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잘 지내는 법 - 불안은 더 나은 삶을 위한 강력한 자극이다
크리스 코트먼 외 지음, 곽성혜 옮김 / 유노북스 / 2020년 3월
평점 :
절판


불안과 잘 지내는 법
-책이 불안과 맞서싸우는 카운셀러가 되다.


"내일 검찰에서 부를 것 같으니 준비하세요."   
법무팀장 전화를 받고 하루 종일 안절부절.
사무실에서도 제자리에 앉아있지 못하고 허둥지둥 대다, 사택 아파트에 돌아가서도 줄담배를 피느라 들락날락. (지방에서 근무하던 때라 가족과 떨어져 별도 사택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막상 다음날이 되면 안 부른다.
근 석 달 정도 비슷한 일이 반복되었고, 2주일에 한 번씩은 서초동에 있는 로펌 사무실에서 대책 회의에 참석했다.
스트레스 받으면 살이 빠져야 하지만, 뒤룩 뒤룩 얼굴 살이 차 올랐다.
저녁이면 싸구려 안주에 맥주 캔으로 속상한 마음을 달랬고, 식사 시간은 물론 중간 중간 담배나 군것질거리를 뭐든지 입 속에 집어넣었다.
여자들이 스트레스 받으면 살찐다는 말을 안 믿었는데, 몸소 체험으로 알게 되다니.
다행히 회사의 문제는 무혐의 처리되었고 나는 검찰에 불려가지 않고 문제를 종료시켰다.
위법행위를 저지르지 않았지만 혹시라도 나도 모르게 실수 한 건 없었을까, 의도적인 사회적 몰아가기로 없던 죄를 만드는 건 아니겠지.
보이지 않는 위압에 불안감이 증폭되었다.
정신 테라피를 받는 시설이 있었다면 한 두 번쯤 방문을 했을테고 그랬다면 조금이라도 시간이 지났을 때 유익했을 것이다.
지금은 머릿속에서 잊혀진 웃픈 기억이지만 사실 한밤중에 회사일로 압박을 당하는 꿈을 가끔 꾸는 이유는 바로 이 사건이 시작점이 아니었을까.
개인적으로 꽤나 강렬한 사건과 기억인지라 시간이 흘렀지만 나도 모르게 트라우마가 되어 어딘가 서랍 깊숙이 숨어있다.

정신병원 방문 기록이 건강보험 기록에 삽입이 되는 순간 "어, 정신치료 이력이 있네?" 이런 불길한 한마디가 튀어 나올 수 밖에 없는 우리나라 의료계 현황은 앞으로도 숨은 불안감이 조용하게 확대되어 더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숨어있는 문제 아닐런지.
감기처럼 초반에 가벼운 상담 몇 번만으로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데, 마음에 병을 가지게 된 사람을 칭칭 미이라처럼 감아 놓고 썩어 문드러지거나 폭주를 할 때까지 숙성시키는 것은 아닐까.

사회적인 분위기상 개인들이 가진 마음의 감기를 치료하는 현명한 방법 중 하나는 책 읽기다.
책 읽기를 통해 내가 가졌던 불안이나 강박의 이유는 무엇이고, 다른 이들도 같은 고통으로 어려워하지만 말 못하고 지내고 있을 뿐이다라는 자각을 할 수 있다.
나만 문제가 아니네...하며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누군지 같은 고민과 불안을 느낀 누군가와 책을 매개로 스스로 치유되는 첫 발을 내딛을 수 있지 않을까.

책에서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독자들이 갖고 있는 불안은 여러가지 형태로 많은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는 동안 짊어지고 있다는 현실적인 자각을 제시한다.
다른 심리학 도서들에 비해 짤막하지만 다양한 에피소드를 제시함으로서 '어, 이건 내 이야기네.'라는 공감을 끌어내고 내가 직접 상담을 받는다는 안도감을 심어주는 효과적인 장치다.

오프닝을 에피소드만 보더라도, 놀라운 반전이 있긴 했지만 작은 소동으로 학교에서 짤릴 것이라고 확신하는 망상에 까지 이르는 길이 당사자 입장에서 얼마나 급박한 일이었겠는가 하는 공감과 함께 "쓸 데 없는 걱정을 했군!" 안도를 가질 수 있었다.

우리는 과연 가족끼리도 충분한 위로를 하고 있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부분을 생각해 보는 대목도 있다.
루스 부인의 이야기인데, 남편의 폭력으로 상처를 입고 딸아이들에게도 평생 상처를 주었다고 자책한다. 그러다보니 본인의 몸을 주체할 수 없을 상황이 되었는데도 성인이 된 아이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없다. 상황에 압도되어 더이상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는 상황에서 마지막 남은 희망으로 아이들에게 연락을 하게 된다. 당연히 딸아이들은 어머니를 따뜻하게 받아들인다.
남편의 거친 폭력에도 딸을 지켜온 만큼 로스 부인도 떳떳했으나 정신적으로 나약해지다 보니 책임감과 죄책감으로 감정이 쓸려간 사례이다.
그런데 그러는 동안 성인이 된 딸들은 왜 어머니를 방치했을까?
숨겨진 이야기는 더 있겠지만 흔쾌히 어머니를 맞아드릴 정도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면 미리 조치를 취할 수도 있었는데 인생의 밑바닥까지 보고 올 동안 무엇을 했을까 이해가 좀 어려운 대목도 있다.
마음 속의 이야기를 가족이나 친구에게 조차 풀어내지 못하고 혼자서 끙끙 앓게 되는 것.
가장 어려운 환자가 아닐까, 또한 가장 빨리 조치를 취할 수 있는 환자이기도 하다.

비행기를 탈 때 마다 비행기가 떨어지면 어떤 일이 생각할까 살짝 불안했다.
21세 젠이라는 여성은 친구의 선물로 공짜 유럽여행을 가게 됨으로서 비행기 공포증을 극복한 사례이다.
저자는 상담과정에서 감정의 이완이나 단계별로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그녀를 도와주는데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한 확률적 근거를 제시하는 것도 인상적이다.
당신이 비행기추락으로 사망할 가능성은 로또에 맞거나 백상어에게 먹히거나 세쌍둥이를 낳을 가능성 보다 낮다.
실제 통계를 두드려 보면 이 사실이 틀림없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이 알 수 있는 일이다.
저자 친구의 경비행기를 타고 최종적인 공포발작 점검을 했던 젠은 에펠탑애서 활짝 웃는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물론 이런 상담을 통한 극복사례는 글로 보기 보다 무척 어려운 상황을 헤쳐가야하는 법이다.
하지만 사람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지는 기법들은 수많은 방법들이 나와있고 각자의 특성에 맞는 기법들을 활용하여 극복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결국 젠이 가졌던 좋은 기회인 친구의 무료 여행 제안은 비행기공포증을 이기는데 가장 강렬한 유도제 역할이었다.

공항이라던가 걱정이 팔자인 여러가지 현대인이 앓는 두려움들은 경험많은 의사와 상담을 통해 지속적인 개선이 가능할 것이다.  (이 책에서는 11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혼자서 남모르게 고민하며 더 암울한 구멍으로 스스로 밀어 넣는 일은 없어야겠다.
최근에 읽었던 "팔로우 미 백"이란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도 집 밖에 나갈 수 없는 공포증 환자였다.
의사의 적절한 조언이 진행 중인 상태에서 그녀가 좋아하던 아이돌 스타가 제안한 - 비행기 무료 여행 보다 더 강렬한 - 단독 콘서트는 단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하던 집 밖을 스스로 박차고 나가는 용기와 행동에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것은 계속 의사와 상담을 통해 스스로의 가능성을 조금씩 회복하고 있었다는 대목이다.
물론 친구의 조언이 지속적으로 이어진다는 부분이 더욱 컸지만.

누구나 불안을 지니며 살아간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겨나가는가의 문제이다.
책을 통해 사례를 공감하고 이겨나가는 방법에 대해서 하나씩 익혀나간다면 좀 더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나가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아울러 이런 책의 세미나 등을 통한 공유와 참여가 하나의 현상으로 확대되는 것도 바람직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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