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성의 사내 필립 K. 딕 걸작선 4
필립 K. 딕 지음, 남명성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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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성의 사내를 읽고


책 읽고 서평 쓰기 참 어려운 책입니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처럼 난독증을 만들어버리는 종류도 아니고, 하루키의 여러 소설에 나타나는 일반적인 열혈남아들이 읽기에는 살짝 취향이 벗어난 것도 아닌데, 페이지 넘기기가 무겁습니다. (저는 하루키 열혈 팬임을 밝힙니다.)

필립 K. 딕의 소설은 단편 위주로 접했지만, 사실 마음에 와 닿은 건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뭔가 궁합이 안 맞는 작가라고 해야 할까요?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 부터 시작해서 할리우드에서 최고 수준의 SF 무비로 등장 했던 그의 소설이지만, 영화보고 나서 원작 소설을 보았을 때 으레 나타나는 더 깊은 스토리의 진한 맛이 단편 위주라서 그런지 전혀 다른 느낌의 텁텁한 이야기로 다가오는 편이었습니다. (최고봉은 마이너리티 리포트. 시나리오 작가의 독창성에 더욱 무게를 줍니다.)
딱 하나 예외가 “임포스터”로 영화 보다 단편소설의 묘미가 더욱 컸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다 보니 그의 장편소설을 꽤나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단편집 앞표지 날개에 자주 소개되는 그의 최고 장편작이라는 “높은 성의 사내”.

작가는 대체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고등학생 때, “비명을 찾아서”라는 복거일씨의 소설을 보고 꽤나 충격을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처음 접했던 대체역사는 사실 영화나 TV 뿐만 아니라 많은 역사를 좋아하는 학생들이 머릿속에 한번쯤 그려봤을 만한 이야기 풀어나가기 입니다.

“만약 그때 ㅇㅇㅇ였더라면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이 하나의 명제 속에 상상의 나래는 끝없는 변태를 시도할 수 있죠.

하지만, 저자는 대체역사가 그리 만만한 작업은 아니라는 것을 글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단순한 사실이 하나 변해 세상의 방향성이 틀어지더라도 그 안에서 미묘한 영향들이 커다란 파도로 새로운 세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스토리로 흥미 있게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사를 읽으며 여러 번 반복되었던 아프리카와 러시아에서의 독일군의 삽질과 태평양 전쟁 통에 오해와 착각의 역사를 만든 일본군들에 대한 알 수 없는 아쉬움과 역사적 가정을 저자는 현실적인 정세를 정확히 분석하여 이야기를 끌어 나가고 있습니다.

즉 개인적인 판단으로 저자가 상상해낸 세계는 리얼리티 충만한 흥미로운 세상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이 매혹적인 배경 속에 그려지는 이야기 풀어나가기는 기대했던 것에 비해 다소 지루하게 진행됩니다.
보다 강렬한 스토리라인을 기대했는데 그 기대가 너무 컸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톰 크루즈가 나와 온통 세상을 헤집는 “마이너리티 리포트” 정도의 재미를 기대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만.

책을 읽으며 스스로 하나 깨달은 부분이 이것입니다.
“아, 나는 SF소설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SF영화를 좋아하는 거였구나.”

반쯤 읽다 책장에서 잊혀져 간 “스타쉽 트루퍼스”의 표지가 제 방 멀리 보이네요.
그랬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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