의 사랑 이야기가 있다. 세월을 아무리 건너 뛰어도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끊이질 않는다. 오늘날에야 긴 문체로 세세히 남녀간의 정한을 이야기하는게 태반이지만 명대에만 해도 사랑 이야기란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모양이었다. 그래서 명대의 문학가이자 출판가인 풍몽룡이 이런 세간의 이야기들을 모아 엮었다. 세상사 모든 일이 순리대로 이루어져야 하는 법, 신의를 저버리거나 혹은 남의 사람을 탐해 일어나는 비극적 결말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오늘날에도 새겨 들어야 할 대목들이 곳곳에 포진해있다.

총 8편의 단편들중 가장 가슴에 와닿는 얘기가 바로 <강물에 버린 사랑>이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풍류를 이야기하지 말지니/ 정이란 이 한 글자 제대로 아신다면 / 그 땐 풍류를 이야기하여도 부끄럽지 않으리> 아름답고 속내 깊은 두십량은 사랑에 모든 것을 걸었다. 하지만 그녀가 선택한 사내는 결국엔 체면치례에 급급하고 우유부단한 속물이었다. 사랑도 서로 격이 맞아야 아름답다고 하지 않는가! 단 돈 천냥에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내주려 했던 이갑 앞에서 두십량은 몰래 챙겨왔던 금은보화를 던져 버린다. 돈이 다 무어란 말인가! 고고한 기녀 두십량이 깨져버린 사랑과 함께 강물에 몸을 던지는 장면은 안타깝기 그지 없다. 그대 진정 사랑을 모른다면 얄팍한 가슴으로 사랑을 얘기하지 말지어다.

<진주 적삼>은 오늘날 상황에 빚대어도 묘한 울림을 주는 얘기다. 바람 피웠던 아내가 다시 시집을 가게 되자 패물을 챙겨 보내는 남편. 사실 오늘날에도 얼마나 많은 불륜들이 드라마나 소설의 소재로 등장하는가! 가슴은 쓰라리지만 그저 묵묵히 제 상처를 다스리는 남편의 모습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송사에 휘말린 사내가 자기 첩의 옛남편이었음을 알고 다시 돌려보내는 사내는 또한 얼마나 가슴이 넉넉한가! 우리는 눈 앞에 보이는 일들에 분노하고 상처받는다. 사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는 것만큼 큰 아픔이 또 있을까? 하지만 결코 상대에게 해코지를 하지 않음으로써 결국엔 서로에게 보은이 되고 마는 이야기는 그래서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 외에도 이 책은 간통한 아내와 정부, 일가족을 살해하고 죽음을 맞는 <효자와 간부>, 결혼 전에 정을 통한 뒤 급사한 도령을 위해 아들을 낳고 정절을 지키는 <암자에서 맺은 사랑>, 첩으로 인해 가족의 몰살을 불러오는 <첩 하나가 온 가족을 망치고>등 8편의 짧은 단편들이 실려 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랑이든 재물이든 탐욕이 과하면 스스로를 망칠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까지 나락으로 떨어뜨리기 마련이다. 올바른 관계 속에서만 결국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 속에 회자되는 이야기들은 그래서 더욱 교훈적인 내용을 유지하고 있는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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