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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니발 라이징
토머스 해리스 지음, 박슬라 옮김 / 창해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영화, 드라마, 소설....
스토리가 있는 모든 것들은 후속편이 등장하면 이젠 겁부터 난다.
사실 어렸을 때는 "그래서 왕자님과 공주님은 행복하게 잘 살았어요" 이렇게 끝나는 동화를 보며 그 뒷이야기에 관심이 많이 쏠렸었다.
하지만, 머리가 커갈수록 그런 해피엔딩이 사실 최선의 방법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는 실생활에서 몸소 체험하고 느끼는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많은 작품들의 뒷이야기들이 첫번째 감동을 보다 확장한다기 보다는 오히려 신비감을 퇴색시키고 지지리 궁상으로 이야기만 길게 늘어뜨리는 사례가 상당수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요즘은 프리퀄이라고 소위 "울궈먹기의 진수"를 보여주는데, 대표적인 예가 영화 "스타워즈" 되겠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한 것은 원래 3편의 영화 그 이후의 뒷이야기를 궁금해 했지만, 감독은 이야기의 흐름을 앞으로 거슬러 올라감으로써, 사람들의 궁금증을 제한적으로 만들어놓음과 동시에 기대감을 충족할 수 있는 수준의 연작을 다시 만들 수 있었다.
어떤 면에서는 더이상 수습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의 최선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많은 팬들의 기대를 져버렸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번에 새로 출간된 "한니발 라이징"은 이런 유행 아닌 유행을 따른 것은 아닐까.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는 한니발 랙터의 부활쯤으로 해석했지만 막상 책을 접하자 "프리퀄"이었다.
그가 보여준 무서운 광기의 처음 시작점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물론 영화의 원작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레드 드래곤이 가장 늦게 나온 셈이니, 크게 문제 삼을 것이 없을지 모르겠으나, 원래 "맨 헌터"라는 "레드 드래곤"을 영화화한 작품이 "양들의 침묵" 이전에 선보인 바 있으니, 영화등장에 맞추었다는 억측을 누가 부린다면 그건 아닌데요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영화를 만들기 위한 집필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에 비추어 스타워즈가 만든 유행에 동참한 것이라는 개인적인 심증이 강하게 든다.
아무튼 오랜 침묵을 깨고 책을 출간한 작가의 필력과 짜임새있고 충격적인 글쓰기를 익히 알고 있는지라 책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두근거리던 흥분은 바쁜 와중에도 책을 닷새만에 읽어냈다는 점으로 충분히 증명할 수 있으리라.
(밤 12시부터 책을 읽을 수 있는 상황이었답니다.)
하지만, 스타워즈에서 느꼈던 그대로의 감정이 투영된다.
"나와줘서 너무 고맙지만, 전작들에 비해서 힘이 없다."
한마디로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의 기원을 찾아 떠나는 타임머신과도 같은 여행노정 자체는 물론이거니와 그 중간 중간 에피소드들은 광기와 핏빛으로 잘 채워져있으나, 우리가 바라던 이상적인 그 무언가는 분명 아니다.
며칠전에 뒤늦게 보게된 "캠퍼스 레전드"라는 영화처럼 자극적이고 재미있는 소설임은 틀림없으나, 한니발 렉터 박사가 출연하기에는 미흡한 셈이다.
조만간 개봉한다는 영화에 맞추어 너무 쉽게 써내려갔던 것은 아니었을까?
물론 한니발이라는 이름에서 곧장 그의 광기어린 눈빛을 떠올리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봐야할 책이겠지만, 양들의 침묵이나, 레드 드래곤을 아직 소설로 접해보지 못한 독자라면 먼저 읽어볼 것을 꼭 주문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