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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 마늘에서 초콜릿까지 18가지 재료로 요리한 경제 이야기
장하준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23년 3월
평점 :

일전에 <괴짜 경제학>이란 책을 읽었던 적이 있다. 경제학의 개념을 실제 생활에 대입해 쉽게 풀어내어 보여준 책이었다. 즉, 경제학이 실제 세계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고, 합리적 선택, 경제적 인센티브, 정보의 비대칭성 등의 기본 개념을 현실 사례를 통해 재해석하며, 독자가 진정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 대단히 인상적인 책으로 기억한다. 예를 들어, ‘경제적 인센티브’라는 개념은 사람들이 이익을 얻기 위해 움직이고 손해를 피하려는 원리를 말하는데, <괴짜 경제학>의 저자 스티븐 레빗은 이 원리를 통해 사람의 행동은 가치 판단보다는 이해관계에 더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를 입증하기 위해 시카고에서 교사들이 학생 시험지를 부정하게 바꾸는 사례를 소개한다. 교사들은 학생의 성적이 낮으면 자신들의 직업을 잃을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이 같은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또한,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늦게 데리러 오는 부모들에게 벌금을 부과했을 때, 부모들의 지각은 더욱 심해진 사례도 제시한다. 이는 벌금이 오히려 부모의 죄책감을 줄여주는 면죄부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스티븐 레빗은 사람의 행동은 도덕적 가치 판단보다는 이해관계에 의해 결정되며, 충분한 이익이 있다면 누구나 부정행위를 저지를 수 있음을 현실의 예로서 증명했다.
한국이 낳은, 한국을 대표하는 경제학자인 장하준 교수도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나쁜 사마리아인들』, 『쾌도난마 한국경제』, 『사다리 걷어차기』 등 그동안 수많은 경제학을 기반으로 한 저서를 통해 경제학이 이해하기 어려운 학문이 아니라 너무나도 현실과 밀접한 학문이라는 사실을 밝히며, 경제학의 저변을 확대하는 데 많은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이번에 나온 신작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은 한층 더 친숙한 이미지도 대중에게 어필하고 있다. 바로 『마늘에서 초콜릿까지 18가지 재료로 요리한 경제 이야기』 라는 책의 부제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음식과 식재료를 통해 경제학이라는 학문을 맛있게 요리해서 대중들에게 서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18가지 재료로 빚어 낸 경제학 요리의 향연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저자 장하준 교수는 개인의 경제적 행동과 국가의 경제적 성과를 결정하는데 있어 문화는 정책에 비해 그 영향력이 훨씬 약하다는 점을 '도토리'를 매개로 해서 설명하며, 이는 도토리를 먹는 한국인에게나 도토리를 먹여 키운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슬람교도에게나 마찬가지라는 점을 위트를 섞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또한, 자유와 자본주의는 갈등과 상호모순을 존재하는 다소 복잡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으며, 이러한 관계의 복잡성을 이해해야만 자본주의를 더 인간적인 체제로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한 음식에 들어 있는 여러 재료를 서로 잘 어울리게 융합시키는 힘을 가진 '오크라'에 빗대어 설명하고 있다. 또, 흔히 우리가 형성하고 있는 '코코넛'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처럼 가난한 나라의 빈곤의 원인은 근면성에 기인하고 있다는 근본적인 오해는 부자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상위 계층인 글로벌 엘리트들이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빈곤의 책임을 돌리는 것을 정당화하는 데 기여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우리가 '코코넛'으로 대표되는 고정관념과 편견을 불식시킬때 역사적 불의와 국제적 힘의 불균형, 경제/정치적 개혁 등 세상을 발전시키는 보다 발전적인 논의들이 가능하다는 것을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새우'에서 유치산업 보호 정책을 연상할 수 있을까? 네덜란드와 스위스, 벨기에, 스웨덴, 독일부터 프랑스, 핀란드, 일본, 한국, 대만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국가와 특정 시기에 모두 자국의 산업화와 경제 발전을 위해 상당 기간 동안 유치산업 보호 정책을 썼다. 그렇다고 해서 유치 산업 보호정책이 반드시 성공적인 경제 발전을 보장한다는 것도 아니다. 유치 산업 또한 잘못 키우면 '성숙'하는데 실패할 수 있고, 오히려 특정 산업의 경쟁력이 저하되는 직접적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유치 산업을 보호하지 않았다면 한때 경제적 새우였던 나라들 - 18세기의 영국과 19세기의 미국, 독일, 스웨덴, 20세기의 일본, 핀란드, 한국은 오늘날 세계 경제의 고래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절대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고, 적절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리지만, 유치산업 보호정책은 '새우'가 '고래'가 되게 할 수 있게 하는 제도이다. 또한, 편견과 고정관념에서 탈피하여 제도를 운영해야 한다는 사례도 존재한다. 바로 '당근'의 사례로 빗댄 특허제도의 운영이다. 모든 제도와 마찬가지로 특허 제도 또한 그 제도로 얻는 것이 잃는 것보다 많기 때문에 사용해 왔다. 하지만 얻는 것이 잃는 것보다 더 이상 많지 않게 되면 제도를 수정하는 것이 옳다. 수정한 형태가 처음에는 낯설고 이상해 보일지라도 말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주황색 당근은 처음부터 주황색이 아니었고, 17세기 네덜란드의 누군가가 당근이 주황색이 될 수도 있다는 낯설고 이상한 아이디어를 떠올린 덕분에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당근이 된 것임을 저자는 소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