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는 감이여 - 충청도 할매들의 한평생 손맛 이야기
51명의 충청도 할매들 지음 / 창비교육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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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에 있어 늦음이란 없는 법!

75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101세까지 살면서 국민 화가로 이름을 떨쳤던 모지스 할머니의 생애를 보면서 나는 느꼈다. 인생에 있어서 너무 늦은 때란 없다는 걸 말이다. 창비에서 나온 <요리는 감이여>이 책에서는 무려 51명의 충청도 할매들의 열정을 만나게 된다. 어려운 시절, 배움을 열망하였지만 환경적 탓에 한글을 깨치지 못하고 배우지 못한 충청도 할머니들이 충청남도 교육청 평생교육원에서 만학도의 열정을 불태우게 된다. 할머니들은 한글을 깨치고 배움의 즐거움을 터득하며 삶의 의미를 찾고 행복을 느끼며 기쁨을 누리게 된다. 이 할머니들의 열정을 고스란히 담아 할머니들이 또박또박 써 내려간, <요리는 감이여>는 나만의 레시피를 가장한 할머니들의 인생을 담은 조금은 특별한 책이다.



한글을 배우신 할머니들이 한 자 한 자 쓰면서 자신만의 요리 비법을 공개하였고 고등학생과 자원봉사자가 재능 기부로 그림과 채록에 함께 참여를 하였다. 학생들은 요리 과정을 그림으로 그리고 할머니의 모습을 캐리커처로 담아내고. 봉사자들은 할머니들의 육성을 그대로 사투리까지 생생하게 살려 기록하고 있다. 3세대가 함께 어우러진 공동 작품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독특하면서도 특별한 책인 것이다.

나는 이 책보다 먼저 이와 비슷한 책 한 권을 만났었다. 장생포 문화지원 센테에서 장생포 주민들을 위해 여러 사업들을 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책이 바로 <며늘아 세월을 십 년만 멈추게 해다오>였다. 이 책은 <요리는 감이여>와 마찬가지로 환경적인 요인과 어려웠던 옛 시절 탓에 한글을 깨치지 못한 장생포 어르신들을 위해 한글을 가르쳐 드리고 나아가 그림도 그리고 편지도 쓰고 시도 쓸 수 있도록 지원한 프로그램의 결과물로 나온 책이었다. 장생포 어르신들도 시를 짓고 편지를 쓰고 자화상을 그리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고 삶의 기쁨을 찾는 것을 보아왔던 터라 <요리는 감이여>이 책이 더욱 반갑기도 했다.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할매들의 삶의 이야기와 정확한 레시피가 아니라 "요리는 감이여~"라고 말하는 할머니들의 정서가 무엇보다도 푸근하게 느껴졌기에 꼭 한번 이 이야기를 만나보고 싶었다.




책에는 각 할매들의 간략한 자기소개와 더불어 요리에 관한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이어 할머니들이 직접 쓴 레시피와 함께 그림으로 요리의 순서를 표현하고 있다. 구수한 할매들의 충청도 사투리가 본문에서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도 이 책의 묘미. "동동구르무"같은 세월을 느끼게 하는 단어와 할매들만의 사투리 표현들이 그대로 담겨 재미를 더해주고 이해를 더하기 위해 본문 하단에 별도로 각주까지 달아두었다. 그리고 맨 마지막 쪽으로 넘어가면 할머니들이 알려주는 사계절 제철 재료들도 소개하고 요리에 사용되는 할머니들의 요리어를 별도의 사전처럼 만들어 둔 것도 인상적인 부분이다.




추천사를 쓴 박찬일 요리사는 "읽다가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할머니들의 삶이 녹아든 음식 레시피만 보자면 그리 특별날 것도 없어 보인다. 충청도 할머니들의 요리 비법이 궁금해서 이 책을 읽으려고 하는 사람들이라면 어쩜 실망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 책은 본문에서 말하듯 할머니들은 "비법이랄 것도 읎어. 요리는 감으로 하는 것이여."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책이 마음을 붙잡고 문득 울컥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할매들의 이야기에서 나의 엄마와 할머니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기 때문일 것이다. 가족들을 위해, 자식들을 위해 때론 포기하고 헌신해야 했던 우리들의 어머니. 특별함이 없더라도 자식들이 잘 먹어주면 그저 행복하고 절로 배가 부르는 우리의 엄마들. 그렇기 때문에 읽다가 절로 눈시울이 뜨거워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특별하지 않아도 엄마만의 손맛으로 만들어진 요리와 음식들은 세상 그 어떤 음식과도 비교될 수 없을 것이다. 내겐 무른 반죽으로 몽글몽글 떠서 끓인 수제비 한 그릇, 밥을 다 먹고 나면 딱 맞춰 따끈하고 꼬독꼬독하게 끓여서 가져다주는 누룽지 후식 같은 것이 엄마표 대표 음식이었다. 그리운 맛이고 잊을 수 없는 맛이다. 비슷하게 만들어도 엄마가 만들어주던 그 맛이 제대로 나지 않아 속상하고 더 생각나게 하는 음식. 그래서 이 책은 전혀 울 타이밍이 없는 책임이도 불구하고 읽다가 울컥울컥하는 마음에 더 이상 책장을 넘기지 못하고 덮었다가 다시 읽고야 마는 책이었다.


일평생 헌신하며 살아오신 할머니들이 앞으로는 자신의 삶을 누리며 남은 여생 하고 싶은 일들 마음껏 즐기면서 살아가셨으면... 한다.



비법이랄 것도 읎어. 요리는 감으로 하는 것이여. -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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