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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 월성원전 1호기

 

'최악의 방사능 누출 사고를 5년간 은폐'

 

충격 그 자체입니다. 한국수력원자력이 사용후 핵연료봉(폐연료봉)을 원자로에서 꺼내 수조로 이송하던 중 떨어뜨려 엄청난 양의 방사능이 누출된 최악의 사고를 5년간 은폐했습니다. <뷰스앤뉴스>에 따르면 이 사고는 국내 원전사상 유례가 없던 최악 사고이면서, 심지어 방사능이 누출되고 있는 폐연료봉을 원전 정지도 없이 직접 사람이 들어가 수작업으로 처리했습니다. 충격과 공포를 이럴 때 쓸 것입니다.

 

김제남 정의당 의원은 3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지난 2009년 3월 13일 오후 5시 경 경북 경주의 월성 1호기의 핵연료 교체과정에서 이송장비의 오작동 또는 작동 실수로 인해 사용후 핵연료봉 다발(37개 연료봉 묶음)이 파손되어 2개의 연료봉이 연료방출실 바닥과 수조에 각각 떨어지면서 발생했다고 폭로했습니다.

 

이때 유실된 연료봉에서는 계측한도를 넘는 1만mSv(밀시비버트) 이상의 방사능이 누출되기 시작했으며, 정상적인 수습이 불가능해지자 한수원은 엄청난 고(高)방사능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작업원 1명을 직접 연료방출실에 들어가게 한다. 이후 여러 차례 수작업으로 수거를 시도한 끝에 다음 날 새벽 4시 경에서야 수습이 됐다고 <뷰스앤뉴스>는 전했습니다.

김 의원은 "이번 사고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사고이며,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방사선 비상단계 중 청색경보에 달하는 사고일 가능성이 있다"며 "그럼에도 당시 한수원은 규제기관(당시 교육과학기술부 원자력안전과)에 보고도 없이 사건 기록조차 제대로 남기지 않고 은폐를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규제기관에 보고 조차 하지 않는 한수원 대단합니다. 시민 안위를 조금이라고 생각했다면 이럴 수 없습니.

김 의원은 "이 사건은 국내 원전 운영 역사상 최악의 사고이자 최악의 은폐로 기록될 것"이라며 "한수원과 원안위는 국민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정말 위험한 도박을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원전 안전 관리 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한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한편, 월성 1호기는 중수로 원전으로 1983년 4월 상업운전을 시작했으며, 잦은 고장에도 불구하고 2012년 11월 설계수명 30년이 끝났음에도 정부는 수명을 10년 연장한 노후 원전입니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잊었나

 

 

체르노빌 원전 사고 당시 노동절을 맞이해 프리 피야트시 주민들이 휴일을 즐겼던 한 놀이공원은 이제 폐허가 되어 참사를 되새기려는 사진가들에게 인기있는 촬영지가 되어버렸다. <출처 슈피겔>

 

 

1986년 터진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생각납니다. 환경단체들은 체르노빌 발전소 방제작업에 참여했던 20~30대 젊은 노동자들 8천여 명이 생명을 잃었다고 주장합니다. 발전소 피폭과 관련성은 확실하지 않지만 2만 5천여 명이 숨졌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그리고 백혈병, 갑상선암, 정신질환, 백내장 등 온갖 질병들이 사람들에게 찾아왔습니다.  

 

"지난 2006년 4월 18일 그린피스는 27만 건의 암이 발생할 것이고 그 가운데 9만3천 건은 치명적인 종류일 것이라고 주장했고, 세계보건기구에 딸린 국제암연구기구(IARC)는 최근 체르노빌 사고로 유럽 전체에서 오는 2065년까지 1만6천 명이 갑상선암에, 2만 5천 명이 다른 암에 걸릴 것이며 그 가운데 1만6천 명이 사망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한겨레> 체르노빌 20돌' 재앙은 오래 계속된다 2006.04.21) 

 

더 큰 문제는 방사선 피해는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확한 피해는 30년이 지나야 합니다. 방사선 피폭을 당했던 어린이가 성장해 아이를 낳게 되면 질병을 동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체르노빌 사고가 1986년 났으니 아직 5년이 남았습니다. 정말 끔찍한 일이지요. 아직도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30km 안은 통제구역입니다.

 

체르노빌은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2번처럼 아름다운 대평원이 펼쳐진 곳입니다. 하지만 방사선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생명이 있는 곳과 것에는 죽음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한순간 생명의 땅 체르노빌은 죽음의 땅이 되었습니다. "안전하다, 안전하다"던 원전이 폭발했기 때문입니다. 정부와 진실에 눈먼 과학자들 거짓말 때문에 죄 없는 아이들이 죽어갔습니다.

 

이 비극이 대한민국에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원전은 100% 안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번 사고가 나면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줍니다. 이런 원전 지금은 당장은 아니지만, 우리 후손을 위해서라도 점점 줄여나가면서 끝내는 완전히 폐기해야 합니다. 그게 현재 우리가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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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아이들 사계절 그림책
메리 윌리엄스 지음, 노성철 옮김, 그레고리 크리스 그림 / 사계절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아프리카 수단의 '다르푸르'는 우리에게는 생경한 지명이지만 유엔이 가장 염두에 두고 있는 분쟁지역이다. 정확한 기억인지 모르겠지만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취임 후 처음 방문한 지역이 '다르푸르'인 것으로 알고 있다.


다르푸르는 평화의 땅이었다. '가랑이'는 작은 송아지를 돌보면서 부모님의 사랑을 받았다. 가랑이는 작은 송아지를 씻기고, 간호해주고, 풀밭과 샘으로 데리고 다니면서 하나가 되었다. '살림'과 '평화'의 땅이었다.

 

이렇듯 살림과 사랑이 넘치는 평화의 땅인 다르푸르가 어느날 '죽임의 땅'이 되었다. 죽임이 난무하는 곳은 살림의 세상이 아니다. 사람들은 죽임의 땅을 뒤로하고 살림의 땅으로 떠난다. 그 중에 가랑이와 같은 아이들이 있었다.

죽임의 땅을 벗어나 살림의 땅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걸었던 거리는 '1600km'나 되었다. 죽임을 경험했지만, 죽임이 뒤덮었지만 살림의 땅을 갈망하는 그들은 살림의 세상을 펼쳤다. 가랑이는 그 중심에 섰다. 아이들이 중심에 설 때 그들에게 죽임은 지배하지 않았다. 어른들이 만들었던 죽임의 땅이 서서히 살림의 땅, 살림 누리로 변화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죽임의 장막은 쉽게 걷혀지지 않았다. 도처에 죽임의 세력들이 살림누리를 꿈꾸는 가랑이와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밤에는 걷고 낮에는 숲에서 잠을 자기로 했습니다. 군인들과 뜨거운 햇볕을 피해야 했으니까요. 또 나이 많은 아이들이 자기 몸을 돌볼 힘이 없는 어린아이들을 맡아 돌보기로 했어요. 나는 우리 무리의 추티 볼이라는 아이를 맡기로 했습니다. 추티 볼은 겨우 다섯 살로 엄마를 찾으며 울곤 했어요." (본문 인용) 이 책은 페이지가 없음.

어린 아이의 마음으로 산다면 죽임의 잔치가 아니라 살림의 잔치를 만들어갈 수 있음을 가랑이와 추티, 또 다른 아이들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어른들이 이렇게 책을 쓰고 있지만 자신의 삶에는 적용하지 않고 있다.

아이들은 걷고 걸어 에티오피아 난민 수용소에 정착한다. 톰 아저씨를 만나 밥을 먹고, 공부를 한다. 살림 누리를 찾아 떠난 아이들이 다시는 죽임의 세상을 만들지 않기 위하여 그들은 배움이 필요했다. 그저 그대로 살아가는 인생살이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가랑이는 배움을 잊지 않았다. 배움이란 곧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고, 내일 희망이 있음을 알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다시 가랑이와 아이들에게 죽임의 기운이 드리운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그들을 받아 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수단 국경으로 쫓겨나면서 엄청나게 쏟아지는 비 때문에 많은 동무들을 잃는다. 하지만 가랑이는 좌절하지 않는다. 가랑이와 추티, 아이들이 마지막에 간곳은 케냐이다. 하지만 트럭을 탈 수 있는 이는 정해져 있다. 추티만 트럭으로 간다. 나머지는 걸어서. 한 순간의 헤어짐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반드시 만날 수 있을 것이란 약속으로 헤어진다.

왜 어른들은 이것을 자신들의 삶에 적용하지 못할까? 추티와 가랑이, 여타의 아이들처럼 하지 못할까? 트럭에 탈 수도 있고, 타지 않을 수도 있다. 못타면 걸어가면 된다. 하지만 어른들은 꼭 타야만 한다고 말한다. 그러니 어른들의 세상은 죽임이 난무할 수 있다. 아이들은 살림 누리를 스스로 만들어가는데 말이다.

"여러 주 뒤에 우리는 드디어 케냐에 있는 카쿠마라는 난민 수용소에 도착했습니다. 수용소에는 사람들이 몇 천 명이나 있었어요. 하지만 나는 추티를 찾겠다고 단단히 마음 먹었습니다." (본문 인용)

그렇다. 살림누리를 찾은 가랑이는 추티를 찾는다. 살림이 무엇인지 깨달은 것이다. 죽임이 아니라 살림이 무엇인지 안 것이다.

"나는 두렵지 않았어요. 새로운 삶을 만들어 내기 위한 힘을 찾고야 말 테니까요. 나는 새로운 미래를 찾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본문 인용)

하지만 아직 다르푸르는 평화의 땅, 살림의 땅이 아니다. 아직 죽임이 난무하고 있다. 20만명 이상이 생명을 놓았다. 수단 전 지역에 언제쯤 평화가 올 것인가? 가랑이는 이제 어른이 되었다. 어른이 되었지만 죽임이 수단의 다르푸르를 뒤덮고 있다. 살림누리를 이루는 일은 이토록 힘든 것이다. 하지만 가야 한다. 죽임이 아니라 살림이 충만해지는 다르푸르가 되는 그 날까지 말이다. 아이들과 함께 꼭 읽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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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호 <한국방송>(KBS) 이사장이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방송공사에서 열린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은 조대현 한국방송 사장.<한겨레>

 

“김구는 1948년 대한민국 ‘독립’에 반대하신 분으로, 대한민국 공로자로 언급하는 건 맞지 않다”

 

누가 한 말일까요? 일본 사람? 아닙니다.  이인호(78) <한국방송>(KBS) 이사장이 국회 국정감사에서 한 말입니다.

 

<한겨레>에 따르면 그는 지난 22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미방위)의 한국방송 대상 국감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이개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김구는 대한민국 체제에 반대하던 사람이라고 한 발언은 충격적"이라며 언론 인터뷰 내용을 지적한 것에 대한 대답에서 한 말입니다. 물론 그는 "김구 선생은 독립운동가로서 대단히 훌륭하신 분이었다. 독립운동가로 언급해야 한다"고 말해, 김구 선생 독립운동은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독립'에 반대했다고 합니다. 아마 그가 말한 독립은 대한민국 단독정부 수립을 일컫는 것으로 보인다고 <한겨레>는 분석했습니다.

 

이 이사장은 또 지난 6월 '아베가 임명한 총리'라는 비판을 받았던 문창극 전 총리후보자에 대해서도 "문창극 총리 후보자와 관련해서는 지식인의 정직성을 이야기한 것이다"라며 "총리 임명은 국회가 하는 것인데 언론이 여론재판을 하는 것은 옳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문 전 후보자가 여론재판 때문에 낙마했다는 주장입니다.

지난 6월19일 TV조선 ‘시사토크 판’에 출연해서는 "태도, 눈빛, 강연을 준비한 정도에서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며 "비기독교인이 보면 오해할 소지가 약간 있다. 하지만 강연 전체를 놓고 봤을 때 문 후보자를 반민족주의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라고도 했습니다. 통탄할 일입니다.

 

알듯이 이 이사장 조부 이명세는 1941년 조선임전보국단(朝鮮臨戰報國團) 발기인으로 참여했습니다. 조선임전보국단은 단장 최린을 비롯하여 대표적인 친일파들에 의해 만들어진 단체로서 황민의식 고취와 군수 자재 헌납운동 등 친일 행위를 전개한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죄를 범한 단체입니다. 이런 근거로 이명세는 대통령 직속기구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2009년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4인 명단에 포함됐으며,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도 올랐습니다.

 

하지만 그는 조부 친일행적에 대해 반성은커녕 친일파 청산을 소련 지령에 의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지난 9월23일 전경련 주최 '우리 역사 바로보기-진짜 대한민국을 말하다' 강연에서 친일파 청산에 대해 "소련에서 내려온 지령"이었다며 "공산주의 입장에서 보면 민족주의 부르조아 세력을 약화시켜야 되는데, 친일파 청산이 내세우기 가장 좋은 명분이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한 마디로 친일파 청산은 '빨갱이들'한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이 같은 역사인식을 가진 사람을 임명한 사람이 바로 대통령 박근혜입니다. 친일파가 더 당당한 대한민국! 조국 대한민국 문지기를 바랐던 김구 선생이 통곡할 일입니다.

 

이인호 한국방송 이사장(박근혜 왼쪽)이 지난해 3월 13일 청와대 인왕실에서 열린 원로급 인사 오찬 회동에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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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미네르바의 올빼미 4
잉에 아이허 숄 지음, 유미영 옮김, 정종훈 그림 / 푸른나무 / 2003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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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년 12월 5일 "내년에 날씨 좀 따뜻해지면 그때 다시 만나러 나오겠습니다" 라고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제 '역사'로 우리 마음속에 남았다.

 

대통령 노무현과 인간 노무현, 그 어떤 표현이든지 그는 해방 이후 우리 사회를 지배했던 기득권 세력에게 저항했다. 기득권은 모함과 조롱으로 그를 매도했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가 이제 몸으로 저항할 수 없지만 그가 남긴 정신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왜곡과 불의에 저항해야 한다.

 

사람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역사에서 적극적인 행동을 통하여 사회를 바꾸려는 사람을 기억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그 사회가 불의가 지배할 때 저항으로 이끌림을 당한 이들을 기억하여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억을 한다.

 

이 수동적인 저항은 자신만 희생당하는 것으로 끝날 수 있지만 사람은 역사 속에서 그들이 남긴 저항 정신을 마음에 새긴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이 가진 양심은 불의가 정의를 이기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바라는 마음이 그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2차 대전 독일에서 뮌헨 대학을 중심으로 나치에 저항하다 처형당했던 '크리스토프 프롭스트와 한스 숄, 죠피 숄, 알렉산더 슈모렐, 크루프 후버의 실화를 바탕으로 잉게 숄이 지은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은 수동적 저항이 몇 십 년 지난 오늘까지 우리에게 읽히는 이유가 그 예다.

 

나치에 대한 저항이라면 이들이 엄청난 꿈을 꾸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들은 그저 인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유와 정의, 삶을 위한 권리를 지키려고 했을 뿐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었다.

 

한스와 죠피는 "세상을 잊어버린 듯 바깥 세계와는 멀리 떨어진 작고 조용한 광산촌에서 보냈"고 한스는 "러시아와 노르웨이 민요"를 좋아하는 평범한 아이였다. 한스와 죠피, 알렉산더 슈모렐은  의대들 졸업해서 열심히 환자들을 돌보며,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가정을 꾸리는 시민으로 살았을 것이고, 후버 교수는 학생들에게 철학을 통하여 진리에 이르는 길이 무엇인지 열정을 다하여 강의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치는 "사생활까지 간섭하는 훈련과 획일주의"와 "독일을 서서히 하나의 감옥으로 만들어 종국에는 아무도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하는" 세상으로 만들었다. 독일을 집단 수용소로 만들어가는 것은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었다. 그들이 저항한 이유이다. 한스와 죠피가 나치를 향하여 저항에 나서자 아버지는 말한다.  

 

"우리가 정부에게 요구해야 할 무엇보다 중요한 사항은 바로 개개인의 자유로운 견해와 신념의 보장이란다. 내가 너희에게 바라고 싶은 것은, 비록 인생의 길이 험난하고 고달프다 할지라도, 너희들은 인생을 자유롭고 올바르게 살았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정부가 인민이 말하는 자유와 생각하는 자유를 빼앗을 때 저항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는 아버지 말에 울림이 있다. 말하고, 생각하는 자유를 되찾기 위한 저항이 험난하고 고달플지라도 가라고 말하는 아버지 마음은 어땠을까? 하지만 아버지는 가라고 했다.

 

말하고, 생각하는 자유가 70년이 지난 대한민국 이명박 정부도 말하는 자유와 생각하는 지유를 빼앗고 있다. 나치가 이들을 탄압하고, 결국은 한스와 죠피, 뮌헨 대학 학생들과 교수들을 탄압했듯이 이명박 정권도 자유를 달라는 시민들을 짓밟고 있다. 저항하는 이유가 자기들에게 있다는 비판까지도 못하게 한다.

 

인민이 말하는 자유와 생각하는 자유를 가지게 해달라고 저항할 때 나치는 대대적인 검거령이 내려져 일기장과 잡지, 노래를 모은 노트들을 압수하고 불태웠다. 그것을 본 한스는 "차라리 우리들의 몸에서 심장을 빼앗아 가라. 그러면 너희들도 아마 그것에 타 죽어버리라"고 했다.

 

시대가 평탄하면 제자들에게 정의와 양심을 위하여 살아라고 대다수 교수들은 말한다. 하지만 나치 같은 정권이 들어서면 정의와 양심은 독재자 앞에 팔아먹는다. 박정희와 전두환 독재 정권 시절 양심을 팔아 부역한 교수들이 많았다. 하지만 어떤 교수들은 독재자 앞에 양심을 파는 부역을 거부하고 저항했다.

 

한스와 죠피, 알렉산더 슈모렐, 크리스토프 프롭스트가 나치에 저항할 때 뭔헨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강의했던 후버 교수는 "독일의 한 시민으로서, 독일 대학의 교수로서 그리고 한 정치적 인간으로서 독일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 참여하고 그릇된 점을 공공연하게 폭로하면서, 그것에 맞서 싸우는 것인 권리일뿐더러 도덕적인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 역시 제자들과 함께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들은 모든 폭력에 대항하여 꿋꿋하게 살았고,  정의는 죽지 않는다는 말을 믿으며 살았다. 한 치의 타협도 없이 그들은 비굴하게 구원받으려 하지 않았다. 자유 만세를 외쳤다. 국가가 인민의 자유를 지배하려는 것에 저항했다.

 

국가의 통치작용이 드러나지 않을 때에만 국민은 행복한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통치작용이 뚜렷하게 부각 될 때에는 국민은 파멸의 길을 걷는다고 했다.

 

국가가 인민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을 존중해야 하며, 모든 사람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 국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나치는 아니었다. 당연히 저항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강도는 다를 뿐 국가와 권력은 항상 인민의 자유를 자기들 통제 아래 두려고 한다. 그 때마다 인민은 저항했다. 저항하지 않으면 국가와 권력은 언제든지 인민에게 자유를 빼앗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들은 저항했다. 이유는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위해 그것이 그 때 그들에게는 당장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나치가 종말을 고하고 난 후 1947년 독일에서는 이 책을 학교 교재로 지정하여 13세부터 18세의 청소년들에게 의무적으로 읽도록 했다. 국가의 폭력과 인권 유린,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훼손하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2014년 우리는 우리 자유를 위해 저항하고, 저항하는 지난한 싸움을 해야 한다. 우리와 미래시대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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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죽었는데 왜 부모에게 보상금을 주냐? 노후 보장수단으로 자식 낳아 키운 것인가?. 죽은 자식 내세워 팔자 고치려는 탐욕스런 부모들"

 

세븐럭 등 외국인 전용 카지노 사업을 담당하는 그랜드코리아레저(GKL)의 홍은미 교육원장이 SNS에서 세월호 유족을 향해 한 말입니다. 그는 5·18민주화운동도 비하했습니다.  특히 그랜드코리아레저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인 한국관광공사가 지분을 51%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한국콘텐츠진흥원 등에 대한 국정감사가 정부 산하기관인 그랜드코리아레저(GKL)의 홍은미 교육원장의 SNS 막말 논란으로 파행을 빚고 있는 가운데 한 야당 의원이 홍은미 교육원장의 SNS글을 읽고 있다.<뉴스1>


홍 원장은 지난 9월 초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올린 글에서 김 씨에 대해 "단식하면 위험해지는 것 모르고 단식 시작했나?"라며 "어쩐지 금목걸이에 쌍욕하는 꼴이 단식할 사람 같지 않다 했다"며 단식 농성을 한 김영오 씨를 강하게 비난했습니다. 또  "통진당과 민주당 강경파들이 모두 완전 단식에 동참하여 죽게 된다면 우리나라가 진전하고 약진하는 데 큰 기여를 하는 것"이라며 "근데 항상 죽지 않을 정도로만 단식하면서 소란 피우고 국정 마비시키는 게 문제다. 단식 결심했으면 조용히 죽을 때까지 할 수 없을까?"라는 말도 서슴없이 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자식 죽었는데 왜 부모에게 보상금을 주냐? 노후 보장수단으로 자식 낳아 키운 것인가? 죽은 자식 내세워 팔자 고치려는 탐욕스런 부모들"이라며 "세월호 유족들은 일 안해도 먹고살 수 있나"라며 세월호 유가족이 돈 때문에 자식을 파는 것처럼 비하했습니다.

 

홍은미 교육원장 SNS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해 "5·18은 북괴 김일성이 배후에서 조정한 국가전복 반란사태였다", "전라도는 온갖 해괴하고 이상한 일들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지방", "대한민국 수도 서울을 완전 장악한 게 전라도다. 어이 상실을 넘어 두려울 정도"라고도 했습니다.

 

논란이 확산되자  임병수 GKL 사장은 17일 열린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감에서 홍은미 원장의 막말 논란과 관련 "죄송하다"고 사과한 후 "오늘부터 교육원장의 직위를 해제하고 면밀히 검토해 사직서를 받는 등 징계조치에 들어가겠다"고 밝혔습니다.

 

통탄할 일입니다. 자식이 죽은 것도 원통하고 가슴칠 일인데 그 부모들을 자식을 팔아 돈 버는 사람으로 모독했습니다. 자식 잃은 부모에게 두 번 세 번 대못을 박는 일. 하늘이 노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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