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청으로 보는 세계사 - 자르지 않으면 죽는다!
진노 마사후미 지음, 김선숙 옮김 / 성안당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숙청으로 본 세계사 : 역사는 반복되므로 바라보는 시각을 다변화시켜야 한다는 교훈을 깨닫다.

직장에서 사람 좋은 상사의 줄에는 서지 마라.
신입사원 때 맞 고참이 소주 잔을 기울이며 인생교훈이라면 건낸 이야기.
리더들을 평가할 때 용장, 맹장, 덕장, 지장 뭐 이런 단어를 매칭시키는데 "덕장"에게는 직장의 운명을 걸지 말라는 이야기다.
모든 것을 갖추고 뛰어나고, 직장에서 현재 잘 나가더라도 덕장은 말로가 안좋다는 것.
지랄맞게 직원들을 들들 볶고 때로는 인정사정 보지 않고 부려먹고 험하디 험한 계단을 다른 사람 머리를 밟고 허겁지겁 올라가야 "별"을 딸 수 있으니 말이다.
100% 맞는 원칙은 없으니 이 말도 마찬가지겠지만, 대체적으로 우리나라 기업문화에서는 "빙고"
직장을 두군데 다니고 있지만 "인정". 뭐 이렇다.
이런 제목의 영화도 한 편 있다. 
"나쁜 놈이 더 잘 잔다."

숙청의 역사를 훑어보니 마찬가지의 논리가 적용된다.
왕조를 일으키고 새로운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는 리더 한 사람의 힘으로는 어림도 없다.
참모, 장수, 아래의 충성스러운 부하들이 똘똘 뭉쳐서 한마음이 되지 않는다면 게임 끝이다.
역사의 소용돌이를 함께 뚫고 죽을 동 살 동 버티고 버텨야 유일한 승자가 되는 역사의 당연한 귀결.
그렇기에 개국공신들의 위치는 존중받고 웬만한 실수 아니면 오랫동안 배를 탕탕 두드리며 살 수 있다.
그렇지만 역사는 그리 호락호락 흘러가지 않으니.......
개국공신은 불안한 초기 정치에 언제든 위협요인으로 등장할 수 있고, 따르는 이들도 많기 때문에 "숙청"이란 이름으로 제거되지 않으면 언젠가 큰 화를 부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전혀 그렇지 않사옵니다. 부인을 하다가도 정치 판세가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갈 때, 스스로 목숨을 버리며 충정을 보이는 이들도 더러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반역의 깃발을 올려야 하는 경우가 더 많다.
반란의 가능성이 농후한 공신들의 목을 날리는게 안정적인 왕조 유지를 위해 필요악이 되는 역사가 반복되다 보니 이는 필수적인 이론이 되었고, 지금 내치지 않으면 스스로 반역을 당하리라는 역사적 교훈이 신흥국가의 수장들 사이에 회자된다.
3족에 9족까지 멸하는 숙청을 통해서 중국과 유럽의 무자비한 역사는 비슷한 공식으로 흘러왔던 것이다.
역사를 바라보는 여러가지 방법 중 이렇게 테마를 가지고 실타래를 풀어가면 일반적인 통사를 통한 지식 보다는 놓치지 쉬었던 하나의 궤를 가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씨줄과 날줄 처럼 두가지 책읽기가 병행된다면 역사 지식을 보다 체계적이면서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일 수 있다.
특히 테마로 역사를 정리하는 방식은 책읽기가 보다 흥미있는 방행으로 진행시킬 수 있기에 베스트셀러에 명함을 내기에도 유리할 듯 싶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볼 때 다소 생소한 "숙청"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다 보니 새로운 시각의 역사, 특히 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의 역사를 재조명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해준다.

마오쩌뚱과 스탈린의 숙청, 아닌 학살은 상식으로 알고 있던 수준이 아니라는 경악스러운 사실에 놀라기도 했고, 그 와중에 중국의 권력이 어떻게 이동되어 현재에 이르렀는지도 좀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된 부분이 유익했다. 
공산주의 국가들의 이상과 전혀 다른 현실의 운영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히틀러가 역대 최악의 악당으로 뽑히지만, 자국민들에게는 더욱 악독한 두 사람이 천수를 다하고 권력을 내려놓았다는 사실이 소름끼치며 이 과정에서 등장했던 홍위병의 존재는 영화 "마지막 황제"의 피날레 등장한 붉은 깃발을 흔드는 아이의 서늘함과 연계되어 씁쓸하다.

원저자가 일본사람이라는 사실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어떻게 해서든 중국이라는 현재의 전세계 랭킹 넘버 2를 망가 뜨리고 폄훼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결코 중국이 대권을 가져갈 수 없다는 이유중의 하나를 "숙청"이란 증거로 들이 밀며, 망해가는 왕조의 코스를 밟고 있다고 주장한다. 
가능성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지금 중국이 완전히 망해가는 코스를 밟고 있는 것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이젠 예전의 일본이 아니다라는 이야기가 회자될 정도로 정치적, 경제적 쇠퇴가 눈에 띄는데 그런만큼 역사적 고증을 통해 중국과 다른 나라들을 깍아내리고 자신들의 역사와 현재가 우월하다는 주장을 하고 싶은 단락들이 도처에 눈에 띈다.
번역서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타국의 역사를 깍아내리며 자신을 치켜올리는 경우는 쉽게 볼 수 있는 편이 아니다.
마침 코로나 바이러스로 중국의 정치적 파워가 흔들리는 점이 저자의 주장과 유사하고, 트럼프가 탄핵을 간신히 넘긴 부분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고 있지만, 두 지도자의 일탈된 행동이 있더라도 두 나라가 바로 문제가 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일본이 세계 넘버 원이 되고 싶다는 희망 회로를 돌리시는 건가요?)
숙청이라는게 당연히 좋거나 옳거나 판단할 문제는 아니며, 그로 인해 비명횡사해 간 사람들의 숫자의 의미가 중요하나, 상대적으로 오다 노부나가는 숙청을 했어도 그 정도는 중국에 비해 애교이고 온순한 숙청이었다라는 괘변은 아쉽다.
그러나, 새로운 테마를 가지고 역사를 파혜치고 특히 중국과 유럽의 내용을 번갈아 보여주면서 역사의 아이러니를 들려주는 재미는 아쉬운 대목을 모두 상쇄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