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소국의 제2차 세계 대전사
권성욱 지음 / 열린책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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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소국의 제2차 세계 대전사 : 승자의 기록에 가려진 약소국의 피,눈물, 그리고 오늘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휘발유 가격이 2천원 턱까지 차올랐다.

설마했던 전쟁의 후폭풍은 머나먼 한반도의 동네 주유소까지 충격파를 가한다.

자국민 3만명을 살상한 독재자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와 처벌은 누구나 정의 구현이라는 이름으로 바라지만, 수많은 민간인의 희생까지 감내하며 미국과 이스라엘이 일으키는 전쟁에 마냥 응원을 보낼 수는 없다.

약소국의 설움은 과거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다. 강대국들이 자신의 이권을 챙기기 위해 전 지구적 규모의 전쟁을 벌이는 동안, 약소국들이 기껏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전근대적인 무기와 군인들의 사기에 의존하여 피를 흘리는 것뿐이다.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가 그랬고, 허약한 나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강력한 미국의 무기체계 앞에서 허망하게 무너져내리는 이란의 모습이 그렇다. 누가 잘했고 잘못했음을 떠나, 약소국이 강대국의 패권 다툼 속에서 어떤 비극적 과정을 겪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냉혹한 현실이다.

역사의 기록은 결국 승자의 관점에서 쓰인다. 

제2차 세계 대전의 포화 속에서 우리가 보았던 강대국 간의 치열한 전투 이면에는 유럽과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들의 피 말리는 생존 투쟁 또한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투쟁은 강대국 중심의 역사에 밀려 역사의 뒤안길에서 잊혀졌고,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은 채 수많은 시간이 흘렀다. 이 책 “약소국의 제2차 세계 대전사”는 바로 그 잊혀져간 약소국들의 핏빛 생존기를 먼지를 털어내고 책으로 초대한다.



책의 서두를 장식하는 그저 못사는 아프리카의 한 나라, 에티오피아의 비극은 약소국의 씁쓸한 현실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당시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의 유일한 독립국이자 아프리카의 명예를 한 몸에 짊어진 국가였으나, 무솔리니의 야욕에 사로 잡힌 침탈 앞에서는 그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야 그때보다 낫지만, 당시 국제연맹의 제재는 아무런 힘도 가지지 못했다. 일본이 중국과 조선을 침탈하듯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공을 막아설 나라는 세상에 없었다. 두 나라의 전쟁을 수수방관하기로 한 영국과 프랑스는 히틀러라는 거대한 미치광이를 견제하고 달래는 데 급급한 유화 정책을 펼쳤을 뿐이고, 미국은 먼로주의를 내세워 대륙 밖의 비극에는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방관이 자신들에게도 결코 좋지 않은 결과로 다가올줄 몰랐다.

결국 에티오피아는 스스로 자신을 지켜야 했으나, 그들이 가진 무기는 50년 넘은 구식 소총과 전근대적인 무기, 그리고 나라를 지키겠다는 의욕뿐이었다. 하늘을 뒤덮은 폭격기를 상대로 대공포 하나 없이 소총을 쏴본들 무슨 소용이 있었겠는가. 그럼에도 전쟁 초기 에티오피아의 반격은 만만치 않았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당시 이탈리아군이 내세운 무기체계의 허접함이다. 책을 읽어보며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이탈리아군이 주력으로 사용한 '탱켓'이라는 소형 트랙터 수준의 얇은 장갑차와 기관총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엉성한 실력을 가지고 에티오피아를 정복하겠다고 덤벼들었는지를 엿볼 수 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와 그 이후에도 연합국과 추축국 모두에게 비웃음을 살 만도 하다.

그러나 에티오피아군 역시 치명적인 한계를 안고 있었다. 20세기 현대전의 한복판 에서 그들은 "야간 전투는 피한다", "상관을 죽이면 전쟁은 끝난 것으로 여기고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낡은 전통과 풍습을 고집했다. 결과적으로는 역부족이었지만 개전 초기 스스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몇 안되는 기회마저 전략 부재와 무모함으로 날려버린 셈이 되었다.

이탈리아의 허접한 군사력에도 불구하고 중과부적으로 패배한 에티오피아는 독립국으로서의 오랜 명맥과 아프리카의 희망이 꺾인 채 침몰했다. 한 번 주권을 빼앗긴 국가는 민주주의와 경제 등 모든 사회적 기반이 붕괴하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뼈아픈 후유증을 앓는다. 에티오피아가 오늘날까지도 가난과 분쟁 속에서 신음하는 이유다. 한국전쟁 당시 낯선 이국땅에 유엔군으로 참전해 피를 흘려주었던 그들의 미약한 부활과 험난한 역사를 떠올려보면, 같은 약소국의 설움을 겪었던 우리 입장에서는 깊은 연민과 동정을 느낄 수밖에 없다.



에티오피아의 사례는 유럽 한복판에서도 비슷한 사례로 나타난다. 

유럽 한복판의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 베네룩스 3국이 바로 그들이다. 에티오피아가 '국제사회의 도덕적 개입'을 순진하게 믿었다면, 베네룩스 3국은 '국제법상의 중립 선언'이라는 종잇조각을 맹신했다.

과거 전 세계의 바다를 호령했던 부국 네덜란드는 막대한 부를 쌓았음에도 이를 국방력으로 환산하지 않았다. 제1차 세계 대전 때처럼 자신들이 중립을 외치면 독일이 알아서 피해 갈 것이라는 근거 없는 환상에 빠져 연합군과의 군사 공조를 철저히 거부했다. 

그리고, 결과는 처참했다. 하늘에서 쏟아져 내린 독일 공수부대와 기갑사단 앞에 네덜란드의 중립 선언은 5일 만에 찢겨 나갔고, 국토는 잿더미가 되었으며 국민들은 52개월간 나치의 노예로 전락했다. 힘이 거세된 평화주의와 외교적 호소가 얼마나 무기력한지를 보여주는 끔찍한 반면교사다.



이념과 명분을 고집하다 파멸한 나라들이 있는 반면, 저자가 책에서 좋은 사례라고 언급하는 핀란드는 약소국 생존의 또 다른 극단적인 단면을 보여준다.

핀란드는 소련의 침공에 맞서 경이로운 항전을 펼쳤으나, 살아남기 위해 결국 서구 민주주의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나치 독일과 손을 잡는 카멜레온 같은 변신을 택했다. 하지만 히틀러의 전세가 불리해지자 다시 소련과 손을 잡고 독일의 뒤통수를 치며 자신들이 내주었던 영토에서 내쫓았다. 저자는 핀란드의 이러한 행보를 도덕적 타락이 아니라, 국가 멸망을 막기 위해 이념마저 헌신짝처럼 버린 눈물겨운 애국심과 극강의 실용주의로 높게 평가한다.

하지만 핀란드의 항전은 단순히 방어적 생존을 넘어,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방조하고 소련의 영토까지 탐낸 '대핀란드주의'라는 제국주의적 팽창 야욕이 섞여 있다는 사실도 다른 시각에서 바라봐야한다. 오스트리아 역시 자발적으로 히틀러를 환영하고 전범 행위에 깊이 가담했음에도, 냉전이라는 틈새를 영악하게 파고들어 전후 우리는 첫 번째 피해자'는 프레임을 씌우고 책임을 회피했다. 생존을 위해 역사를 윤색하고 전범의 꼬리표를 잘라낸 이들의 행동을 단지 훌륭한 실용 외교로만 포장하기에는, 그들이 외면한 역사적 진실과 도덕적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하지만 이 부분이 약소국이 살아남기 위한 피할 수 없는, 그리고 가장 효과적인 선택이라는 사실만은 부정할 수 없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아닐까?



책에 등장하는 에티오피아, 네덜란드, 핀란드의 궤적을 찬찬히 넘겨보다, 결국 그 모든 역사는 100여 년 전 제국주의의 먹잇감이 되었던 조선의 비극과 맞닿아 있음을 깨닫는다..

조선의 멸망 과정은 이 세 국가의 치명적인 과오를 모두 합쳐놓은 종합 선물 세트였다.

조선은 에티오피아처럼 강대국의 선의와 도덕적 동정에 기댄 외교적 호소에만 매달렸고, 네덜란드처럼 국방력이 철저히 붕괴된 상태에서 서류상의 전시 중립 선언으로 나라를 보전하려는 헛된 꿈을 꾸었다. 하지만 안타깝지만 일본은 이탈리아의 허접한 탱크와는 차원이 다른, 철저히 시스템화된 무기와 군사체계를 가진, 무려 항공모함만 25대 이상 운영한 근대 군사 강국이었다. 조선의 힘이 얼마나 속절없이 무너질 수 밖에 없었겠는가?

무엇보다 조선에는 핀란드와 같은 처절한 내부 결속과 무장 저항의 실체가 없었다. 일본이라는 외세가 총을 겨누기 전에, 이미 조선은 수십 년간의 내부 권력 투쟁과 민생 파탄으로 스스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결국 단 한 번의 제대로 된 국가적 전면전도 치러보지 못한 채 속절없이 국권을 내어주고 말았다. 스스로 피를 흘려 지켜낼 힘과 통합된 의지가 없는 국가는, 결국 열강들의 회담 테이블 위에서 냅킨 조각에 선이 그어지며 분할되거나 삼켜진다는 것을 우리는 뼈저리게 겪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유엔이 창설되었고, 함부로 전쟁을 일으키면 모두가 파멸한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약소국들에게도 번영의 기회가 주어지긴 했다. 하지만 최근의 국제 정세가 증명하듯, 국제법의 얇은 껍질을 한 꺼풀만 벗겨내면 그 속에는 여전히 힘의 논리만이 지배하는 야생의 정글이 도사리고 있다. 


강대국의 논리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승자의 역사 뒤안길에서 피 흘리며 스러져간 이 약소국들의 처절한 기록은, 여전히 지정학적 단층대 위에 서 있는 우리에게  경고로 다가온다.


두툼한 책을 읽어가며 저자가 써놓은 방대한 지식과 식견에 놀라고, 중간 지루할 때 쯤 등장하는 지도나 당시의 희귀한 사진들에 흥미가 배가 된다. 전쟁사, 특히 2차 세계대전사를 즐겨 읽는 독자들에게 그동안 어렴풋이 들어왔던 유럽과 아프리카의  “그 외” 나라들에게 전쟁이 얼마나 가혹한 현장이었던가 다시 한번 상기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이런 멋진 도서가 출판될 수 있어 역사 애호가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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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글, 100만 조회수 폭발시키려면 이렇게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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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설계자 - 쓰는 족족 팔리는 100만 조회수의 과학 스타트업의 과학 6
니콜라스 콜 지음, 이민희 옮김 / 윌북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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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설계자 : 내가 쓴 글, 100만 조회수 폭발시키려면 이렇게 해라.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온라인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단순히 문장을 나열하는 과정에서 끝나지 않는다. 철저하게 기획되고, 독자의 심리를 파고들며, 최종적으로는 수익과 권위로 연결되는 설계 과정이 필요하다.


내가 글쓰기 천재라서 쓰는 족족 제대로 결과물이 만들어지고 온라인에서 사람들에게 좋아요를 수만개씩 받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을 그렇지 못하다. 그렇다면 성공사례를 만들어낸 선지자의 위대한 업적을 유산으로 물려받자. 현실적인 타협아닌가?



니콜라스 콜의 “콘텐츠 설계자”는 작가가 어떻게 온라인 공간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읽히게 만들며, 이를 통해 수익이라는 포근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실전적이고 전략 가득한 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실현, 수익, 아니면 거대한 목적을 위해 오늘도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무엇을 쓸 것인가 만큼 어디서,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해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나의 정교한 설계 과정을 거쳐 내 글이 더 많은 사람에게 닿고, 공감하며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기 시작한 보람을 느낄 수 있다.




책의 도입부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플랫폼의 선택에 대한 저자의 통찰이다. 

한국에서는 흔히 '글쓰기' 하면 네이버 블로그나 티스토리를 먼저 떠올리지만, 저자는 블로그를 누군가 찾아와야만 하는 수동적인 공간으로 정의한다. 블로그의 경우 내가 쓴 글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어려운 플랫폼이기에, 당장의 제품 판매나 광고 수익 목적이 아니라면 후순위에 두라고 권유한다.


대신, 수억 명의 독자가 이미 모여 있는 플랫폼(소셜 미디어 등)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한국적 맥락으로 치환해 보면, 활성화된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를 테스트 베드로 활 수 있지 않을까. 커뮤니티에 글을 올려 독자들의 즉각적인 반응을 살피고, 때로는 날 선 비판이 가득한 댓글까지 수용하며 성장의 기회로 삼는 것이다. 


최근 개인 홈페이지가 포트폴리오 용도 외에는 크게 유행하지 않는 시대적 흐름을 보아도, '트래픽이 흐르는 곳에 내 글을 띄워라'라는 저자의 주장은 타당하다.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내 글을 드러내는 법은 무엇일까? 

저자는 인터넷 시대의 가장 큰 무기인 데이터 즉, 독자의 반응을 적극 활용하라고 주문한다. 

내 머릿속의 직관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의 클릭과 체류 시간, 댓글이라는 데이터를 적극 활용하여 글을 쓰거나 새로 고쳐 쓸 때 방향을 잡는 식이다

.



여기서 하나 머리를 강타한 내용은, 오늘 쓴 글이 최고의 수준이 아닐 수 있음을 겸허히 인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내 경우 글을 하나 포스팅하면 박제라도 한 양 수정이나 업데이트를 생각도 하지 않는데, 공개적인 공간에서 끊임없이 피드백을 받고, 이를 바탕으로 업그레이드해 나가는 과정 자체가 온라인 글쓰기의 본질이라고 저자는 조언한다. 글을 쓰고, 데이터를 분석하고, 개선하는 속도가 곧 작가로서의 성장 속도의 바로메타이다. 


단순히 글을 쓰는 행위에 그치지 않고,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발전시키고 실행하는 일련의 과정은 작가로서 온라인의 특징을 포용하여 좀 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기반이 된다.



그런 면에서 나만의 카테고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전략은 자신을 담금질하는 좋은 글쓰기의 기회로 삼아도 좋을 듯 하다.


저자는 콘텐츠 글쓰기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한 7가지 핵심 전략을 제시한다.


 * 의식적으로 하라

 * 카테고리를 선택하라

 * 내 스타일을 정하라

 * 속도를 최적화하라

 * 구체적으로 써라

 * 신뢰도를 쌓아라

 * 나만의 카테고리를 만들어라


이 중 가장 핵심적이고 강력한 무기는 단연 나만의 카테고리를 만드는 것이다. 

기존의 거대한 카테고리 안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이미 강력한 팬덤을 구축한 기존 작가들과의 피 터지는 경쟁을 의미한다. 하지만 융합과 해체를 통해 나만의 독특한 카테고리를 창조한다면, 나는 그곳의 유일한 작가이자 최초의 작가가 될 수 있다. 

이 마케팅에서 새로 만든 신상품이나 서비스를 어떤 것으로 정의하느냐에 따라 포지셔닝하는 부분과 유사하다.


과거 딱딱한 과학서와 피상적인 자기계발서 사이에서 대중과학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말콤 글래드웰이나, 어린아이들을 정조준하여 마법 판타지의 새 지평을 연 J.K. 롤링이 대표적인 예다. 아이디어 발산 기법처럼 기존의 조건들을 더하고 빼는 과정을 통해 독보적인 카테고리를 발굴한다면, 훨씬 빠르게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저자가 제시하는 가장 인상 깊은 조언은 "특정 카테고리에서 특정 유형의 글을 '가장 뛰어난 버전'으로 완성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내가 쓴 글에만 매몰되기 쉽다. 

하지만 진정한 콘텐츠 설계자는 다른 사람의 글을 분석하고, 그들의 글에서 부족한 부분을 추적해 내 글을 압도적인 No.1으로 만든다.


막연히 좋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독자가 필요로 하는 정보, 기존 콘텐츠들의 한계를 분석하여 내 글 하나만 읽고도 모든 의문이 해결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장황하거나 복잡하지 않게 핵심에 곧바로 닿아야 한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내가 독자라면, 이 카테고리에서 어떤 글을 읽고 북마크를 해둘 것인가?" 바로 그 지점이 내 글이 도달해야 할 목적지다. 


더 나은 품질, 어조, 구성, 관점, 타깃, 경험을 끊임없이 키보드 위에서 벼려내야 한다.



책의 후반부로 넘어가면, 저자는 단순히 조회수를 높이는 것을 넘어 이를 수익화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구체적인 테크닉을 다룬다. 


첫번째는 스캐닝을 위한 시각적 구조화다. 


온라인 독자는 글을 읽지 않는다. 스크롤하며 훑어본다. 저자는 1-3-1 법칙(한 줄 문장, 세 줄 단락, 다시 한 줄 문장)과 같이 독자의 시선을 끊임없이 아래로 끌어내리는 시각적 리듬감을 갖게 하라고 조언한다. 


둘째, 완벽함보다 압도적인 볼륨이다.

"질(Quality)은 양(Quantity)에서 나온다"

우리가 자주 듣던 좋은 글이나 아이디어 만들기의 원칙 중 하나이다.

완벽한 명작 하나를 쓰기 위해 달에 한 번 글을 올리는 것보다, 매일 끊임없이 변형된 아이디어를 생산하며 데이터를 쌓는 것이 이긴다.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머뭇거림을 없애기 위해 저자가 제시하는 '무한 아이디어 생성 매트릭스'는 무엇을 써야 할지 막막한 작가들에게 기계적으로 글감을 찍어낼 수 있는 강력한 도구를 제공한다.


셋째, 클릭을 넘어선 최종 수익화 생태계 구축이다.


플랫폼에 종속된 글쓰기에서 벗어나, 궁극적으로 이메일 리스트를 구축하고 나만의 디지털 상품, 코칭, 고스트라이팅 등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로 확장하는 방법을 다룬다. 플랫폼의 알고리즘은 언제든 변할 수 있지만, 내가 직접 확보한 독자 리스트는 변하지 않는 자산이다. 트래픽을 모으는 1단계를 넘어, 그 트래픽을 내 소유의 비즈니스로 전환하는 이 시스템적 접근은 콘텐츠로 평생의 업을 삼고자 하는 이들에게 중요한 로드맵을 제시한다.

비슷한 마케팅 도서에서도 자주 인용되는 부분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메일을 통한 콘텐츠의 공급은 효과적이지 않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너무 많은 무의한 정보가 메일함으로 쏟아져 들어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접근하지 않는 채널이 있다면 어쩌면, 거기에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




콘텐츠를 통해 독자와 소통하고 수익을 얻는다는 본질은 전 세계 어디나 동일하다. 

하지만 각 나라별 플랫폼 환경과 독자들의 소비 성향에 따라 그 전술은 달라져야 한다. 

저자가 강조하는 트위터나 미디엄 중심의 짧고 빠른 글쓰기를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기엔 네이버 블로그의 검색 로직이나 인스타그램의 이미지 중심 마케팅과는 결이 다른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강력한 이유는 '글쓰기를 대하는 태도와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꿔놓기 때문이다. 

독자가 북마크할 수밖에 없는 가장 뛰어난 버전의 글을 기획하는 법, 기존의 요소를 결합해 나만의 새로운 카테고리를 창조하는 법, 그리고 데이터를 바탕으로 감정의 동요 없이 매일 아이디어를 실행으로 옮기는 법은 플랫폼을 막론하고 통용되는 절대 진리다.


책을 덮으며 머리를 지배한건 역시나 “실행”이다.

좋은 스승을 만나 깨우침의 순간을 겪었으니 이제는 키보드를 두드리며 실제 배운 바를 실천하는 길이 유일한 정도이다. 꾸준히 하루에 하나씩 포스팅을 올리는 실행력이 내일, 100만 클릭을 만드는 글쓰기의 시작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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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을 만든 사람들 - 아르키메데스부터 괴델까지, 수학자 50인에게서 배우는 수학의 역사와 원리
알프레드 S. 포사멘티어 외 지음, 강영옥 옮김 / 동아엠앤비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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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을 만든 사람들 : 차가운 수식 뒤에 숨겨진 뜨거운 인간의 드라마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내게 수학이란 결코 애정을 품을 수 없는 차갑고 건조한 학문이었다. 

그나마 수학 언저리에서 즐거움을 느꼈던 기억을 꼽자면 초등학교 시절 다녔던 주산학원이 유일하다. 경쾌하게 주판알을 튕기던 손맛, 그리고 그 덕분에 지금도 웬만한 두 자리, 세 자리 숫자의 계산은 암산으로 척척 해낼 수 있게 된 얄팍한 잔기술만이 내게 남은 수학적 유산의 전부였다. 

만약 그때, 단순히 숫자를 빠르고 정확하게 계산하는 기계적인 숙련도를 넘어, 그 숫자와 기호들이 품고 있는 진정한 '수학이라는 학문 자체'의 경이로움과 매력을 누군가 내게 가르쳐 주었더라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분야에서 생업을 찾지 않았을까?

결국 나는 수학의 아름다움을 깨닫지 못한 채 수식만 보면 머리가 아파지는 '100% 순도의 문과생'으로 대학 생활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험난한 직장생활은 수학에 대한 원망만 늘려놨다. 세상은 감성이나 화려한 문장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복잡하게 얽힌 비즈니스 현장에서 문제를 정의하고, 논리적인 인과관계를 따지며, 최적의 해답을 도출해 내는 과정은 수학적 사고, 그 자체였다. 숫자로 증명하고 논리로 설득해야 하는 숱한 순간들을 마주할 때마다, 학창 시절 수학을 멀리했던 아쉬움과 미련으로 마음 한 켠에 고였다. 

요즘 낯설고 흥미로운 취미 하나를 시작하려고 마음만 먹고 있다. 바로 학창 시절 나를 그토록 괴롭혔던 애증의 책, 수학의 정석을 다시 펼쳐 드려고 준비를 하고 있다. 

누구의 강요도, 입시라는 무거운 압박감도 없이 오롯이 나의 의지로 수학 문제를 하나씩 풀어가다 보면, 수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흥미를 높일 수 있지 않을까. 책만 사면 된다.


이처럼 지독하게 복잡한 이론과 수식들은 도대체 '누가', '왜',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낸 것일까? 무작정 암기하기 바빴던 그 공식들 뒤에는 어떤 역사가 숨 쉬고 있을까?

이러한 지적 갈증이 알프레드 S. 포자먼티어와 크리스티안 슈프라이처가 공저한 “수학을 만든 사람들”로 이끌었다. 50명에 달하는 위대한 수학자들의 삶과 업적을 연대기적으로 정리한 이 책을 손에 든 이유는 명확했다. 그렇게 하기 싫어 도망쳤던 수학의 여러 이론과 수식들이 탄생하게 된 치열하고도 인간적인 역사의 현장을 내 눈으로  확인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시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고대의 철학자부터 근현대의 대수학자들에 이르는 이 거장들이 감정의 동요 없이 오직 이성으로만 무장한 완벽한 존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두 저자가 담담하게, 그러나 흥미롭게 그려낸 50인의 삶은 완벽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들은 질투하고, 분노하고, 좌절하며, 때로는 지독한 편집증에 시달리는 결함 많은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다. 


가장 먼저 흥미를 끈 것은 고대 수학의 철학적 토대를 닦았던 피타고라스(Pythagoras)다. 학창 시절 '피타고라스의 정리'라는 건조한 공식으로만 외웠던 그는, 사실 단순한 수학자를 넘어 영혼의 윤회를 믿고 철저한 채식주의를 규율로 삼았던 일종의 종교 집단(피타고라스 학파)의 교주였다. 만물의 근원을 수(數)로 보았던 그들의 신비주의적이고 폐쇄적인 행보를 읽으며, 수학의 기원이 단순한 셈법이 아니라 우주의 비밀을 풀고자 했던 종교적 열망에 맞닿아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천재 중 한 명으로 추앙받는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의 챕터는 나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책 속에 묘사된 뉴턴의 내면은 놀랍도록 편협하고 신경질적이었다. 그는 라이프니츠와의 미적분학 최초 발견을 둘러싼 우선권 논쟁에서 자신의 학계 지위를 이용해 상대방을 철저히 파멸시키려 드는 옹졸함을 보였다. 타인과의 소통을 극도로 꺼리고 연금술과 이단적인 신학에 집착했던 그의 어두운 이면은, 훌륭한 학문적 성취가 반드시 성숙한 인격을 담보하지는 않는다는 씁쓸한 교훈을 안겨주었다. 주식에서 엄청난 실패를 맛보았던 점도 인간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반면, '수학의 황제'라 불리는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Carl Friedrich Gauss)의 생애 앞에서는 인간 지성이 도달할 수 있는 궁극의 경계에 압도당한다. 초등학교 시절 1부터 100까지의 합을 순식간에 계산해 낸 일화로 유명한 그는, 그야말로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수학적 진리를 발견해 냈다. 하지만 그의 완벽주의는 다른 이들에게 절망의 벽이기도 했다. 완벽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연구는 절대 발표하지 않았고, 동시대의 다른 수학자들이 일생을 바쳐 발견한 새로운 이론을 들고 오면 자기도 예전에 생각해 두었던 것이라며 차갑게 응수하기 일쑤였다. 더우기 이런 말투가 허세가 아닌 진심일 가능성이 더 높으니. 범인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천재의 고독과 오만함이 책장 너머로 생생하게 전해졌다.


이 책에서 가장 극적이고 가슴 아픈 서사를 꼽으라면 단연 에바리스테 갈루아(Évariste Galois)의 이야기다. 현대 대수학의 근간이 되는 군론(Group Theory)을 창시한 이 천재는 불과 스무 살의 나이에 권총 결투로 생을 마감했다. 정치적 격변기였던 프랑스에서 혁명의 열망에 불타오르던 청년 갈루아는 기존 학계의 낡은 벽에 부딪혀 번번이 좌절했고, 억울한 감옥살이와 짝사랑의 실패를 거쳐 명분 없는 결투장으로 향했다. 죽음을 직감한 결투 전날 밤, 어두운 촛불 아래에서 시간이 없다는 절망감 속에 자신의 수학적 아이디어들을 종이 위에 휘갈겨 쓴 일화는 소설보다 더 소설 같다. 뜨거운 피를 가진 청년의 절박함이 어떻게 차가운 수학 공식으로 승화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드라마틱한 장면이다. 물론 과장된 에피소드라는 의견도 있지만, 역사란 뇌리에 각인된 바로 그 장면만을 기억한다.


무한(Infinity)의 비밀에 도전했던 게오르크 칸토어(Georg Cantor)도 지나칠 수 없다. 그 이전까지 수학계에서 무한은 그저 신의 영역이거나 금기시되는 모호한 개념에 불과했다. 하지만 칸토어는 무한에도 크기가 있으며, 어떤 무한은 다른 무한보다 더 크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수학적으로 증명해 냈다.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의 문제이긴 하지만, 유한한 지성으로 무한의 본질을 직시하려 했던 이 도전은 아쉽게도 비극으로 끝이 났다. 동료 수학자 크로네커의 집요한 공격과 학계의 차가운 외면 속에서 칸토어의 정신은 서서히 무너져 내렸고, 결국 생의 마지막을 정신병원에서 외롭게 보내야 했다. 진리를 향한 탐구가 한 인간을 어떻게 파괴할 수 있는지, 그럼에도 그가 남긴 '집합론'이 어떻게 현대 수학의 흔들리지 않는 기초가 되었는지를 아이러니할 수 밖에 없다.


이처럼 철저히 이과적인 기호들의 세계를 인물 중심의 인간 서사로 풀어낸 두 저자의 솜씨는 친절하고 탁월하다. 나처럼 수학적 배경이 얕은 사람일지라도 책에 등장하는 50명의 업적을 완벽히 이해할 필요는 없었다. 공식을 증명하는 대신 그들이 왜 그 증명에 일생을 바쳤는지, 역사의 한 분야로서 접근하는 것만으로도 이 책에서 뽑아낼 가치는 충분하다. 


비록 내 학창 시절은 수학의 즐거움을 모르는 문과생의 길이었고, 오랜 시간 밥벌이 속에서 수학적 사고의 부재로 뼈아픈 후회를 남기기도 했지만, 지금이라도 수학이라는 학문의 새로운 얼굴—숫자 뒤에 숨겨진 뜨거운 인간의 호흡—을 마주하게 된 것은 의미있는 발견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지독하게 머리가 아픈 수열이나 미적분의 공식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우주의 비밀을 엿보고자 했던 피타고라스의 열망과 무한의 심연을 들여다보다 정신줄을 놔버린 칸토어의 뒷모습을 떠올릴 것이다. 이 책은 나처럼 수학에 빚진 마음을 안고 살아가는 모든 어른들에게 수학이 단순히 '정답을 맞히는 기술'이 아니라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고자 했던 '인간의 고뇌가 표현된 정수’였음을 깨닫게 해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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