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러 - 경계 위의 방랑자 클래식 클라우드 31
노승림 지음 / arte(아르테)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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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러 (경계 위의 방랑자) : 거인의 발자국을 추적하는 모험
 
오랜만에 CD랙에서 말러의 5번 교향곡을 꺼내 들었다.
LP를 앞 뒷면 뒤집어가며 듣던 시절은 CD덕에 70분 이상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음악을 들을 수 있었는데, 21세기 스포티파이는 70년이라도 들려줄 기세다.
평상시 5번은 아바도와 베를린 필의 스트리밍으로 즐겨 듣지만 처음 손에 든 음반은 솔티 지휘, 시카고 오케스트라 에디션이다.
딱히 최고의 선택으로 뽑히는 음반은 아니지만 마술 피리에 꽂혀 솔티 경을 최고의 지휘자로 좌표 찍던 시절이라 말러의 첫 만남으로 선택되었다.
 
당시 클래식 음악 커뮤니티에서는 크게 흥했던 작곡가 두 명이 바그너와 말러였다.
지금도 제대로 듣기 힘든 링 사이클 구매한 후 인증하는 게 유행이었고, 뒤질 세라 말러의 교향곡 전집 중 누가 최고냐로 게시판을 뜨겁게 달구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니 쇼스타코비치로 옮겨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음악이 단순한 감상을 넘어 이론과 이상이 조화되며 하나의 나를 구성하는 아이덴티티로 중무장하게 되면 프로야구 선수 별 응원가처럼 나만의 작곡가와 음반이 들러붙게 된다.
 
내게는 말러는 교향곡 5번이 딱 그렇다.
다소 지루하게 시작되는 관악의 느린 템포를 부서뜨리는 타악기의 강렬한 첫 음은 밤에 이 노래는 절대 들으면 안돼! 라는 룰을 심어 주긴 했지만 스피커 테스트에도 훌륭하고 회사 일로 기분이 꿀꿀할 때 기분을 달래 주고 용기를 심어주는 음악으로 곁에 머물렀다.
 
막상 작가의 일생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었다는 아쉬움은 책 한 권을 통해 해소하고자 선택한다.
트램으로 음악의 도시 빈에 위치한 말러의 묘지를 찾아가는 여정은 여기에서 출발선을 그었다.
역대 황가의 음악 애호와 자기 과시에서 시작된 빈이라는 도시의 음악 유산은 부르조아의 성장과 지금처럼 남들과 확연하게 구분 짓는 자신감의 영역을 확보하는데 활용된다.
많은 음악인들이 모여 들어 물주를 위해 연주하고 작곡했지만 말러가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고독을 찾아가는 이유는 빈이라는 도시의 음악적 허영심을 외면하고 싶어서 일지 모르겠다.
 
화려한 빈 궁정 오페라극장이 건축되고 빈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역사는 책에 등장하는 화려한 외관과 내관 사진으로 충분하다. 그럼에도 당시 빈 사람들은 초라하다며 불만을 품었고 결국 건축가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에피소드는 꽤나 충격을 건내 준다.
기회가 되면 꼭 한번 가서 오페라를 듣고 싶은 극장이 일년에 한번 씩 무도회장으로 변신한다는 귀족들의 놀이 문화에 혀를 내두른다.
이렇듯 기득권이 득시글거리는 사회에 멸시받던 유대인 지휘자가 입성을 하니 찬반양론이 뜨거웠다.
36세에 극장 음악감독에 취임할 수 있었던 건 황제의 선택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다.
일단 감독 자리에 입성하자 온 빈 시민들의 화제 속에 말러가 등장했으니 아이돌 급이다.
 
바그너의 중후하고 묵직한 오페라를 두고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가 대립하던 시절이니, 말러의 등장도 연장선 상에 있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당시의 유행이던 수염마저 깎아버린 젊은 음악가에 대한 환호성 못지 않게 비난도 적지 않았을 테다.
 


과격 감독 말러의 독재는 적당하게 일을 하려는 당시의 빈 문화를 깔끔히 깨부순다.
단원 중 3년차가 최고참이 될 정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연주자들은 가차없이 내보냈고 본인이 직접 섭외한 성악가들도 예외는 없었다.
가혹함은 음악의 대한 진정성이지만 이를 이해하지 못한 관객들은 인터미션의 휴식조차 용납하지 않으려는 말러에 반기를 들었다. 음악은 그저 장식품에 불과하던 황제도 이 기회에 말러를 집에 보낼 결심까지 한다. 하지만 오페라 극장의 새로운 부흥기를 기대하던 지지자들은 타협 안을 만들었고, 다과를 위한 별도의 공간을 만들고 휴식 시간을 갖는 결말을 짖는다.
 
이 공간이 말러의 이름이 붙어버리니 아이러니하다.
 
저자와 함께 하는 말러의 발자취를 쫓는 모험은 계속된다.
지휘자로서 명성을 떨쳤지만 그의 마음 속에는 언제나 작곡이 가장 중요한 소명이었다.
피아니스트가 지휘자를 꿈꾸듯, 지휘자는 작곡가를 꿈꾸었는지.
20세기 지휘자 중에 작곡가로 성공한 사람은 번슈타인 밖에 없지 않은가.
그만큼 안락한 지휘자의 삶을 원래 소망하던 작곡으로 변환하는 말러의 노력은 쉽지 않았다.
베토벤 이후 별다른 변혁의 물결을 만들어내지 못한 교향곡의 세계를 새롭게 바꾸려는 시도가 동시대 사람들에게는 해괴망측한 소리일 뿐이었나 보다.
지휘자면 됐지 왜 자꾸 작곡을 하려고 하냐는 비아냥에 말러 자신도 좌절하고 악보를 없애 버릴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본래 원인이 바라던 음악의 세계를 갈구하던 말러의 노력은 베토벤 9번 합창이 만들어낸 심포니와 성악의 결합을 보다 완벽에 가까운 형태로 구현해냈고, 4악장으로 정돈된 곡의 흐름을 잘게 자르고 더욱 성대한 음악의 최고봉에 이르는 결말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말러 교향곡은 웅장하다.
가슴을 뛰게 만든다.
그리고, 거대한 자연과 위대한 인류의 도약을 머리 속에 상기시킨다.
오랜 시간 말러의 교향곡을 즐겨 들었지만 작곡가로서의 그의 다사다난했던 삶을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근사했던 책 한 권이었다.
 
말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건 아니건 새로운 시각으로 그를 한 사람의 고뇌하는 고독한 인간으로 조망하며 거인의 발자국을 쫓는 모험에 참여하길 기대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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