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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중독과 전쟁의 시대 - 20세기 제약 산업과 나치 독일의 은밀한 역사
노르만 올러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12월
평점 :

마약 중독과 전쟁의 시대 : 전격전이 가능했던 제3제국과 히틀러의 은밀한 비밀
담배 끊기 참 힘들었다.
폐가 좋지 않아 중학교 때 담배 절대 피지 말라는 경고를 세브란스 호흡기 내과 선생님에게 들었다.
어린 나이에는 꽤 충격적이었고 앞으로 구름을 폐 속에 집어넣는 일은 절대 없으리라 다짐했다.
대학에 들어가고 친구들이 카페에서 담배를 즐기던 시절, 호기심에 입 담배 몇 번 해보게 된다.
괜히 공중에 내뿜는 도넛 연기가 멋있어 보이던 때였으니.
오랜 시간 동안 폐 속에 꾸역꾸역 집어넣는 발암물질은 건강할 때는 문제없지만 주름살이 깊게 패어가면서 문제를 일으킬 소지는 충분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담배 갑부터 찾는 중독성은 그 어떤 것보다 강력했다.
담배가 이 정도니 마약은 얼마나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할까?
식후 불로초라 하였다. 담배가 지친 하루에 활력소가 되던 시절이다.
그렇다면 마약이 일상에 미칠 파장은 얼마나 대단할까? 만약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스타크래프트이 스팀 팩이 실존한다면 바로 마약이 아닐까?
상상이 떠오르면 그럴 일 없을 꺼야 웃음 짓던 일이 실제 과거의 역사 속에서 튀어나온다.
거침없던 전격전의 속도와 광기에 휩싸인 나치의 횡포와 공포가 자연스럽게 오버랩 된다.
에이, 그래도 설마 국가가 군인들에게 마약을 투여했을까?
먼지 쌓인 비밀에 숨겨져 있던 독일군의 음습한 기록이 세상에 드러나는 사건 자체가 쇼킹한 일이다.
유대인의 공장을 강탈하여 만든 제약공장에서 만들어지고 있던 물질은 무엇이었을까?
저자가 1933년 텔러 공장을 방문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지금은 폐허가 되었지만 수많은 실험실이 하루 종일 분주하게 움직였고 수백만정의 페르비틴 알약이 1주일마다 생산되던 영화를 누리던 시설이다,
프리츠 하우실트 박사는 최상급 마약인 메스암페타민을 수많은 시행착오의 실험으로 만들어 낸다.
최초로 모르핀을 분리 추출해낸 21세의 젊은 화학자 빌헬름 제르튀르너의 발견은 고통에서 인간을 구해내는 의학적 대발견이었지만 향락 속에 쾌락 중독을 가져온 치명적인 독이기도 했다.
이는 지금까지도 제약산업의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독일의 위치를 시작하게 만든 지점이다.
지금도 세계 제약업계를 장악하고 있는 바이엘사가 그 유명한 아스피린과 헤로인을 상품으로 내놓은 과정은 압축적이지만 이후의 파장을 고려하면 담담하기만 하다.
중독의 심각성이 표면 위로 떠오르기 전이었고, 새로운 약품들은 투입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던 병사들을 빠르게 치료하여 전쟁의 대규모화를 가능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물론 독일에 국한된 문제는 아닐 수도 있다. 미국에서 코카콜라가 등장한 맥락도 비슷하다.
1차 대전의 패배로 깊은 상실감에 매몰된 독일인들은 새로운 지도자에 열광하게 되고, 패배의 조건으로 들이 밀은 경제적, 군사적 제한에 따른 고통은 새로운 전쟁을 정당화시키고 애국심을 강화하는데 기폭제 역할을 한다.
전장에서 끝없이 소모되는 부품 정도로 여기던 군인들의 가치를 독일이 새롭게 조명하게 된 부분은 다수의 적국과 상대하기 위한 수적 열세를 만회하기 위한 고민 끝에 나온 처방이었을 것이다.
유기체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생리학의 가지로 국방 생리학이라는 분야를 만드는 과정은 이런 절박함이 근간에 있다. 젊은 랑케 교수가 책임자로 임명되는 과정 역시 도발을 꿈꾸는 자들이 현대화된 군인 개량에 단호한 욕심을 품고 있었다는 증거라 볼 수 있다.
작은 조직에서 시작된 연구소에서 독일군을 지배하는 마약이 탄생한 결과는 이로써 당연한 귀결이라고 판정한다.
하지만 심각한 후유증이 확인되고 부랴부랴 보급을 막아보려 했지만 이미 활시위는 출발했다.
독일의 최정점에 이르기까지 거침없는 질주가 가능했던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탁월하게 만들어진 탱크나 유 보트 등 무기의 선진화가 가장 큰 이유일 것이고, 패전국의 분노를 적을 향해 발산시킨 나치의 선동력도 주요한 원인이다. 하지만 수면 아래에서 분주히 움직인 음습한 마약의 효과는 신체가 버텨낼 수 있는 한계를 뛰어넘어 적을 압도할 수 있는 비밀 병기였다.
광기로 치달은 전쟁의 끝이 보이게 되면서 인간 어뢰 같은 소형 무기 개발에 힘을 기울인 독일에게 제한된 공간에서 사나흘씩 버틸 수 있어야 하는 필요성 역시 새로운 화학물질에 기대하게 만든다.
군이 앞장서서 자신의 병사들에게 극한으로 내몰 수 있는 독을 만든다는 아이러니는 수세에 몰린 독일에게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지 모르겠다.
히틀러의 건강하고 굳건한 연설에 많은 독일인들은 정보를 차단당한 채 연전 연승하는 자국의 승리에 도취되었다.
막상 육체적 정신적으로 무너져가고 있는 지도자를 지탱하고 있었던 화학물질의 위험성을 알지도 못한 채 말이다.
국내에도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마약의 확산세는 무시못할 수준으로 알고 있다.
인간을 최악의 정신상태로 몰고가는 유혹은 순간적인 절정의 쾌락으로 포장되고 전파되고 자리를 잡아간다.
인간의 정신을 지배하는 일은 육체의 몰락이 동반되는 일 같다.
전쟁이라는 극심한 스트레스가 쌓인 상황에서는 공포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몸부림이었지만 지금은 그저 지루한 일상의 탈출구를 찾고 싶어하는 일뿐이다.
의학과 제약이 인류의 오랜 고통인 질병에서 벗어나게 해주었고 평균 수명을 80세 이상으로 확대시켰지만, 어쩌면 이조차 자연의 순리를 어기는 것은 아닐 까라는 두려움이 들게 만들어준 내용들이다.
2차 대전이라는 참상 속에서 어쩌면 마약이 가져다주는 환상이 그나마 병사들에게는 유일한 오아시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전쟁만은 피해야 한다는 한반도의 걱정까지 연결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