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틸리히는 불편함이 ‘회피‘의 이유라고 지적한다. "당신이 진리를 회피하려 하는 것은 그것이 너무 심오해서가 아니라 너무 불편하기 때문입니다."(『흔들리는 터전』) 익숙한 방에서 나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 불편한 일이다. 익숙한 방에서 나오지 않는 것은 그 방의 공기가 편하기 때문이다. 그 방안의 공기가 편한 것은 자신이나 자신과 다름없는 사람들의 호흡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방은 하나의 세계다.
그러나 극복되어야 할 세계이다. -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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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이 필요한 이유이다. 아브라함, 롯, 하갈, 이삭이 주인공인 창세기의 저 불친절한 문제적 장면들을 소설화한 『사랑이 한 일을 쓸 때 나는 언어의 이 두 차원에 집중했다. 소설가인 나는 그 난해한 장면들을 인간의 수준/차원에서 더 잘 이해하고 더 잘 받아들이기 위해 번역, 즉 인간적 패러프레이즈, 혹은 소설적 가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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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읽기
이승우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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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는 있었으나 있지 않은 것을 그리워하지만 추구는 있어본 적이 없는 것을 그리워한다. 무지는 ‘여태‘ 모름이고, 미지는 ‘아직‘ 모름이다. 두 모름은 같은 모름이 아니다. 무지는 아는 것이 마땅한 어떤 것을 알지 못함이고 미지는 알 리 없는 어떤 것을 알지 못함이다. 무지에는 알지 못한 데 대한 불만이, 미지에는 알게 될 것에 대한 기대가 내포되어 있다. 무지는 과거에 대한 것이고, 미지는 미래를 향한 것이다.
무지는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미지는 추구를 북돋운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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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김기태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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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지금, 콘크리트 평야 위에서 검은 연기를 뿜는 초대형 기계, 소방차와 구급차의 사이렌소리, 거침없이 부는 초겨울의 바람, 좌석도 가방도 시간도 잃은 채 어리둥절해하고 화를 내고 가슴을 쓸어내리고 여러 언어로 웅성거리는, 오와 열 따위는 없이 털썩 앉거나 서성거리거나 제각각이지만 아주 흩어지지는 않는 사람들. 그 모든 것 사이에서 위태로운 우애를 담아 말한다.
"나는 활주로 위에 있다."
이것은 아무 결심도 아니지만 한번 더 말한다.
"나는 활주로 위에 있다."
앞뒤로 줄을 서서 대피한 아까의 일본 청년이 곁에 있다가 뜻밖에 한국어로 대답했다.
"확실히 그렇네요." - P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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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에서 "하나, 둘"이라거나 "한번 더"처럼 한 무리의 학생들이 단체 사진을 찍는 소리가 들렸다. 곽은 상자 속에 있던 피낭시에, 혹은 다쿠아즈나 비스코티일 수도 있는, 유럽 어느 언어로 된 이름이 분명한 디저트를 하나 입에 넣었다. 역시 달콤했다. 경박한 단맛이 아니라 깊이가 있고 구조가 있는, 하지만 묘사해보려고 하면 이미 여운만 남기고 사라져서 어쩐지 조금 외로워지는 달콤함. 사람을 전혀 파괴하지 않고도 패배시킬 수 있는 달콤함.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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