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중심에서 가장 먼 곳까지 다시 다녀오기로 한다 - P35
12월 31일이 되면 어째서 나 자신과 가족들 친구들이 아니라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 믿게 되는 그림자 같은 이들을 생생하게 떠올리게 되는 것일까. 1월 1일의 새벽 아직 덜 마른 머리를 빳빳한 침대 위에 누이며 모든 멀고 생생한 이들이 잠깐 온양에서 잡힐듯이 가까워오는 것을 느끼며 잠이 들었다. - P13
포이어바흐와 같은 이들이 이야기하는 눈먼 철학은 이러한 생명과는 너무도 거리가 멉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따르는 이들을 그처럼 무의미한 세계로 이끌고 갑니다. 물론 ‘당신이 먹는 것이 바로 당신’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가 ‘먹는 것’은 거룩한 아버지로부터 오는 사랑의 선물입니다. 그 음식을 먹음으로써 인간은 그분의 빛과 영광과 기쁨에 참여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그분께서 주시는 것들에 의지해 살아갑니다. - P55
오늘 우리에게당신의 사랑 안에서 이 모든 것을 내려주소서.그저 존재하는 데 그치지 않게 하시고,진정 사랑함으로 충만하고 의미 있으며거룩하고 영원한 삶을 살게 하소서.당신께서 본래 창조하신 대로의 삶,당신께서 우리에게 이미 주신, 언제나 내려주시는 바로 그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그렇게 당신을 알고, 사랑하여 당신께 감사를 올리게 하소서.일용할 양식을 주소서. - P56
서먹했던 너와의 사이는 천천히 회복되었다. 네가 나를 이해했거나 내가 너를 이해한 게 아니었다. 우리는 최대한 말을 아끼는 방식으로 서로를 불편하지 않게 배려했다.
건전한 섹스 얘기란 무엇인가…… 친밀하고 편안하면서도 무례하지 않은 분위기에서의 섹스 얘기일까. 떳떳해야만 좋은 섹스인가. 수치심을즐길 유일한 장르이기도 하지 않나. 아무튼 섹스 앞에 붙는 ‘건전한‘이라는 형용사는 어딘가 우스웠다. - P152
그러나 사랑하는 친구의 대타로 뛰는 첫 알바 날에 가장 아끼는 티셔츠를 골라 입는 도혜의 마음을 우리는 그려볼 수 있다. 윤이 덕분에 도혜는 처음으로 자신의 있음이 부끄러워졌다.결여된 것들을 통해 윤이가 얼마나 많은 것을 일찌감치 배웠는지 보았기 때문이다. 신형철 평론가의 책 『정확한 사랑의 실험,(마음산책, 2014)에 따르면 욕망의 세계에서는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는지가 중요하지만, 사랑의 세계에서는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지 않은지가 중요해진다. 도혜가 윤이를 좋아하다가 자신이무엇에 서툰지 알아가게 되는 과정처럼 말이다. 어떤 사랑은 나를 더 사랑하게 만들기보다 내 안의 결여를 인지하도록 이끈다. - P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