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아직은 봄밤 - 교유서가 소설
황시운 지음 / 교유서가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래도'는 일상에서 대화를 하거나 글을 쓸 때 흔히 쓰이는 부사다. 자연스럽게, 무심코 쓰던 '그래도'가 나에게 조금 특별하고 그래도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보게 된 계기가 있었다. 초창기 블로그로 소통을 하던 한 이웃의 닉네임이 그래도였다. 저마다 닉네임에는 의미가 있는데 왜 하필 '그래도'일까... 궁금하기도 했었는데 그녀의 가슴 아픈 사연, 절망 속 고통의 삶을 알게 되었고 긴 터널 같았던 아픔의 시간들을 간접적으로 느끼며 '그래도'의 의미를 오래오래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녀의 아픔과 그녀의 절망과 그녀가 견뎌온 시간들의 무게가 얼마일지 감히 가늠하지 못하지만 어렴풋 느끼며 '그래도'는 여전히 나에게 가슴 아픔과 고통, 절망을 내포하고 있으면서도 희망을 품고 있는 부사로 남아있다.

등단 14년 만에 나온 황시운 작가의 소설집 <그래도, 아직은 봄밤>은 제목부터가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9편의 단편소설로 이루어진 <그래도, 아직은 봄밤>은 나의 기대와 예측과 달라 적잖이 충격적인 책이었다.

첫 번째 이야기 <매듭>에서부터 심상치 않았다. 펄펄 끓는 육수 속에 던져지는 낙지를 보며 고통과 통증, 삶과 죽음을 이야기한다. 결혼한 지 3개월 만에 남편 윤은 사고로 전신마비가 되어버린다. 헤어지자는 남자와 헤어질 수 없다는 여자. 그 이후부터 서로에게 지옥 같은 날들이 이어진다.

"내게서 벗어나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니? 하긴, 옆에 들러붙어서 매 순간 비참한 현실을 일깨워주는 내가 끔찍했을 거야. 무슨 짓이든 하고 싶었겠지. 하지만 넌, 네가 매듭 따위, 끝내 묶지 못할 거라는 거 알고 있었어. 그러니까 결국, 그 매듭을 내 손으로 묶게 할 생각이었던 거야, 넌."

.

"내가 하루에 낙지 대가리를 몇 개나 자르는지 알아? 손목이 시큰대고 손가락에 물집이 잡히도록 낙지 대가리를 자르면서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당신은 모르지?"

.

"우리가 놓쳐버린 미래를 생각해. 우리가 지워버린 과거를 생각하고 대책 없이 무너져내리고 있는 현실을 생각해. 당신은 왜 나아지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을까 생각해. 나는 왜 그때 도망치지 않았나 생각하고 당신은 왜 더 적극적으로 나를 밀어내지 않았는지 생각하기도 해. 다 까먹어버린 보증금을 생각하고 그 보증금을 마련하기 위해 받은 대출을 생각해. 밀린 이자와 하루 열두 시간씩 낙지 대가리를 잘라도 갚을 수 없을 원금을 생각해. 낙지 대가리 자르듯 당신 모가지를 잘라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차라리 내 모가지를 자르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을 해. 그런 생각들을 해. 나는."

p. 33-34



어떻게 이렇게 지독하고 처절하게 두 사람의 감정을 표현했을까. 솔직히 처음부터 너무 힘들었다.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고 탈출구 없는 아득한 심연 속으로 함께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어서 책을 다 읽을 수 있을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가끔 책을 읽다 보면 너무 힘든 책들이 있다. 그리고 잔상이 오래도록 떠나지 않고 남는 경우도 삶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조금 버거운 경우가 있는데 첫 이야기 <매듭>에서 덜컥 겁이 날 정도였다. 어떻게 작가는 이런 생각을, 이런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가 있을까... 싶을 만큼.

죽을 만큼 힘듦 속에서 안간힘을 쓰는 삶이 처절하다 못해 가슴을 후벼파고 드는 이야기들. 상처 난 부위에 소금을 마구 뿌려대는 듯한 이야기들이 깊은 통증을 느끼게 했다.

<어떤 이별>은 어쩌면 가장 상처를 후벼파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짧은 단편이지만 한편씩 읽어나가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떤 이별>에서는 3명의 여성이 나온다. 각자의 지옥 속에 사는 여인들의 삶을 보면서 삶이란 무엇일까... 그래도 살아가야 하는 것이 삶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가정폭력, 장애인, 고독사, 성매매, 학교폭력, 가출 등 사회적 문제들을 이야기 곳곳에서 만나게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과 사건들이지만 외면하고 싶고 관심을 두지 않는 사회의 아주 어두운 불편한 진실들을 드러내고 있을까. 내가 잊고 있었던 세상, 내가 몰랐던 세상을 책을 통해 경험하게 하는데 지독하고 숨 막힐 정도로 집요하다. 믿기지 않지만 세상엔 이런 삶도, 이런 사람들도 있구나.



모든 내용을 다 읽고 나니 내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평화롭고 행복한지 새삼 느끼게 만들었다.

내 삶은 이리도 평온한데 타인의 지옥 같은 삶을 들여다보고 나니 삶의 애착과 감사 그리고 미안한 마음까지 들 지경이다.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는지 황시운 작가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마지막 작가의 말이 없었다면 그저 끝도 없이 추락하는 삶의 그 끝을 보여주는 지독한 소설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작가의 말을 읽고는 지금껏 이야기 속의 죽을 만큼 힘들고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쓴 이야기들이 작가 본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절로 눈물을 쏟고 말았다. 너무너무 가슴 아픈 소설 속 이야기들이 황시운 작가가 절망의 바닥에서 살기 위해 건져 올린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들자 너무나 아팠다.

작가의 경험, 감정들이 이야기 속 곳곳에 녹아 있음을 작가의 말을 통해 뒤늦게 알 수 있었다. 야간산행을 갔다가 불의의 사고로 추락하여 하반신 마비가 되어버린 작가. 수시로 밀려오는 통증 속에서 매일매일 죽고 싶은 생각을 하면서도 그래도 삶을 이어가며 써 내려간 이야기들. 죽을 만큼 아프고 고통스러운 날들 속에서 그래도, 아직은 봄밤이라고 이야기하는 작가.

눈물겹다.

삶의 절망에서 끝내 살아남아 삶을 이야기하는 황시운 작가의 조금 남다른 삶의 이야기를 여러분들도 꼭 만나보길 바란다.

지금 삶이 힘겹고 '왜 나에게만 이런 시련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그래도, 아직은 봄밤"이라고 황시운 작가는 위로를 건넨다.

작가의 사연과 9편의 이야기들을 다 읽고 나면 <그래도, 아직은 봄밤>이라는 제목이 더 크게 눈물겹고 감동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래도"가 가지는 힘은 참 대단한 거 같다.

책을 읽은 지 한참 되었지만 쉽사리 서평을 할 수가 없었다. 작가의 삶의 무게가, 고통이 얼마나 큰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고 가늠할 수도 없었기에 감히 무어라 글을 쓰겠나 싶어 오래 망설였던 거 같다.

조금 다른 감동이지만 굉장한 작가를 만났다.


K는 남편의 죽음을 목격한 후부터 밤에는 잠을 잘 수가 없게 되었다고 했다. 날이 훤히 밝아온 뒤에야 가까스로 아주 잠깐 잠들 수 있을 뿐이라면서, 남편이 밤이 아닌 낮에 죽었더라면 지금보다는 나았을 거라는 말도 했다. 그때 나는 그런 끔찍한 말을 그토록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그녀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도 같았다. 방향을 잃은 분노는 아무런 힘이 없다는 것을. - P104

돌연히 찾아오는 것들은 하나같이 고독하기 짝이 없다. 아내와의 만남이 그랬고 이별 역시 그러했다. 그것들 앞에서 나는 매번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만은 달라야 했다. 돌연히 찾아올 마지막 순간을 위해서라도 아직은 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더이상 손 쓸 수 없을 만큼 틈이 벌어지기 전에 금간 벽을 손봐야 했다. 고개를 수그리고 가슴을 누르며 크게 심호흡했다. 세차게 뛰던 가슴이 진정되면서 차츰 시야도 맑아졌다. 저만치 버스정류장으로 들어오고 있는 버스가 보였다. 어쩐지 이번만은 버스를 놓쳐선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어디로 가야 할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나는 무턱대고 뛰기 시작했다. - P20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음만은 공중부양 - 오늘도 수고해준 고마운 내 마음에게
정미령 지음 / 싱긋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고 물속을 유영하듯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마흔을 맞은, 그림 그리고 글 쓰는 정미령 작가. <마음만은 공중부양>은 불혹의 나이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떻게 사는 것이 평범하게 사는 것인지 스스로 고민하며 자신의 감정에 집중하며 해결 방안을 찾아가는 솔직한 에세이다.


그녀는 40대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뭔가를 포기하기에는 이르고

나아가기에는 두렵고

살아온 건 지치는 나이.




작가는 책에서 자신을 무리씨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책 중간중간에 그림을 곁들여 이야기를 더욱 재미있게 만들기도 하고 중간중간 휴식 같은 여유를 제공하기도 한다.




마치 40대를 맞기까지의 과거에서 현재까지의 기록을 보는 느낌이었다. 굉장히 솔직하고 담백하게 풀어낸 이야기는 마치 작가의 일기를 훔쳐보는 기분이랄까... 조금도 포장하지 않고 자신의 속내와 감정에 솔직한 내용들이 공감되었고 읽다 보면 내 이야기 같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우리는 누구나 멋지게 살아가고 싶은 꿈을 꾸지만 현실은 생계를 걱정해야 하고 매달 카드값을 걱정하며 살아가고 있다. 작가의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는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고 우리 모두는 또 다른 무리씨라는 생각이 들었다.

맨날 부딪치고 맨날 흘리고 걸리는 덤벙대는 자신을 보면서 스스로를 향한 타박을 멈추고 '똑 부러지고 완벽한 것보다는 조금 비어 보이더라도 무르고 부드러운 게 좀더 좋더라~'며 긍정하는 모습에서, 욕심부린다고 나아질 것 없다며 느려도 괜찮다고 다독이는 모습에서, 비록 일하지 않아 돈은 부족하지만 시간 부자라고 말하는 작가를 보면서 공감과 동시에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것에 동질감? 같은 걸 느꼈다.

아마도 어떤 이들은 이 글을 읽으며 이와 반대로 살기에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로와 다독임으로 느껴지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의 짝꿍과의 첫 만남 에피소드는 무척이나 웃겼다. 허당미 넘치는 작가의 모습이라니... 뭔가 인간적이고 친근한 캐릭터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의 진솔한 이야기가 더 깊이 마음을 파고들고 차마 내가 하지 못했던 말들, 차마 내가 표현하지 못했던 것들을 대변해 주는 듯하기에 '나만 그런 게 아니야'라는 생각과 함께 그 글들이 위로가 되고 용기를 전해준다. 또한 책을 읽는 동안 '나'에 대해 더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




항상 완벽해야 하고 남들보다 뛰어나야 하고 세상의 흐름 속에 뒤처지지 않고 살아가야 한다는 강박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작가는 느려도 괜찮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살아도 괜찮다고 말한다. 남들처럼 똑같이 살아가지 않아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만의 속도로 자신을 소중히 여기며 자신의 인생에 답을 찾아가며 몸은 현실에 묶여 있을지라도 마음만은 공중부양하며 가볍게 살아가자 말한다.

어차피 인생은 정해진 답도 없고 스스로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결정되고 수많은 선택을 통해 인생이 만들어져가는 것이기에 오늘의 나는 잘 살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문득 돌아보게 된다.

진솔하면서도 담담하게 풀어놓는 작가의 이야기가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따뜻한 격려와 위로를 주기에 충분하다.




괜찮다 괜찮다 스스로 되뇌어보면서도

작은 파동에도 흔들리는 나를 보곤 하다.



그랬다.

어쩌면 괜찮다 하면서도 괜찮지 않았고

괜찮지 않다 하면서도 괜찮았다.

내 안의 여러 모습과 생각들이 어떤 순서로 드러나는지

알 수가 없다.

유연한 물과 같이 흐르고 싶은데

그 속에는 언제나 흔들리는 모습이 비칠 뿐이다.

심술이 난다.

흔들리는 나를 보며 짓궂게 물을 튕겨본다.

삶에 초연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내가 싫다.

가끔은 그렇게 굳이 파동을 일으켜가며

스스로에게 심술을 부려본다. - P20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시리바의 집 히가 자매 시리즈
사와무라 이치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평소에도 추리, 스릴러 소설을 좋아하지만 특히 여름철에는 책 속에 푹 빠져들기 좋은 책이라 흥미진진한 추리소설이나 심리 스릴러, 호러소설 등을 즐겨 읽는다. 아르테에서 이번 여름을 책임져줄 공포소설이 나왔다. 사와무라 이치의 <시시리바의 집>이다. 일본 호러소설 작가로 기억하는 "사와무라 이치"는 <보기왕이 온다>가 참 인상적이어서 그의 신간 소식이 반가웠다. <보기왕이 온다>는 읽고 아이들에게도 읽어보라고 권해주었고 아이들도 읽었던 (만화책으로도 읽음) 책이라 그 작가의 책이 새로 나왔다고 하자 아이들도 반기는 모습이었고 무슨 내용인지 궁금해서 물어보기도 했다. 기괴하면서도 오싹한 공포를 느끼게 만드는 호러소설이나 공포영화들은 여름날에도 소름 돋게 만드는 오싹함을 전함으로 무더위를 한방에 날리게 만드는 서늘한 위력은 선사한다. <보기왕이 온다>에서 디테일한 묘사 덕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에 대한 상상력이 어우러져 진짜 몰입하면서 책을 읽게 만들었기에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영화로 제작되었다는데 나는 아직 영화는 보지 못했다. 주말쯤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이 봐야겠다.


이번 <시시리바의 집>은 제목에서 약간 느낌이 오겠지만 집에 관한 이야기다. 어릴 적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귀신을 보게 된 이야기를 시작으로 이상한 집에 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곳에 살던 친구와 가족은 어느 날 야반도주를 했고 비어있는 그 집에는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 집에 들어가면 저주를 받아 머리가 이상해진다고.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귀신을 본 '나'는 그날 이후로 진짜 이상해지기 시작한다.

위 내용의 프롤로그를 시작으로 새로운 이야기들이 1장부터 펼쳐진다. 결혼 후 지방에서 살다가 남편의 본사 발령으로 인해 도쿄에서 생활하며 살림만 하고 있는 가호와 쉴 틈 없이 업무로 바빠 늦은 퇴근이 일상이 되어버린 유다이 부부의 모습이 그려진다.

남편은 직장 일로 바빠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없어지자 가족도 아는 사람도 없이 오로지 남편만 의지한 채 도쿄에서 생활하는 가호는 점점 외로움과 고립된 느낌을 갖게 된다. 그런 상황에 처해있는 가호는 우연히 고향 친구 도시를 만나게 된다. 누군가와 소통이 필요했던 가호에게 고향 친구 도시는 삶의 활력소가 된다.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어릴 적 친구이자 종종 집에 놀러 갔을 때 반겨주었던 할머니도 계시다고 하여 가호는 도시 집에 가게 된다. 하지만 그 집은 이상하게도 집 곳곳에 모래가 있고 그의 아내는 생기가 없어 보이는 데다 어릴 적 반겨주시던 할머니는 치매를 앓고 있고 알아볼 수 없는 상태였다. 뭔가 이상한 기운을 느낀 가호는 이후 그 집에는 가지 않으려 하지만 계속 그 집에 발을 들이게 되면서 걷잡을 수없이 휘말리게 된다.

온통 모래가 가득하고 이상한 소리가 나지만 정작 살고 있는 친구 도시는 아무렇지도 않아 한다. 그 집에 발을 디디면서 점점 밝혀지는 비밀과 프롤로그에서 나왔던 어릴 적 그 집에 갔다가 점점 이상하게 되었다는 '나'의 이야기가 맞물리면서 그 집에 대한 비밀을 파헤치면서 그 집의 수호신이라 불리는 "시시리바"의 정체를 알아내게 된다. 그리고 옛 친구 히가와 함께 시시리바를 봉인하기 위한 목숨을 건 사투가 벌어진다.

책을 펼치자 놓을 수 없게 책 내용에 빠져들었다. 단숨에 읽었다. 흥미롭고 오싹하며 <보기왕이 온다>에서처럼 기괴함도 있다.

하지만 마지막 결말에 가서는 단순히 오싹한 공포만 느끼게 하는 공포소설이 아닌, 여운을 남긴다. <보기왕이 온다>에서도 가정이라는 것, 가족이라는 것, 의미를 되새겨보게 만들더니 공포라는 장르를 통해서 이번에도 가족의 의미와 여성의 외로움과 쓸쓸함에 대해 돌아보게 하고 가족이지만 그 안에 숨겨진 슬픔과 아픔을 돌아보게 하는 소설이었다.

또한 <보기왕이 온다>에서 등장한 영매사 히가가 어떻게 영매사가 되었는지, 히가에 대한 어린시절 이야기가 더해져 더 흥미로웠다.

호러소설 좋아하는 이라면 재미나게 읽을 수 있을 책이다. 또한 단순히 무섭고 오싹한 느낌만이 아니라 작가가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가족 이야기에 공포를 더한 일본 소설이랄까.



우리는 거의 대화를 하지 않게 되었다. 한밤중에 집에 온 유다이는 항상 시든 배추처럼 축 늘어졌고,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밥을 차리고 배웅한다. 한밤중에 집에 온 그에게 수고했다고 말한다. 그것 말고는 대부분 문자 메시지로 연락하고, 가끔 잡담 같은 이야기를 하는 날이 이어졌다. - P2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간은 왜 잔인해지는가 - 타인을 대상화하는 인간
존 M. 렉터 지음, 양미래 옮김 / 교유서가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잔인하게 죽이는 연쇄 살인범, 어린아이를 학대하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어른, 다양한 방식의 고문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자들.

우리의 과거, 수많은 전쟁과 내전 국가들의 현실, 세계 역사의 흔적들, 뉴스에 보도되는 학대와 수많은 범죄들을 보면서 인간처럼 잔인한 동물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어떻게 인간이 그럴 수가 있지?

그런 생각들.

하지만 극명한 대립을 이루는 인물들도 있다.

예수, 석가모니, 테레사 수녀, 간디.

히틀러, 아돌프 아이히만, 스탈린.

위 인물들은 같은 인간이지만 같은 인간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극단적인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예이다.

작가는 1990년대 심리학을 공부하던 대학원 시절부터 줄곧 고심하고 학습한 악에 대한 내용을 기록해두고 싶어 했다.

어떻게 같은 종에 속하는 구성원들이 이토록 다를 수가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시작된 20년의 연구를 통해 이 책에서 그 원인과 답을 내놓고 있다.

<인간은 왜 잔인해지는가>에 대한 작가의 고민과 연구, 노력의 결과의 핵심 키워드는 바로

대상화

이다.



타인을 주체가 아닌 사물로 바라보고 사물처럼 대하는 심리적인 과정이 바로 대상화다.

대상화 스펙트럼상의 구분점은 일상적 무관심, 유도체화, 비인간화로 나뉜다. 경미한 수준의 대상화는 자신과 타인간의 정서적 유대감을 거의 인식하지 못하는 일상적 무관심으로 대변되는데 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하는 대상화의 수준이다.

어떤 대상을 한낱 껍데기만 남을 때까지 깎아'내림'으로써 유도체화하는 주체의 욕망과 소망 그리고 두려움을 체화한 대상에 불과한 존재로 만들어 버리는 등 유도체화 개념에는 강자가 약자에게 휘두르는 훨씬 노골적인 착취 행위 및 폭력적인 학대도 포함된다.

마지막 극단적인 수준의 단계인 비인간화는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르는 비인간적인 행위를 이해함에 있어 핵심적인 요소이다. 단순히 비인간이 아닌 인간의 형태를 한 - 쥐나 잇과 곤충 같은 - 해충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책의 3부와 4부에서는 대상화에 기여하는 기질적 요인에 대한 <인간은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내용과 대상화에 기여하는 상황적 요인을 살펴보는 <인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해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특히 4부에서는 실제 연구 사례들을 통해 상황이 유발한 대상화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밀그램 실험과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 밴듀라의 동물화 실험 등을 통해 인간의 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의 경우 참가자는 하루 15달러를 벌고자 하는 24명의 젊은이들이 선발되었고 그들은 건강하고 지적인 중산층 백인 남자들이었다고 한다. 동전 던지기를 통해 무작위로 수감자와 교도관 두 집단으로 나눠 2주동안 실험을 실시할 예정이었으나 계획과는 달리 단 6일 만에 종료되었다. 생각지도 않게 단시간에 막대한 영향을 발휘한 이 실험 하나만 봐도 인간이 상황에 의해 어떻게 변화하는지 알 수 있다. 인간은 환경으로부터 막대한 영향을 받는 존재일지라도 그러한 환경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잠재력 또한 가지고 있는 존재라고 작가는 말한다.

타인을 대상화하는 경향에 기여하는 인간의 내적 심리 요인들과 함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적 요소들까지 살펴본 후 마지막 장인 5부에서는 작가가 비유적으로 표현한 플라톤의 동굴에서 빠져나와 깨달음의 상태로 나아가기 위한 방법으로 세계의 여러 종교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힌두교와 유대교,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5개의 종류를 상세하게 비교 분석한 부분은 상당히 인상적이면서 각 종교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대상화 스펙트럼이 악에 관한 인간 본성의 성향을 정확하게 기술하고 있다면 사랑, 연민, 전 세계와의 상호연관성에 대한 인식 같은 인간의 능력은 대상화 스펙트럼과 반대되는, 다양한 수준의 깨달음으로 구성된 하나의 연속선을 이룬다고 볼 수 있다."

p. 366




"대상화 스펙트럼이 악에 관한 인간 본성의 성향을 정확하게 기술하고 있다면 사랑, 연민, 전 세계와의 상호연관성에 대한 인식 같은 인간의 능력은 대상화 스펙트럼과 반대되는, 다양한 수준의 깨달음으로 구성된 하나의 연속선을 이룬다고 볼 수 있다."


p. 366


깨달음의 단계는 일상적 관심, 상호연관성, 합일의식으로 나누고 있다. 

깨달음의 스펙트럼 최저점에 위치한 일상적 관심은 타인과의 기본적인 동질감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상호연관성 수준에서는 일상적 관심을 통해 어렴풋하게 인식했던 현실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게 되는데 명상이나 요가, 종교의식, 기도, 예술활동 등 마음챙김을 수행하고자 하는 시도 등을 주기적으로 실천하는 등 일상적 관심 수준에 있는 사람들 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인식하게 된다. 합일의식은 상호연관성을 인식하는 수준에서 얻은 깨달음이 완전히 만개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이 경지는 아마도 테레사 수녀, 마하트마 간디, 넬슨 만델라 같은 인물에 해당된다 싶다. 

인간이 타인을 대상화하는 경향을 줄이기 위한 더욱 친숙하고 역사가 오래된 방법들도 소개하고 있는데 충분히 공감되고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인간이 왜 잔인해지는가에서부터 타인을 대상화하는 관념에서 벗어나기 위한 해결책까지 작가는 오랜 시간 연구한 내용을 정말 꼼꼼하게,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사건 사고들과 우리의 삶 속에서 비일비재하게 발생하는 차별과 학대, 혐오, 폭력 등을 보면서

인간이 어떻게 저럴 수 있지?

라는 생각이 든다면 당신의 물음에 심도 있게 답해줄 책이다.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성자가 되진 못하더라도 인간답게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요즘 현대사회는 공감 능력이 참 많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 답지 못한 인갈들이 판을 치는 세상 속에서 인간답게 살아간다는 건 어떤 것일까. 

대상화하지 않고 대상화되지 않는 인간으로 살아가기 바라는 이라면 망설이지 말고 책을 펼쳐보자. 













훌륭한 문학작품을 읽는 행위는 인간됨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게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문학작품의 독서는 독자가 이야기에 몰두하기만 한다며 타인에 대한 연민과 공감을 한층 북돋아준다. 위대한 문학은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는 주제를 다루고 깊이와 모순을 지닌 인물들을 그려낸다는 점에서 오래도록 유지된다. 더불어 독자들이 주인공은 물론 악인과도 동일시해보고 본인의 내적 복잡성과 천사 같은 경향 혹은 그림자도 조명해보게 함으로써 자기 자신과 타인을 더욱 섬세하고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와 마찬가지로 시각예술과 행위예술에 대한 이해를 함양하는 것도 나와 타인의 내적 깊이를 더욱 민감하게 인식할 수 있게 해준다. - P38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가 쓴 것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조남주 작가는 "82년생 김지영"일 것이다. 나는 그 유명한 "82년생 김지영""보다 "귤의 맛"으로 조남주 작가의 책을 먼저 만났었다. 이번 제주여행의 짐을 챙기며 가제본으로 받은 <우리가 쓴 것>을 챙겨 넣었다. 제주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며 틈틈이 읽은 조남주 작가의 소설집 <우리가 쓴 것>



처음 출간된 조남주 작가의 소설집 <우리가 쓴 것>은 총 8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김미현 문학평론가의 해설이 있어서 책을 다 읽고 난 후 읽어보면 각 소설들의 또 다른 의미와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다.

겉표지에는 10대부터 80대에 이르는 다양한 여성들의 삶을 다양한 시선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단편소설집이지만 10여 년의 시간의 흐름속에 나온 결과물들이다. 큰 맥락에서 보면 80년생 김지영에서 더 확장된 느낌이다. 또한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의 삶을 이야기함으로써 각 시대별로 여성이 겪고 있는 경험과 문제들을 이야기하고 있는 셈이다.



<매화나무 아래>는 죽어가는 언니의 삶을 지켜보는 80대 동생의 이야기가 노년의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또한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오로라의 밤>은 세대에 걸친 여성의 삶을 돌아보게 했다. 출산과 육아로 힘들지만 직장 생활은 계속 하고 싶은 딸과 딸이 힘든 줄 알면서도 손주를 봐주기 싫은 엄마 그리고 아들을 앞서 보내고 며느리와 함께 살아가는 시어머니. 세 여성의 시선과 삶을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악플러를 상대로 고소하기로 마음먹은 작가의 이야기 <오기>는 최근에 붉어진 사적 대화나 개인적인 내용이 무단으로 사용되어 판매 중지가 된 작가들의 상황이 절로 떠올려지기도 했다.

<여자아이는 자라서>에서는 30여 년 전 가정폭력상담소를 열 정도로 선구자적이었던 엄마와 대학 시절 성폭력 관련 동아리를 만들었던 나, 성희롱 문제를 고발한 딸의 이야기가 맞물려 여성 문제에 대한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했어도 달라지지 않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이야기를 통해 독자에게 질문하고 있다.

<현남 오빠에게>는 요즘 청춘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이자 가장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지 않을까 싶다. 데이트 폭력, 가스라이팅 등 남녀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문제점 등을 편지라는 방식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첫사랑 2020>에서는 지금 현실과 맞닥뜨린 코로나 상황의 이야기가 나온다. 코로나 시대의 10대들의 고민과 현실을 생각하게 만들었던 지극히 현실적인 내용이었다.

각 이야기 속에는 여러 여성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 이야기 속 주인공들의 삶은 현실 속 우리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떻게 사는 것이 의미 있는지, 한 인간으로 한 개인으로 한 여성으로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며 삶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갈 것을 응원하는 메시지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