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이야기 - 수의사 헤리엇이 만난 사람과 동물 이야기
제임스 헤리엇 지음, 김석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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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동안 작가의 선량한 품성이 그대로 드러나서 읽는 내내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옛날 동화책에서 뽑아낸 듯한 아름답고 유쾌한 사건들! 시간은 더디게 흘러가는 193,40년대 영국 요크셔 시골 지방. 우리의 주인공 해리엇은 이제 막 결혼해서 개업을 한 수의사다. 그는 동물들을 사랑하고 자신의 직업에 긍지를 가지고 있다. 그가 만나는 사람들은 때론 과묵하고 때론 수다스럽기도 하는 다양한 시골 사람들과 문제가 생긴 동물들이다. 그런데 갑자기 예기치 못한 사건이 터졌다. 제 2차 대전이 발발한 것이다. 그는 징집되어 비행 부대에서 훈련을 받는다. 전쟁이라는 살벌한 공기 속에서 그는 임신을 한 채 남겨두고 온 아내와 고향 마을의 일상적인 풍경들이 마냥 그립다. 그래서 몸은 군대에 있으되, 마음은 고향으로 달려가는 이야기들이 교차 편집되어 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네 도시인들의 삶은 마냥 바쁘기만 하다. 끊임없이 기계들과 교류하며 삶의 쾌락을 추구한다. 직업에 대한 긍지도, 이웃들에 대한 애정을 거둬들인지도 오래다. 나는 이것이 평균치의 삶을 살아가는 오늘날 젊은이들의 풍경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시간 속에서 마냥 흘러갈 뿐이다. 모든 것은 속도로 좌우된다. 그런데 갑자기 해리엇이 나타나서 시계바늘을 고색창연한 시간으로 돌려버렸다. 해리엇의 소박한 목표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동물들 속에서 평화로운 시간을 영위하는 것이다. 그래서 해리엇의 이웃 중의 하나가 되어 시골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상들에 몸을 맡기고 있으면 한없이 나른해지고 꾸미지 않는 투명한 개그를 보고 있는 듯 하다.

끊임없이 경쟁하고 부대끼는 시간들 속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다면 당장 해리엇이 들려주는 <아름다운 이야기>에 빠져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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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 작품선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43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음, 진웅기.김진욱 옮김 / 범우사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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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의 사진을 보면 어딘가 작가 이상과 닮았다는 느낌이 든다. 머리 스타일 때문일까? 그런데 어쩐지 이상보다는 훨씬 병약하고 섬세한 느낌이다. 왠지 툭 건들면 부서질 것 같은... 그는 이상보다는 한 10년쯤 더 산 듯 싶지만 어쨌든 '이상 문학상' 처럼 매년 그의 이름을 딴 '아쿠타가와상'이 수여되는 걸 보면 문학적 천재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사실 나는 작가의 작품보다는 영화 '라쇼몽'에 더 관심이 많았다. 구로자와 아끼라가 찍었다는 전설의 영화 '라쇼몽'. 그런데 알고 보니 그의 작품 '라쇼몽'과 '덤불 속'을 각색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소재는 <곤자쿠 모노카타리>에서 딴 모양이나 어쨌든 인물들의 심리묘사가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나다. 게다가 라쇼몽을 대학 4학년때인 24살에 썼다고 하니 할 말이 없다. (우리나라 김승옥도 그랬지만 ... 역시 문학적 재능을 타고나는 일련의 천재들이 있는 것은 사실인 성 싶다)

하지만 작가의 내면의 풍경은 고독과 인생에 대한 환멸, 그리고 예술 지상주의로 가득 찼던 듯 싶다. 그의 어머니는 생후 9개월만에 발광하여 그는 어머니쪽에 입양된다. 불우했던 가정사, 끊임없이 그를 괴롭히는 육체의 쇠락, 예술가의 사회참여를 유도하는 주변환경등에 짓눌린 작가는 결국 음독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그의 작품들중 [지옥변]은 그 이미지가 굉장히 섬뜻한 작품이었다. 최고의 예술을 위해 딸을 희생양으로 삼은 노화가의 광기. 활활 타는 불속에서 괴로워하는 딸을 그리는 아버지라니!

[덤불 속]은 홍상수감독의 영화 [오! 수정]을 떠올리게 했다. 사람의 기억이라는 것은 그 사실성과 상관없이 자기가 기억하고자 하는 것들만 기억하게 되는 것일까? 그래서 남편의 살인을 놓고 아내와 도적과 살해된 남편의 주장은 과연 어느 쪽이 진실인지 혼돈을 가져온다. 그러나 결국은 모두가 자기를 변호하기 위해 급급할 뿐이다. 진실은 존재할 수도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음울한 회색빛 날씨일 때 읽으면 더욱 작품의 분위기를 타며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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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시일反 - 10인의 만화가가 꿈꾸는 차별 없는 세상 창비 인권만화 시리즈
박재동 외 지음 / 창비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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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만화의 묘미는 촌철살인에 있다. 단 한 컷으로도 모든 문제를 꿰뚫어버리게 만드는! 내 손에 들린 책을 보고 제목이 뭐냐고 묻길래 무심코 십시일반 - 10명의 만화가들이 모여서 그렸단다 하고 대답은 했는데 다시 보니 '반'자의 한자가 다르다.

내가 좋아하는 박재동 아저씨의 만화를 시작으로 최호철님에 이르기까지 그 시사하는 바가 여간 무거운게 아니다. 애써 눈돌리고 싶은 우리 사회의 문제점들만 콕콕 집어서 '자, 봐라. 지금 니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어떤 건지' 하고 항변하는 것 같다. 텔레비젼의 온갖 화려한 드라마나 쇼들. 재미나는 스포츠 게임들에 묻여 살다보니 의식을 지배하는 건 일확천금 복권 당첨과 집사재기뿐인 것 같다.

전체적으로는 장애자 문제와 외국인 노동자에 촛점을 맟춘게 많았다는 인상이다. 잘린 팔을 들고 허옇게 질려 서있는 노동자에게 '고향으로 갈래? 니 방으로 갈래?'라고 튕기고 있는 사장. 똑같이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 듯 하지만 목이 잘린 채 걸어다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그 와중에도 홍승우님 의 '남녀차별'을 소재로 다룬 만화들은 유쾌하다.

정말 좋은 세상이란 어떤 세상일까? 우리는 늘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꾼다고 말하지만 그 더불어를 실현하기 위해서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만화책을 덮고 나니 머리가 다시 지끈거릴 것만 같다. 역시 산다는 건 어려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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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옷
아멜리 노통브 지음, 함유선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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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났을 때 문득 내가 왜 이 책을 골랐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도대체 어디서 이 책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지? 솔직히 시간이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런 감동도, 현학도 느낄 수 없었고 작가의 발상도 신선하기 보다는 왜 이런 소설을 구상했는[지 잘 모를 지경이었다. 한마디로 [그래서 어쨌다는거야?]라는 결론이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책 취향에 관계된 것이므로 순전히 내 관점일 뿐이다)

이 책은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연극을 내내 떠올리게 했다. 소재는 폼페이화산의 폭발이 계산된 행위였다는 것이고 등장인물은 26세기의 천재정치인(?) 셀시우스라는 아저씨와 21세기의 작가 아멜리 노통이다. 미래의 시간 속에서 인류의 미래가 어떤 식으로 변화해버렸는지를 비판적으로 암시하고 있지만 그것은 단지 두 사람의 대화에 의해 산발적으로 표현되고 있기 때문에 모호하게 다가온다. 과학 소설도 아닌 것이, 문학도 아닌 것이 좌우지간 내게는 굉장히 황당하고 별반 울림을 주지 않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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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지상의 책 한권
이광주 지음 / 한길아트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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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느낌이 그랬다. 코스 요리를 마친 뒤 맛있는 후식을 마주하고 있는! 그러니까 아주 즐겁고 포만하고, 그리고 이왕이면 클래식을 틀어놓고 마주 대하고 있는 것이 더 좋겠다. 나는 이 책의 저자가 참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는 책을 발견하고 그것을 구입했을 때 저자가 느꼈을 기쁨 마저 생생하게 느껴졌다. 아름다운 책 들 속에 둘러싸여 무슨 책을 읽을까 고민하며 살 수만 있다면!

사실 책을 쭉 따라가다 보면 인쇄술의 발명이 얼마나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는지 단박에 이해하게 된다. 구텐베르크가 없었다면 아마도 아직도 소수의 특권층(귀족층)만이 소수의 책들을 점유한 채 우리를 무지의 바다에 버려두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초창기의 책이란 성서를 송아지 가죽이나 양가죽에 일일이 손으로 베끼는 것을 의미했으니 그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했을 것인가! 오토 3세의 복음서 같은 경우는 그 장정만으로도 보석과 상아판으로 장식되어 눈을 희둥그레하게 만든다.

이 책의 배경은 서양 사회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그러니까 서양에서의 책의 발달사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최초로 책을 점유했던 계급에서부터 중세시대 진정으로 책을 사랑했던 몽테뉴, 또 패트론이 되어 살롱에서 책을 논하고 작가를 지지했던 귀족 계급 여성들, 출판 인세에 관련된 에피소드들, 책의 거장 모리스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제프리 초서 저작집 등등. 그야말로 쉬엄쉬엄 책 속에 내재된 아름다운 책들을 감상하며, 전혀 책을 읽는다는 스트레스 없이 한 장 한 장 소요하는 기분으로 작가와 함께 궤적을 따라가면 딱이지 않을까?(그러면 작가가 욕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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