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모멘트 - 기업 성장의 결정적 순간들
EBS 비즈니스 리뷰 지음, 팩트스토리 / EBS BOOKS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비즈니스 모멘트 : 기업의 운명이 갈리던 그 때, 결정적 한방이 세상을 바꾸었다.
 
 
학교 다닐 때는 정을 못 주던 역사과목이 막상 성인이 되고 나이가 먹어가니 일년 365일 언제나 신나고 두근대는 주제가 되었다.
서점 코너를 기웃거리거나 술 한 잔에 두런 두런 이야기 나누다 보면, 주변 사람들 역시 책을 비록 읽지 않아도 역사 유튜버는 한 두 채널 구독한 이들이 꽤 된다.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살펴보고 다양한 변수와 가능성에 대한 국가나 개인의 선택, 그리고 그에 따른 결과를 통해 숨어있는 규칙과 원리를 찾아내는 작업은 의미 있지 않겠는가?
이런 측면에서 21세기를 자신들의 세상으로 만들어가는 기업들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살펴보는 작업은 그 자체로도 흥미롭고, 경제 예측과 사회의 미래상까지 엿볼 수 있는 식견을 확장하는데 도움이 된다.
 
모든 사람들이 반대하던 반도체 사업을 기여이 해내겠다고 의지를 보낸 삼성 이병철 회장의 선택.
언제 어디서나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꿈같은 이야기를 현실화시킨 소니의 고집.
단순하게, 단순하게. 노래를 부르던 애플과 스티브 잡스의 집념.
 
기업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살아있는 생물처럼 역동적이어야 살아남는다는 비즈니스의 진실은 현실에서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막대한 자금과 기회 손실, 그리고 주주는 물론 같이 참여하는 동료들마저 반대하는 신규사업을 선택하는 어려움은 고난이도의 응집력과 미래예측의 혜안, 그리고 과감한 결단이라는 하나도 가지기 힘든 요소들이 적절하게 응축되지 않는다면 파국을 종용할 뿐이다.
 
EBS가 "모멘트"라는 다큐멘터리 작업을 통해 고찰해 본 세계 유수 기업들의 성장스토리에는 이런 과감한 결단과 어느 정도의 행운이 맞부딪혀 회사의 성공과 인류의 번영을 가져온 바로 그 순간을 기록하고 있다.
하나의 기로에서 성공적인 선택을 하기 위해 기업이 도전했던 위기와 기회들, 이를 성공으로 이끌기 위한 리더십과 독자적인 기술, 미래를 선도하는 인사이트.
우리가 즐겨 사용하는 서비스와 상품들이 세상에 선을 보이기 위한 태동의 과정을 지켜보는 묘미.
 
초반부에 등장하는 삼성, 애플, 도요타 같은 기업사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들었던 내용들을 한번 정리하는 느낌으로 봐도 좋다.
이건희 회장만큼 반도체에 대한 식견을 가졌던 이병철 회장의 결정을 위한 고민과 설득과정은 흥미롭고, 한때는 무분별한 외형확장으로 몰락을 자초했던 소니 엔터테인먼트 사업부가 지금은 거대 기업의 주요 수익원이라는 아이러니는 세상에 죽으라는 법은 없네라고 웃음짓게 한다.
그 와중에 소니 뮤직센터나 메모리 스틱같이 독자적 스펙에 몰두하다 VHS에 빼앗긴 베타의 슬픔을 반복하는 소니의 무모함은 일본의 사회가 처한 갈라파고스의 상징과도 같다.
 
이젠 자연스럽게 우리의 일상을 파고든 이케아나 넷플릭스가 혁신적인 기업에서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우리와 함께하는 파트너가 되는 핵심은 결국 상품과 서비스 본연에 있다는 자연스러운 결말을 공감하게 된다.
 


세상 흐름에 역행하는 기업 둘이 눈에 띈다.
장난감계의 최고봉 "레고"와 디지털 시대의 종이잡지 "모노클"의 모멘트가 소개된다.
국내의 경우 줄어드는 영유아 인구 탓도 있지만 다양한 디지털 디바이스들의 흥행으로 더이상 아이들은 나이가 먹어가면서 장난감보다는 비디오 게임에 열중한다. 펜데믹으로 인해 쏠림의 현상은 더욱 깊어 졌다.
국내에 등장하여 많은 어린이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던 쇼핑몰 "토이저러스"가 본토인 미국에서는 파산을 했고, 롯데를 통해 국내 입성한 점포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비실대는 완구업계의 저조한 실적과는 대조적으로 레고는 승승장구로 빛난다.
지나친 외형확대로 위기를 맞이했을 때 회사는 과감하게 창업자의 후손을 사랑방으로 옮기고 강력한 CEO를 맞아들여 혁신을 진행한다.
기업이 업의 본질을 망각하고 세력을 키우는 데만 몰두했던 비이성적인 판단들을 정리하고, 집중해야 할 비즈니스의 핵심을 재정의한다.
아울러 트렌드의 변화에 맞는 연령대의 확대에 맞는 마케팅전략과 영화 등과의 제휴사업을 통해 유아동부터 아저씨들까지 열광하는 팬덤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한다.
 
레고는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브랜드이지만 모노클은 생소하다.
영국에서 발매되는 - 그러나 글로벌한 - 종이 잡지이니 당연한 지도.
개인적으로 한국 특집호에 대통령 인터뷰와 한국문화에 대한 심층 분석 기사가 실렸다는 커뮤니티 소식을 듣고 잠깐 관심을 가졌다.
아쉽지만 한국어판의 부재로 구매에 이르지는 못했다.
"뉴스위크"같은 기라성같던 종이잡지들의 몰락을 지켜보던 우리에게 모노클의 성공은 의외이기도 하고 쉽게 와 닿지 않는다.
잡지 가격보다 부록가격이 더 높은 신묘한 상황은 국내뿐 아니라 옆 나라 일본에서도 자주 보는 상황이지 않은가.
창간부터 "경제매거진"과 "패션매거진"을 결합한 의도는 주변 사람들의 만류가 무색한 성공을 일구어 냈고, 협소한 타겟팅은 오히려 잡지를 나를 표현하는 하나의 지성 도구로 동작하게 한다.
"평균 연봉 3억원 이상, 1년에 해외출장을 열 번 이상 가며 MBA를 졸업하고 도시에 거주하는 금융, 정부기관, 디자인, 관광 산업의 CEO" 같은 부류가 타겟이니. 젠장 할.
단순하게 종이책의 추억을 언급하기에 시대는 너무 빨리 변했기에 디지털 퍼스트를 외치는 잡지 출판사만 살아남는 디지털 기반의 세계에 반항아처럼 보이지만 타겟팅 하나만으로도 자신들의 가치를 제대로 정의한다.
 
책에 소개된 17개 기업 중 낯선 이름은 자이언트가 유일하다. 왜냐하면....자전거는 삼천리가 최고.
이 이야기는 다시 말하면 이 글을 읽는 대다수의 독자들은 책에 소개된 기업들 대부분 잘 알고 있고, 그들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어 왔고 현재 어떤 모습인지 잘 알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 책은 대단히 혁신적이거나 미래를 꿰뚫는 혜안을 찾는 과정이라기 보다는 기업들의 결정적인 시기, 어떤 판단을 하였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역사의 한 토막을 들여다보는데 의미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재미있다.
 
아마존이나 구글, 마이크로 소프트가 빠진 이유가 살짝 궁금하지만,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기업 삼성, 현대자동차, LG생활건강이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기분 좋은 선택이기도 하다.
 
팬데믹 이후 세상은 어떤 변화를 맞이할 지, 개인과 기업은 위기와 기회가 공존하는 오늘 어떤 선택을 하는게 합리적일지.
책을 통해 과거의 결단과 의지를 배우는 기회가 되었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음식을 공부합니다 - 음식에 진심인 이들을 위한‘9+3’첩 인문학 밥상
주영하 지음 / 휴머니스트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음식을 공부합니다: 음식에 대한 역사와 인문학적 통찰을 이토록 재미나게
 
 
한여름 온 몸이 땀에 가득 차는 날이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음식은 "냉면"이다.
시원한 육수에 가늘고 쫄깃한 면발을 이빨로 끊어가며 먹는 맛.
얼큰한 비빔장에 참기름을 좀 얹고 일단 위에 놓인 돼지고기 편육으로 시작하는 빨간 면발.
어떤 사람들은 밀면을 더 좋아하고, 다른 사람들은 초계탕을 여름철 별미로 뽑기도 한다.
 
한때 냉면에 미쳐서 서울에 유명한 냉면집을 도장 깨기처럼 돌아다닌 해가 있었다.
 
식객에도 등장하는 우래옥
밋밋한 냉면 본래의 맛으로 유명한 을지면옥
마포의 최강자 을밀대
면이 푸짐하고 짭조름한 국물이 일품인 봉피양
함흥식의 대장 흥남집
 
지금도 냉면 대가들의 잊을 수 없는 맛은 머리속에 잘 정리되어 있다.
개인적으로는 을지면옥의 고추가루 팍팍 치는 평양냉면을 1등으로 뽑았다. 같이 먹던 수육의 쫄깃함은 기억을 더 환상적으로 치장해준다.
 


맛난 음식의 거리를 추격하다 보면 자연스레 음식의 역사를 파고든다.
과거의 연대기라는 굴레를 벗고 테마별로 깊숙하게 들어가는 요즘의 색깔 있는 역사책들이 출판계를 주도하는 와중에도 음식의 오래된 역사를 다룬 책들은 입-눈-머리를 하나로 이어주는 그야말로 맛이 가득한 향연의 세계로 독자를 안내한다.
 
책 제목부터 예사롭지 않다.
"음식을 공부한다."
밥상머리 앞에서 책 보지 말라고 했는데.
 
음식인문학자를 자처하는 주영하 교수는 저서들의 목록만 살펴봐도 음식의 역사를 학문으로 진지하게 접근하는 작가임을 알 수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저자가 학문적으로 맛의 근원과 역사를 찾아가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라면의 근원을 찾아 중국 란저우까지 직접 찾아가 "라몐"이라는 명칭이 사실은 음식 이름이 아닌 국수를 뽑아내는 방식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확인하고 독자들과 공유하는 방식으로 음식의 역사를 해체하고 분석하여 오래된 시간의 변천사를 흥미롭게 풀어나간다.
 
우지 파동으로 누명을 쓰고 점유율을 많이 빼앗겼던 삼양라면이 국내에 처음 소개되기 까지의 에피소드는 많이 알려져 있지만 초기에 일본에서 기술을 전수받기 위해 노력했던 작은 역사까지 알고 나면 최근 새로 나온 오리지널을 장바구니에 집어넣고 있는 나의 손가락 클릭을 목격할 수 있다.
 
이 책의 장점이자 유용한 요소는 각 강 마다 소개되는 노하우다.
그냥 음식사가 아니라 공부로 책을 대한다는 강박을 느껴야 할 저자의 배려다. 우리는 지금 공부하고 있다.
-이름의 내력을 따져라/ 음식의 범주를 따져라/오래된 문헌기록도 의심하라 /식재료의 확보 가능 시기를 파악하라
이런 형태의 조언은 혹시라도 우리가 음식사를 개인적으로 연구할 때 꼭 명심해야 할 규율인 동시에 음식을 대하는 일반인에게는 친구들과 점심시간에 지식을 자랑할 좋은 말꺼리도 된다.
예를 들어 대다수가 냉면이 원래 겨울에 먹는 음식이었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음양의 기운 때문이라 거나 겨울 밤 온돌의 뜨끈함을 얼음 같은 국물로 이겨낸다 같은 속설도 일리는 있겠지만, 책에 있는 대로 여름에 얼음을 구하기 어려웠던 과거의 생활상을 떠올린다면 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냉면을 여름에 즐겨 먹기 시작한 이유는 냉장고가 보급되면서 일반 가정집에서도 얼음을 구하기 쉬해졌다는 배경이 가장 현실적이며 일리가 있다.
식재료를 구할 수 있는 시기가 음식의 제철이 되는 원리는 지극히 당연한 결과 아니겠는가?
 
대한제국에 초청받아 왔던 미국 대통령의 딸인 앨리스 루스벨트에게 고종이 대접한 비빔냉면 - "골동면"의 사진 컷을 보며, 최근 천방지축의 모습으로 속국에 놀러온 듯한 행태를 보였다는 여인네와 매칭이 되면서 성질이 나기도 한다.

과거 문헌에서 음식의 유래를 찾고 지금과는 다른 점들을 찾아가는 과정은 역사를 통해 인류의 근원을 찾아가는 과정과 닮아 있다.
오늘 한 끼 소중한 식사가 과거 조상들의 오랜 노력과 정성으로 대를 이어 내려왔다는 전율감을 느낄 수 있다.
 
돈과 시간만 있다면 당대 최고의 쉐프들이 만들어내는 음식을 즐기는 차원을 넘어 나만의 주방장과 대화를 나누는 식문화까지 발전하는 요즘 세상의 먹는 문화를 과거와 비교해 본다면 인류의 진보가 얼마나 거대한 보폭이었는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며, 소중한 유산은 오랜 시간 속에서도 꾸준함과 유용함으로 삶을 풍요롭게 해주고 있다는 즐거움이 떠오른다.
 
짜장면의 원조는 어디일까?
우리는 중국집에서 대한민국 소울 푸드를 배달시킨다.
사실 중국집은 대륙의 음식 만드는 방식이 우리의 정서와 시대적 상황이 결합되어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 "우리의 음식문화"로 포용할 시기가 되었다.
라면이 대한민국이 대표생산국+소비자인 상품이 되듯, 기술적 근원이 우리에게서 시작되지 않았더라도 소중한 먹거리로 즐겨 찾아 우리 역사의 한 부분으로 남았기에 이젠 한국인의 음식이라고 불러도 충분하지 않은가?
원조라고 인정해도 발명의 시기와 별명가를 장난질 치는 중국의 두부 이야기처럼 언젠가 짜장면은 MADE IN CHINA를 붙이고 자신들 고유의 전통음식이라고 우길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중국한다면 이렇게 답하면 된다. "그래 알았어. 니 네 꺼라고 하자.")
 
음식의 역사를 공부한다는 제목에 당황할지 모르겠지만, 여느 음식사 책과 달리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동시에 발로 뛰는 고증으로 진실에 다가서는 모습에서 책읽기의 신바람이 난다.
다루지 않은 다른 음식의 숨겨진 이야기로 제 2 부를 만나게 되길 고대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시인
이문열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인 : 한국문학의 대가가 그려낸 김삿갓 시인의 알려지지 않았던 굴곡의 삶
 
 
좋은 책 고르는 법에 항상 끼는 항목이 있다.
"전집으로 책을 구매하지 말 것"
세계문학의 사례를 봐도 출판사별로 번역의 수준 차이가 나는 작품들이 있어 A 작품은 ㄱ출판사, B는 ㄴ출판사 공식이 있다.
전집의 가장 큰 폐해는 10권 세트, 100권 세트 가리지 않고 상당수의 분량이 장식용으로 낭비될 소지가 큰 것. - 원래 목적이 장식이라는 말만 하지 말아 줘. -
 
한 가지 예외가 있다면 작가 별 전집은 그래도 용납이 된다.
첫 번째 딜레마는 빗겨 나가기 힘들지만 두 번째 문제는 오히려 자극제 역할을 할 때도 있다.
전집이 아니었으면 읽지 않았을 작품을 강제로 펼치거나, 다른 간행본으로 구할 수 없는 중단편 소설 - 에세이와 만남을 가질 수도 있다.
이는 영화나 음악도 마찬가지라 한 두 개가 이가 빠져 있으면 기어코 빈 자리를 채워야 한다.
 
꼭 출판사에서 기획된 전집이 아니더라도 좋아하는 작가나 음악가가 있다면 연대기처럼 한 권, 한 장씩 모아서 개인적 전집을 완성하는 묘미는 자취생 라면끊이는 맛 정도의 감칠맛이다.
당신은 나만의 연대기를 만들어갔던 애지중지 작가가 있는지?
 
지금은 아니지만. 꽤 오래 전 이문열 작가가 그랬다.
이 양반에게 꽂힌 작품은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제목부터 광고 카피 같은 날카롭고 매력적이며, 내용도 이전 작품들에 비해 -중량감은 다소 떨어지는 느낌이 다소 있으나- 유려한 필체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힘은 역시 대가의 향기가 충만했다.
이 작품을 접한 이후로 한동안 이문열 작가의 책들만 골라서 사고 열심히 읽어갔다.
어린 시절 읽기에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한자로 무장된 단어나 복문의 문장, 때로는 책의 일부분을 사상으로 점철된 토막을 밀어 넣어 책을 덮을까 고민하는 경우도 생겼지만, 우상이 된 존재감은 상당했다.
 


작가에게 흥미가 떨어지기 시작한 작품은 "변경"이었다.
처음 1,2권은 몰입도 있게 읽어 나갔지만 3권부터 책을 멀리하게 되었고, 이후 12권이라는 방대한 분량으로 완간된 덕에 더욱 멀어지게 된다. 이야기가 끝없이 늘어지고 작가 개인사라는 그림자에서 벗어나고픈 독자의 마음이 들게 만들었다.
이렇게 작가와 거리가 멀어지는 시점에서 놓친 소설 하나가 "시인"이다.
흥행 면에서 다소 저조한 성적을 거두었지만 국내외 문단에서는 호평을 받았고, 심지어 이문열 작가 전성기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평가도 다수 있다.
출간된 지 30년이 된 시점에서 새롭게 복간된 책을 앞에 들고 나이를 훌쩍 먹어버린 나 자신과 작가와의 관계를 떠올려 보니 쓴 웃음이 절로 쏟아진다.
 어느 시점 이후 정치적인 색이 크게 드러나며, 개인적인 친밀감이 멀어진 부분도 있고 변경 12권 완간 이후 과거에 보여주었던 내공 가득한 작품들이 뜸해진 탓도 있다.
물론 개인적인 독서 취향이 먹고 살기 위한 경제경영 도서 - 국내에도 다양하게 소개되기 시작한 SF소설로 노선이 바뀐 영향이 더 크지만.
 
시인은 우리에게는 김삿갓으로 알려진 조선 후기의 시인 "김병연"의 생애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잘 알고 있지만 단편적인 일화 몇 개로 각인되었을 뿐, 그가 살아온 삶의 역경이나 방랑자의 길을 걸어가게 된 이유는 잘 모른다. 어쩌면 그가 내노라 하는 시인들과 겨루던 시구조차 떠올리기 힘들다.
 
독특한 캐릭터와 실력으로 현대에 가져다 놔도 기인으로 불릴 만하고, 능력 하나만으로 풍족하고 호화로운 인생을 즐겼을지도 모를 전설의 문인이지만, 소설을 통해 한 사람의 일생을 따라가보니 일생을 지배한 어두움과 쓸쓸함이 묻어난다.
역적의 후손으로 하루아침에 풍지박산 난 가문의 아들이 아니었더라면 그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평온한 가정환경이었다면 오늘날까지 명성이 자자한 그의 실력은 어떤 분야에서 빛을 발했을까 궁금하다.
 
삼족지멸의 화를 면했음에도 사회에서 가해지는 간접적인 압박에 시인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화자인 작가는 자신의 과거에 얽혔던 굴레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김삿갓이라는 인물에 투영하며, 사회에 대한 원망과 부조리함을 체념과 방랑의 해결책으로 풀어나가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몰락한 가문을 과거시험을 통해 복원하려는 늙은 어미의 마음은 김병연의 마음에도 오랫동안 짐이 되었다.
책을 읽는 독자들도 무모하지만 희망이라고는 하나 밖에 없는 노모의 한이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려는 심정 이해할 수 밖에.

조정은 만만치 않다.
대역죄인의 자손에게 죽음을 면하게 해준 너그러움은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다.
김병연이 체감하는 이상의 대역죄인인 큰아버지(할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냉엄한 현실이었고, 설령 시간이 흘러 면죄부가 확실하게 주어졌던들 매관매직 시대에 가난뱅이 선비에게 주어진 벼슬은 없었다.

능력보다 배경이 더 중요했던 조선 후기의 어지러운 시대상이 요즘 빈부차가 갈수록 커짐에 따라 부의 대물림이 세습화되기 시작한 대한민국의 오늘과 닮아보이는 착각이 든다.

오랜만에 읽어가는 문장은 역시 작가 특유의 미학이 묻어난다.
사전을 뒤져봐도 네이버에는 검색되지 않는 생소한 한자단어들이 중간에 툭 튀는 경우도 있지만, 문맥상 큰 어려움은 없었고, 문장이 이어져서 스토리가 되어가는 과정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몰입도가 높았다.
 
확실히 2020년대에 출판되는 소설과는 호흡과 향기가 다르지만, 대가다운 면모가 페이지 곳곳에 묻어난다.
 
이 책은 왜 이 시기에 복간되었을까?
오래 전 이문열이라는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의 추억을 가진 중장년층에게는 커다란 시간의 흐름 속에 살아있는 문학적 감동을 다시 찾아내는 반가움.
한 번도 접할 기회가 없던 청년들에게는 한국 문학의 굵은 획을 그었던 작가의 예술적 울림을 공유하는 기회.
 
세대 간의 멋진 만남이 책 한 권을 통해 실현되는 기대되는 행로가 시작되는 궤적이 되길 희망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물이 몰려온다 - 높아지는 해수면, 가라앉는 도시, 그리고 문명 세계의 대전환
제프 구델 지음, 박중서 옮김 / 북트리거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남극 빙하가 몽땅 녹아 내려도 우리의 오늘은 소중하다. .... 그렇게 위기는 적립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물이 몰려온다 - 높아지는 해수면, 가라앉는 도시, 그리고 문명 세계의 대전환
제프 구델 지음, 박중서 옮김 / 북트리거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물이 몰려온다 : 남극 빙하가 몽땅 녹아 내려도 우리의 오늘은 소중하다.
 
 
영국 글래스고에서 개최된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은 획기적인 합의안에 이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되던 회의였다.
"세계 각국이 기후위기에 대응해 석탄발전을 단계적으로 감축하고 선진국은 2025년까지 기후변화 적응기금을 두배로 확대하기로 했다."
뜻밖의 결론,
중국, 인도 같은 온실가스 다량 배출국과 선진국, 기후 피해국 각 자 입장차가 좁혀 지기 쉽지 않겠지만 날로 심각해지는 지구온난화라는 우려 가득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전격적인 합의, 이런 뉴스를 기다렸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다.
특히 세계적으로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는 인도가 마지막에 표현 수정을 거칠게 요구하며 석탄발전 "중단"이 "감축"으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지금 소개하는 책 "물이 몰려온다."에 등장하는 앞이 캄캄한 현실과 대조되는 결과를 우리는 2021년 11월 보고 있다.
"당장 내일 인류가 석탄 사용을 모두 중단하더라도 이미 대기 상에 쌓인 이산화탄소는 인류가 멸종될 지도 모르는 수 천 년 후에도 계속 지구 대기에 남아있을 것이다."
 
막연하게 이온 층에 구멍이 숭숭 뚫리면 피부에 안좋을 거야라는 단순한 지식에서 출발한 환경보호 관련 책 읽기는 깊은 사고가 가능한 수준까지는 도달하기에 역량이 부족하지만,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일상생활에서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은 무엇일까 고민하는 계기 정도는 갖게 해준다.
 
책이나 영화 등에서 해수면 상승이 일년에 몇 센티미터 정도라거나 남극이 다 녹아버리면 몇 십 미터 높아진다는 와 닿지 않는 정보들은 위기를 느끼기에는 두리뭉실하다는 느낌이다.
"물이 몰려온다."를 읽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알고 있던 상식과 위기에 대한 자세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
 
과거부터 오랫동안 자연 재해에 인간은 신음하고 있었지만, 앞으로 빙하가 녹아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비극적 상황으로 휩쓸릴 가능성이 낙관적으로 보더라도 종말에 이르는 롤러코스터를 되돌리기는 이미 늦었다는 어지러운 숫자가 보여지고 현상과 결과를 시각적으로 깨닫게 된다.
많은 신화 속에 등장하는 대홍수의 전설과 노아의 방주가 인간에게 다시 벌어질 참상의 원형이 된다.
 


저자 역시 실제 홍수로 피해를 입은 지역들을 방문하여 해수면 상승의 결과가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충격적이었다는 술회를 하니, 우리가 책으로 느끼는 위기와 차이가 많이 나겠지만 과연 우리는 후손들에게 남겨줄 수 있는 유산을 반이라도 지킬 수 있을까 의심하게 된다.
 
일부 학자나 환경론자들은 지금부터라도 연안에 자리 잡은 도시 거주민들은 조금 더 높은 지역으로 생활의 기반을 옮겨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일리가 있어 보이지만 문제는 당장 내년에 큰 해일이 일어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보다도 신빙성이 적어 보이는 몇 십년 몇 백 년 후의 이야기라고 생각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공무원들이 그러잖아도 부족한 세수를 절감하여 이주 비용에 지원하는 험난한 과정을 손수 나설 수 있을까?
실제로 태풍이나 홍수 등으로 물피해를 입은 지역일 수록 이전에 대한 논의를 해 볼만 하겠지만, 이런 지역의 경우 수해 복구에 기존에 가지고 있던 예산을 쓸어 담고도 모자란 상황이니 먼 훗날을 위해 준비하는 일 자체는 관심 자체를 둘 여유가 없다. 정치인이나 기업가들은 물어볼 필요도 없고.
 
지구 공학적 측면에서 하늘에 미세 입자를 흩뿌려 난반사를 이용한 지구의 온도를 조절하자는 주장도 소개된다.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이고 일부는 이에 대한 적극적인 도입을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누군가의 이득이 명확하지 않은 일에 세상 모든 나라가 합심하여 일년 십년 백 년 동안 꾸준히 환경적 활동을 지속하리라 믿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더군다나 인위적인 온도의 조절을 실행할 경우 지형에 따라 각 국가별 득실이 나뉠 수 있다 보니 의견을 통합하고 공평한 역할을 기대하는 주체를 선발하다 전쟁이 날 수도 있는 복잡한 역학 관계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물의 변화가 지역과 사람들에게 미치는 다양한 사례를 추적한 저자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앞서 이야기한 국가 간의 합의조차 어려운 상황에 대한 공감을 할 수밖에 없다.
정치인을 탓하고, 국가의 정책을 비판하기에 앞서 같이 한 지역에서 살아가는 이웃 중 그 누구도 물이 몰려온다는 공포와 경각심을 갖고 있지 않다.
팬데믹이 일어나기 전 바이러스의 역습에 대한 우려를 하지 않고 내버려두면 해결되리라 생각했던 대다수의 우리 아닌가?
 
같은 식탁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3~10일 지나서 감염증상을 알 수 있는 코로나와 달리 수많은 시간, 어쩌면 우리의 아들과 손자대에 가서 위기로 닥칠 물의 위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 던 모르던 무시하고 내일을 기약하는 현상이다.
하지만 내일 일은 내일 사람들이 해결하라는 미루기가 점차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다.
바로 지금 우리 세대가 실행하고 대비하지 않는다면 많은 동물들이 절멸하듯, 인간이라는 종의 위기가 어느 순간 다가올 수도 있다.
 
위기에 대해 정확히 인지하고, 공감하여, 일상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하나부터 시작하는 것만이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실행방안이라는 절심함을 느끼며 책을 덮게 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