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익스체인지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2
최정화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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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 익스체인지” –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우유빛깔 SF

 



정통 SF와 트릭이 가득한 작품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환타지와 장르가 혼재되거나 서정적 또는 서사적인 부분이 강조되며 일반 소설과의 경계선이 모호해지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아서 클라크나 아시모프는 오래된 이야기인 데도 좋아라 하면서, 어슐러 K. 르 귄이나 코니 윌리스의 "개는 말할 것도 없고"를 별로라고 생각하는 것도 같은 선상에 있다.
메모리 익스체인지는 판형부터 좀 남다르다.
104*182*17mm로 일반적인 책 사이즈가 아닌 에세이나 시집 같은 느낌. 세로로 책이 길다 보니 읽기에 손잡는 자세가 좀 어색하다.
한 줄의 글자수도 적다 보니 페이지 넘김이 자주 반복되어 불편함은 배가 된다
하드커버로 된 책표지도 적은 분량에 비해서 좀 과하다 라는 느낌에 어색하고, 하얀색 위주의 책표지는 뭔가 컬러 커버를 잃어버린 느낌이다.
책을 완독하고 나니 어라? 이거 의도된 설정인가?
책 읽기가 불편하니 내용을 받아들이는 기본적인 자세도 불편하다. 그러니 소설이 전개되어 가는 과정에 불편한 감정을 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양새가 된다.
글자수도 작고 두께도 얇은 편이라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순간 한 페이지의 내용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아주 짧은 여유를 가지게 된다.
뭔가 색채가 부족해 보이는 책 커버는 마지막 페이지까지 무의식적인 이미지를 강요하며, 마치 우유로 된 목욕탕에 잠겨 책을 보다가 그대로 몽롱한 자기 수면에 빠져들고 콧구멍까지 하얀 액체로 덮여가며 깊은 잠에 빠지고 있다는 착각과 그러고 싶은 욕망을 일으킨다.
나는 누구인가?
내 육신은 누구의 것인가.
내 의식은 무엇인가.
저자는 난민의 삶과 고통을 빗대고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열린 주제를 허락한다면 인간의 정신 본질적인 의미를 묻는 소설이 아닌가요? 라고 되묻고 싶다.
각 장 마다 화자는 ""이고
 "" ""로 합병되고 또다른 ""는 소멸된다.

기억에 대한 이야기는 다양한 소설이나 영화에서 주제로 활용된다.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등장해던 영화 "토탈 리콜"은 지워진 기억과 그 위에 거짓으로 만들어놓은 기억이 충돌을 일으키며 빨간 약을 본의아니게 먹게 된 스토리이고, 존 스칼지의 "노인전쟁"도 기억의 복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생을 위한 방법으로 활용되거나 컴퓨터 처럼 기억의 copy-paste 기능을 활용한 조작이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장치가 되지만 그 와중에 일어나는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은 풀기 어려운 숙제를 던져 준다.
가볍게 풀어가면 그냥 영화의 보조도구지만 철학적인 고민에 빠진다면 "나"에 대한 고민도 끝이 없는데 또다른 "나"의 고민도 들어줘야 하는 곤란한 처지가 된다.
이런 고민거리는 결국 존재론에 대한 인간의 지적 호기심이 왜 수천년 동안 지속되고 있는지에 대한 공감을 깨닫게 한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스토리가 매끄럽게 이어지지만 화려한 액션은 없이 서정적이면서도 판타지 양념이 찹찹 뿌려진 기이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글의 서두에 이야기한 제일 싫어하는 스타일이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묘한 여운이 머릿속을 감돈다. 쓴 맛과는 달리 향은 오랫동안 콧 속을 맴도는 처음 보는 원산지의 커피처럼.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져서
진짜 "나는" 뭐지?
학창시절 개똥철학을 고민할 때 들던 질문이 자꾸 부딪친다.

대지의 향기를 맡으며 처음으로 육상으로 고개를 내밀던 THX-1138의 로버트 듀발이 오버랩 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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