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
닐 셔스터먼.재러드 셔스터먼 지음, 이민희 옮김 / 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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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내용을 살펴보지 않더라도 표지에서 이미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짐작이 갈 것이다. 그렇다. 이 책은 미국 서남부 지역의 단수 사태로 인해서 일어나는 물 부족 재난 소설이다. 책을 펼쳐 얼마 읽지도 않았는데 목마름을 느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지속되는 갈증을 불러일으키는 책이었다.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오지 않았을 때만 해도 사태가 심각하게 흘러갈 줄 몰랐다. 하지만 일주일 정도의 단수 사태로 인해 혼동과 계엄령이 내려질 정도로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 그 상황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인간의 본성과 윤리 그리고 극단적 상황에서 각자 대처하는 법 등 개개인과 나라와 가족 등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멀쩡했던 지구가 아프기 시작하고... 물 부족 국가가 된 우리나라. 이제 사람들이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환경에 대해 의식을 하기 시작했다. 방송에서 보았던 저 먼 이국땅의 낯선 풍경. 물이 없어서 고인 물을 떠서 먹고 빗물을 받아 생활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절로 얼굴이 찡그려졌을 것이다. '저걸 먹고 탈 나지 않을까?'라며 걱정도 하면서. 하지만 물이 없는 이들에게는 그마저도 생명수와 같을 것이다. 흔히 물만 잘 먹어도 건강해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 몸에 있어서 물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기에 물이 없어 고통받고 고생하는 지구 반대편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어쩌면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모두에게 닥칠 수도 있을 일이 아닐까... 하고 상상을 해보기도 했었다. 그런데 <드라이>책은 나의 상상이 현실이 되는 듯 생생하게 물 부족으로 생겨나는 여러 문제들을 거침없이 보여주고 있어 더 공포스럽고 섬뜩한 느낌에 끝없는 갈증을 불러일으켰다.

일반적으로 재난 영화나 소설에서는 영웅이 있게 마련이고 어른들이 주축이 되어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이 책에서는 사실 어른들의 활약은 기대하기 어렵다. 오히려 이기적이고 나약한 모습으로 비칠 뿐이다. 10대 아이들 5명이 힘을 합쳐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생존기라 할 수 있다. 10대라고 보기엔 현명하고 냉철한 스타일의 얼리사의 부모는 물을 구하러 나갔다가 생존 여부조차 알 수 없게 되고 평소 언제 닥쳐올지 모를 재난에 대비해 철두철미하게 대비하고 살았던 켈턴의 부모는 정작 가장 빛을 발할 재난의 정점에서 하나의 실수로 무너져버리는 모습을 보인다. 결국 캘턴과 얼리사, 얼리사의 동생과 중간에 만나게 된 재키, 헨리까지 총 5명이 의기투합하여 물을 찾아, 생존을 위해 떠나는 여정을 보게 된다. 무책임한 정부, 물을 마시지 못하자 워터 좀비가 되어 악행을 저지르며 이기적으로 되어가는 사람들, 그 속에서도 함께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배려하고 질서를 지켜려는 자, 법과 규칙을 무시하고라도 사람을 살리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는 자...... 물 부족 사태로 인해 발생되는 사건 속에서 우리는 다양한 형태의 사람들을 보게 된다. 5명의 주인공들 속에서도.

이 책에서는 인간이 환경에 따라 얼마나 무서울 정도로 변화할 수 있는 존재인지 보여주고 있다. 때론 잔인할 수도 때론 착한 존재가 되기도 하는...

대략 일주일가량의 단수 사태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삶은 변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도 삶은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으로 나뉠 것이다. 책의 말미 부분 얼리사가 했던 말들이 유독 마음에 남았다.

 

 

언젠가 닥칠지도 모를 묵시록적 이야기에 더 빠져들며 소설에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소설 속 상황은 종결되었을지라도 책장을 덮으면서도 여전히 목마름이 느껴졌던 것은 상상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공포였다. 영화로도 제작이 된다고 하니 이 영화는 개봉하면 꼭 보러 가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읽고 난 후 수도꼭지에 물을 틀 때마다, 싱크대 앞에 설 때마다 이 책의 첫 문장이 생각난다. 아마도 당분간은 지속될 것이다. 흘러가는 물이 배수로로 빠져나가는 것을 볼 때면 심한 죄책감이 드는 것도 이 책을 읽고 난 후유증이라 생각한다.

따지고 보면 새로운 보통날에 ‘보통‘은 없었다. 정녕 우리네 삶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모두 지나간 일로 치부할 수 있을까? 영웅들이 평범한 소시민으로 되돌아갈까? 그림자들이 아무렇지 않게 사는 법을 배울까? 각자의 정신적 타격도 언젠가는 무뎌질까? 나는 엄마 아빠에 대한 악몽을 멈출 수 있을까?

물론 현실이 악몽처럼 끔찍하다는 사실은 별로 도움이 안 됐다.


- P442

인체의 60퍼센트가 물이라고 말한 사람이 재키였던가? 이제 나머지 요소는 똑똑히 안다. 재와 먼지, 슬픔과 비통........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니, 그런데도 우리를 하나로 묶어 주는 요소는...... 희망이다. 그리고 환희다. 우리 안에서 마르지 않고 샘솟는 모든 것이다.


- P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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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김종관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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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만들고 글을 쓴다는 김종관 작가의 에세이. 작가라는 말보다는 감독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릴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그의 영화 작품은 아직 만나보지 못하였지만 6부에 소개된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뭔가 조금은 다른 미장센을 선보일 것만 같은 기대감이 든 것이 사실이다. 행간의 의미와 여백이 많은 대사들. 소설을 읽다 보면 유난히 여백이 느껴지는 글들이 가끔 있다. 늘상 읽던 글과는 조금 다르기 때문에 글 속의 여백을 느낌과 동시에 글을 읽는 속도도 점점 느려지게 된다.

<하코다테에서 안녕>과 <밤을 걷다> 두 시나리오 작품을 읽으면서 짧지만 묘한 매력을 느꼈다. 특히 하코다테에서 안녕은 눈이 펑펑 내리는 하코다테의 풍경을 보면서 이 대사를 음미해 본다면 훨씬 더 느껴지는 감정이 다를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전 하코다테 거리를 걸으며 느꼈던 감정을 되살려 읽는 것으로 나만의 영화적 장면을 상상해 보는 시간이었다.

 

영화를 찍는 사람은 모든 것이 영화적 장면이 되는 상상을 할 것이다. 사진을 찍는 입장에서도 삶의 순간순간, 만나는 풍경마다 그것이 생각을 담아내는 도구가 된다. 눈으로 만나는 모든 풍경이 이야기가 되고 찰나의 순간을 담아내는 그 순간에도 감각과 감정까지 담기는 것이 사진이다. 이 책에서는 영상을 담아내는 감독만이 가진 감각적 시선과 감정들을 차분하면서도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마치 느린 영화를 보듯 말이다. 책 곳곳에 그가 담은 사진들을 보는 것도 글의 이해와 그가 담아내고자 하는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 느낌이라 적절히 어우러진 글과 사진들이 참 조화롭게 느껴진다. 나는 사진 에세이를 좋아한다. 이 한 장의 사진을 왜 담았는지...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표현하기 위해 셔터를 눌렀는지. 그것에 대한 이야기여도 좋고 그 사진을 찍는 과정에서 스친 생각이라든지 에피소드여도 좋다. 물론 이 책은 사진 에세이는 아니다. 그저 작가가 살면서 느낀 기록들을 풀어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어주는 도구적 역할을 하는 정도랄까.

저녁에서 밤으로 이어지는,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점에 바람을 느끼며 읽으면 좋을, 차분하면서도 사색하기 좋은 책이다. 다소 느리게... 아무 페이지나 펼쳐놓고 느긋하게 작가의 감정을 따라 감성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좋겠다 싶다.

영화 이야기와 시네마테크 이야기 부분은 공감되는 점이 많아서 더 흥미롭게 읽었다.

 

 

 

 

 

사라지는 사이 생각해보니, 청춘이란 단어는 청춘을 지나고 있는 이들의 것이 아니라는 그런 생각.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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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는 감이여 - 충청도 할매들의 한평생 손맛 이야기
51명의 충청도 할매들 지음 / 창비교육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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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에 있어 늦음이란 없는 법!

75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101세까지 살면서 국민 화가로 이름을 떨쳤던 모지스 할머니의 생애를 보면서 나는 느꼈다. 인생에 있어서 너무 늦은 때란 없다는 걸 말이다. 창비에서 나온 <요리는 감이여>이 책에서는 무려 51명의 충청도 할매들의 열정을 만나게 된다. 어려운 시절, 배움을 열망하였지만 환경적 탓에 한글을 깨치지 못하고 배우지 못한 충청도 할머니들이 충청남도 교육청 평생교육원에서 만학도의 열정을 불태우게 된다. 할머니들은 한글을 깨치고 배움의 즐거움을 터득하며 삶의 의미를 찾고 행복을 느끼며 기쁨을 누리게 된다. 이 할머니들의 열정을 고스란히 담아 할머니들이 또박또박 써 내려간, <요리는 감이여>는 나만의 레시피를 가장한 할머니들의 인생을 담은 조금은 특별한 책이다.



한글을 배우신 할머니들이 한 자 한 자 쓰면서 자신만의 요리 비법을 공개하였고 고등학생과 자원봉사자가 재능 기부로 그림과 채록에 함께 참여를 하였다. 학생들은 요리 과정을 그림으로 그리고 할머니의 모습을 캐리커처로 담아내고. 봉사자들은 할머니들의 육성을 그대로 사투리까지 생생하게 살려 기록하고 있다. 3세대가 함께 어우러진 공동 작품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독특하면서도 특별한 책인 것이다.

나는 이 책보다 먼저 이와 비슷한 책 한 권을 만났었다. 장생포 문화지원 센테에서 장생포 주민들을 위해 여러 사업들을 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책이 바로 <며늘아 세월을 십 년만 멈추게 해다오>였다. 이 책은 <요리는 감이여>와 마찬가지로 환경적인 요인과 어려웠던 옛 시절 탓에 한글을 깨치지 못한 장생포 어르신들을 위해 한글을 가르쳐 드리고 나아가 그림도 그리고 편지도 쓰고 시도 쓸 수 있도록 지원한 프로그램의 결과물로 나온 책이었다. 장생포 어르신들도 시를 짓고 편지를 쓰고 자화상을 그리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고 삶의 기쁨을 찾는 것을 보아왔던 터라 <요리는 감이여>이 책이 더욱 반갑기도 했다.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할매들의 삶의 이야기와 정확한 레시피가 아니라 "요리는 감이여~"라고 말하는 할머니들의 정서가 무엇보다도 푸근하게 느껴졌기에 꼭 한번 이 이야기를 만나보고 싶었다.




책에는 각 할매들의 간략한 자기소개와 더불어 요리에 관한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이어 할머니들이 직접 쓴 레시피와 함께 그림으로 요리의 순서를 표현하고 있다. 구수한 할매들의 충청도 사투리가 본문에서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도 이 책의 묘미. "동동구르무"같은 세월을 느끼게 하는 단어와 할매들만의 사투리 표현들이 그대로 담겨 재미를 더해주고 이해를 더하기 위해 본문 하단에 별도로 각주까지 달아두었다. 그리고 맨 마지막 쪽으로 넘어가면 할머니들이 알려주는 사계절 제철 재료들도 소개하고 요리에 사용되는 할머니들의 요리어를 별도의 사전처럼 만들어 둔 것도 인상적인 부분이다.




추천사를 쓴 박찬일 요리사는 "읽다가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할머니들의 삶이 녹아든 음식 레시피만 보자면 그리 특별날 것도 없어 보인다. 충청도 할머니들의 요리 비법이 궁금해서 이 책을 읽으려고 하는 사람들이라면 어쩜 실망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 책은 본문에서 말하듯 할머니들은 "비법이랄 것도 읎어. 요리는 감으로 하는 것이여."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책이 마음을 붙잡고 문득 울컥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할매들의 이야기에서 나의 엄마와 할머니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기 때문일 것이다. 가족들을 위해, 자식들을 위해 때론 포기하고 헌신해야 했던 우리들의 어머니. 특별함이 없더라도 자식들이 잘 먹어주면 그저 행복하고 절로 배가 부르는 우리의 엄마들. 그렇기 때문에 읽다가 절로 눈시울이 뜨거워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특별하지 않아도 엄마만의 손맛으로 만들어진 요리와 음식들은 세상 그 어떤 음식과도 비교될 수 없을 것이다. 내겐 무른 반죽으로 몽글몽글 떠서 끓인 수제비 한 그릇, 밥을 다 먹고 나면 딱 맞춰 따끈하고 꼬독꼬독하게 끓여서 가져다주는 누룽지 후식 같은 것이 엄마표 대표 음식이었다. 그리운 맛이고 잊을 수 없는 맛이다. 비슷하게 만들어도 엄마가 만들어주던 그 맛이 제대로 나지 않아 속상하고 더 생각나게 하는 음식. 그래서 이 책은 전혀 울 타이밍이 없는 책임이도 불구하고 읽다가 울컥울컥하는 마음에 더 이상 책장을 넘기지 못하고 덮었다가 다시 읽고야 마는 책이었다.


일평생 헌신하며 살아오신 할머니들이 앞으로는 자신의 삶을 누리며 남은 여생 하고 싶은 일들 마음껏 즐기면서 살아가셨으면... 한다.



비법이랄 것도 읎어. 요리는 감으로 하는 것이여. -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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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 히비스커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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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한번 사준 선배에겐

고마워~

                   

매일 밥해주는 엄마에겐

물이나 줘~

여자친구 생일엔

축하해~

부모님 생신엔

엄마 생일이었어?

오분 기다려준 동료에겐

죄송합니다. 늦었습니다.

평생을 기다려준 부모에겐

왜 나왔어?

 

 

나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언젠가 보았던 공익광고의 장면이 떠올랐다. 밖에 나가서는, 타인에게는 친절하고 배려 깊고 상냥하지만 정작 가족에게는 편하고 함께한다는 이유로 늘 뒷전으로 미뤄지고 감정대로 행해지는 행동들을 보게 된다. 아마도 이것은 나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느끼고 행동하는, 알면서도 저지르는 잘못된 부분 중의 하나일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캄빌리와 자자 남매의 가정에는 가부장적이고 바리새인들처럼 편협한 신앙의 모습으로 율법의 테두리 안에 갇혀 폭력과 학대를 일삼는 아버지 유진이 있다. 밖에서는 인정받고 돈도 잘 벌어오며 주변 사람들은 그를 존경한다. 심지어 가정이 있는 유부남임에도 불구하고 딸을 가진 주변 부모들은 자기 딸을 임신 시켜주길 바라고 있을 정도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유진의 아내이자 캄빌리와 자자의 엄마는 남편의 부당한 태도와 억압적이고 가학적인 행동에 대해서도 반기를 들거나 의견을 내지도 못하며 그저 말없이 순종하며 살아가는 여인이다. 심지어 남편의 폭력으로 인해 아이까지 유산을 했어도 그저 참을 수 밖에 없다.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억압된 상태로 그릇된 종교적 이념에 갇혀 교육돼 왔고 엄격한 규율 속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 받아들이고 순응하며 살아간다. 독실한 카톨릭 가정이라는 이름 하에 행해지는 아버지의 행동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종교적 규율을 어겼을 때에는 매질과 학대가 이어지고 그런 가학적 행위를 함으로써 죄를 씻어낸다고, 벌을 받는다고 말하고 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진리 안에서 누려야 할 진정한 자유가 이 가족들에게는 율법이라는 족쇄에 매여 고통과 그저 참고 견뎌야 하는, 자유가 아닌 통제와 억압이 되고 만다. 아버지 유진은 심지어 자신의 아버지가 카톨릭으로 개종하지 않았다고 이교도로 몰아 아이들을 할아버지 집에 15분 이상 머물지 못하게 하는 등 유교적 사상이 깊이 배인 우리나라의 정서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행동들을 하게 된다. 그는 종교적 잣대를 이용해 철저히 자신의 아버지를 배척하고 심지어 혐오스러워하며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는 등 불효막심한 모습을 보인다.

1등을 하지 못했다 하여 뜨거운 물을 붓는 등 아이들은 학대를 당하고 모든 생활은 규율과 정해진 규칙대로 틀에 맞춰 생활해야 하는 등 한 마디로 그는 가정에 군림하는, 자신의 말이 곧 법이고 자신이 곧 하느님인 것이었다. 애굽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느끼는 하나님의 모습처럼 두렵고 떨린 존재였고 광야 생활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셨던 하나님처럼 자신 또한 가족들에게 먹을 것과 돈을 주는 하나님인 것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느끼는 감정은 고구마를 한가득 입에 넣고 있는 듯 답답함이었다. 이런 억압된 삶 속에서 살아간다면 누구라도 미쳐버리지 않을까... 하지만 캄빌리와 캄빌리의 오빠 자자는 어릴 적부터 그런 생활만 해왔던 터라 그것이 당연한 줄로 알지만 이페오마 고모 집에 며칠 머물게 되면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가난하지만 자유롭고 행복해하며 식탁에서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등 사촌들의 행복한 삶을 보면서 자신들과 다름을 깨닫게 되고 자자는 세상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이 책은 캄빌리의 눈으로 보는 세상을 관찰자 입장에서 써 내려가고 있지만 캄빌리는 소극적이고 그저 관찰자의 입장일 뿐이다. 여전히 아버지의 그늘이 안심되고 아버지에게 칭찬받기를 바라는, 아버지가 곧 하나님이라는 존재로 인식하면서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죽고 난 후에는 그러한 감정이 아마디 신부에게로 넘어간다. 절대적이고 엄격했던 존재에서 부드럽고 자상한 존재로 바뀌었을 뿐 캄빌리는 아마디 신부에게도 순종하고 무조건 적으로 믿는 행동을 보이며 현실에 안주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자자는 특이한 보라색 히비스커스에서 희망을 보았다. 그리고 틀을 깨고 변화를 꿈꾸며 성장하기 시작한다. 억압과 폭력을 견디다 못한 엄마는 남편을 독살하게 되고 자자는 엄마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이 아버지를 독살한 것이라고 자백하게 된다. 책은 감옥에 갇힌 자자가 곧 출소를 앞두면서 끝을 맺고 있다.

잘못된 신념과 종교적 이념으로 고통받았던 가족의 이야기는 마음 아프기도 하고 안타깝게 느껴졌지만 변화를 꾀하고 시도한 자자의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그들의 달라질 삶을 응원하게 된다. 지금까지 옳은 것이라고 생각했던 과거의 것들이 틀리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과감히 버릴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고 성장하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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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현장은 구름 위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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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술술~ 흥미롭게 읽히는 책인 <살인 현장은 구름 위>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로 일반적인 장편 소설이나 단편소설과는 조금 다른, 옴니버스 형식을 지닌 소설이다. 사건의 배경은 모두 비행기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과 각 에피소드별로 사건을 해결하는 그 중심 역할을 하는 것 또한 승무원인 A코와 B코로 조금 독특한 구성을 띠고 있다.

사건 중심에 있는 두 주인공의 캐릭터 또한 재미나다. 신일본 항공 승무원 하야세 에이코는 우리가 흔히 연상하는 스튜어디스의 이미지와 흡사한, 갸름한 얼굴에 미인형으로 냉철하면서도 모든 일에 당황하지 않고 능숙하게 대처하는 스타일인 반면 하야세 에이코와 동기인 후지 마미코는 A코와는 정반대 캐릭터의 인물이다. 승무원치고는 뚱뚱한 편이며 얼굴도 동그랗고 눈도 동그랗고 성격도 반대 타입으로 단순하면서도 낙천적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먹는 것 또한 무지 좋아한다. 완벽해 보이는 A코 옆에는 허점 투성이인 B코를 항상 옆에 붙인다는 것이 사내의 정설로 되었고 두 사람은 의외로 호흡이 잘 맞아서 직장 동료일 뿐만 아니라 같은 아파트에 사는 룸메이트이기도 하다. 이 조금 특이한 두 콤비가 탑승객들 사이에 벌어지는 여러 사건들을 해결하는 해결사로 나서게 된다. 일반적인 형사 시리즈가 아닌, 비행기나 여행 등 특수한 상황에서 벌어질 수 있는 에피소드들을 구성해 둔 것도 흥미롭고 두 캐릭터들의 활약이 은근 코믹하면서도 재미나서 읽으면서도 추리소설의 느낌보다는 누군가에게 일어난 엉뚱하면서도 재미난 에피소드들을 듣는 기분이 들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에피소드는 바로<분실물에 유의하세요>였는데 이 부분을 읽으면서 '아... 정말 충분히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걸 절묘하게 또 글로 써내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능력에 혀를 내둘렀다. 어쨌든 7개의 에피소드들은 모두 흥미롭고 재밌는 데다가 색다른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이라 인상적이기도 했다. 아마도 그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많은 승무원들을 만나 직장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들은 게 아닐까 싶었다. 사건이 비행기 안, 여행지 그리고 승무원이 연관된 탑승객 이야기라 여행을 가면서 읽으면 어쩜 더 흥미로울지도 모르겠다. 은근 매력적인 A코와 B코의 활약을 앞으로도 종종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싶을 만큼 유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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