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밀 예찬 - 은둔과 거리를 사랑하는 어느 내향인의 소소한 기록
김지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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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선 작가의 이전 책 <우아한 가난의 시대>를 참 좋게 읽었다. 여러 에피소드가 공감됐고 미처 생각하지 못한 꺼리들을 던져주어 지금도 휴대폰 e-book에 저장해 놓고 가끔씩 읽고 있는데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을 읽는 일! 너무 좋잖아! 


<내밀 예찬>은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듯 내밀함에 관한 책이고 이 내밀함에 내포되어 있는 여러 의미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책 중에서 '작가의 말'이 참 잘 쓰여진 책을 보면 호감도가 더 상승하는데 이 책이 바로 그랬다.


p8

'내밀한'이 내가 가진 것, 즉 나의 마음, 나의 시간, 나의 이야기 등을 수식할 때, 이 단어는 타인가 나 사이에 널널한 거리를 만든다.


반면 '내밀한'이 관계성을 품은 단어와 함께 사용될 때, 이를 테면 '내밀한 대화'라거나 '내밀한 사이'라는 말에서 나와 각별한 타인의 거리는 순식간에 좁아진다.



이렇듯 '내밀한'의 단어에는 타인과의 거리와 친밀이 적절하게 쓰일 수 있는 신통방통한 능력이 숨어 있고 우리는 이 <내밀 예찬>을 통해 작가가 수줍게 보이는 '내밀'의 다양성을 즐기면 된다.


직장인분들!

점심식사는 어떻게 하시는지요?

각자 먹나요?

아님 같이 먹는 멤버가 있나요?

식사 후에는 뭘 하시나요?


나는 회사에서 점심이 나와서 다행히 메뉴 걱정은 하지 않고 즐겁게 먹은 다음에 회사 주변을 한 바퀴 돌고 나서 사무실로 돌아와 에어팟을 끼고 유튜브를 본다. 주로 재밌는 예능 콘텐츠인데 이 시간 만큼은 사무실에 모든 팀원이 함께 있어도 서로 말을 걸지도 않고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즉, 점심시간 만큼은 철저히 서로의 시간을 배려해주지만 모든 직장인이 이런 형태의 시간을 가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내밀 예찬>의 모든 이야기 중에서 [점심이탈자] 에피소드가 가장 좋았다.


작가가 던진 <내밀 예찬> 중에서는 [무표정의 아름다움]도 들어간다. 표정관리, 즉 억지로 미소지어야 할 때도 무표정으로 일관할 수 있는 용기는 모든 사람들이 갖고 있으면 든든한 아이템이다.


나는 이 표정관리가 잘 안 되는 직장인의 한 명으로 상사에게 혼나면 뿔이난 눈과 볼, 입이 투명하게 보이고 기분이 좋으면 그 표정대로 또 다 내보이는 하수 중의 하수. 그래서 늘 마음을 되뇌이는 직장 철칙 중 하나가 '일희일비 하지 말자'다. 



그러려면 이 무표정의 기술을 좀 배워야 하는데 영 쉽지가 않다.

이런 표정 관리에 능할 수 있는 수준이 되려면 그는 결단코 혼자만의 시간을 단단히 구축해 둔 덕분일 것이다. 그 시간동안 본인이 좋아하는 일, 어려워하는 일, 해야만 하는 일, 하지 않아도 되는 일로 다양한 경험과 데이터를 쌓아 어떠한 상황에서도 여유있게 혹은 마음 속 여유는 없지만 표정만큼은 여유있게 내보일 수 있는 노력이 빛을 발한 결과다.


나도 내향적인 편에 속해서인지 모르지만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보다 홀로 있을 때 에너지를 충전하고 슬그머니 내보는 용기의 횟수도 더 많은 편이다. 다른 사람과의 대화에서 위로를 받기도 하지만 스스로 다독이는 다짐이 큰 결심으로 이어지는 때가 많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나의 무표정의 아름다움은 홀로 있는 책에서, 홀로 보는 영화에서, 혹은 홀로 쓰는 글에서 이뤄질 확률이 높겠지.


언젠가는 나도 여유롭고 우아하게 무표정으로 다정할 수 있길 바란다.


<내밀 예찬>의 부제 은둔과 거리를 사랑하는 어느 내향인의 소소한 기록을 가장 잘 표현한 에피소드는 바로 [숨고 싶지만 돈은 벌어야겠고]가 아닐까 싶다. 이제는 어느 연예인 못지않게 대중을 이끌어가는 일반인 셀럽이 있다. 인스타그램이 매우 활발해지면서 마치 연예인을 보듯 내가 팔로우한 힘있는 셀럽의 일상을 보며 그가 입는 옷, 먹는 음식, 사는 모든 것들을 따라하고 열망하는 시대다.


즉, 누구나 마음 먹으면 내가 셀럽이 될 수도 있는 세상. 아니 그렇게 되라고 만드는 세상에서 내향인들은 고민한다.


"아무도 날 못 알아봤으면 좋겠지만 팔로워 수는 10만이 넘고 싶다고요"

성향과 생존의 아이러니함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걸까.


이 책은 세상 모든 I들에게 호감을 살 만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물론 E라고 해서 전혀 공감하지 못한다고?


전혀 그렇지 않다. '혼자'와 '함께' 사이에서 가끔은 '혼자인 편'을 더 자주 선택하고 일부러 시간을 내는 사람들이 보내는 다정한 거리감을 알아주면 좋겠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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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서울 지망생입니다 - ‘나만의 온탕’ 같은 안락한 소도시를 선택한 새내기 지방러 14명의 조언
김미향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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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 서울인 나도 서울에서 살아본 건 몇 년 되지 않는다. 초등학교 2학년때 부천에서 금천구로 이사간 뒤 중학교를 졸업했고, 다시 경기도 평촌과 수원으로 경기도민으로 지낸다.


늘 위로 이사가고 싶다는 말을 꺼내지만 이건 진심이 아니다. 그냥 푸념인 정도이지 경기도민이 서울시민으로 넘어가려면 돈, 돈, 돈. 돈이 문제다.


처음 <탈서울 지망생입니다>를 하니포터 서평단에서 신청했을 땐 순전히 제목에 끌려서였다. 나와 정반대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

가능하면 인서울을 꿈꾸는 나와 탈서울을 꿈꾸는 지망생 사이의 어떤 간극이 있는걸까 하고.


p11

서울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언제부터 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언제부턴가 서울에 산다는 것이 무척 고단한 일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도 원했던 서울살이에서 답을 찾지 못하고 30대 중반에 길을 잃어버렸을 때, 나는 왜 다른 삶을 꿈꾸는지 고민하는 과정을 적기 시작했다. 탈서울을 원하면서도 쉽사리 결정할 수 없던 나는 먼저 결정한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나의 첫 독립은 한국만큼이나 월세가 비싸다는 영국의 런던이었다. 첫 직장에서 힘들게 모은 돈으로 이것저것 다 싫다는 이유 하나만 가지고 퇴사 후 런던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말도 안 통하는 곳에서 처음 구한 집은 런던 중심가에서 떨어진 3존이었고(도심은 1존) 왕거미와 함께 동거를 해야 하는 낡은 방 한 칸이 월 110만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그때는 엄연히 학생자격으로 간 것이었고, 그곳에서 일하거나 뿌리를 내릴 생각보다는 여행의 개념이 커서 '주'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크지 않았지만 현재 내가 서울에서 이 월급을 받으며 월세 100만원을 내고 산다면 앞날에 대한 막막함이 눈 앞까지 닥쳐올 듯 싶다.


<탈서울 지망생입니다> 작가도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면 방을 넓혀갈 수 있을거라는 희망으로 버텼지만 15년간 서울에 살면서 여러 자취방을 옮긴 결과는 다 거기서 거기. 원룸에서 1.5룸, 허름한 빌라의 투룸으로 넓어졌다는 것이다. 문제는 어마어마한 돈이 든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한 서울의 집값이었다.



p19

좁은 방을 벗어나 인간답게 살려면 지방으로 가면 되지 않을까? 지방에 가면, 열심히 일해 모은 내 저축액으로 도달할 수 있는 집들이 있었다. (중략)

서울을 떠나 지방으로 가고 싶은 이유는 단 하나였다. 숨통 트이는 집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 그것 말고는 없었다. 신선한 공기나 깨끗한 자연 같은 건 두 번째 문제였다.



나도 선뜻 서울로 갈 수 없는 건 집값이다. 2~3억 가지고는 턱도 없는 서울의 집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와 별로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엄청난 대출로 전세를 마련한다해도 30년 동안 빚을 갚는 동안 아끼고 또 아끼는 생활을 잘 버틸 수 있을지 자신도 없다. 아이가 없어 교육의 목적도 없고 경기도 외곽이라 어쨌든 지하철로 서울을 오갈 수 있으니(2시간 걸리지만..) 적극적으로 서울행을 알아보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반면에 이미 서울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탈서울행을 시도하는 것도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 같다. 이 책에서는 이 용기에 대해 고민하는 작가의 심정에 이어 과감히 탈서울을 감행한 사람들의 인터뷰로 넘어간다. 그래서 정말 진지하게 서울을 떠나 지방으로 삶의 터전을 바꿔볼 사람들에게는 꽤나 유용한 조언들이 펼쳐진다.


서울이 가진 뚜렷한 장점을 어느 정도 포기할 수 있다면 지방에서의 생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입을 모으는데 그 뚜렷한 강점이 꽤나 커서 더욱 치열한 계획과 고민이 필요하다.



p89

역시 일이 문제였다. 생계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다시 서울로 유턴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는 탈서울의 핵심은 지방에서 일자리를 구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했다.



역시나 '일' 생계다. 먹고 사는 일 앞에서 우리의 주거지는 수시로 변동한다. 일자리가 많은 서울. 비교적 일만한 일을 구하기 어려운 지방소도시에서 먹고 사는 일을 해결하는 일은 도전 주의 도전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지방으로 간다고 하면 제일 먼저 귀촌/귀농을 선택한 것인지, 프리랜서인지, 창업을 하는지 물어보는 것 같다. 이 책에서도 실제 위와 같은 세 가지의 옵션이 지방으로 거처를 옮기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직업이라고 하는 걸 보면 직업에 대한 다양한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것 또한 탈서울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을 떠나 지방에 자리 잡은 사람들의 인터뷰에서는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키워드가 이어졌다. 일단 '집'이 해결되었으니(더 넓은 공간의 자가 마련) 늘 쫒기며 살던 마음의 여유가 생겼고, 이 여유는 삶을 질을 더욱 윤택하게 흘러가게 했으며 서울에서 관계맺던 사람들도 다양하게 유지되었고 아이를 키우는 가족들도 인프라가 잘 구성된 지방 도시에서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탈서울 지망생입니다>는 특히 이 인터뷰가 매우 중요하다.

실제 탈서울을 경험한 사람들의 살아있는 이야기와 진지한 조언들을 책 한 권에서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심지어 나는 탈서울 계획도 없는데 꽤 유용한 정보들을 건졌다.


일이 됐든, 거주지가 됐든... 무서워서 못 했던 것들이 막상 겪고 나면 사소한 것들로 바뀌거든요. 이건 어떡하지? 저건 어떡하지? 했던 것들,

막상 자연스럽게 해결되거나 오히려 더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더라고요.

탈서울 지망생입니다. 인터뷰 중




요즘은 <의식주> 중에서도 '주'가 큰 문제인 사회인 것 같다. 어느 정치당이든 집값안정을 목소리 높여 말하고 대중매체에서는 몇 십억 짜리 집이 별 것 아닌 것처럼 나온다. 연예인의 한강 보이는 집을 부러워하고 그 집이 매스컴을 타서 더 오르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들이 현실에서 이뤄지는 마당에 평범하다 못해 월 200만원도 간신히 버는 청년들에게 서울에서 내 집 마련은 얼마나 많은 포기와 희생과 눈물이 더해져야 하는 걸까.


여러 이유로 탈서울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탈서울 지망생입니다>는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에게 더없는 현실 조언을 건넨다. 그리고 탈서울 후 다시 인서울 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가감없이 더해져 이 책은 작금의 시대의 '집'이란 무엇인가, '집과 함께 하는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직설적인 고민을 하게 한다. 그런 게 이 이야기의 강점이다. 

무조건 행복하게 끝나는 결말의 이야기는 동화 속에나 존재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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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보는 마음
김유담 지음 / 민음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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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보는 마음>의 제목에서 보듯이 돌봄의 행위는 마음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누군가를 잠시라도 돌본 경험이 있다면 그 누구를 막론하고서 우리는 그 때의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와, 이거 장난이 아니네?



엄마는 나이 육십 세에 팔순이 넘은 외할머니를 돌보기 위해 요양사자격증을 땄다. 생전 바깥일이라고는 해본 적 없는 착실한 주부였던 엄마는 아빠와 나를 돌보는 것에 더해 이제는 할머니의 마지막 생애까지 돌보기로 마음 먹으신 거다. 분명히 외할머니는 결혼하지 않은 총각 삼촌과 함께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할머니의 돌봄은 떨어져 살고 있는 장녀-엄마에게 넘겨졌다. 서른 넘어 바라보는 엄마의 삶에서 나는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도 엄마처럼 나의 인생은 가족을 돌보다 마감하는 걸까. 결국 그 길 밖엔 없을까..




김유담 작가의 <돌보는 마음>을 읽는 내내 불행과 행복이 교차했다. 불행했던 이유는 피부에 와 닿는 다양한 돌봄의 종류가 필터없이 보여졌기 때문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했던 이유는 누군가의 희생으로 이뤄진 돌봄의 세계에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바래진 주인공들의 감정이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대추>에서 할머니는 손주 영석에 대한 사랑이 당연하지만 영석은 할머니가 좋아하는 대추를 힘들게 구하면서도 서늘하게 할머니가 맛있는 대추를 드시고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소설 속 는 그 말을 듣고도 아무 말을 하지 못했는데 그건 놀라서라기 보단 영석이 느끼는 할머니의 사랑이 어떤 불편한 상태로 공존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했기 때문이었으리라.




우리 친할머니도 큰 집 사촌 오빠를 신으로 모시듯 아꼈다. 좋고 예쁜 건 죄다 오빠에게 주면서 명절 때마다 보는 내겐 왜 고추를 달고 나오지 못했냐고 매번 인사처럼 하셨으니 할머니가 사는 세상에서 남자는 말 그대로 필수불가결한 존재였다. 하지만 의외로 나는 그 말에 별로 서운하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할머니의 그 말은 나를 싫어해서는 아니고 그저 아들이 없는 우리 집을 진심으로 안타까워신 것처럼 들려서였다

할머니의 삶에서 아들이 없는 우리 부모님의 삶은 불완전한 형태 그 자체였으니 늘 고추를 바라셨던게 아니었을까. 




<돌보는 마음>에서 <내 이웃의 거리>는 단연 최고였다. 집값, 마스크, 맘카페의 익숙한 언어로 이루어진 두 집의 관한 이야기는 모성에 기댄 두 여성의 연대에서 시작하다가 집값 시세 차이에서 벌어지는 두 사람간의 멀어진 거리를 느끼는 게 묘미였다.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상대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한 마음에서 비롯된 친절은 결국 무리를 해서 빚을 내 매매를 한 상대의 집값이 10억 시세를 찍었다는 사실에 그 동안 배풀었던 소설 속 내가 지불했던 소소한 비용까지 우습게 만들어 버리는 이 블랙 코미디 같은 상황. 사실 이런 이런 일은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봐오고 있어 마냥 웃고 넘길 수 있지만 또 마냥 우습지만은 않은 뾰족한 이야기였다.





정윤은 한 대 맞은 것처럼 뒤통수가 얼얼했다. 4000원짜리 스타벅스 커피 한 잔 사 마실 돈도 없다고 엄살을 떠는 혜미가 10억짜리 집을 소유한 자산가라니. 1000원이라도 더 싼 기저귀 핫딜을 찾느라고 밤잠을 설치는 혜미를 궁상맞다고 속으로 비웃었는데 오히려 혜미 입장에서는 마흔이 넘도록 내 집 마련도 하지 못하고 돈을 쉽게 써 대는 자신이 더 우스워 보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p 208)


사전에서 돌보다의 의미를 찾아봤더니 <1. 힘써 도와주다. 2. 뒤를 보살펴 주다. 3. 보호하다>였다.




분명 <돌보는 마음> 속 주인공들은 모두 나 이외의 다른 누군가를 돌보는데 헌신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그 대상은 남편일 수도, 자식일 수도, 부모일 수도, 아니면 모두 다 일 수도 있지만 정작 돌봄의 대상에서 쏙 빠진 건 . 나를 보호하고 보살피는 대신 그 애쓰는 최선의 마음을 사랑하는 사람 혹은 해야만 한다고 의무로 받아들인 사람에게 분투하는 걸 보면서 과연 나는 어떻게 나를 돌볼 수 있을 것인지 계속 곱씹게 됐다.




아직까지는, 나는 나를 보호하는데 더 분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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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 자리
고민실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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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차분한 채도를 가진 책을 읽었다.

소설 <영의 자리>는 무채색에 가까운 이야기에 아주 조금씩 채도가 높은 색깔로 덧칠되지만 멀리서 보면 결국 처음보다 눈에 띄게 달라지지 않은 그런 색깔의 이야기다.


'나'는 20대에 해고를 당하고 급하게 들어간 회사에서도 겨우 1년이 넘기고 폐업을 당한 백수이자 취준생이다. 딱히 무얼 하고 싶지도, 그렇지만 뭘 하지 않기도 애매해 어느 약국의 전산원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된다. 대뜸 약사는 "유령이 또 왔네"라는 말을 남기지만 처음에 '나'는 그 말이 의미인지 몰랐다. 같이 일하는 조부장은 몇 년 째 약국에서 일한 경력이 있고 그런 삶에 익숙한 듯 유령임을 자처하는데...


p032-033

유령이 되기로 했다. 유령이라고 하니까. 믿음 앞에서 논리는 무용했다. 사람들은 사실을 근거로 믿는 게 아니라 믿고 싶은 이야기를 선택할 뿐이다.

그때까지도 나는 여전히 '생'의 기분에 젖어 있었던 듯했다. 상실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유령이 되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영의 자리>에서 영은 숫자 '0'을 말한다.

참 신비하고 오묘한 숫자인 0

더할 때나 뺄 때, 곱할 때, 나눌 때 옆 자리 수에 상관없이 존재할 것 같지만 실로 대단한 영향을 미치는 숫자다. 특히 곱셈에서 0은 어떤 수를 갖다 대더라도 모든 수를 아무것도 없음으로 만들어 버린다.


'나'는 조부장의 도움을 받으며 약국일을 배운다. 처방전을 입력하고 조제약을 확인하고 약사를 도와 조제까지 돕는다.


<영의 자리>를 읽다 보면 작가님이 직접 약국 아르바이트를 한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꽤 자세하고 재밌는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가령 향정신성의약품은 보건소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따로 모아두고 실재고를 맞춰놔야 한다든가 제약사 영업사원들이 오는 장면이나 의약분업의 일화, 약국에서는 치료가 이뤄지면 안 된다는 등등의 이야기를 재밌게 읽었다. 소설을 읽으며 몰랐던 지식을 얻는 것도 생각지 못한 큰 기쁨일지도 :)

아! 후시딘과 마데카솔 효능이 어떻게 다른지 알고 싶다면?

<영의 자리>에서 아주 자세히 알려드립니다!


그렇게 '나'는 무기력한 채로 약국의 전산원 아르바이트생으로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가끔 약국에서 먹는 식빵이나 퇴근 후 집에서 시켜 먹는 단맛으로 삶의 달콤함을 맛보지만 어디까지나 그뿐일 뿐, 소수점을 하나씩 넘는 숫자에서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 


이는 '나'의 의욕이 삶을 크게 이끌지도 않고 버려두지도 않은, 수많은 0의 소수점 세계에 잠시 안착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소설 <영의 자리>에서는 '나'뿐만 아니라 '조' '약사' '약사 어머니' 등 유령이 된 존재가 많다. 그 말은 유령은 우리 곁에 얼마든지 있으며 그들의 존재가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들이 채도가 낮은 모습을 하고 살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 하루하루를 살아낸다는 의지보단 살아낼 뿐이라는 수동적인 모습에서 우리 모두는 유령을 닮았지만 어쨌든 0에서 벗어나기 위해 버거운 셈을 치루고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다행히 이 책은 결국 아주 작은 희망에 결말을 슬쩍 기대어 본다.

숫자 0은 얼마든지 변모할 수 있고 달라질 수 있는 대단한 수이니까.


정말 갑자기 그리고 우연히, 아니면 필연적으로 '나'는 빗소리를 들으며 밤이 깊도록 키보드를 두드리며 이력서를 작성한다.

이처럼 인생은 갑자기 어떤 또렷한 계기가 없이도 어떠한 연쇄작용으로 어디로 떨어질지 모르는 곳으로 가닿아 있기도 한다.

아마 이렇게까지 되는 이유는 1에 가기 위한 마음과 노력 덕분이고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소수점을 밟지 않고 더 높은 숫자에 도달할 수 있는 가능성도 보인다. 결국 우리들은,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건 이 무수한 0의 자리에서 맴돌며 삶의 영역을 조금씩 넓혀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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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위로 - 글 쓰는 사람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곽아람 지음 / 민음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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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신간을 꼬박 기다렸다. 매일 퇴근을 하고 읽었던 전작은 마치 공부하는 학생처럼 하루를 버틸 양식처럼 흡입했고 몰랐던 책에 대해 그리고 책 속 캐릭터에 대해 궁금하게 만들었다. 그리고서는 이번 <공부의 위로>가 3월에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손꼽아 기다리며 5년 회사 생활 중 가장 막막한 시기를 견뎌냈다.


책은 내게 이런 존재다. 어떤 감내도, 힘듦도 어찌어찌 견뎌내며 그 시간을 굴복하게 하는 힘을 주는 것.


<공부의 위로>는 작가가 배웠던 대학교 교정의 교양수업을 담은 이야기다.

제목에서 모든 걸 유추할 수 있듯 공부 그리고 젊고 찬란했던 20대에 배웠던 교양 수업이 현재 밥벌이를 위한 세계를 걷고 있는 본인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차분하고 단단한 마음으로 썼다.


다른 분들의 리뷰를 읽어보니 저마다의 대학교 교양 수업 추억을 써놓으셨더라.

나도 마찬가지였다. <공부의 위로>를 읽는 내내 대학교 때 들었던 단 한 개의 교양수업이 생각났다.


사실 나의 대학생활은 공부를 잘하지도, 그렇다고 신나게 잘 놀지도 못한 어정쩡한 4년이었다. 그래서 가장 아쉽고 슬픈 시기로 기억되고 다시 돌아가라면 주저 없이 열심히 공부만 해보겠다는 다짐을 보이는 때이기도 하다. (연애도 사치!!! CC 못해봄...)

여하튼, 나는 소위 신방과(신문방송학과) 학생으로서 전공은 신문, 잡지, 홍보, 미디어 등등이었고 교양수업이라고 해봤자 친구들과 시간 맞추기 좋은 쪽으로만 짰던 기억밖에 없다. 그러던 중, 유일하게 '아 공부란 이런 거구나'를 처음으로 머리에 얻어맞은 '만화와 철학' 수업이 있었다. 교수님이 지정해 준 만화를 읽고 그에 대한 리포트를 써오는 과제가 있었고 처음에는 재밌을 것 같아 신청한 과목이 알고 보니 인기 교수님의 수업이었다. 나는 대학생활 처음으로 과제로 제출한 리포트가 뽑혀 강당 앞에 나가 읽는 기회까지 주어졌는데 그 수업 시간에 처음으로 생각이란 것을 하고, 더 넓혀가 다양한 사고를 해볼 수 있었으며, 글 쓰는 일을 진지하게 대할 수 있었다. 전공에서는 전혀 느껴볼 수 없었던 공부의 재미와 진지함을 철학 교수님에게 배웠다.


곽아람 작가의 <공부의 위로>의 서문을 읽자마자 이 책은 막 고등학교 정규교육을 끝내고 수능의 압박감을 벗어난 학생들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마 내게 조카가 있었더라면 당장 이 책을 선물했을거다. 멋진 어른이고 나발이고, 일단 네 손에 쥐어진 스무 살을 가장 천진하고 싱그럽게 보내려면 쓸모없는 공부의 진지함을 터득해야 한다고. 내가 말할 순 없고(공부 안 한 나는 설득력이 떨어지니까..) 이 책이 자연스럽게 알려줄 것이라고 믿는다.


-10

그 모든 것들을, 나는 대학 강의실에서 배웠다. 읽고 쓰고 생각하는 훈련과 함께. 캠퍼스에서의 배움은 음화처럼, 내가 무엇을 아느냐보다 무엇을 모르는가를 뚜렷하게 하고 자아의 음역대를 넓혀 주었다. 그래서 이 책은 실용이라는 구호에 밀려 교양 강의가 축소되고 팬데믹의 영향으로 강의실이 망가져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현재의 대학에 바치는 비가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나 같은 어른들은?

읽을 필요가 없다는 얘기인가? 물론 전혀 그렇지 않다.

30대 중반의 직장인인 내가 읽어본 결과 <공부의 위로>는 확실히 내게도 위로가 되었다.



학창 시절 제대로 공부하지 못한 사람들은 대개 자존감을 쌓고 나눌 기회가 없다. 어떤 주제에 대해 스스로 사고하고 불편한 지점을 부딪치며 나만의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힘이 부족한 이유는 제대로 공부하지 못해서라고 생각하는 편인데, 그저 공부는 따분하고 시시하다는 이유와 현실은 공부가 아닌 실전이라며 아르바이트 등의 생계적 수단을 먼저 익히려는 학생들에게서 공부는 정말 쓸모없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몸으로 사회를 익힌 사람들도 나름의 이유와 근거를 대며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세계를 인식하지만 모름지기 '공부하는 데서 오는 힘'은 기본 중의 기본. 타인을 이해하고 그대로 인정하는 내면의 깊이를 더 파고드는 데 있다.


<공부의 위로>는 우리에게 작가가 들은 착실한 교양수업을 소개하며 공부하는데 느꼈던 희열, 순수한 학문적 기쁨, 재미와 동시에 현실에서 위로받는 공부의 쓸모도 놓치지 않는다. 현재 언론사 기자로서 치열한 밥벌이의 세계에 있으면서도 대학 수업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취준시기의 어두운 터널을 지날 수 있었다 고백한다. 그러하니 학문의 길을 뒤로하고 생계의 영역으로 한 발을 더뎌야 하는 취준생과 생계의 자리를 지켜야 하는 직장인들도 이 책은 꽤 쓸모가 있을 것이다.


-216-217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라는 문장은 수업을 들은 많은 이들에게 삶의 모토가 되었다. 


"분투하는 인간은 길을 잃는다."라고도 해석될 수 있는 이 문장은 흔히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라고 번역되는데, 내게는 독일어를 하나도 모르면서도 원문을 외워 적을 정도로 아끼는 문장이 되었다.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고시 공부를 할 것인가, 내 바람대로 인문학 공부를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취직을 해서 제3의 길을 찾을 것인가 방황 중이던 당시의 내게는 이 문장만큼 위로가 되는 말이 없었다.



미술사, 불어, 독어, 동양미술사, 영시, 중세 미술, 종교학, 심리학 개론까지 이 책 한 권만으로 우리는 공짜로 대학생이 되어 교양 수업을 듣는 기분이다. 이 얼마나 좋은 책인지? 평소 공부다운 공부, 지식 다운 지식, 쓸모의 여부를 떠나 당장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교양 수업을 원했던 독자들이라면 <공부의 위로>는 그 부응에 딱 떨어지는 책이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말 그대로 전부는 아니어서 우리에겐 교양이라는 덕목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중요한 일부기도 하므로 다양한 세계에 발을 담그는 방법은 공부가 제일 빠르고 쉽다.


-10


교양이란 완벽한 지식체계가 아니다. 자신의 세계를 공고히하되 다른 세계에 틈입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다. 교양이란 겹의 언어이자 층위가 많은 말, 날것의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 일, 세 치 혀 아래에 타인에 대한 배려를 넣어도는 삶의 태도이기도 하다.


나의 경우 27살 때 처음 퇴근 후 유튜브로 인문학 강의를 들었다. 그때는 회사는 너무 싫은데 퇴사할 용기는 없고 매일 친구들과 만나 커피 마시는 것도 지겨울 때라 다른 방법으로 머리와 마음의 환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인문학 강의를 듣는 것이었고, 그 행위는 점차 신문 필사하기- 한국사 공부와 시험 보기로 이어지며 대학생 때 들었던 '만화와 철학' 수업의 기쁨을 다시 맛보는 계기가 되었다.


곽아람 작가는 우리가 쓸모없다고 여겼던 공부를 재정의한다.

이런 정의는 늘 반복되는 하루와 하루 사이에 놓인 우리들에게 반가운 일탈이고 희망이다.


- 작가의 말에서


책 읽는 즐거움과 글 쓰는 고통 사이에서 방황하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워질 수 있는 힘. 그것이 바로 '공부의 위로'다.

공부는 나에게 '획기적인 창문'을 하나 열어 주는 것이며, 상처를 입고도 치유자가 될 수 있는 길이며, 현실에 매몰되지 않도록 감각을 일깨우는 것이며, 무엇보다도 성장할 수 있다는 희미하지만 단단한 자신감을 갖는 일이다.


<공부의 위로>를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는 내내 마치 스무 살 언저리의 내가 된 것 같았다.


갈 수만 있다면 다시는 그 시간을 남의 눈치 따위에 얽매여 보내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내면을 다지고 넓히는 과정을 거치는 대학 교정을 거닐고 싶다. 스무 살만이 새길 수 있는 운율과 리듬을 흘려보내지 않고 철저하게 고민하고 처절하게 사고한 나의 생각을 노트에 빼곡히 적고 싶다.


막 1년의 시작과 잘 어울리는 3월에 좋은 책을 만났다.

책 속에서 언급되는 인연 책처럼 이 책 역시 올해 나의 인연 책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봄과 어울리는, 삼십 대 중반인 내가 이십 대에 잠깐 머무를 수 있었던 좋은 이야기였다.


특히 유독 '공부'라는 단어에 환상을 갖고 여전히 학문의 세계와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동경을 갖는 내게, 더없이 좋은 행복을 주는 책이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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