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집 짓기
정재민 지음 / 마음서재 / 201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거미줄 한땀 한땀 작가의 노력이 송송, 훌륭한 데뷔작에 박수를


 

멋진 소설가 처럼 내 이야기를 한번 글로 써볼까, 호기심 반 심심풀이 반으로 시작한 글쓰기를 해본 사람이라면, 원고지 한 칸 한 칸 채워나가는 작업이 얼마나 지난하고 끈기, 상상할 수 없는 견고함을 포함한, 시간들이 모여야 하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프린트 되어 나오면 4-5초에 달랑 한장 인쇄되어 나오는 페이지들이 모여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얼굴을 드러낸다는 것은 실제 들어간 무게는 고래 한마리 느낌일테지만, 이 마저 확률상 얼마나 작은 가능성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기적이 아닐까.


 

데뷔작이라는 것은 메쉬가 화려한 드리블로 눈 앞에 다리를 쭉쭉 뻗어내는 수비수들의 무차별적인 방해요소들을 하나씩 풀어나가고 상업적인 성공 아니면 독창적인 우수성을 잣대로 들이미는 편집자의 오랜 경험과 용기에도  합격점을 받아내야만 얻을 수 있는 영광스러운 결과물이다.

독자들의 잣대를 들이밀기도 전에 이미 전쟁은 시작되었다.

사회적인 성공의 범주에 들어서고도 남을 직업을 뒤로 한채, 전업작가로의 첫발걸음을 내딛는 저자의 도전과 용기에 그래서 박수를 치고 싶다.

정말 멋있다고, 또 그에 걸맞은 책 마지막 한 페이지까지 긴장감을 쏟아내는 즐거운 소설에 고맙다고.


 

추적추적한 비오는 느낌이 소설 전체의 분위기를 잡아놓는다.

손님 별로 없는 커피샵의 테이블 위는 무겁게 내리깔리 잿빛 하늘의 어두음을 반사하는 장면이 떠오르고 시종일관 검은색 먼지가 세상을 뒤덮어버린 도계의 탄광마을은 평생 가본적 없지만 몽환적인 풍경에 마른 기침과 가래가 섞여버린 기침소리가 가득차 있지 않을까 싶다.

전혀 다른 공간과 시간을 달리는 한 여성과 한 남성의 이야기가 교차편집되어 스토리를 끌어간다. 두개의 이야기 선이 하나로 맞닦뜨려질 때의 속시원한 느낌은 책을 넘기는 손가락을 즐겁게 해준다.

책의 반이 넘도록 스릴러라는 쟝르의 전개는 나오지 않기에 책 표지는 상업적인 성공을 바라마지 않는 편집자의 욕심이 아니었을까.

중요한 건 스릴러를 기대하고 첫페이지의 충격적인 서막을 기대했지만, 그러지 못했고 이제 마지막 페이지를 향해 얼마남지 않는 숨가쁜 동행을 작가와 해왔건만 쟝르 구분이 잘못된거 아닌가 싶은 어리둥절함은 남아있다. 성장소설같기도 하고….

물론 분명히 이야기하지만 피가 끓어오르거나 심장이 두동강 날 것 같은 예리한 긴박감을 기대했더라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느린 템포로 세상을 다시 바라보는 느낌으로 작은 템포의 스릴러도 독자의 가슴 뻐근한 고통을 안겨줄 수 있다는 사실.


 

데뷔작임에도 작가의 표현력은 백권쯤 써내려온 전문가의 손길이 느껴진다.

강약의 조절이 아쉬운 부분도 눈에 띄지만 데뷔작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한 스토리 전개와 유려한 표현이 책장 넘기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주인공 둘이 주고받는 대화 도중 갑자기 교과서 같은 이야기가 튀어나오거나, 갑자스런 감정의 기복이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부분이 분명있지만 마지막 장을 넘기며 책 잘 읽었다 좋은 책이다 잘썼네 하며 기쁜 마음을 가졌다.

좋았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