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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어디선가 시체가
박연선 지음 / 놀 / 2016년 7월
평점 :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
쟝르소설 어떻게 쓰는가, 뭐
대략 이런 제목의 책 한 페이지에서 무릎을 탁 치게 만든 의미심장한 한 작가의 핵심 찌르기.
쟝르소설에서 첫 문장은 모든 것을 결정한다.
첫 번째 문장은 이야기 전체를 아우르는 의미가 있어야 하며 독자를
단숨에 소설 속에 몰입시킬 만한 힘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였다.
"해가 똥구녕을 쳐들 때까지 자빠졌구먼."
아 참 멋대가리 없는 첫 문장.
앞의 작가가 들었다면 자신의 주장을 무시했다며 무척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본 작의 분위기나 전체적인 흐름을 짚어본다면 딱히 처질만한 멘트는
아님에도 조금 아쉬운 건 사실이다.
독자를 유혹하기에는 '차라리
부채질은 하다가 그만 두면 더 더운 법이지'
챕터2의 헤드라인인
이 문장이 매력적이다.
갑자기 문장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책제목의 압도적인 끌림에
비해 초반부의 사건전개나 문장의 기법, 주인공들의 캐릭터 등이 전체 소설의 이야기가 가진 흡입력을 제대로
표현해내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있기 때문이다.
서점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표지 일러스트의 알 수 없는 매력에
책을 집어둔 '가망고객'들이 앞부분 몇 페이지 들 척이다
작별을 고할 여지가 높아 보여서 그렇다.
차라리 한 50페이지
정도 읽어 내려가면 작자의 엉뚱한 상상력과 재치 있는 말장난 같은 문장 이어가기의 매력을 알아챌 수도 있을 텐데.
요즘같이 패스트(FAST)가
미덕인 세상에서 휴대전화조차 터지지 않는 오지에서 벌어지는 할머니와 삼수생 손녀딸의 어드밴쳐에 귀 기울일 사람 얼마나 되겠느냐의 문제이다.
(물론 막상 책이 소개되고 시간이 조금 흐른
지금은 온라인 서점에서는 고객들의 관심을 충분히 받고 있다.)
사상 최고로 더웠던 2016년 여름의 절정이 오기 전 서평콘테스트나 마케팅을 했으면 어땠을까, 아쉬움도
있다.
네이버에서 몇몇 작가들이 추천하는 여름을 시원하게 나는 스릴러 추천도서에 포함되어
알게 된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는 그 자리에 있어 부끄럽지 않은 탄탄한 스토리를
보여주며 더불어 문장을 재미있고 삼수생 처녀의 수준에서 나올만한 현실감도 적절하게 표현해내고 있다.
팝콘소설.
딱 맞는 명칭이다.
대한민국을 강타했던 스웨덴의 백살
넘은 할아버지의 이야기도 책을 처음에 5분만 제대로 진득하게 잡고 있으면 기상천외한 해프닝과 풀어내는
말솜씨에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까지 배를 자고 뒹구르며 유쾌한 독서를 마무리할 수 있는데, 이 책
또한 같은 즐거움을 선사한다.
혹자는 만화 같은 가벼움이 그냥 일시 흘러가는 유행이라 폄하할 수도 있겠으나 다양한 쟝르의 책 읽기가 독서의 한 방법이고 쾌락인 것 같이 팝콘처럼 입에 살살 녹는 소설이 뭔 문제가 있을 것인가.
(다만 너무 탐닉하면 살찐다. 뱃살을 중심으로)
어느 날 갑자기 돌아가신 할아버지 옆에 덩그머니 혼자 남게 된 할머니를 삼수생 손녀딸이 지켜드리게 된다.
물론 강제적으로.
하루하루 지루함에 어찌할 줄 모르던 서울 아가씨는 한적한 시골마을 안에서 우연히 어드벤쳐의 세계에 빠져드는데 마치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의 주인공
미카엘이 우연히 얻게 된 알바 자리에서 자신의 과거가 얽혀있는 사건과 조우하며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의 방향성을 가지게 되는 상황과도 유사하다.
허니팝콘의 달콤한 같은 문장이 어떤 문장일까?
달착지근한 로맨스 소설에 나오는 바람둥이 남자주인공의 사탕발림
연가?
거장의 대작에서 이따금씩 등장하는 방랑자의 노래에서 따온
싯구?
시체가 등장하는 이 소설에서 달콤한 이야기는 어쩌면 구수한
된장에서 잘 피어날 수도 있고 결국은 화려한 말빨에서 유래한 이야기가 독자를 끌어들이는 힘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표지만큼이나, 책
제목 만큼이나 읽어나갈수록 책에서 손을 못 떼게 하는 매력을 가진 이 책 한 권을 너무나 더웠던 올 해의 여름을 기리는 하나의 기념품으로 책꽂이에
꽂아보길 추천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