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에 나침반이 된 "유럽문학 오디세이" 저자서문에 보면 고개를 끄덕일 만한 문구가 눈에 띈다. 작가란 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메신저의 역할을 한다는 주장이다. 곰곰이 생각해봤다. 요즘 인터넷의 등장으로 쓰레기 하역장으로 보내는 비용마저 아까운 글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반해, 많은 이들의 호주머니를 털고 있다. 작품의 진정성 보다는 영화화하기 좋은 흥행성 있는 작품만을 제작하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나 선호하고 있기도 하다. 순수문학이 더 가치 있고 더 많은 선의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시대조류에 맞지 않는 트랜드에 뒤쳐진 이야기라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대중의 일회성 흥미거리로 전락한 글마저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다 주장하는 것은 더 볼 성 사납다. 이런 의견이 내 스스로 나이를 먹어감에 따른 보수화의 징표일지도 모르겠지만. 나이 앞자리에 3자를 붙인 다음에야 책 읽기를 즐겨 하게 된 입장에서 서양의 고전은 그야말로 다른 나라 세상이다. 오래된 도서관의 케케묵은 자리를 몇 년씩 끌어안고 있을 법한 내용과 껍데기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선입관은 앞서 부정적으로 이야기한 시대조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 자신 스스로의 약간은 부끄러운 모습을 투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일본추리소설이나 SF장르와 같은 대중소설과 회사생활에 요긴한 경영경제서로 장르를 좁히는 것이 책 읽기가 최근의 패턴이기 때문이다. 충분한 가치를 가진 책들임에도 보다 젊은 시절 접하지 못했던 서양고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독서의 또 다른 장애물일 것이다. 책을 받고 나서 목차에 열거된 고전들의 면면을 훑어보니, 그나마 제목이라도 아는 소설이 1/3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다. 하지만, 그런 만큼 앞으로 조금씩 도전해보려는 명작들의 나침반 역할을 해주는 것일 수도 있다. 글은 그 시대의 반영이다. 고대 그리스/로마부터 최근 현대소설까지 각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상을 공부해야 한다는 또 다른 숙제를 무시할 수도 없다. 각 시대별의 특징을 간략하게 뽑은 내용으로 보다 쉽게 문학작품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 "유럽문학 오디세이"의 최대 강점일 수도 있다. 줄거리는 대충 알지만 꼭 읽고 싶다라는 충동을 실제로 자아내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오페라로 먼저 접하게 되었으나 이 마 저도 쉽지 않는 도전인 "니벨룽겐의 노래" 줄거리가 뻔해서 읽지 않고 넘어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이 책은 아직 읽어보지도 않았는데 줄거리는 알고 있다. 아주 애매한 상황. 예전부터 꼭 읽고 싶었던 "폭풍의 언덕" 카프카라면 일단 좋아 보이는 "변신" 일단 4권을 올해의 독서목표로 정했다. 이 것만으로도 오딧세이가 되지 않았는지? 사실 보다 두툼하고 책꽂이에 꽂아놓고 수시로 길잡이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책 이길 바랬지만 이 부분은 좀 아쉽다. 보다 본격적인 책 읽기 가이드 책이 국내에 소개되기를 바란다. 각 작품들을 읽어보지 않더라도 전체적인 흐름을 조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것 자체가 이해를 위한 첫 발걸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