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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세계사 : 잔혹사편 - 벗겼다, 세상이 감춰온 비극의 순간들 ㅣ 벌거벗은 세계사
tvN〈벌거벗은 세계사〉제작팀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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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세계사 : 잔혹사편 / 멍청한 결정으로 온 나라가 도탄에 빠지는 참담함은 오늘도 반복된다. 역사란 그런 것이다.
가끔은 운명론을 믿게 된다.
모든 시간과 사건, 그리고 주변 인물들과 관계가 기막히게 째깍 째깍 맞아떨어지면 하나의 결정이 완성되는데, 아뿔싸! 최선의 선택을 하였지만 대참사가 일어나고 회복할 수 없는 비극적 결말이 이루어졌을 때, “이게 운명이었어.” 회피하는 목소리로 읊조린다.
지난달 아내가 맛있게 말아준 저녁 김밥을 꽁지부터 먹겠다고 입에 넣고 아그작 깨물었을 때, 딸려나온 황금 인레이 조각은 치과비용 40만원을 고스란히 결제하게 되었다.
-왜 하필 김밥을 저녁으로 주었을까?
-왜 하필 꽁다리를 처음 먹었을까?
-왜 하필 집에 들어오기 전 친구와 집앞에서 통화를 했을까?
-왜 하필 사무실에서 그 사람과 대판 싸웠을까?
하나의 이벤트만 살짝 변형되었어도 40만원은 보다 뜻 깊은 일에 사용되지 않았을지.
시간이 단방향성을 가진건 차라리 잘된 일이다.
작은 사건 사고 하나만 벌어져도 과거로 돌아가 잠깐 일의 방향성을 틀어서 원하는 운명의 궤적으로 올라갈 수 있다면 하루종일 다들 그 짓거리만 하고 있을테니 말이다.
김밥 꽁지는 먹지마!라고.
인생의 흑역사가 쓰여져도 그냥 살아가야 한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으니까.
세계사에 흑역사가 쓰여져도 역사는 흐른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으니까.
짧지만 우리에게 기나 긴 인류사를 통해 인간들은 어처구니 없는 실수들을 많이 저질렀고, 결과가 때로는 미래에 경고의 의미에 그쳤지만, 씻을 수 없는 상처로 긴 상흔을 남긴 경우도 많다.
10명의 저자들은 각자 생각하는 인간이 저지른 최악의 순간들을 기록하고 설명하고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우리가 익히 잘아는 항목도 있지만 몇몇은 처음 들어보는 사례도 있다.
책장을 넘겨가며 우리는 왜 이렇게 멍청한 짓을 되풀이하고 있는거지 한숨이 푹 내려오기도 한다.
아무래 멋진 실수와 경고도 잔혹사에 들어온 이상, 피했어야 했던일이다.
하지만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는 전쟁과 살육의 광기가 불을 뿜고 있고, 어리석은 국민의 선택으로 잘 나가던 국가가 하루아침에 삼류국가로 전락한다.
우리는 원래 나약한 존재였고, 비이성적이었다.
아닌 척 하고 있을 뿐이었고, 조금은 나아지는 정도이다.
교육과 경험을 내재시키는 역사의 순간들을 한낱 인간의 해프닝 정도로 치부하기에는 결과는 너무 참혹하다.
하지만, 역사의 어두운 면을 보듬어보며 미래에 우리가 같은 멍청함을 드러내지 않도록 억제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역사 본연의 순기능을 다한다고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병원 주치의 방 문 앞 의자에서 5분 정도 긴장감이 온 몸을 휘감았다.
3개월전 수술 후유증이 남아있었고, 혹시라도 재발된건 아닐까 검사를 받고 난 직후.
대단한 수술은 아니지만 몸을 째는 고통과 직장생활의 마이너스는 꽤 타격이 있기에 이상없기만을 빈다. 한 때 종교를 가지기도 했지만 지금은 무교다. 그럼에도 긴장된 순간에는 신이 있다면 빌고 싶다는 소망을 가진다. 사람이란 존재가 다 그렇다.
종교가 인류의 역사를 발전시키고 도덕이라는 잣대를 통해 사회 통합과 질서 유지라는 긍정의 역할을 잘 소화해냈지만, 부정의 요소들도 꽤 큰 구멍으로 기록된다.
코란에 씌인 히잡의 착용, 즉 아녀자들의 신체 부위 노출을 금지하는 문구 하나로 수많은 여성들이 고통을 당했고, 최근 이란의 죽음과 봉기의 현장에 우리가 서있게 된다. 마음이 무겁다.
마냥 종교의 책임으로 돌리기에는 사회와 정치의 암묵적 동의가 있었기에 벌어진 일이기도 하다. 자유와 평등을 외치는 근본 인간의 욕구를 총과 칼로 무차비하게 말살시킨 일은 고대의 역사 페이지를 뒤적일 필요없이 2023년 같은 하늘 아래서도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생명의 훼손이 그나마 가치있는 변화의 물고를 트인 경우라면 다행일지 모르겠지만, 더 큰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운 이란의 사태는 변혁의 바람으로 마무리되길 희망할 따름이다.
1970년대 자유로운 이란 여성들의 거리 모습을 사진으로 보면 충격에 휩싸이게 된다. 분명 히잡을 던지고 근대화의 기치 아래 평등과 자유를 외치던 나라였으니 말이다. 국왕의 사치와 탐욕, 그리고 종교에 대한 강력한 제재는 결국 히잡 안에 이란을 오래동안 붙잡아두었고, 반미를 외치던 종교가 정치와 합일되면서 지금의 단절된 국가의 절망을 목격하게 된다.
서양 열강들의 탐욕은 얼마나 많은 희생을 요구하였으며, 2차 세계대전 이후 아시아와 아프리카 신생 독립국들의 지속되는 참상까지 이어졌는지 핏방울로 얼룩진 현대사의 페이지 쳐다볼 용기가 안난다.
수탈과 학대의 비극을 참고 홀로 설 기회를 얻었던 많은 신흥국들이 오랜 시간 축적된 열강 실력자들의 부를 찾아오길 바랬다면 순진한 발상이었을테다.
억눌렸던 민중의 힘은 결국 권력을 향한 끝없는 욕심과 투쟁으로 몰아갔고 이리저리 바뀌는 권력의 단맛은 피맛을 불러 일으킨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한 판 대결의 장이 된 한반도의 비극은 누구보다 우리가 잘 알고 있고, 동양의 대국 중국의 혼란상은 70년대 이후 자본경제논리를 받아들인 이후에서야 과거보다 안정돈 길을 찾게된다.
인도차이나라고 부르는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의 혼돈은 역시 다르지 않다.
유럽 짱께라고 놀려먹어도 놀랍지 않은 행패를 부리던 프랑스의 식민지 지배정책은 영국과 비교해 결코 악랄함의 수준이 뒤쳐지지 않았다.
캄보디아의 경우 왕을 어느 정도 옹립하는 방식이 유리했다고 판단해서 허수아비 왕권을 인정해주었지만 대전 종료 이후 왕의 존재를 인정한 결정이 비극을 잉태하게 된다.
강력한 통치력을 원했던 캄보디아의 국왕이 왕위를 부친에게 위양하고 자신이 정치인이 되어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은 킬링필드라고 불리는 캄보디아의 씻을 수 없는 비극의 출발점이 된다.
제국주의의 횡포에 억눌랴왔던 보복심리일까? 권력자들은 부강한 나라를 만드는 일보다는 사리사욕에 눈이 멀었고 이념의 선택에 국민은 눈 밖에 내놓은 상태에서 자신들의 고집과 신념에 따라 선택을 한다.
한창 전쟁이 벌어지던 베트남 인접국가로서 외줄타기를 하며 실리를 찾는 일은 어렵다고 하더라도 적극성을 가지고 미국에 반기를 든 결정은 모든 고통을 자국민에게 돌리는 선택이 되고 만다.
이런 혼란스러운 정치적 상황에서 강력한 권력을 거머쥔 폴 포트에 등장은 일순간 국민들의 새로운 희망으로 비추어졌으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극단의 공산주의를 원했던 지도자는 순수한 공산주의 이념에 반대되는 모든 사람들을 제거해나갔고, 연좌제처럼 3대의 씨를 말리려 했다. 이집트 시대에 나올법한 맨손으로 건물짓기와 아우슈비츠를 연상시키는 수용시설, 731 부대가 울고갈 수준의 잔인한 고문으로 전대미문의 사망자를 쏟아낸다.
이 과정에서 전 인구의 1/4이 목숨을 잃었다고 하니 마오쩌둥와 스탈린이 울고갈 마당이다.
영화 “킬링필드”에서 비극의 현장을 잠시나마 엿볼 수 있다. 그리고 한 명의 독재자가 벌인 잔혹사는 21세기에도 경제와 정치의 후진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0여년전 캄보디아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준비하려고 했던 지인은 경제성장 속도가 놀라울 정도로 빨라질 가능성을 점치기도 했다. 어쩔 수 없이 정치권과의 인맥을 챙겨야 하는 부담감은 있었지만 중국과 베트남이 보여주었던 경제 개방의 혜택을 캄보디오 정부가 모를리 없을테니. 그러나 그 이후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있을 뿐이다.
비극적인 바이러스, 체르노빌의 끔직한 결과, 하루가 멀다하고 터지는 미국 총기 사건. 때로은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비극도 일어나지만 대부분의 잔혹사는 우리의 손끝에서 터져나왔고 영원히 봉합할 수 없는 절망 속으로 국가와 국민들을 빠뜨리기도 한다.
민폐국가가 자연과 인간의 합작품인 재난을 회피하기 위해 방사능을 바다에 방류하려 준비하고 있다. 자국민들의 극렬한 반대에도 강행하려는 정부와 충돌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오히려 주변 피해국 후보 1순위는 괜찮아, 마실 수도 있어!라며 응원하고 있다.
결국 한 국가의 잔혹사를 결정짓는 대부분의 결정들을 하는 사람들을 감시하고 함부로 권력을 휘두르지 못하게 견제할 동력을 잃은 국가에게는 되풀이되는 비극과 몰락에서 벗어날 길이 없어진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