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의 언어 - 찰스 다윈부터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까지 나비 덕후들이 풀어낸 이상하고 아름다운 나비의 비밀, 2023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도서
웬디 윌리엄스 지음, 이세진 옮김 / 그러나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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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의 언어 : 지상 최고의 미적 창조물 나비의 모든 것

 

 

 

가족들과 동해바다를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에 춘천에 있는 제이드가든에 들렀던 적이 있다.

유치원생이던 딸아이는 동산 한가득 피어있는 꽃과 주변을 아롱거리며 날아다니던 나비에 푹 빠져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참으로 바쁜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나비를 잡아달라고 졸라 대는데 막상 한 마리도 잡을 수 없었다.

어렸을 때 잠자리는 곧잘 두 손가락 사이에 꽂아서 장난을 치다 하늘로 돌려보내기도 했는데, 나비는 잡아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나비나 나방을 손으로 만지고 혹시라도 눈을 비비면 실명할 수 있기에 항상 조심하다 보니 굳이 잡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잠자리채로 잡은 나비는 그물 안에서 허둥대는 모습을 잠깐 보다 바로 놓아주었다.

막상 어른이 돼서 알고 보니 나비를 만지면 묻어나는 가루는 “인편 (비늘 가루)”라고 부르는데 눈에 들어가도 실명에 이르는 일은 없다고 한다. 눈이 충혈되고 알레르기 반응 정도는 유발할 수 있지만.

아, 어린 시절의 과학적 지식에는 왜 이리 거짓이 많다 말이냐.

 


나비는 예쁘다. 아니, 황홀하다.

비록 손으로 잡을 엄두는 내지 못했지만 자연사박물관에 가면 나비 표본 앞에서 한참이나 서성인다.

작은 녀석의 아름다운 무늬는 어찌나 사람을 유혹하고 종류는 또 어찌나 많은지 현관문 빈 공간에 두 마리 정도 표본을 사서 장식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된다.

 

“자연은 발이 여섯 개 달린 것을 변태적으로 좋아한다.” 

첫 페이지에 새겨진 마이클 S.엥겔의 머리를 휘젓는다.

 

나비의 자태는 사람들의 영혼을 휘어잡는다.

나비의 생태학과 과학사로 가득 찬 이 책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스트레커 같은 사람의 일화는 이 작은 생명체가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지배하는지 극단적인 사례로 등장한다.

취미라고 하기에는 지나친 광기에 가까운 수집은 유럽의 돈 많은 귀족들의 사치스런 놀음이었겠지만 스트레커는 이런 전제조건을 깨뜨리고 시카고 필드 박물관에 소장할 정도의 표본을 모을 수 있었다. 일반인의 수준을 넘어서 경이 스러운 기록이다.

그가 평생 나비 표본을 채집하고 집에 쌓아둔 나비의 사체 속에서 추구하던 이상은 무엇이었을까?

단순히 생명체의 신비로움에 매료된 고집스러운 늙은이라 무시할 수는 없다. 살아있는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경외가 숨어있다. 팔랑거리며 날아다니는 예쁜 색에 대한 끝없는 욕심도 보인다.

 

지구에 사는 생물은 1조 종에 이른다고 한다.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상당수는 아직도 인간에게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어느 날 숲 속에서 길을 잃어버렸을 때, 거친 수풀 사이로 머리를 들이미는 페이스허거를 눈 앞에 목격한다해도 하등 이상할 게 없다. 그 중 명명된 곤충은 무려 90만종이라고 한다. 사실 지구는 인간이 아니라 곤충들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 중 인간에게 호감을 주는 몇 안되는 종이 바로 나비. 비싼 가격에 불법적인 거래가 이루어질 수 밖에 없는 이유는 90만종의 예외성에서 기인한다.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재왕나비 애벌레의 사투에서 등장한다.

밀크위드 잎사귀에 부화된 애벌레는 진액을 열심히 먹어 대는데 문제는 진액의 끈적함은 애벌레를 포획하고 고사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더욱 아이러니한 점은 라텍스의 일종이 포함된 진액은 독성물질이기 때문에 성장을 위축시키는 치명성을 지니지만, 몸에 축적된 독이 새같은 천적으로부터 자기방어 기제를 만드는 과정으로 활용된다.

애벌레의 독성이 새들에게 저 녀석은 먹었다가는 배탈이 난다는 인식을 강하게 전달하여 살아남는 무기가 된다. 자연의 신비로움이 아닐 수 없다.

 

책을 읽어가면 우리는 단순히 외면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히고 블법채집까지 서슴없이 행하지만, 삶의 생존력과 번식으로 명맥을 이어가는 자연의 경탄 스러운 적응에 박수를 칠 수 밖에 없다.

수많은 시간 지구상의 급격한 변화에도 현재까지 명맥을 유지하며 살아남는 개체들은 저마다의 강력한 생존 무기를 확보하고 자손들에게 전달하였기에 가능한 존재들이다.

 

나비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들은 독자들을 매료시킨다.

더군다나 작가는 장난기 가득한 문체로 생물시간에 빠지기 쉬운 졸음의 오류에서 깨워준다.

과학책이라는 딱딱함의 외형을 유쾌한 필력과 경이로운 나비의 신비로 맛난 책 읽기로 몰입하게 해준다.

 

아이들과 함께 읽어도 좋을법한 책이나 등장하는 괴짜들을 조심하자.

나비를 입에 넣어서 맛보는 과학자들의 에피소드는 아이들에게는 충격적인 모습일 수 있다.

 


*도서를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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