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이도 안녕." 아무 약속도 안 했는데 다음에 또 볼 수가 있을까. 이 공원에, 이 공공의 장소에 오면 또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일은 마땅히 가능해야 하는데 언제나 가능하지는 않았다. 산 쪽에서 들개가우는 소리가 들리자 공원에 있는 개들도 따라서 울기 시작했다.그 들개는 아주 사납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 역시 아주 개 같았다. - P175
다들 머리로는 이해했으나 가슴으로는 아니었고, 그건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게 힘겹게 받아들인 정체성을 공고히 할 수 있는 경험이지 다시 혼란해지거나 불안해지는 경험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 P118
너무 열심히 쓰지 마.이 소설을 쓸 때 가장 많이 떠올린 말이다. 원영이 내게 누누이 말해왔던 것처럼 원영도 잘 먹기를 잘 자기를, 행복하기를. 오직 그것만 바라보고 있는 나 자신을 외면하지 않았던 시간이었다. - P43
어디에도 쓰일 수 없어야 진정으로 아름답다. 쓸모 있는 모든 것은 욕망의 표현이라 추하며, 인간의 욕망은 그 비루하고 나약한 본성처럼 비열하고 역겹다."ㅡ테오필 고티에, 『모팽 양의 한 구절로, 마거릿 애트우드의 글쓰기에 대하여」(박선영 옮김, 프시케의숲, 2021)에서 재인용 - P81
"이유를 잊는다면서요."치온은 그제야 자신이 말한 이야기를 기억해냈다. 아! 소리를 냈다. 한참을 생각에 빠져 있다 온몸의 땀이 마르고 선득함이 느껴질 때쯤 치온이 입을 열었다."이유를 잊게 되는 원인이 있을 거예요. 스트레스 상황이 반복되면서 단기 기억력이 나빠진 것일 수도 있겠죠. 그런데 이유를 잊어야만 하는 이유가 따로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워진 게 아니라 필요에 의해 치워졌다고 해야 할까요.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원인과 이유가 일치할 수 없다는 것을 내는 알게 돼요. 그 불일치가 나한테는 원인인 것 같아요." - P33
김혼비의 산문을 추천하는 지인이 꽤 있었지만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는 너무 관심없는 “축구”를 다루고 있어서, <아무튼, 술>은 “술”을 즐기지 않아서. 다들 재밌다고 한 <전국축제자랑>(사기만 하고 읽지 않음)을 넘어, 드디어 나온 지 1년 만에 접한 <다정소감>을 읽었다. 다정이 붙드는 마음의 이야기를, 아니 다정이 구원한 일상의 이야기를. 그래, 왜 김혼비를, 그의 에세이를 좋아하는지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