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끔찍한 공허를 메워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할 터였다. 생각은 괴로운 일이다.
- <봉쇄> - P172

삶은 히브리어에서 그리스어로, 그리스어에서 라틴어로, 라틴어에서 영어로, 영어에서 중국어로 번역된 성경 같았다. 추이위안이 성경을 읽을 때면 머릿속에서 중국어가 다시 상하이 말로 번역되었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틈이 생겼다. - P175

그녀는 예전부터 아버지를 너무나 증오했고 너무나 잘 이해했다. 진정한 이해는 사랑에서 비롯하기도 하지만 증오가 바탕이 될 때도 기이할 만큼 완벽하게 가능했다.
- <증오의 굴레> - 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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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고 오래된 ‘안녕‘이란 말이 참 예쁘고 서글프다 해줄 텐데"라며 작게 훌쩍였다. 그러곤 그런 스스로가 창피했는지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그날, 통화가 끝난 뒤에도 병실 복도에 한참 서 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이제 나는 헌수도 없고, 엄마도 없고, ‘다음 단계‘를 꿈꾸던 젊은 나도 없는이 방에서 ‘너한테 배웠어, 정말 많이, 정말 많이 배웠어‘란 가사의 노래를 듣는다. 보다 정확히는 네가 아니라 너의 부재로부터 무언가 배웠다고. 그런데 여전히 그게 뭔지 모르겠어서 지금은 그저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내 쪽에서 먼저 원곡 위에 ‘안녕‘이란 한국어를 덧씌워 부른다고. 우리 삶에는 그렇게 틀린 방식으로 맞을 수밖에 없는 순간이 있고 아마 나는 그걸 네게서 배운 것 같다고. -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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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일단 만나면 기분좋아지는 사람‘ 은 뜻밖에 드물고, 있더라도 그 수가 점점 줄기 마련입을 깨달 은 기대는 희주와의 인연을 귀하게 여겼다. 아니 사실 그거면 축하다 싶었다. "살맛난다 할 때 그 살맛이 이 살맛이구나" 장난치며 서로의 목이나 손등을 깨물고, 상대의 속눈썹과 컷바 퀴. 몸냄새에 대한 칭찬을 남발하고, 그러면서도 어느 땐 육체의 쇠락을 과장하며 서로를 늙은 배우자인 양 놀리고, 그러면 마치 노년의 남루와 공포가 줄기라도 할 것처럼 농담과 연민 을 미리 당겨쓰고, 세상 무심하고 친밀하게 등과 두피에 난 여드름을 짜주고, 상처와 비밀을 나누고, 말을 아끼고, 오래 안고, 우리가 식물과 달리 똥도 싸고, 아름답지도 않고, 울기도 하는 존재임을 가여워하고 수긍해주는 정도라면, 그거면 충분하다고.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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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
햇빛을 오래 비라봤어. -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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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8일

내 작은 집의 풍경에는 바깥 세계가 없다. 중정이 주는 평화, 내면의 풍경 같은 마당.

행인도 거리도 우연의 순간도 없다.
그걸 잊지 않으려면 자주 대문 밖으로 나가야 한다.

하지만 이 내향적인 집에도 외부로 열려 있는 방향이 있다. 마당의 하늘. 그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을 오래 보고 있었다. -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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