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어 보면 알지 - 호랑수박의 전설
이지은 지음 / 웅진주니어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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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올해 여름도 어느 해 못지 않은 폭염이다. 2024년 여름이 관측 사상 가장 뜨거웠다는 기사를 본게 불과 엊그제 같은데, 서울만 놓고 보면 2025 7월이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무더웠고, 열대야가 지속된 일수도역대 1위라는 기사를 보며 다시 한번 무더위를 실감하게 된다. 정말 무더운 여름인데, 해가 갈수록 열기는 더 강화되는 것 같다. 이런 무더위에는 뭐니 뭐니 해도 집안에서 에어콘 바람과 함께 시원한 수박 한 조각이 제일 아닐까? 딸 아이와 함께 집안에서 더위를 피하며 단골 인터넷 서점을 기웃거리다가 우리 마음과 딱 맞는 책을 만나게 되었다.

 


"어이구, 시원하다. 수박 한 입만 먹으면 딱 좋겠네. 그러고 보니, 그날도 오늘처럼 푹푹 찌는 더운 날이었어. 모두가 '수박 한 입만' 생각에 눈이 수박처럼 둥그레졌지."

 


<태양왕 수바 : 수박의 전설>, <친구의 전설>, <팥빙수의 전설> 등 이지은 작가는 딸아이와 이전에도 관심을 가지고 함께 읽었던 작가로 신간이 출간될 때마다 기대하게 되는 그림책 작가이다. 이번에 새로 나온 그림책은 <먹어보면 알지, 호랑수박의 전설>이다. 작가가 이전에 펴낸 전설 시리즈의 등장인물들이 나와 더욱 익숙하고 반갑다정말 '수박 한 입만 먹으면 딱 좋겠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요즘 같은 무더운 여름날에 더위에 지쳐 얼이 반쯤 나가 있는 다양한 동물들의 표정에 공감하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푹푹 찌는 무더위가 계속 되는 여름날 만약 눈 앞에 계곡물에 담근 시원한 수박 한 덩이가 있다면 누구나 훗날 감당해야 하는 리스크가 있더라도 일단 한입 베어무는 선택을 하지 않을까?

 


수박처럼 동그랗게 변한 눈으로수박, 수박!”을 외치며 수박을 찾아 온 숲을 헤집고 다니며 꼭 먹고야 말겠다는 집념을 보여주는 동물들을 보며 슬그머니 미소가 지어진다. <먹어보면알지, 호랑수박의 전설>은 현실과 상상이 교차하는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책이고,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시켜주는 좋은 그림책이다. 수박 특유의 줄무늬에서 호랑이 몸의 줄무늬를 연결한 것이 참 기발하다는 생각을 했다. 딸과 함께 동심으로 돌아가 수박 한조각으로 이 무더위를 물리칠 수 있다는 즐거운 상상을 하며 대화를 나누기에 정말 좋은 책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지금처럼 햇볕이 내리쬐는 무더운 여름날, 아이들이 커다랗고 시원한 수박 속에 들어가 수영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즐거워할까?'라는 신나는 상상이 그대로 그림책으로 구현된 <수박 수영장>과 함께 여름하면 떠올리는 딸과의 추억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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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무법자
크리스 휘타커 지음, 김해온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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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007 스카이폴>에는 인상 깊은 하나의 장면이 등장한다영광스러웠던 과거를 뒤로하고 나이가 들어 노쇠한 제임스 본드가 한 점의 그림을 응시하고 있는 장면 쓸쓸한 뒷모습을 여과 없이 노출하며 그가 바라본 그림은 윌리엄 터너의 <전함 테메레르>. 1805년 넬슨 제독이 이끄는 영국 해군은 나폴레옹의 유럽제패를 저지하고 자국을 수호하기 위해 트라팔가 해전에 임한다전장에서 테메레르는 위기에 처한 영국의 기함 빅토리호를 구하는 전적을 올린다이를 기반으로 한 트라팔가 해전의 승리는 19세기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윌리엄 터너의 그림에 표현된 테메레르는 찬란하게 빛났던 트라팔가에서의 모습이 아닌 시대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구시대의 유물로 쇠락한 모습이다역사의 한 페이지를 빛낸 존재였지만 더 이상 자신의 힘으로 동력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덩치 큰 범선은 작은 증기선에 의해 예인되며 해체되기 전 마지막 항해를 하고 있다은퇴의 기로에 선 스파이는 그림 속 범선을 보며 세월의 무게와 시대의 변화를 읽었던 것일까하나의 상징적인 이미지로서 인간의 고통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서도 이렇게 처절하고 애잔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새삼 놀라고 감동받았던 기억이 있다.

 

 

"스타가 그 사람을 발견한 그날 밤. 우리 집에는 그림이 있었어. '테메레르'라고 아나? 그 사람은 그 아래 앉아 고개가 뒤로 꺾여 있었어. 뇌리를 떠나지 않는 그 하늘. 마치 그 일부가 된 것 같았지." (p. 154)

 

 

크리스 휘타커 작가의 <나의 작은 무법자>에서 나는 <전함 테메레르>가 등장하는 또 하나의 인상 깊은 장면을 만났다. <나의 작은 무법자>15살 소년이 한 순간의 실수로 인해 한 아이의 생명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비극적 사건이 발생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결코 돌이킬 수 없고, 없던 일은 더더욱 될 수 없는 이 비극적 사건이 발생하면서 예기치 않게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린 많은 이들의 삶은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고 과거의 시간에 묶인 채 힘겨운 현재를 살아간다. 소설에 등장하는 명화 <전함 테메레르>는 이에 대한 하나의 상징적 이미지이다. 갑작스럽게 사랑하던 사람을 잃게되었지만 이들은 결코 나와 빛나는 순간순간을 함께 보냈던 사람을 내 삶 속에서 쉽게 떠나보내지 못한다. 아직도 그 미소가, 목소리가, 또 추억이 눈에 선하고, 뇌리를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은 차라리 그림의 일부가 되어 과거 속에 머무르는 걸 택한다.

 

 

우리를 만드는 것은 우리가 겪는 경험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경험에 반응하는 태도라는 말처럼 비극적 사건으로 인해 받은 상처의 깊이와 영향 받은 정도는 제각각 다르고, 또한 과거에 머무르면서 상실과 상처를 극복하는 방식도 저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한 사람은 술과 약에 의지해 힘겨운 현실을 지탱해나가려 하기도 하고, 다른 한 사람은 경찰 서장이 되어 마을의 정의를 지키는 일에 자신의 여생을 헌신하기도 한다. 또 아직은 세상을 알지 못하는 나이의 소녀가 자신 보다 어린 동생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무법자를 자처하면서 삶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기도 한다. 또 다른 사람은 자신의 인생 전체를 타인의 삶을 지지하기 위해서 희생하기도 한다. 과거를 극복하면서 현재의 삶을 재건하고 미래를 향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미래에 대한 희망적인 계획이나 구상을 청사진 (Blue Print)’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미래를 그리는 행위는 특정 시점의 순간을 박제하는 사진 보다 그림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사진을 찍는 행위가 순간의 단면을 정확히 스크랩하는 것이라면,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일정 시간에 걸쳐 대상을 관찰하면서 시간의 흐름에 걸쳐 변화하는 대상의 입체적 모습을 화폭에 담는 것이다. 따라서, 사진은 특정 시점에 국한된 대상의 모습을 무엇보다 정확히 포착하는 반면 그림은 일정 시간 동안의 대상의 변화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묘사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사진이 아닌 그림을 지향하면서 신뢰와 사랑 그리고 책임이 동반된 관계를 그려 나갈 필요가 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현실의 행복과 미래의 기적을 일궈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림 속 불분명한 선들로 이뤄진 한 사람의 형상 그리고 그가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구축하며 쌓아온 세월의 궤적은 사진 보다 불분명해 보일 수는 있어도 그 시간의 농축성을 기반으로 안정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습도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작은 무법자>의 등장인물들은 각자가 처한 입장과 현실 속에서 나름의 최선을 다한다. 실수에 대한 책임, 용서, 구원, 미래를 향해 뻗는 손. 이런 것이 가능한 이유는 여전히 남아 있는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상실과 결핍을 안고 살아가는 불완전한 존재들이다. 양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을 기꺼이 짊어지기 위해 노력하지만 현실의 삶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연약하고 불완전한 우리는 불안과 두려움 앞에서 용기를 가지고 상황에 대응하고 그 안에서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기 보다는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기 쉽다. 하지만 어쩌면 그러한 불완전함과 취약성이야말로 각자의 개별적 상황과 다른 정체성을 가진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공통분모가 아닐까? 신뢰와 사랑, 자발적인 책임이 동반된 관계를 구축하고 용기와 위로를 나누는 것은 서로의 결핍과 불완전함을 일정 부분 해소해줄 수 있는 심연과 어둠의 해독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절망 속에서도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절망속이라 해도 함께 있다면 타인의 고통을 느낄 수 있고 자신의 아픔도 진정시키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신뢰와 공감을 기반으로 진실된 관계를 구축하고 서로 연대하며 살아갈 수 있다.

 

 

트라팔가 해전 승리후 런던에는 트라팔가 광장이 조성되었고 광장의 중앙에는 승장 넬슨 제독의 동상이 세워졌다. 넬슨이 승선했던 기함 빅토리호는 포츠머스 해군기지에 영구 보존되고 있다. 반면 1838년 영국 해군은 테메레르호를 런던의 운수업자에게 팔아넘겼고 배를 산 운수업자는 배를 해체하기로 결정했다. 템즈 강가로 산책을 나간 화가 터너는 우연히 테메레르의 마지막 항해를 보게 되었고, 이 위대한 선박의 마지막 항해를 그림으로 남겼다. 윌리엄 터너는 시대를 빛내고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는 영웅에 대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찬사를 보냈다. 모두가 기억하는 넬슨 제독, 빅토리호도 있었지만 우리에겐 테메레르도 있었다고그것은 자랑스러운 우리의 과거였고 우리의 현재를 있게 한 또 하나의 영웅이라고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존재에 대한 최대의 찬사는 그를 오래도록 기억해주는 것이다.

 

 

과거의 아픔을 딪고 미래를 향해 걷기 위해서 우리는 윌리엄 터너가 되어 사랑하는 이를 기억해주어야 한다. 그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남은 이들과 함께 만들어갈 미래를 같이 그려나가야 한다. 사랑하는 이의 존재 그리고 그와 함께 쌓았던 과거는 <전함 테메레르>가 되기 충분하다. 그들은 자랑스러운 우리의 과거였고 우리의 현재를 있게 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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귓속말 친구 678 읽기 독립 13
조영서 지음, 우거진 그림 / 책읽는곰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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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에 들어온 아이들에게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일까? 바로 친구관계이다. 이건, 부모도 마찬가지다. 나의 아이가 새로운 생활을 잘 할 수 있을까?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공간에서 나와 마음 맞는 사람이 있길 바라는 것은 누구나의 소망일 것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책이다. 

 세상에 비밀이 존재할 수 있을까? 나만이 아는 것은 누군가한테 말하는 순간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또는, 누군가 보거나 듣는 순간에도 비밀이 아니다. 가까운 존재임을 확인하는 방법 중에 하나가 '우리만 아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알아서도 안 되고 우리만 공유하는 것이 존재할 때 정말 가깝다고 느낀다. 아이들도 그렇다. 다른 친구와 다르게 너만 알고 있어! 나만 알고 있다는 것은 서로 간의 동질감을 높이게 된다. 귓속말도 그렇다. 아이들은 다른 사람은 모르고 너만 알도록 하기 위해 하는 행동이다.  

 현지는 소은이가 알려준 일을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지만 오해로 인해서 자신도 숨기고 싶던 일이 알려지게 된다. 다행히 두 친구는 서로의 오해를 해결하고 다시 가까운 사이가 되지만 현실에서 이런 일은 참 많은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을 활용한다면 귓속말을 하면 다른 사람에게 오해를 불러오고 배척되는 느낌을 준다는 것을 책을 통해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알려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 

나도 비밀 지킬게. 우리는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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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스님 나의 음식
정관 지음, 후남 셀만 글, 양혜영 옮김, 베로니크 회거 사진 / 윌북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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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은 만드는 사람의 에너지가 스며들어 완성됩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음식을 하면 음식에도 그 에너지가 반영되지요. 이 책을 읽는 모든 분들이 생명의 가치를 헤아리며, 즐겁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음식을 만들어보길 바랍니다. 그렇게 밥을 짓고 그것에서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다면, 생에 큰 힘이 되니까요.” (정관스님 지은이의 말 中)


한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사찰음식’ 하면 정관스님을 떠올린다. 플랫폼의 힘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출가 후 50여년 동안 수행자의 삶을 살아오시며 쌓아오신 정관스님이 가진 컨텐츠의 힘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정관스님은 2017년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에 소개된 후부터 각국에서 책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한다. 계속 거절해오시다가 본 도서 <정관스님 나의 음식>을 써 낸 이유가 있다. 스님의 이야기와 사찰음식에 깃든 지혜를 널리 알려달라는 수많은 요청에 고심 끝에 펜을 들게 된 것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건강한 음식으로 몸과 마음의 균형을 이루기를, 그리고 더 좋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 하나로, 정관스님은 스위스에서 한국 문화에 관한 글을 쓰는 저널리스트 후남 셀만과 함께 3년에 걸쳐 이 책을 쓰고 정리했다. 이 책은 스위스에서 먼저 출간되었고, 한국에 이어 미국 등 세계 각국에서 출간될 예정이다.


“저는 셰프가 아니라 수행자입니다.” 정관스님은 자주 강조한다. 수행자란 ‘행동과 습관을 바꾸려고 힘쓰는 사람’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언제나 좋은 습관과 긍정적인 마음, 타인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를 갖출 수 있다면 좋겠지만 사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하여 수행은 한순간 이루어지는 결과가 아니라 평생에 걸쳐서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과정이다. 우리 모두는 자기 인생의 수행자다. ‘수행자를 위한 음식’이란, 어쩌면 삶에서 스스로 변화시키려 노력하는 모든 이를 위한 음식일 것이다. (p. 64)


사찰음식은 수행자를 위한 음식이다.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인생이라는 수행길을 걸어가는 나그네라는 점을 생각해 볼때 사찰음식은 넓은 의미에서 인생이라는 수행길을 가는 누구에게나 더 좋은 삶을 살도록 돕는 지혜의 음식이라 할 수 있다. 정관스님께서 말씀하신 '요리도 수행'이라는 말씀은 이런 의미에서 이해될 수 있다. 또한 요리를 준비하며 순간, 순간에 집중하며 재료 하나하나에 정성을 다하고, 자꾸 더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때론 덜어낼 줄도 알아야 한다는 점에서 '요리 그 자체도 일종의 수행'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만든 요리는 생에 큰 힘이 된다.”는 정관 스님의 말씀도 같은 의미일 것이고, 어쩌면 이렇게 정관스님이 직접 에세이와 레시피를 공개하신 취지도 단순히 사찰음식에 대한 레시피가 아니라 이를 계기로 우리의 삶을 정갈하게 되돌아보라는 취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제가 출가한 지 7년째 되는 해에 아버지가 처음으로 저를 보러 절에 오셨어요. 그때 저는 잠시 동화사가 아닌 수원에 있는 불교학교인 강원(중앙승가대학교)에 가 있을 때였는데, 편지가 오길 아버지가 저를 찾아오셨다고 했지요. 그래서 저는 아버지와 함께 솥 하나와 표고버섯, 들기름, 간장, 조청을 들고 산에 올라갔습니다. 아버지에게 불을 지펴달라고 하고, 저는 표고버섯 조청 조림을 준비했지요. 조림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한 음식이에요. 아버지는 표고버섯 조청 조림을 한 그릇 다 드시고,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있는 줄 몰랐다고, 고기보다 맛있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혼자 어떤 생각을 하시는 듯했어요." (p. 73)


이 책의 백미는 넷플릭스와 유퀴즈를 통해 알려진 스님의 일화와 스님의 시그니처 메뉴인 표고버섯 조청조림을 포함한 58개의 사계절 레시피이다. 정관스님의 음식은 ‘사찰음식은 몸에 좋지만 맛은 심심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완전히 무너뜨린다. 사찰음식의 전통을 따르면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식재료를 탐구하며 음식을 만드는 정관스님은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재료 본연의 맛과 풍미를 살리는 것이라 강조한다. 각 채소가 어떤 계절에 어떤 맛이 나는지, 어떻게 뜯고 씻고 조리하며, 어떤 양념과 가장 잘 어울리는지 등 재료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스님만의 레시피를 오롯이 담아냈다. 이를 기반으로 저 유명한 애호박 칼국수, 밥도둑 장아찌, 고소하고 영양이 풍부한 수제 두부, 음식 맛의 비결인 메주와 간장, 오미자청, 매실청, 탱자청, 복분자청 담그는 법까지 알차게 담겨있다. 또한, 책에는 스위스 사진작가 베로니카 회거가 1년간 스님과 함께 생활하며 섬세히 담아낸 수백여 장의 사진도 수록되어 있다. 책을 펼치면 전남 내장산 안자락에 있는 백양사 천진암의 아름다운 풍경과 스님이 밭에서 채소를 수확하고 사람들과 함께 장과 김치를 담그는 모습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구하기 쉬운 재료로 누구나 따라할 수 있어, 레시피의 품격이 느껴지고, 일상생활에서의 활용도도 높다. 또한, 정관스님이 들려주는 자연과 사람, 수행과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 자연스레 나와 자연을 위해, 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할지 알게 되는 듯하다. 이것이 각국의 미쉐린 스타 셰프들과 프랑스 르 꼬르동 블루 학과장, 한국의 오뚜기와 풀무원 대표 등 국내외 유수의 전문가들이 스님이 계신 백양사 천진암을 찾는 이유구나 싶다. 정관스님의 책을 보며 단순히 입에 맞는 것, 편하고 쉬운 것만 찾는 게 아니라, 더 충실하게 삶을 채워 나가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먹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생각해보면 좋은 음식만큼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도 없다. 자연과의 공존을 생각하며,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고, 고요와 평정을 찾도록 돕는 지혜의 음식, 치유의 음식을 만나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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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틀그라운드, 새로운 전장으로 - 크래프톤웨이 두 번째 이야기
이기문 지음 / 김영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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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인 성공 그 이후에 왕관의 무게를 견디며 써내려간 그들만의 성공 방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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