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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 유시민의 30년 베스트셀러 영업기밀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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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은 자기가 쓴 글을 이해할까?' 라는 글이나 책이 있습니다. 번역본만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이 쓴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번역본이면, '핑계'라도 댈 수 있지만 우리말과 글로 썼는데도 독자들이 이해하기 힘들다면 그 글은 좋은 글이 아닙니다. 아쉽게도 이런 글은 참 많습니다.

 

하지만 초등학생이 쓴 일기장을 읽는 것처럼 쉬운 글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수준 낮은 글이 아닙니다. 유시민이 쓴 글은 쉽습니다. 막힘이 없습니다. 중학생이 읽어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초등학생 고학년이 읽어도 '어렵다'가 아니라 '나도 읽을 수 있네',  '나도 이 정도 쓸 수 있다'는 글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내용이 수준 높고, 탁월합니다. 그가 책을 쓰면 몇만권은 쉽게 넘어가는 이유입니다.

 

사람들은 "유시민은 태고난 '글쟁이''라고 부러워합니다. 대학 입시를 앞둔 부모들은 유시민처럼 내 자식도 탁월한 글쓰기 능력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논술 학원에 보내고, 글쓰기 강좌도 갑니다. 어떤 부모는 직접 배워 자녀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칩니다. 문제는 결과가 별 아닙니다. 돈만 쓰고, 결과는 별로인데도 부모들은 올해도 돈을 투자합니다. 다음해도 똑 같습니다.

 

많이 읽으라!

 

돈도 들이지 않고, 글 잘 쓰는 방법은 없을까요? 논술학원이 펄쩍 뛸 일이지만, 유시민은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에서 글을 잘 쓰려면 "많이 읽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많이 읽은 사람이 반드시 글을 잘 쓰는 것은 아니지만, 많이 읽지 않고는 좋은 글을 쓸 수 없다고 말합니다. 

 

글쓰기에는 철칙(鐵則)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많이 읽어야 잘 쓸 수 있다. 책을 많이 읽어도 글을 잘 쓰지 못할 수는 있다. 그러나 많이 읽지 않고도 잘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둘째, 많이 쓸수록 더 잘 쓰게 된다. 축구나 수영이 그런 것처럼 글도 근육이 있어야 쓴다. 글쓰기 근육을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쓰는 것이다. 여기에 예외는 없다. 그래서 '철칙'이다. - (62쪽)

 

책 읽기 밥 먹는 것과 같다. 먹지 않고 힘을 쓸 수 없다. 운동과 훈련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먹지 않으면 강한 체력을 가질 수 없다.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사람들은 책을 읽고 덮는 순간 내용까지 덮어 버린다고 하소연한다. 기억이 남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내용을 모르는 것은 기억력이 나빠서도, 머리가 나빠서도 아니다.  유시민은 "굳이 단어나 문장을 암기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읽고 잊어버리고, 다시 읽고 또 잊어버리고, 그렇게 다섯 번 열 번을 반복하면 박경리 선생이 쓴 단어, 단어와 단어의 어울림, 문장과 문장의 연결이 저절로 뇌에 ‘입력’된다. 그리고 글을 쓸 때 그 단어와 문장을 자기도 모르게 '출력'하게 된다"고 말한다.

 

읽고, 또 읽고 그리고 읽는다. 자연스럽게 단어와 문장이 기억난다는 유시민 말에 사람들은 다른 책은 언제 읽어라고 그러냐고 따질 수 모르겠다. 하지만 책도 책 나름이다. 유시민은 어휘력을 높이는 책을 소개하는 데 <토지>, <자유론>, <코스모스>를 추천한다. 특히 박경리 선생 <토지>는 우리말 보고라고 말한다. 1부를 10번 이상 읽으면 어휘력은 자신도 모르게 늘어날 것이고,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말한다.

 

"말로해서 좋아야 잘 쓴 글"

 

좋은 책을 많이 읽었다면 기초체력은 갖춘 셈이다. 체력을 길렀다고 국가대표가 될 수 없다.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말이다. 유시민은 글을 잘 쓰려면 "훌륭하게 쓰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권투 선수가 강펀치를 날리려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 안 된다. 강슛도 발에 힘들이 들어가면 헛발질을 할 수  있다. 다 욕심 때문이다. 글도 마찬가지다. 좋은 글을 쓰려고 욕심을 부리면 부릴 수록 나쁜 글이 될 뿐이다.

 

어떤 글이 좋은 글일까? 한자가 들어간 수려한 문장? 외국어를 많이 쓴 글 아니다. "말로해서 좋아야 잘 쓴 글이다. 글을 쓸때는 이 원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유시민은 말한다. 글을 읽을 때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이 잘 쓴 글. 새겨야 한다. 어렵게 쓰야 좋은 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가한 일침이다.

 

컴퓨터 시대. 더 이상 손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더물이다. "수첩에 손으로 글을 쓰는 아날로그형 인간은 천연기념물만큼 희귀"한 세상이다. 따라 갈 필요가 없다. " 하루에 30분 정도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수첩에 글을 쓴다고 생각해보자. 1년을 하면 150시간이 넘는다. 이렇게 3년을 하면 초등학생 수준에서 대학생 수준으로 글솜씨가 좋아진다"고 글쟁이 유신민이 말한다. 말 한 번 듣고 믿어보자. 믿었다면 당장 실천한다. 스마트폰를 무조건 내려 놓으라는 것은 아니다. 가방 안에 작은 수첩 하나를 챙겨 넣고, 생각날 때마다 손글씨를 쓰자. 쓴 글을 시간이 날 때마다 문장을 만들고, 문단을 만들자.

 

유시민은 단문을 쓰라고 말한다. "뜻을 분명하게 전하는 데 편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단문은 복문보다 쓰기가 쉽다. 주술 관계가 하나뿐이어서 문장이 꼬일 위험없기"때문이다. 한 문장 안에 주어과 술어가 두개가 있는 글도 있다. 무슨 내용인지 모른다. 글을 그림 그리기다.

 

그림과 다를 것이 없다. 보이는 것에서 시작해서 귀로 듣는 것을 거쳐 마음으로 느끼고 머리로 생각하는 것을 적으면 된다. 중요한 것은 뭐든 많이 쓰는 것이다. 문자로 쓰지 않은 것은 아직 자기의 사상이 아니다. 글로 쓰지 않으면 아직은 논리가 아니다. 글로 표현해야 비로소 자기의 사상과 논리가 된다.

 

 쓰는 이유를 생각하라

 

우리나라 논술은 기술을 가르친다. 기술이라도 배우면 낫다. 더 심각한 것은 아예 다른 사람이 쓴 글을 베낀다. 다른 사람을 글을 내 글이라고 생각한다. 어처구니가 없다. 한심한 일이다. 남이 쓴 글로 대학에 들어간다. 대학에 들어갔지만 글 다운 글을 쓰지 못한다. 당연한 일이다.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렸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생각해야 하는 이유다.

 

글을 잘 쓰려면 왜 쓰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글쓰기는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 행위다. 표현할 내면이 거칠고 황폐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없다. 글을 써서 인정받고 존중받고 존경받고 싶다면 그에 어울리는 내면을 가져야 한다. 그런 내면을 가지려면 그에 맞게 살아야 한다.

 

유시민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글은 온 몸으로 쓰는 것이라고 말한다. "글은 '손으로 생각하는 것’도 아니요 ‘머리로 쓰는 것’도 아니다. 글은 온몸으로, 삶 전체로 쓰는 것이다. 논리 글쓰기를 잘하고 싶다면 그에 맞게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삶이 없다면 글을 쓸 수 없다.

 

글은 몸으로 쓰는 거다

 

 

기술만으로는 훌륭한 글을 쓰지 못한다. 글 쓰는 방법을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내면에 표현할 가치가 있는 생각과 감정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훌륭한 생각을 하고 사람다운 감정을 느끼면서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그런 삶과 어울리는 글을 쓸 수 있게 된다. 논리 글쓰기를 잘하려면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떳떳하게 살아야 한다. 무엇이 내게 이로운지 생각하기에 앞서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지 고민해야 한다. 때로는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원칙에 따라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기술만으로 쓴 글은 누구의 마음에도 안착하지 못한 채 허공을 떠돌다 사라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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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 유시민의 30년 베스트셀러 영업기밀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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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은 자기가 쓴 글을 이해할까?' 라는 글이나 책이 있습니다. 번역본만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이 쓴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번역본이면, '핑계'라도 댈 수 있지만 우리말과 글로 썼는데도 독자들이 이해하기 힘들다면 그 글은 좋은 글이 아닙니다. 아쉽게도 이런 글은 참 많습니다.

 

하지만 초등학생이 쓴 일기장을 읽는 것처럼 쉬운 글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수준 낮은 글이 아닙니다. 유시민이 쓴 글은 쉽습니다. 막힘이 없습니다. 중학생이 읽어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초등학생 고학년이 읽어도 '어렵다'가 아니라 '나도 읽을 수 있네',  '나도 이 정도 쓸 수 있다'는 글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내용이 수준 높고, 탁월합니다. 그가 책을 쓰면 몇만권은 쉽게 넘어가는 이유입니다.

 

사람들은 "유시민은 태고난 '글쟁이''라고 부러워합니다. 대학 입시를 앞둔 부모들은 유시민처럼 내 자식도 탁월한 글쓰기 능력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논술 학원에 보내고, 글쓰기 강좌도 갑니다. 어떤 부모는 직접 배워 자녀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칩니다. 문제는 결과가 별 아닙니다. 돈만 쓰고, 결과는 별로인데도 부모들은 올해도 돈을 투자합니다. 다음해도 똑 같습니다.

 

많이 읽으라!

 

돈도 들이지 않고, 글 잘 쓰는 방법은 없을까요? 논술학원이 펄쩍 뛸 일이지만, 유시민은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에서 글을 잘 쓰려면 "많이 읽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많이 읽은 사람이 반드시 글을 잘 쓰는 것은 아니지만, 많이 읽지 않고는 좋은 글을 쓸 수 없다고 말합니다. 

 

글쓰기에는 철칙(鐵則)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많이 읽어야 잘 쓸 수 있다. 책을 많이 읽어도 글을 잘 쓰지 못할 수는 있다. 그러나 많이 읽지 않고도 잘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둘째, 많이 쓸수록 더 잘 쓰게 된다. 축구나 수영이 그런 것처럼 글도 근육이 있어야 쓴다. 글쓰기 근육을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쓰는 것이다. 여기에 예외는 없다. 그래서 '철칙'이다. - (62쪽)

 

책 읽기 밥 먹는 것과 같다. 먹지 않고 힘을 쓸 수 없다. 운동과 훈련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먹지 않으면 강한 체력을 가질 수 없다.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사람들은 책을 읽고 덮는 순간 내용까지 덮어 버린다고 하소연한다. 기억이 남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내용을 모르는 것은 기억력이 나빠서도, 머리가 나빠서도 아니다.  유시민은 "굳이 단어나 문장을 암기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읽고 잊어버리고, 다시 읽고 또 잊어버리고, 그렇게 다섯 번 열 번을 반복하면 박경리 선생이 쓴 단어, 단어와 단어의 어울림, 문장과 문장의 연결이 저절로 뇌에 ‘입력’된다. 그리고 글을 쓸 때 그 단어와 문장을 자기도 모르게 '출력'하게 된다"고 말한다.

 

읽고, 또 읽고 그리고 읽는다. 자연스럽게 단어와 문장이 기억난다는 유시민 말에 사람들은 다른 책은 언제 읽어라고 그러냐고 따질 수 모르겠다. 하지만 책도 책 나름이다. 유시민은 어휘력을 높이는 책을 소개하는 데 <토지>, <자유론>, <코스모스>를 추천한다. 특히 박경리 선생 <토지>는 우리말 보고라고 말한다. 1부를 10번 이상 읽으면 어휘력은 자신도 모르게 늘어날 것이고,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말한다.

 

"말로해서 좋아야 잘 쓴 글"

 

좋은 책을 많이 읽었다면 기초체력은 갖춘 셈이다. 체력을 길렀다고 국가대표가 될 수 없다.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말이다. 유시민은 글을 잘 쓰려면 "훌륭하게 쓰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권투 선수가 강펀치를 날리려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 안 된다. 강슛도 발에 힘들이 들어가면 헛발질을 할 수  있다. 다 욕심 때문이다. 글도 마찬가지다. 좋은 글을 쓰려고 욕심을 부리면 부릴 수록 나쁜 글이 될 뿐이다.

 

어떤 글이 좋은 글일까? 한자가 들어간 수려한 문장? 외국어를 많이 쓴 글 아니다. "말로해서 좋아야 잘 쓴 글이다. 글을 쓸때는 이 원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유시민은 말한다. 글을 읽을 때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이 잘 쓴 글. 새겨야 한다. 어렵게 쓰야 좋은 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가한 일침이다.

 

컴퓨터 시대. 더 이상 손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더물이다. "수첩에 손으로 글을 쓰는 아날로그형 인간은 천연기념물만큼 희귀"한 세상이다. 따라 갈 필요가 없다. " 하루에 30분 정도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수첩에 글을 쓴다고 생각해보자. 1년을 하면 150시간이 넘는다. 이렇게 3년을 하면 초등학생 수준에서 대학생 수준으로 글솜씨가 좋아진다"고 글쟁이 유신민이 말한다. 말 한 번 듣고 믿어보자. 믿었다면 당장 실천한다. 스마트폰를 무조건 내려 놓으라는 것은 아니다. 가방 안에 작은 수첩 하나를 챙겨 넣고, 생각날 때마다 손글씨를 쓰자. 쓴 글을 시간이 날 때마다 문장을 만들고, 문단을 만들자.

 

유시민은 단문을 쓰라고 말한다. "뜻을 분명하게 전하는 데 편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단문은 복문보다 쓰기가 쉽다. 주술 관계가 하나뿐이어서 문장이 꼬일 위험없기"때문이다. 한 문장 안에 주어과 술어가 두개가 있는 글도 있다. 무슨 내용인지 모른다. 글을 그림 그리기다.

 

그림과 다를 것이 없다. 보이는 것에서 시작해서 귀로 듣는 것을 거쳐 마음으로 느끼고 머리로 생각하는 것을 적으면 된다. 중요한 것은 뭐든 많이 쓰는 것이다. 문자로 쓰지 않은 것은 아직 자기의 사상이 아니다. 글로 쓰지 않으면 아직은 논리가 아니다. 글로 표현해야 비로소 자기의 사상과 논리가 된다.

 

 쓰는 이유를 생각하라

 

우리나라 논술은 기술을 가르친다. 기술이라도 배우면 낫다. 더 심각한 것은 아예 다른 사람이 쓴 글을 베낀다. 다른 사람을 글을 내 글이라고 생각한다. 어처구니가 없다. 한심한 일이다. 남이 쓴 글로 대학에 들어간다. 대학에 들어갔지만 글 다운 글을 쓰지 못한다. 당연한 일이다.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렸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생각해야 하는 이유다.

 

글을 잘 쓰려면 왜 쓰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글쓰기는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 행위다. 표현할 내면이 거칠고 황폐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없다. 글을 써서 인정받고 존중받고 존경받고 싶다면 그에 어울리는 내면을 가져야 한다. 그런 내면을 가지려면 그에 맞게 살아야 한다.

 

유시민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글은 온 몸으로 쓰는 것이라고 말한다. "글은 '손으로 생각하는 것’도 아니요 ‘머리로 쓰는 것’도 아니다. 글은 온몸으로, 삶 전체로 쓰는 것이다. 논리 글쓰기를 잘하고 싶다면 그에 맞게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삶이 없다면 글을 쓸 수 없다.

 

글은 몸으로 쓰는 거다

 

 

기술만으로는 훌륭한 글을 쓰지 못한다. 글 쓰는 방법을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내면에 표현할 가치가 있는 생각과 감정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훌륭한 생각을 하고 사람다운 감정을 느끼면서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그런 삶과 어울리는 글을 쓸 수 있게 된다. 논리 글쓰기를 잘하려면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떳떳하게 살아야 한다. 무엇이 내게 이로운지 생각하기에 앞서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지 고민해야 한다. 때로는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원칙에 따라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기술만으로 쓴 글은 누구의 마음에도 안착하지 못한 채 허공을 떠돌다 사라질 뿐이다.

 

 

인서체가 바라는 사람사는 세상'에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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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정계비의 비밀 사계절 아동문고 47
김병렬 지음, 고광삼 그림 / 사계절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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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정계비' 중고등학교 '국사' 시간에 배웠던 기억이 어렷풋하게 남아 있다. 어쩌다가 일본이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우기면 한 번씩 '간도'가 엮어져 나오면서 '백두산 정계비'도 따라 나왔지만 내 머릿속에는 자리 잡기 힘들었다.

 

얼마 전 문화상품권을 몇 장 선물로 받아 아이들에게 책 선물을 하기 위해 서점에 들렸다가 <독도냐 다케시마냐> <이어도를 아십니까> 따위를 썼고, 독도 연구보존협회 이사,  대한국제법학회 평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병렬님이 쓴 <백두산 정계비의 비밀>이 눈에 들어왔다. 그림은 <겨울방>, <종이 비행기>, <엄마의 마지막 선물> 따위를 그린 고광삼씨가 그렸다.

 

국가 3대 요소에는 '영토'가 들어가듯이 땅이 없는 나라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럼 우리가 생각하는 우리 땅은 경계는 어디까지였을까? '압록강'과 '두만강' 아래인 '한반도'만일까? <백두산 정계비의 비밀>는 '한반도' 중심의 우리 땅 개념을 압록강과 두만강 훨씬 북쪽까지 넓힌다.

 

어렴풋하게 남아 있는 '백두산 정계비'는 청나라 사신 목극등이 1712년 백두산에 정계비를 세워 간도가 조선 땅이라는 내용을 비문에 새겨 놓았는데, 뒷날 청나라는 자신들이 그런 적이 없다고 말을 바꾸었다.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세웠던 정계비였지만 그들은 부인했고, 1909년 일제는 청나라와 '간도협약'을 맺어 청나라에 간도를 넘겨 주었고, 일제가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킨 후 '백두산 정계비'를 없애버렸다.

 

<백두산 정계비의 비밀>은 청나라 사신 목극등이 국경선을 확정 짓기 위해 조선으로 들어왔을 때 길잡이 노릇을 했던 심마니 김애순이 간도 땅을 지키기 위해 갖은 고초를 겪어야 했던 이야기다.

 

심마니 애순은 조선의 통역사를 비롯한 몇몇 하급 벼슬아치들 병사 여남은 명과 도끼 잡이 다섯, 짐꾼 쉰 명과 길을 나섰다. 청나라 사신 목극동의 억지로 졸지에 백두산에 국경이 생겨날 판이었기에 마을 사또의 부탁으로 청나라 사신의 길 안내를 맡았다.

 

청나라 황제 강희제는 자기네 부족이 '아타리'라는 곳에서 시작했다 하여 아타리가 바로 백두산이라고 믿었다. 목극등을 사신으로 보내 백두산에서부터 국경선을 긋자고 했다. 백두산을 청나라 땅으로 만들기 위함이었다. 지금껏 청나라 경계선은 목단령 산맥이고 저 선의 경계선은 압록강과 두만강이었다.

 

나라의 국경선을 정하는 중요한 일이기에 글을 알고 똑똑하며 부지런한 심마니 애순에게 마을 사또가 부탁을 한 것이다. 애순은 밤마다 하루 종일 일어났던 일을 꼼꼼히 기록해 두었다.

 

목극등이 서쪽으로 압록강과 동쪽으로 두만강이 시작되는 샘물을 국경선으로 삼을 분수령으로 삼으려 할 때 직접 물줄기의 흐름이 동북쪽으로 흐르고 두만강이 아니라 토문강임을 확인하여 목극등으로 억지를 부리지 못하게 했다.

 

"이 샘에서 두만강이 시작되는 게 확실하다. 서쪽으로 압록강과 동쪽으로 두만강이 시작되는 샘물이 있으니 우리가 서 있는 곳이 바로 국경선으로 삼을 분수령이다."

"안 됩니다. 아직 이 샘물이 두만강으로 흐르는지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 샘물은 동북쪽으로 흐르고 있어요."(96쪽)

 

이렇게 백두산 정계비는 세워진다.

 

"오라총관 목극등이 황제의 명을 받고 변방을 시찰하기 위하여 이곳까지 답사하였다. 서는  압록이 되고 동은 토문이 된다. 그러므로 두 물줄기의 분수령에 비석을 세워 기록한다. 1712년 5월 15일 필첨식 소이창, 통관 이가. 조선군관 이의복, 조태상, 차사관 허량, 박도상,통관 김응헌,김경문"(<백두산 정계비문>)

 

간도는 이렇게 우리 역사에 들어왔지만 1885년 9월 30일 회령에서 열린 회담에서 청나라는 "토문은 두만과 같은 뜻의 만주어이니 비문에 나오는 토문은 두만강"이라며 트집을 잡았다. 1909년 일제는 청나라에게 간도를 완전히 넘겨주었다. 외교권까지 빼앗겨버린 비극이 낳은 결과였다.

 

<백두산 정계비의 비밀>은 백성들의 배고픔을 모른체 하고 세금이나 거둬들이는 탐관오리를 피해 불안하고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었지만 희망을 안고 고향을 등지고 두만강을 건너 간도로 들어 온 사람들. 저마다 마음 속 깊이 아픔과 비밀을 간직하고 살았기에 가난하고 배고팠던 설움을 뼈저리게 겪은 이들의 어려움 가운데서도 정을 나누며 살았다.

 

이 땅을 지키기 위해 그들은 목숨을 걸었다. 나라가 외면한 땅. 그 곳에 조선 백성들은 피를 뿌렸고 자신을 묻었다. 영원히 되찾을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지만 우리 땅을 지키기 위해 싸운 가난했고 이름 하나 남기지 못하고 떠난 그들이 있었기에 더욱 가슴 아픈 땅이 되고 말았다.

 

두만강을 건너 피와 땀으로 간도 땅을 개척한 영기와 호철 두 가족의 힘겨운 삶의 역경, 청나라 군사의 횡포에 맞서 사설 군대를 조직하여 목숨을 걸고 간도를 지키려 했던 포수대 이야기를 통해 우리 겨레가 간도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을 흘려야 했는지를 감동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백두산 정계비 <연합뉴스>

 

<백두산 정계비의 비밀>이 가진 또 다른 의미는 간도 문제를 다룬 우리 나라 최초의 어린이책이라는 점이다. '독도'와 '동해'는 강하게 자라집고 있지만 '간도'는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낯설다. 어린이를 위한 '간도' 이야기지만 어른들에게도 우리 역사와 영토에 대한 큰 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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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한국현대사 - 1959-2014, 55년의 기록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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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역사를 너무 객관화 한다. 자신과 별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유시민은 자신과 역사를 같은 선상에 바라 본다. 매우 의미 있는 역사 접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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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미네르바의 올빼미 4
잉에 아이허 숄 지음, 유미영 옮김, 정종훈 그림 / 푸른나무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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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난 2008년 12월 5일 "내년에 날씨 좀 따뜻해지면 그때 다시 만나러 나오겠습니다" 라고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제 '역사'로 우리 마음속에 남았다.

 

대통령 노무현과 인간 노무현, 그 어떤 표현이든지 그는 해방 이후 우리 사회를 지배했던 기득권 세력에게 저항했다. 기득권은 모함과 조롱으로 그를 매도했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가 이제 몸으로 저항할 수 없지만 그가 남긴 정신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왜곡과 불의에 저항해야 한다.

 

사람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역사에서 적극적인 행동을 통하여 사회를 바꾸려는 사람을 기억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그 사회가 불의가 지배할 때 저항으로 이끌림을 당한 이들을 기억하여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억을 한다.

 

이 수동적인 저항은 자신만 희생당하는 것으로 끝날 수 있지만 사람은 역사 속에서 그들이 남긴 저항 정신을 마음에 새긴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이 가진 양심은 불의가 정의를 이기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바라는 마음이 그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2차 대전 독일에서 뮌헨 대학을 중심으로 나치에 저항하다 처형당했던 '크리스토프 프롭스트와 한스 숄, 죠피 숄, 알렉산더 슈모렐, 크루프 후버의 실화를 바탕으로 잉게 숄이 지은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은 수동적 저항이 몇 십 년 지난 오늘까지 우리에게 읽히는 이유가 그 예다.

 

나치에 대한 저항이라면 이들이 엄청난 꿈을 꾸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들은 그저 인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유와 정의, 삶을 위한 권리를 지키려고 했을 뿐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었다.

 

한스와 죠피는 "세상을 잊어버린 듯 바깥 세계와는 멀리 떨어진 작고 조용한 광산촌에서 보냈"고 한스는 "러시아와 노르웨이 민요"를 좋아하는 평범한 아이였다. 한스와 죠피, 알렉산더 슈모렐은  의대들 졸업해서 열심히 환자들을 돌보며,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가정을 꾸리는 시민으로 살았을 것이고, 후버 교수는 학생들에게 철학을 통하여 진리에 이르는 길이 무엇인지 열정을 다하여 강의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치는 "사생활까지 간섭하는 훈련과 획일주의"와 "독일을 서서히 하나의 감옥으로 만들어 종국에는 아무도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하는" 세상으로 만들었다. 독일을 집단 수용소로 만들어가는 것은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었다. 그들이 저항한 이유이다. 한스와 죠피가 나치를 향하여 저항에 나서자 아버지는 말한다.  

 

"우리가 정부에게 요구해야 할 무엇보다 중요한 사항은 바로 개개인의 자유로운 견해와 신념의 보장이란다. 내가 너희에게 바라고 싶은 것은, 비록 인생의 길이 험난하고 고달프다 할지라도, 너희들은 인생을 자유롭고 올바르게 살았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정부가 인민이 말하는 자유와 생각하는 자유를 빼앗을 때 저항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는 아버지 말에 울림이 있다. 말하고, 생각하는 자유를 되찾기 위한 저항이 험난하고 고달플지라도 가라고 말하는 아버지 마음은 어땠을까? 하지만 아버지는 가라고 했다.

 

말하고, 생각하는 자유가 70년이 지난 대한민국 이명박 정부도 말하는 자유와 생각하는 지유를 빼앗고 있다. 나치가 이들을 탄압하고, 결국은 한스와 죠피, 뮌헨 대학 학생들과 교수들을 탄압했듯이 이명박 정권도 자유를 달라는 시민들을 짓밟고 있다. 저항하는 이유가 자기들에게 있다는 비판까지도 못하게 한다.

 

인민이 말하는 자유와 생각하는 자유를 가지게 해달라고 저항할 때 나치는 대대적인 검거령이 내려져 일기장과 잡지, 노래를 모은 노트들을 압수하고 불태웠다. 그것을 본 한스는 "차라리 우리들의 몸에서 심장을 빼앗아 가라. 그러면 너희들도 아마 그것에 타 죽어버리라"고 했다.

 

시대가 평탄하면 제자들에게 정의와 양심을 위하여 살아라고 대다수 교수들은 말한다. 하지만 나치 같은 정권이 들어서면 정의와 양심은 독재자 앞에 팔아먹는다. 박정희와 전두환 독재 정권 시절 양심을 팔아 부역한 교수들이 많았다. 하지만 어떤 교수들은 독재자 앞에 양심을 파는 부역을 거부하고 저항했다.

 

한스와 죠피, 알렉산더 슈모렐, 크리스토프 프롭스트가 나치에 저항할 때 뭔헨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강의했던 후버 교수는 "독일의 한 시민으로서, 독일 대학의 교수로서 그리고 한 정치적 인간으로서 독일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 참여하고 그릇된 점을 공공연하게 폭로하면서, 그것에 맞서 싸우는 것인 권리일뿐더러 도덕적인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 역시 제자들과 함께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들은 모든 폭력에 대항하여 꿋꿋하게 살았고,  정의는 죽지 않는다는 말을 믿으며 살았다. 한 치의 타협도 없이 그들은 비굴하게 구원받으려 하지 않았다. 자유 만세를 외쳤다. 국가가 인민의 자유를 지배하려는 것에 저항했다.

 

국가의 통치작용이 드러나지 않을 때에만 국민은 행복한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통치작용이 뚜렷하게 부각 될 때에는 국민은 파멸의 길을 걷는다고 했다.

 

국가가 인민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을 존중해야 하며, 모든 사람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 국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나치는 아니었다. 당연히 저항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강도는 다를 뿐 국가와 권력은 항상 인민의 자유를 자기들 통제 아래 두려고 한다. 그 때마다 인민은 저항했다. 저항하지 않으면 국가와 권력은 언제든지 인민에게 자유를 빼앗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들은 저항했다. 이유는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위해 그것이 그 때 그들에게는 당장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나치가 종말을 고하고 난 후 1947년 독일에서는 이 책을 학교 교재로 지정하여 13세부터 18세의 청소년들에게 의무적으로 읽도록 했다. 국가의 폭력과 인권 유린,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훼손하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2014년 우리는 우리 자유를 위해 저항하고, 저항하는 지난한 싸움을 해야 한다. 우리와 미래시대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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