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방
알렉스 존슨 지음, 제임스 오시스 그림, 이현주 옮김 / 부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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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작가의 방」 책을 손에 쥐자마자 탄성을 질렀다. "아니 너무 이쁘잖아?"

편집자가 이 책을 만들기까지 얼마나 공을 들였을지 짐작이 되었고 그 과정은 확실하게 기쁘고 벅찬 마음이었을거라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책이 나올 수 있겠는가.

「작가의 방」은 제목에서처럼 우리가 알고 있던, 혹은 몰랐던 세기의 50인 작가들이 치열하고 외롭게 글을 썼던 공간을 보여준다.


그곳은 침실일 수도 있고 서재일 수도 있고 카페나 차 안, 혹은 절벽에 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창고일 수도 있는데 공통점이 있다면 작가들은 언제 어디서나 쓸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그저 글을 썼다는 얘기다.


개인적으로 「작가의 방」이 좋은 건 책 안에 작가들의 방을 그려놓은 일러스트 때문이다. 글로만 설명되어 있다면 아무리 상상력을 발휘해도 한계가 있었을텐데 옆에 귀여운 그림이 붙여지니 이해하기가 훨씬 쉬웠고 마치 작가의 방을 실제로 훔쳐보는 기쁨까지 들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면 반드시 이 책을 펼쳐보시길.



작가의 고유한 루틴과 장소를 알아가는 재미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를 하나 더 말하자면 작가들의 고유한 습성, 루틴, 리추얼을 알 수 있다는 거다. 어떤 작가는 새벽에 일어나 6시부터 정오까지 집중하며 일했고 그 뒤에는 산책하고 밥먹고 다시 오후에 글을 쓰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고, 애거사 크리스티는 욕조에 몸을 담궜을 때 가장 줄거리를 구상하는 가장 이상적인 순간이라고 했다. 힐러리 맨튼은 또 어떤지.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다른 사람 차에 타고 있는 것과 상관없이 메모를 하고 글을 쓰는 유연함을 보여줬고 주디스커는 전화, 손님 등 방해요소를 피해 다락방 집필실에서 은둔하면서 글쓰는걸 즐겼다고 하니 정말 다양하고 가지각색의 방법으로 작가들은 자신만의 장소를 소중히 여겼다.



특히 미국 소설가 이디스 위튼은 침대에서 글쓰기를 즐겼는데, 자서전에서 "내가 계속 글을 쓰려면 지켜야 했던 사소한 의무들로부터 벗어날 자유를 줬기 때문에" 집은 그가 글을 쓰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고 회고했습니다. 침대에서는 편히 있을 수 있고, 글을 쓸 때 어느 누구의 방해도 받을 필요가 없으니까요.(p79)라고 할 정도로 집을 좋아하고 인테리어에도 관심이 많은 작가였다.



「작가의 방」을 읽다보면 단순하게 작가가 글을 쓰는 방의 개념에서 벗어나 작가가 추구하고 사랑했던 것들, 이를테면 가족, 연인, 친구, 반려동물이라던가 반대로 사소한 의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은둔했던 방법들까지도 알 수 있는데 이게 참 매력적이다.



아내이자 엄마로서 역할과 작가로서의 본능에 균형을 잡아야 했던 실비아 플라스는 그 많은 집안일을 해내고 아이들이 잠든 밤을 아껴가며 글을 썼고 영국의 낭만파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는 오두막을 지어 세상과 집의 떠들썩한 분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피난처(p192)에서 그의 대표작들을 썼다.


모두들 할 수 있는 선에서, 하고자 하는만큼 자신의 영역을 성실하고 치열하게 지키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 「작가의 방」은 꼭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우선 내가 가장 좋아하고 호감가는 작가들의 방부터 구경하면 그 뒤에 전개될 다른 작가들에게도 자연스럽게 감정이입이 된다.

나의 경우엔 <에밀리 디킨스> <마거릿 애트우드> <실비아 플라스> <빅토르 위고> <브론트 자매>의 방이 제일 궁금했고 흥미롭게 읽었다. 특히 <브론트 자매>의 이야기를 보자면-



요즘 작가들은 작가실이라는 개념에 친숙합니다. 여러 작가들이 한곳에 모여 드라마를 쓰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그런데 150년 전 브론테 자매도 작가실과 아주 비슷한 공간을 썼답니다. (p223)



이 첫 문장에서 가슴이 두근두근, 다음 장을 넘기면 그들이 함께 쓰고 서로 읽어주고 토론회를 열었던 공간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이 부분은 직접 확인하시길 ^^) 머릿 속에 이 공간을 기억하고 글을 천천히 읽어 내려가면 《제인에어》 《폭풍의 언덕》 이 과연 여기서 탄생한 거구나 싶은 실재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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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얼굴
제임스 설터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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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설터의 책 「그때 그곳에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등반은 원시적이어서, 멍청하고 마초에 이기적일 수 있는 등반가들도 한가지 공통점을 지니는데, 자신의 영혼, 말하자면 자신의 품성에 관해 알게 된다는 것이다.


등산이란 문법이 있다면 저 말이 이 책에도 통용될 수 있지 않을까. 「고독한 얼굴」 랜드의 삶은 등반 그 자체였고 산에 대한 정복력과 집중력으로 인생을 돌파하려 했던 사람이었다. 반면 그의 땅의 삶은 복잡하고 가난해서 그곳을 살아내는 힘이 모호하고 불확실하다. 그렇기 때문에 랜드에게 산은 이 모든 걸 덮는 존재였던듯 하다. 희망 한 줄기 보이지 않는 별 볼 일 없는 생활을 하다가도 산을 오르는 순간부터 그의 삶과 열정은 역동적으로 변하고 산 정복으로 성공을 거두자 명예가 뒤따르기 시작한다.


「고독한 얼굴」은 제임스 설터가 1979년에 발표한 다섯번째 장편 소설로 당초 등반가 게리 헤밍의 산악 등반에 관한 각본을 썼지만 주인공이 너무 과묵하다는 이유로 감독에게 거절당하고 없어질뻔한 이 이야기를 설터의 책으로 만날 수 있게 됐다.


우연히 재회한 옛 산악 동료이자 친구 잭 캐벗을 만나면서 무료한 일상에서 벗어나 산을 오르는 순수한 기쁨을 맛본 랜드는 위험하고 아찔한 절벽을 타고 오르며 어쩐지 모를 해방감과 함께 점점 등반하는 행위에 열정을 쏟기 시작한다. 프랑스 샤모니로 이동해 여러 암벽 등반을 성공하면서 점차 고독한 사람에서 유명한 산악인의 모습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제임스 설터는 섬세한 문장과 우아한 문법으로 풀어낸다.


아, 「고독한 얼굴」이 자칫 등산의 '등'자도 어려워할 독자들에게 가혹하리만큼 등반에 대한 지겨운 설명을 늘어놓진 않을까 걱정이라면 염려할 필요가 없다. 훌륭한 문장가 제임스 설터답게 산을 오르는 행위의 기쁨과 불안, 자연의 숭고와 엄숙함에 대해 비교적 쉬운 문체와 단어를 써서 구체적이고 생생한 묘사를 이룬다. 그러므로 나같은 일반 여성 독자도 산에 대한 랜드의 맹목적인 열정의 흐름을 따라가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

그는 신처럼 고요한 봉우리들을 휘둘러보았다. 봉우리들이 발산하는 광대함과 고요함에 경외심을 느꼈다. 어떤 의미에서든 그도 그것들의 일부였다. p57


산악인들은 산을 알아야 한다. 속도와 판단은 필수적이다. 계속 오르든 하산하든 고전적인 결정은 언제나 같다. 계속 오르는 것이 더 쉬운 때이다. 사실상 정상에 이르는 것이 유일한 출구인 때가 온다. 그 순간에도 여전히 힘이 있어야 한다. p93


흔히 산을 오르는 일을 삶에 비유한다. 죽을만큼 어렵고 힘들고 고독한 게 등반이지만 산정상에서 맛보는 성취감, 내려올 때의 상쾌함이 인생의 희노애락과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가끔 인생을 리셋하고 싶어도 멈추지 말고 계속 가야 할 시기가 있고 그 시간에 가닿아야만 하는 결론이 운명처럼 주어지는 법이어서 「고독한 얼굴」은 굴곡진 삶을 살아내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뜻하는지도 모르겠다.


함께 등반한 잭 캐벗이 산 위에서 굴러 떨어져 내려온 바위에 부딪혀 부상에 이른 상태에서도 랜드는 최선의 등반을 보여준다.

등반 과정 중에는 산이 무엇도 허락하지 않는 가장 어렵고 힘든 피치가 있다. 그 지점에서 산은 조그만 움직임도, 아주 작은 희망도 허락하지 않는다. 머리카락 한 올보다도 가는 선 하나만 있을 뿐인 그곳을 어떻게든 넘어가야 하는 것이다.(p109)


위험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결국 잭과 랜드는 등반에 성공했고 이를 계기로 랜드는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다. 물론 이때만해도 첫 성공에 대한 떠들석한 언론과 관심에 대해 난 우리가 드뤼를 어떻게 올라갔는지 사람들이 알게 되길 원치 않아. 우리가 해냈다는 것만 알아줬으면 해. 나머지는 그들의 상상에 맡기고 말이야(p121)라고 말할만큼 산을 오르는 행위만을 등반의 존재, 그것이 의미의 전부라고 여기는 랜드였다.

랜드는 그 산을 가질 수 있었다.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되었다. 그는 멀리 떨어진 봉우리들을 태양처럼 어루만졌고, 봉우리들은 그의 존재에 눈을 떴다. 그 생각이 그를 무모하게 만들었다. 엄청난 힘을 느꼈다. 산등성이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자신의 불멸의 모습을 보았다. 그걸 이루기 위해서는 기꺼이 목숨도 바치리라 생각했다.p121


위 대목이 순수함을 가장한 위험한 욕망의 다짐일 수도 있다는 건 나만 느낀걸까. 등반은 랜드에게 삶 이상이었다. 산에 발 붙지 않은 땅에서의 생활은 허술하고 초라할 뿐이다. 그 중에서도 랜드가 여성을 대하는 가벼운 만남은 혼란스럽다. 소설 속 랜드를 거치는 여자들은 도대체 랜드에게 어떤 매력이 있기에 기꺼이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넉넉한 마음씨의 여인들인건지. 어쨌든 그녀들은 결코 그의 아내는 될 수 없었다.(설령 랜드의 아이를 가졌더라도..)


결국 랜드가 존재하기 위해 돌아가는 곳은 산, 산, 산이었다.

함께 등반하던 잭 캐벗이 자신은 빼놓고 겨울 등반을 가고 무모한 등산을 감행하다 동료 한 명을 잃게 된 사건을 겪기까지 랜드는 고독하게 홀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산이 있으니 그저 오르는 사람처럼 사람들 눈에 띄었다가 조용히 사라지는 비밀스러운 산악인이었다. 잭 캐벗을 만난 후 느낀 열등감과 질투가 등반을 시작하는 잠깐의 원동력이 되어 주긴 했으나 산을 오르면 오를수록 생긴 그만의 원칙과 태도로 홀로 사냥을 나서는 외로운 늑대처럼 하얀 눈 덮인 산을 오르는 장면들이 섬세한 문체로 펼쳐진다.


커다란 산은 심상치 않다. 큰 산은 산악인의 모든 것을, 전적으로 모든 것을 요구한다. 그것은 어렵고도 아름다워야 한다. 잊을 수 없는 여인의 이미지처럼 기억 속에 있어야 한다. 더렵혀지지 않아야 한다.(p90)

랜드를 변화시킨 것은 고독뿐만이 아니었다. 또 다른 깨달음도 그를 변화시켰다. 중요한 것은 존재의 일부가 되는 것이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이었다. 그는 여전히 위허만 등반의 고통을 잘 알고 있었는데, 다른 식으로도 그걸 알게 되었다. 그것은 경의였다. 그는 기꺼이 등반에 경의를 표했다. 은밀한 기쁨이 그를 채웠다. 누구도 질투하지 않았다. 거만하지도 수줍어하지도 않았다.p174


이 책을 읽고 감상을 나눈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노라면 과연 우리는 같은 책을 읽은 것이 맞나 생각이 든다. 전체적인 줄거리와 개요는 같지만 같은 페이지의 글을 읽고도 드는 감정은 각기 다르니 말이다. 어떤 사람은 진정 등반을 사랑했던 랜드가 점점 유명해지며 명성을 얻으면서 드러내는 인간의 본능을 읽었다고 했고 또 어떤 이는 등산을 향한 주인공의 고독한 열망을 읽었다고 했다. 후반부로 갈수록 나도 몇몇 의견에 동의하지만 결국 나는 이 책이, 제임스 설터가 보여주고자 하는 바는 산을 오르는 인간만이 갖는 절대적 고독에 대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 고독은 험난한 바위의 지형을 이용해 자연 그대로의 산을 오르는 과정의 묘사(바위는 바다의 표면과 같아서, 일정하긴 하나 결코 똑같지는 않다. 동일한 루트를 오르는 두 명의 등반가가 있다면 각자 다른 방식으로 등반할 것이다.p33)에서도 보이고 등산을 포기하고 싶은 판단도 산에서는 생명과 직결되는 생생한 서술(한 동작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면 곧바로 다른 동작을 취해야 한다. 어쩌면 세 번째 동작을 취해야 할지도 모른다. 망설이면 홀드는 사라진다. 물러나버린다.p35)에서도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들은 책 곳곳에 드러나는 부드러운 산의 성품과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을 동시에 느낌으로서 인간이 자연에 가져야만 하는 겸손을 되새질할 수밖에 없고 그 근거를 랜드의 등반에서 재차 확인한다.

"어떻게 혼자 등반을 해요?"

"그럼 어떻게 자신을 보호해요?"

"사실상 무엇도 자신을 보호해주지 않습니다. 자기 내부에서만 지킬 수 있죠." 그가 설명했다. "등반은 도박 같은 게 아니에요. 운에 맡기는 게 아닙니다." 그들은 등반가라면 당연히 용감할 것이라고 가정했다. 권투선수처럼 끝장을 볼 힘이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에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해요." 그들에게 말했다. "발이 미끄러지면 손이 있죠. 어떤 걸 시도할 때,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기 전엔 절대 시도하지 않아요. 그건 정신의 문제입니다. 절대 떨어지지 않으리라는 걸 느껴야 해요."(p198)


이 문장에서 절대적 고독을 느끼지 않은 자 어디 있나. 바위 아래로 절대 떨어지지 않으라는 믿음을 가지기까지 로프 하나로 몸을 지탱하는 순간 얼마나 많은 생각과 판단이 발을 내딛게 만드는가. 찰나의 고독은 그렇게 순간마다 찾아온다.

각자 감당해야 할 고독이 팽팽하게 압축된 산이라는 공간은 제임스 설터의 절제된 문체와 생생한 묘사로 느낄 수 있는 「고독한 얼굴」에서 드러난다.


이 글의 맨 앞구절에서 인용한 말처럼 등반은 원시적이어서 그곳을 오르는 자 누구든 자신의 품성을 드러내기 때문에 순수하게 등반을 사랑했던 산악인이 몇 번의 성공으로 명예를 갈망하는 산악인의 모습으로 비치기까지 우리는 이 「고독한 얼굴」에서 그 여정을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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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어서 만들다 보니 - 좋아하는 것을 오래 하기 위한 방법
한주희 지음 / 창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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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좋이를 뜯고 나온 샛노랑 표지에 그려진 시원한 파랑.

그 안에는 좋아하는 단어 'Creator'가 쓰여 있었다.

창조하는 사람. 창작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든, 유에서 유를 창조하든 무얼 만들어내는 사람에게 나는 어떤 동경을 갖고 있고 이번 에세이 《재밌어서 만들다 보니》에서의 한주희 작가에 대한 호기심이 더욱 커졌다.


파리의 건축가, 디자이너가 되다


봉주르~말도 못했던 파리의 유학생이 건축학교를 졸업하고 유명 건축회사에 입사해 열심히 일하며 그저 좋아서 시작해 본 일이 또다른 직업이 된 디자이너의 이야기. 글로 쓰면 이렇게 간단한 이력이지만 이 책에 나와 있는 저자의 구구절절한 삶을 들여다 보면 한 번에 쉽게 된 것이 없다. 일단 언어부터. 에펠탑과 낭만이 떠오르는 파리조차도 삶 속에 들어가면 언어로 시작되는 타지의 생활이다. 말이 안 되면 인간관계도, 일도, 사회도, 뭣 하나 쉬운 게 없는 생존의 생활일 뿐.


하지만 그 시기를 어떤 마음으로 극복했는지, 또 그로 인해 어떤 세상이 펼쳐지게 되었는지 읽는다면 지금 힘들게 유학생활을 하고 있는 분들에게 소금같은 조언이 될 것이다.


p36

언어가 생각을 담는 수단이 되어야 하는데 내게는 생각을 마음대로 표현하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항상 불편한 느낌이 들었고 기억과 생각, 느끼고 보는 것을 마음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답답함이 쌓일수록 프랑스어 공부에 열중했다. 그렇게 프랑스에 체류하는 13년동안 나는 쉼 없이 프랑스어로 생각하고, 프랑스어로 말하고, 프랑스어로 쓰인 책을 읽으며 가장 나다운 프랑스어 표현 방식을 하나씩 찾아나갔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이 《재밌어서 만들다 보니》을 읽는 동안 건축가보다는 디자이너로서의 저자가 훨씬 창작에 가까운 일을 하고 있으며, 또 마음으로 더 좋아하는 주파수가 맞춰졌다. 글을 쓰면서 저절로 투영된 것인지 기획의도에 따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디자인을 통해 본인이 구현하는 아이디어에 훨씬 생기가 돋보이는 글이었다.


이 책을 추천한다면 제약회사 일을 그만두고 광고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다는 친구의 후배에게 권하고 싶다.


꽤 큰 제약회사에서 안정적으로 잘 일하고 있는 그 후배는 광고일을 하고 싶다는 작은 열정을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수업을 들으며 채우고 있다고 한다. 현재 사귀고 있는 남자친구와 결혼 계획도 있고 아이도 낳아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그 후배가 자꾸만 현실과 이상을 재는 일은 당연할 것이다. 용기는 아무때나, 아무렇지 않게 쓰는 게 아니니까.


하지만 적어도 이 《재밌어서 만들다 보니》를 읽는 동안은 마음 속에서라도 마음껏 본인이 하고 싶을 상상하며 재능을 펼쳐 볼 수 있지 않을까.



p197

앞이 보이지 않아 막막하고 답답한 느낌이 나를 계속 짓누른다. 그 감정을 누그러트리려면 몸을 움직여 뭐라도 하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다. 아무리 구체적으로 상상해도 다짐은 다짐으로만 끝날 뿐, 직접 몸을 움직여 실행하는 것만큼 효과적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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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브
손원평 지음 / 창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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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손원평 작가하면 '아몬드'를 빼놓고는 논할 수 없을 정도로 베스트셀러인 그 책을 나는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



도서관에서 빌려볼까도 했고, 사서 읽을까 싶어 장바구니에도 넣어 봤지만 아직 연이 닿지 않았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번 튜브를 읽고 나서 바로 아몬드를 주문했다.



'아, 이런 스타일의 작가님이시구나'

'이런 글을 쓰시는 거구나'싶었던 《튜브》는 절망으로 시작해서 절망으로 끝나는, 그러나 그 절망을 품고 있는 희망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 희망은 아주 작고 작은 '변화'에서부터 출발한다.


김성곤은 영양제나 수액을 맞듯 일정하게 동기부여가 될 만한 것들을 찾았고 실제로 그런 것들은 잠깐이나마 그에게 불끈 힘을 불어넣어주기도 했다.


삶을 뒤로하고 한강에 뛰어내리려 했던 김성곤은 어쩐지 죽음마저도 자유롭지 못했다. 산다는 게 지겹고, 이미 아내와 딸은 그를 버렸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고자, 살아보고자 노력한 사람이다.


사실 나는 희망보다는 절망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절망에서 아등바등 희망으로 가보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의 노력과 좌절, 그렇지만 또 해보는 그런 이야기들이 결국 나와 비슷해서 공감이 간달까.


김성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잘 살아보고 싶어서 꿈을 향한 집념을 행동으로 옮겼고 그게 잘 안 됐을 뿐이다.


운도 없었고, 그 자신의 성격도 문제였고, 안 되려면 다 안 되는 이유가 있는 상황.

절망에 절망에 또 절망까지 이르다보면 그 누구도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랴.



김성곤은 작은 결심을 다졌다. 자세를 바르게 하는 걸 지상과제로 삼기로. 모든 걸 다 잊고 오로지 그것 하나만을 목표로 삼겠다고 말이다. 그 시시한 다짐이 결과적으로 과감한 여정의 첫발자국이라는 걸 그로선 아직 알 길이 없었다.



정말 사소하고 작은 다짐. 자세교정을 시작으로 김성곤이 인생은 조금씩 그전과 다르게 흘러간다.


우연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모든 건 김성곤의 '마음'에서 달라진 이야기이고 결국 마음을 고쳐 먹으면 생각 > 태도 > 행동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볼 수 있다.


읽는 내내 별 볼 일 없던 김성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조차 편견으로 가득 차 있던 긍정의 프레임에 대해 바뀔 수 있었으니, 이것이 이야기의 힘이겠지.



성장소설답게 이 책의 상당수 문장은 어른으로 잘 살아가기 위한 현명한 조언들이 숨겨져 있다.


아니 대놓고 드러나 있는 부분도 많으니

- 변화가 필요한 사람들

- 시작이 무서운 사람들

- 용기가 없어 무조건적인 용기를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자기계발서를 읽는 걸 좋아하는 편이지만 이렇게 소설의 형식으로 내 마음을 자극하는 걸 더 좋아하는데 책 속 인물들이 실제 내 옆에 있는 사람같기도 하고, 그래서 함께 노력하고 있다는 기분만으로 위로가 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책이 너무 좋아서 모든 이야기를 이곳에 쓰고 싶지만 다 풀어 놓으면 이 포스팅을 읽고 찾아볼 독자들에게 미안해지니 스포는 여기까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유치원 차량을 도와주시는 아저씨에 대해서는 일절 금하겠음!)


다만, 이곳에 쓰지 못한 인생에 대한 문장들을 곳곳에서 발견하시고 지금 무기력한 분들이 있다면 설렁설렁 읽어도 좋으니 옅은 희망을 품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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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밀 예찬 - 은둔과 거리를 사랑하는 어느 내향인의 소소한 기록
김지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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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선 작가의 이전 책 <우아한 가난의 시대>를 참 좋게 읽었다. 여러 에피소드가 공감됐고 미처 생각하지 못한 꺼리들을 던져주어 지금도 휴대폰 e-book에 저장해 놓고 가끔씩 읽고 있는데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을 읽는 일! 너무 좋잖아! 


<내밀 예찬>은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듯 내밀함에 관한 책이고 이 내밀함에 내포되어 있는 여러 의미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책 중에서 '작가의 말'이 참 잘 쓰여진 책을 보면 호감도가 더 상승하는데 이 책이 바로 그랬다.


p8

'내밀한'이 내가 가진 것, 즉 나의 마음, 나의 시간, 나의 이야기 등을 수식할 때, 이 단어는 타인가 나 사이에 널널한 거리를 만든다.


반면 '내밀한'이 관계성을 품은 단어와 함께 사용될 때, 이를 테면 '내밀한 대화'라거나 '내밀한 사이'라는 말에서 나와 각별한 타인의 거리는 순식간에 좁아진다.



이렇듯 '내밀한'의 단어에는 타인과의 거리와 친밀이 적절하게 쓰일 수 있는 신통방통한 능력이 숨어 있고 우리는 이 <내밀 예찬>을 통해 작가가 수줍게 보이는 '내밀'의 다양성을 즐기면 된다.


직장인분들!

점심식사는 어떻게 하시는지요?

각자 먹나요?

아님 같이 먹는 멤버가 있나요?

식사 후에는 뭘 하시나요?


나는 회사에서 점심이 나와서 다행히 메뉴 걱정은 하지 않고 즐겁게 먹은 다음에 회사 주변을 한 바퀴 돌고 나서 사무실로 돌아와 에어팟을 끼고 유튜브를 본다. 주로 재밌는 예능 콘텐츠인데 이 시간 만큼은 사무실에 모든 팀원이 함께 있어도 서로 말을 걸지도 않고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즉, 점심시간 만큼은 철저히 서로의 시간을 배려해주지만 모든 직장인이 이런 형태의 시간을 가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내밀 예찬>의 모든 이야기 중에서 [점심이탈자] 에피소드가 가장 좋았다.


작가가 던진 <내밀 예찬> 중에서는 [무표정의 아름다움]도 들어간다. 표정관리, 즉 억지로 미소지어야 할 때도 무표정으로 일관할 수 있는 용기는 모든 사람들이 갖고 있으면 든든한 아이템이다.


나는 이 표정관리가 잘 안 되는 직장인의 한 명으로 상사에게 혼나면 뿔이난 눈과 볼, 입이 투명하게 보이고 기분이 좋으면 그 표정대로 또 다 내보이는 하수 중의 하수. 그래서 늘 마음을 되뇌이는 직장 철칙 중 하나가 '일희일비 하지 말자'다. 



그러려면 이 무표정의 기술을 좀 배워야 하는데 영 쉽지가 않다.

이런 표정 관리에 능할 수 있는 수준이 되려면 그는 결단코 혼자만의 시간을 단단히 구축해 둔 덕분일 것이다. 그 시간동안 본인이 좋아하는 일, 어려워하는 일, 해야만 하는 일, 하지 않아도 되는 일로 다양한 경험과 데이터를 쌓아 어떠한 상황에서도 여유있게 혹은 마음 속 여유는 없지만 표정만큼은 여유있게 내보일 수 있는 노력이 빛을 발한 결과다.


나도 내향적인 편에 속해서인지 모르지만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보다 홀로 있을 때 에너지를 충전하고 슬그머니 내보는 용기의 횟수도 더 많은 편이다. 다른 사람과의 대화에서 위로를 받기도 하지만 스스로 다독이는 다짐이 큰 결심으로 이어지는 때가 많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나의 무표정의 아름다움은 홀로 있는 책에서, 홀로 보는 영화에서, 혹은 홀로 쓰는 글에서 이뤄질 확률이 높겠지.


언젠가는 나도 여유롭고 우아하게 무표정으로 다정할 수 있길 바란다.


<내밀 예찬>의 부제 은둔과 거리를 사랑하는 어느 내향인의 소소한 기록을 가장 잘 표현한 에피소드는 바로 [숨고 싶지만 돈은 벌어야겠고]가 아닐까 싶다. 이제는 어느 연예인 못지않게 대중을 이끌어가는 일반인 셀럽이 있다. 인스타그램이 매우 활발해지면서 마치 연예인을 보듯 내가 팔로우한 힘있는 셀럽의 일상을 보며 그가 입는 옷, 먹는 음식, 사는 모든 것들을 따라하고 열망하는 시대다.


즉, 누구나 마음 먹으면 내가 셀럽이 될 수도 있는 세상. 아니 그렇게 되라고 만드는 세상에서 내향인들은 고민한다.


"아무도 날 못 알아봤으면 좋겠지만 팔로워 수는 10만이 넘고 싶다고요"

성향과 생존의 아이러니함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걸까.


이 책은 세상 모든 I들에게 호감을 살 만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물론 E라고 해서 전혀 공감하지 못한다고?


전혀 그렇지 않다. '혼자'와 '함께' 사이에서 가끔은 '혼자인 편'을 더 자주 선택하고 일부러 시간을 내는 사람들이 보내는 다정한 거리감을 알아주면 좋겠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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