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차린 식탁 - 알고 먹으면 더 맛있는 50가지 음식 인문학
우타 제부르크 지음, 류동수 옮김 / 애플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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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차린 식탁 : 질긴 매머드 스테이크 먹던 인류가 식도락에 눈 뜰 때
 
 
 
 
연구실에서 몰래 훔친 공룡알을 작은 냉동캡슐에 옮겨 담은 네드리는 항구로 빠져나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하필이면 거대한 폭풍의 한가운데 휘말린 섬은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공간으로 피부색을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실수로 네드리가 몰던 자동차는 구덩이에 빠져버리고 걸어서 항구까지 걸어가기로 마음먹는다.
빗물로 앞을 볼  수 없던 안경을 훔쳐낼 때, 앞에 서있던 공룡의 모습을 발견하고 가슴 철렁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작게 생긴 닭 크기의 고개를 까닥거리는 놈의 모습은 한편으로는 귀엽기도 했다.
섬에서 오랫동안 공룡의 생태를 봐왔을 텐데 위험한 생명체라는 걱정은 미처 하지 못했던 찰나였다.
갑작스레 얼굴 주변에서 부채 같은 벼슬을 펴 올리며 포효하던 조그마한 주둥이에서 액체가 튀어나와 네드리의 얼굴을 갈긴다.
강한 산성 침 공격으로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본 장면은 닭 같은 녀석들이 어디선가 나타난 건지 마리 수가 늘어 있었다.
영화 "쥬라기공원"의 한장면이다.
  
자기보다 작은 체구의 동물들에게 도륙을 당하며 한끼의 식사로 변하는 자신의 몸뚱어리를 바라보는 상상만해도 소름이 돋는다.
설마 저런 녀석들에게 당할라 구, 방심의 결과다. 그 자그마한 녀석들은 심지어 끈질기기까지 하다.
 
네드리가 겪었던 심정을 오래 전 불운한 매머드들도 같이 느꼈을 지 모른다.
기다란 나무가지가 옆구리에 푹 박히더니, 선혈이 뚝뚝 떨어진다.
이 정도는 버틸 수 있어, 조무래기들은 앞발로도 제압할 수 있지.
자신감은 방심으로 이어지고 몸 안의 피가 콸콸 쏟아져 나가면서 정신이 혼미해진다.
이 틈을 노리지 않고 자그마한 포유류의 계속되는 공격은 거대한 짐승의 마지막 호흡을 움켜쥔다.
 
큰 몸집의 고기를 얻었다면 인간들에게는 일주일 또는 이주일 동안 사냥에 나서지 않아도 될  쾌거다.
모든 부족원들은 배불리 영양분을 채울 수 있고, 빙하기를 이겨낼 따뜻한 옷도 지을 수 있게 됐다.
흉폭하고 거대한 짐승들 사이에서 생존의 기술을 터득하고 앞으로 지구를 호령할 새로운 주인의 탄생이다.
인류의 서막이 열리던 시절의 매머드 스테이크가 어떤 맛일지 별로 궁금하지는 않지만, 놈의 비참한 말로는 인류 생존의 씨앗이 된다.
 

인류는 생존을 위해 음식을 섭취하는 본능에서 벗어나 취향과 쾌락을 위해 식사를 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었다.
잉여 생산물의 증가는 계급의 분화로 인한 신분차이를 만들어냈지만 최소한 오늘 사냥하지 못하면 굶어 죽을지도 모르는 초원의 법칙에서는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는 진보의 한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
 


역사의 시간이 흘러가고 공룡을 유전자로 창조해낼 수 있는 기술력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는 지금까지 인류사에 버금가는 식도락의 변화는 음식과 관련된 거대한 세계사의 이면을 바라볼 수도 있지만, 본질의 맛에 대한 흥미로운 뒷이야기로 즐길 수 있다.
 
책에 소개된 세계 각지의 푸짐한 식탁이 여행지의 유람 일부가 아닌 진지한 학문의 접근도 가능한 지식의 측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시각으로 쏠쏠한 지적 충족의 기쁨을 안겨줄 것이다.
 
한국사람보다 중국인들이 더 많다는 대림동 2호선 출근 근처에는 자주 가는 훠거집이 하나 있다.
오랫동안 거래를 하던 아시는 사장님이 소개시켜준 식당인데 주변의 한산한 엇비슷한 가게 풍경과는 달리 이 집은 손님으로 바글바글하다.
신선한 야채와 무한정 가져올 수 있는 소고기와 양고기, 그리고 중국인들이 즐겨먹는 낯선 소스들. 모든 요소가 오리지널에 가까운 모양새를 하고 있어 이국의 냄새 가득하지만 몇 가지 재료를 제외하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요리 재료다. 다만 커다란 솥의 반을 갈라 한쪽은 빨간 국물, 한쪽은 하얀 국물로 구분이 되는데 전자는 우리가 아는 매운 맛과는 거리가 있어 호불호가 있다. 붉은 쪽의 향미가 안 맞는다면 하얀 쪽만 공략하면 되겠지만 반만 즐기는 셈이니 미련이 그만큼 솥에 채워진다.
훠거는 사실 중국 전통의 음식이 아니다. 송나라를 집어사킨 원나라, 즉 몽골에서 유래한 음식이다. 국가가 오랑캐에게 먹혀 한족들의 저항이 거셌지만, 새로운 맛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양고기는 특유의 향으로 인해 입에도 못 대는 사람들도 있지만 중국 전역에 재료로서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 몽골인들은 한순간의 영광을 뒤로한 채 원래 그들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칭기즈 칸이 호령하던 과거의 영광을 풍성한 저녁 한차림에서 회상하며 아쉬워할지도 모른다.
 


한국에서는 소풍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피크닉의 유래와 영국에서 퍼져나간 양태는 요즘 인기가 한참 올라있던 캠핑과도 연결되어 있다.
자연에서 멀어져 도시의 찌든 삶을 보내던 사람들에게 야외에서 음식과 와인을 곁들인 나들이는 일상의 탈출구이자 새로운 관계의 시작점이기도 했다.
프랑스 대혁명을 피해 영국으로 도피한 프랑스 귀족들이 들고 온 새로운 유행은 지위나 계급에 상관없이 각자의 형편에 맞게 자연과 어울리는 기회였고, 고통스러운 돈벌이의 잠깐 동안의 탈출구이기도 했다.
점차 가져가는 음식의 다양성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리고 역으로 프랑스로 전파된 피크닉의 확장판은 부유층의 전유물만은 아닌 많은 국민들의 새로운 오락거리로 대두되었다.
 
당시 피크닉 바구니를 들여다보면 요즘의 캠핑 식단과 차이는 있지만 고기 안주의 주류 조합은 대동 소이하다.
자연의 투박한 공간 속에 소속감을 느끼고 싶은 인간의 본능은 시대를 초월한다.
 
21세기 한국의 가장 핫 한 공간은 커피숍이다.
일부 몰지각한 행태로 손가락질을 받지만 백색소음 안에서 저마다 노트북에 몰두하여 숙제를 하거나 공부를 하는 편안한 공간이다. 우리가 마시는 검은 액체의 소비량도 대단한 만큼 판매처도 제 각각의 가격과 메뉴를 붙이고 소비자를 유혹한다.
 
영국의 커피하우스도 세계사에 자주 등장하는 사교의 장이었지만 오스트리아 빈은 조금 성격이 다르다.
이곳은 고독이 충만한 공간이다.
고객이 원하는 색깔에 맞게 우유가 섞인 커피가 제공되며 신문으로 세상의 정보를 읽어내기 위한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이 식당 안 곳곳에 드리워져 있다.
여성은 출입할 수 없던 당시의 분위기상, 주변 사람에게는 무뚝뚝한 채, 세상이 돌아가는 형국에서 성공을 거머쥐고자 하는 한량들의 세계라고 상상된다.
몇 세기가 흘러도 커피를 즐기는 제조법은 변화하지만 음료 자체에 대한 매력은 변함이 없다. 그리고 인류가 가장 아끼는 커피를 위한 공간의 변화도 앞으로 혁신과 창의력 가득 찬 표상이 되리라.
 
처음 들어보는 음식, 익숙한 음식. 
세계인이 역사의 시간을 달려오며 마주했던 식도락의 순간을 책으로 담아 내기에는 넘치는 상상력은 필수로 손에 들고 있어야 한다.
역사책의 단편을 뜯어낸 억지스러운 짜 집기가 아닌 먹거리에 얽힌 작은 시대상을 독자의 입맛에 맞게 편집한 책이다. 하루 한끼의 허겁지겁 배를 채우기 위한 생존활동이 아닌 한사람의 인류 구성원으로 거대한 조상들의 유산을 체화 시키는 상상으로 식단을 구성해보면 어떨지 상상으로 책을 마무리한다.
 

 

추천독자 :

세계사에 관심이 있는데 먹거리에도 관심이 있다면,

음식들의 유래에 입맛을 다신다면,

난생 처음 보는 특색있는 요리를 알고 싶다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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