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색 히비스커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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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한번 사준 선배에겐

고마워~

                   

매일 밥해주는 엄마에겐

물이나 줘~

여자친구 생일엔

축하해~

부모님 생신엔

엄마 생일이었어?

오분 기다려준 동료에겐

죄송합니다. 늦었습니다.

평생을 기다려준 부모에겐

왜 나왔어?

 

 

나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언젠가 보았던 공익광고의 장면이 떠올랐다. 밖에 나가서는, 타인에게는 친절하고 배려 깊고 상냥하지만 정작 가족에게는 편하고 함께한다는 이유로 늘 뒷전으로 미뤄지고 감정대로 행해지는 행동들을 보게 된다. 아마도 이것은 나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느끼고 행동하는, 알면서도 저지르는 잘못된 부분 중의 하나일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캄빌리와 자자 남매의 가정에는 가부장적이고 바리새인들처럼 편협한 신앙의 모습으로 율법의 테두리 안에 갇혀 폭력과 학대를 일삼는 아버지 유진이 있다. 밖에서는 인정받고 돈도 잘 벌어오며 주변 사람들은 그를 존경한다. 심지어 가정이 있는 유부남임에도 불구하고 딸을 가진 주변 부모들은 자기 딸을 임신 시켜주길 바라고 있을 정도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유진의 아내이자 캄빌리와 자자의 엄마는 남편의 부당한 태도와 억압적이고 가학적인 행동에 대해서도 반기를 들거나 의견을 내지도 못하며 그저 말없이 순종하며 살아가는 여인이다. 심지어 남편의 폭력으로 인해 아이까지 유산을 했어도 그저 참을 수 밖에 없다.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억압된 상태로 그릇된 종교적 이념에 갇혀 교육돼 왔고 엄격한 규율 속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 받아들이고 순응하며 살아간다. 독실한 카톨릭 가정이라는 이름 하에 행해지는 아버지의 행동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종교적 규율을 어겼을 때에는 매질과 학대가 이어지고 그런 가학적 행위를 함으로써 죄를 씻어낸다고, 벌을 받는다고 말하고 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진리 안에서 누려야 할 진정한 자유가 이 가족들에게는 율법이라는 족쇄에 매여 고통과 그저 참고 견뎌야 하는, 자유가 아닌 통제와 억압이 되고 만다. 아버지 유진은 심지어 자신의 아버지가 카톨릭으로 개종하지 않았다고 이교도로 몰아 아이들을 할아버지 집에 15분 이상 머물지 못하게 하는 등 유교적 사상이 깊이 배인 우리나라의 정서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행동들을 하게 된다. 그는 종교적 잣대를 이용해 철저히 자신의 아버지를 배척하고 심지어 혐오스러워하며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는 등 불효막심한 모습을 보인다.

1등을 하지 못했다 하여 뜨거운 물을 붓는 등 아이들은 학대를 당하고 모든 생활은 규율과 정해진 규칙대로 틀에 맞춰 생활해야 하는 등 한 마디로 그는 가정에 군림하는, 자신의 말이 곧 법이고 자신이 곧 하느님인 것이었다. 애굽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느끼는 하나님의 모습처럼 두렵고 떨린 존재였고 광야 생활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셨던 하나님처럼 자신 또한 가족들에게 먹을 것과 돈을 주는 하나님인 것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느끼는 감정은 고구마를 한가득 입에 넣고 있는 듯 답답함이었다. 이런 억압된 삶 속에서 살아간다면 누구라도 미쳐버리지 않을까... 하지만 캄빌리와 캄빌리의 오빠 자자는 어릴 적부터 그런 생활만 해왔던 터라 그것이 당연한 줄로 알지만 이페오마 고모 집에 며칠 머물게 되면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가난하지만 자유롭고 행복해하며 식탁에서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등 사촌들의 행복한 삶을 보면서 자신들과 다름을 깨닫게 되고 자자는 세상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이 책은 캄빌리의 눈으로 보는 세상을 관찰자 입장에서 써 내려가고 있지만 캄빌리는 소극적이고 그저 관찰자의 입장일 뿐이다. 여전히 아버지의 그늘이 안심되고 아버지에게 칭찬받기를 바라는, 아버지가 곧 하나님이라는 존재로 인식하면서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죽고 난 후에는 그러한 감정이 아마디 신부에게로 넘어간다. 절대적이고 엄격했던 존재에서 부드럽고 자상한 존재로 바뀌었을 뿐 캄빌리는 아마디 신부에게도 순종하고 무조건 적으로 믿는 행동을 보이며 현실에 안주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자자는 특이한 보라색 히비스커스에서 희망을 보았다. 그리고 틀을 깨고 변화를 꿈꾸며 성장하기 시작한다. 억압과 폭력을 견디다 못한 엄마는 남편을 독살하게 되고 자자는 엄마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이 아버지를 독살한 것이라고 자백하게 된다. 책은 감옥에 갇힌 자자가 곧 출소를 앞두면서 끝을 맺고 있다.

잘못된 신념과 종교적 이념으로 고통받았던 가족의 이야기는 마음 아프기도 하고 안타깝게 느껴졌지만 변화를 꾀하고 시도한 자자의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그들의 달라질 삶을 응원하게 된다. 지금까지 옳은 것이라고 생각했던 과거의 것들이 틀리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과감히 버릴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고 성장하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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