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때 우리는 선생님들의 실수에 너무 엄혹한 것이 아닐까? 한 명의 노동자이기도 한 ‘교사‘에게 스승‘의 모습만을 요구하는 것 아닐까? 특히나 특수학교 선생님들에 대해서는 그 길에 들어선 것 자체를 ‘헌신에 대한 약속‘으로 여기고 그분들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은 아닐까? - P118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야기가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것이라면, 우리의 삶도 그 이야기를 따라 빚어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야기가 종교 민족주의이거나 "너 자신의 행복을 찾아라", "죽을 때 가장 많이 가진 자가 승자다"와 같은 내용이라면, 우리의 인생도 그런 식으로 빚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진보 기독교인과 보수 기독교인이 겪는 이 같은 불행은 바울이 처했던 역사적 상황과 그 속에서 그에게 맡겨진 사명을 고려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 톰 라이트는 이렇게 말한다. "신약 성경은 반드시 이야기로 읽혀야 한다. 복음과 그것을 둘러싼 수많은 이야기를 앞뒤 다 자르고 ‘중요한 개념’만 나열한 선언문을 읽듯 읽어서는 안 된다."8
너무나 많은 이들이 성경, 특히 바울 서신의 명료성을 들먹이며 가혹한 일을 저질렀다.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나 많은 잔학 행위를 말이다.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유명한 선교사였던 바울은 진보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육체의 가시’와 같은 존재다(보다시피, 나처럼 이런 식으로 성경 구절을 써먹으면 안 된다).
문제는 우리 둘 다 말을 하지 않았다는 거다. 우린 그냥 돌만 던졌다.말을 했어야 했다. 그런데 내 안에 항상 말이 있는 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