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을과 두 갈래 길을 지나는 방법에 대하여 - 교유서가 소설
한지혜 지음 / 교유서가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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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혜 작가의 이번 소설집 <한 마을과 두 갈래 길을 지나는 방법에 대하여>는 신춘문예 등단 후 7년간 발표한 소설들을 묶어서 낸 <안녕, 레나>의 개정판이다.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20년도 전에 쓴 소설을 다시 꺼내 읽고 당대의 시대성을 반영할 수 있도록 적당히 수정된 결과물이다.

총 9개의 소설이 등장하는데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작품을 꼽자면 <자전거 타는 여자>와 <사루비아>와 <호출, 1995>였다.

짧은 9편의 단편소설이지만 하나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흐름은 소외되고 힘들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야기라는 점이다. 대학을 나와도 여전히 취업이 힘들어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는 청춘의 삶은 글을 쓴 그때나 지금이나 더 나아진 것도 없다. 마찬가지로 내 집 마련의 꿈을 꿔 보기도 전에 포기해야 하는 현실은 말할 것도 없다.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가난하고 여전히 버겁게 살아가는 인생들의 이야기가 쓸쓸함으로 다가온다.

 

서른두번이나 이력서를 냈지만 자신을 원하는 곳이 없어 마치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한 나,

교수직을 퇴임하면 여행이다 즐기며 살겠다던 남자는 갑자기 쓰러져 꿈꿔온 인생을 펼쳐보기도 전에 죽음의 문턱에 임한다.

<외출>

임대 아파트 입주와 내 집 마련의 꿈을 여전히 꾸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아파트로 사람의 등급을 나누는 문화.

<이사>

사람에게 받은 상처와 아픔을 아파트라는 공간 안에서 식물을 키우며 위로받는 여자.

<사루비아>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자신의 박복한 인생을 해학적으로 이야기하는 여자.

<목포행 완행열차>

자살을 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

<햇빛 밝은>

식물인간이 된 아버지를 좁은 집에서 돌보는 모녀

<자전거 타는 여자>

<한 마을과 두 갈래 길을 지나는 방법에 대하여>에서는 우리의 삶에서 어딘가에 흔하게 존재할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담아내고 있다.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아버지. 엄마와 딸은 언제 돌아가실지도 모를 아버지를 돌아가며 간병하게 되고 행여 엄마가, 딸이 간병 일이 지쳐 도망가지 않을까 서로를 의심하게 된다. 간병 일이 얼마나 힘든지, 오랜 투병생활에 가족들이 얼마나 지칠지 짐작이 되기에 모녀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서로가 서로의 감옥이 되어 옥죄는 삶을 살던 모녀. 젊은 딸은 이러한 삶이 더 괴롭고 공포스럽게 느껴졌으리라 생각된다. 아버지의 상을 치른 후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엄마의 모습과 그것을 지켜보는 딸. 숨 막히던 삶에서 이제 해방되어 자유롭게 되었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서글픈 삶을 살아가고 각자의 버거움으로 버티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 이야기들이 작은 위로와 공감이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가끔은 유서를 쓰기도 했다. 그렇다고 정말 죽을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죽음에 대한 상상은 권태랄까 나른함이랄까 하는 것들을 잠시 소멸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죽는다고 생각하면 세상은 별것 아닌 것이 돼버리는 까닭이었다.

죽는 이유는 유서를 쓸 때마다 달랐다. 어떤 날은 가난을 견딜 수가 없어서 죽고, 어떤 날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서 죽고, 어떤 날은 나를 받아주지 않는 이 사회에 대한 분노를 표시하기 위해서 죽었다. 그리고 대부분은 지루해서 죽었다. 마지막 이유는 언제나 마음에 든다. - P30

왜 아파트에서 살긴요? 그래도 맘만 좀 독하게 먹으면 아파트가 살기는 편해요. 그냥 안에서 문 단단히 걸어 잠그고 누가 와도 나 몰라라 하면 되거든요. 잡상인이 찾아와서 띵동 해도 모르는 척, 부녀회에서 띵동 해도 모르는 척, 관리실에서 띵동 해도 모르는 척. 몇 번만 그렇게 살면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 없어요. 그냥 자기들 관심 밖에 내놓는 거죠. 어쩌다가 모여서 입이 심심하거나 길 가다 우연히 마주치면 우르르 모여서 입을 댓발이나 내밀고 궁시렁거리겠지만, 뭐 섞여 산다고 안 그러겠어요. 사람 사는 데서 말 나오지 어디 딴 데서 나오나요. 살면서 젤 무서운 게 사람이에요. -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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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꾼 미로 온 가족이 함께 읽는 이야기 2
천세진 지음 / 교유서가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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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문화비평가인 천세진 작가의 소설 <이야기꾼 미로>는 한편의 판타지 동화 같은 이야기다.

총 3부로 나누어진 구성으로 1부에서는 다른 세상에서 온 미로를 만나게 된 사건과 이후 홀연히 사라진 미로, 미로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글로 써놓고 여행을 떠난 외삼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2부에서는 외삼촌이 쓴 미로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그리고 3부에서는 호수 세계의 이야기를 맺으며 소감과 함께 마무리 짓고 있다.


"꽃들의 숨안개를 만나기는 어렵지. 무척이나 어렵지만, 그렇다고 만날 수 없는 건 아니야."

"꽃들의 숨안개를 만나면 무슨 일이 생기나요?"

"당연히 생기지. 꽃들의 숨안개를 지나면, '그리움거울 호수'로 가는 길이 열리는데, 나는 그 길도 걸어보았지. 모든 이야기꾼에게 허락되는 건 아니지만, 나는 운좋게도 꽃들의 숨안개를 지나 그리움거울 호수에 갈 수 있었지. 그곳에서 내가 보고 싶었던 걸 보았어. 만났다고 말하는 게 맞겠지."

"그리움거울 호수에서 무엇을 만났는데요?"

"그리움거울 호수에서 만날 수 있는 건 사랑하는 존재야. 그게 꽃들의 숨안개가 허락하는 비밀이야."

"그럼...... 꽃들의 숨안개를 지나면, 그리움거울 호수에 가면...... 엄마를 만날 수 있어요?"

"있지! 너에게서 이야기가 꽃처럼 피어난다면!"

p. 46~47


어쩌면 <이야기꾼 미로>의 탄생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엄마를 잃은 슬픔은 엄마를 잃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엄마를 잃은 아이는 그리움과 슬픔에 울고 또 울었다. 아이의 눈물은 눈물호수를 넘쳐흐르게 하고 아이 울음소리가 함께 넘쳐 구불구불 이어진 마을 골목마다 울음으로 가득 찼다. 호수가 범람하고 마을이 침수될 위기에 몰린 정도의 슬픔. 그것이 엄마를 잃은 아이의 슬픔의 무게이자 슬픔의 깊이일 것이다. 마을이 아이의 눈물로 침수될 상황에서 이야기꾼이 건넨 이야기가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했다. 엄마를 만날 수 있다는 말에 아이는 이야기꾼과 함께 먼 여행을 떠나게 되고 그것이 바로 <이야기꾼 미로>의 중심 내용이 된다.

미로야, 살아 있는 모든 건 이야기를 갖고 있어. 죽은 것으로 보이는 것도 이야기를 갖고 있지. 세상에 죽은 것은 단 하나도 없어. 사람들 눈에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야. 그리고 세상에는 아주 많은 말이 있다는 것 정도는 너도 알고 있겠지?

p. 50-51


열한 살의 미로는 이야기꾼 구루 할아버지와 크고 작은 호수마을들을 둘러보기 위해 여행을 떠나게 된다. 이야기꾼 할아버지와 나누는 이야기를 통해 미로는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 잔잔하면서도 술술 읽히는 이야기는 시인의 감성으로 그려진 아름다운 호수마을의 풍경들과 어우러져 평화로운 마음으로 미로와 함께 여행하는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우리가 사는 세계와 전혀 다른 세상 속에 살아가고 있는 호수마을 사람들. 그리고 미로와 구루 할아버지가 만나는 호수 세계 이야기는 딴 세상 속 이야기 같지만 다름 속에서도 우리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들을 발견하게 된다. 사단의 모습을 통해 세상은 어디서든 악이 존재하고 양면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니?"

"나무 이름들이요! 밤나무하고 나도밤나무, 너도밤나무가 서로를 소개한다면 웃기는 대화가 이어질 거 같아요. 밤나무가 '나는 밤나무다!'라고 말하면, 나도밤나무가 분명히 '나도밤나무다!'라고 말할 테고, 밤나무가 자기하고 모습이 다른 나무가 '나도밤나무'라고 하는 말을 듣고 기가 막혀서 '너도밤나무라고?'하며 물을 거 아니에요. 그러면 그 옆의 나무가 '그래 너도밤나무다!'라고 대답을 하며 끼어들 거고, 그러면 세 나무가 말다툼을 벌일 거 아니에요. 그러다가 셋 중의 어느 나무가 '먼 나무야, 대체 이 나무는?'하고 말을 하면 이번에는 '먼나무'하고 '이나무'가 끼어들어, '밤나무면 밤나무지 왜 너도나도 밤나무라고 난리들이야, 밤나무들은 너도나도 꽝꽝 막혔어'라고 할 거고, 그러면 옆에서 가만히 구경하던 꽝꽝나무가 어안이 벙벙해져서 왜 자기를 물고 늘어지냐고 그럴 거고, 점점 더 난장판이 되는 장면이 떠올라요!"

p. 140 ~141


이 장면이 참 인상적이었다. 작가는 이름을 일일이 붙여가며 언급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나무의 이름에서도 재미난 이야기를 상상하며 풀어놓듯 호수 마을마다 아름다운 이름들이 참 인상적이다. 마을, 나무, 호수, 버섯 등 수많은 사물에 이름을 붙여 저마다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또한 이름은 아무렇게나 붙이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부족한 것보다 넘치는 것이 더 위험하다고 이야기하는 내용은 부족함이 없이 넘쳐나는 세상 속에 살아가는 현실을 꼬집는 듯, 공감과 반성하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이야기꾼 할아버지와 여행을 하면서 미로는 이야기꾼이 되기로 결심을 한다. 그리움거울 호수에서 그토록 그립던 엄마를 만난 미로.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이 영원할 수 없지만 이곳에서 언제나 기다리고 있다는 말에 이별의 슬픔을 딛고 나아가게 된다. 그리움거울 호수의 이야기와 소금기억 호수의 이야기가 특히 아름답고 인상적이었다.



미로는 여행을 통해 한층 더 성장하고 삶에 대해 많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두 사람. 두 사람이 이야기꾼의 집이 보이는 언덕에 도착했을 때 서산으로 넘어가는 태양의 기운, 마을 여기저기 저녁 불빛이 밝혀지고 집집 굴뚝마다 저녁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풍경, 골목 어귀에서 아직도 놀고 있는 아이들의 목소리와 '밥 먹게 들어와~'하는 엄마의 소리에 후다닥 집으로 뛰어 들어가는 아이들의 소리.

마지막 장면들은 마치 영화처럼, 장면 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들이었다. 어릴 적 어디선가 경험했던, 실제 만났던 그 풍경들을 작가가 그대로 글로 옮겨놓은 듯한 내용이 그때의 추억과 함께 가슴 뭉클함을 전해주기도 했다.





참 따스한 이야기다. 잔잔한 호수에 물결이 이는 파문 같은 감동이 여운을 남기는 소설이다. 시인의 감성으로 써서 그런지 책의 문장과 내용이 너무 아름답고 아름다움 속에 삶의 지혜와 작가가 전하고픈 메시지가 곳곳에 묻어나서 이 또한 좋았다. 엄마를 잃은 열한 살 꼬마 미로는 이야기꾼 할아버지를 따라 떠난 호수 세계 여행을 통해 슬픔을 딛고 일어서게 되고 세상을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 미로 같았던 미로의 삶이 여행을 계기로 삶의 방향성을 찾게 된달까. 책을 읽고 나니 문득 <모모>도 생각나고 정채봉 시인의 시도 생각나게 된다.

살아 있는 모든 건 이야기를 갖고 있는 것처럼 미로가 들려준 이야기 말고 이젠 나만의 이야기를, 우리들이 이야기를 써 내려가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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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아직은 봄밤 - 교유서가 소설
황시운 지음 / 교유서가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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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는 일상에서 대화를 하거나 글을 쓸 때 흔히 쓰이는 부사다. 자연스럽게, 무심코 쓰던 '그래도'가 나에게 조금 특별하고 그래도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보게 된 계기가 있었다. 초창기 블로그로 소통을 하던 한 이웃의 닉네임이 그래도였다. 저마다 닉네임에는 의미가 있는데 왜 하필 '그래도'일까... 궁금하기도 했었는데 그녀의 가슴 아픈 사연, 절망 속 고통의 삶을 알게 되었고 긴 터널 같았던 아픔의 시간들을 간접적으로 느끼며 '그래도'의 의미를 오래오래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녀의 아픔과 그녀의 절망과 그녀가 견뎌온 시간들의 무게가 얼마일지 감히 가늠하지 못하지만 어렴풋 느끼며 '그래도'는 여전히 나에게 가슴 아픔과 고통, 절망을 내포하고 있으면서도 희망을 품고 있는 부사로 남아있다.

등단 14년 만에 나온 황시운 작가의 소설집 <그래도, 아직은 봄밤>은 제목부터가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9편의 단편소설로 이루어진 <그래도, 아직은 봄밤>은 나의 기대와 예측과 달라 적잖이 충격적인 책이었다.

첫 번째 이야기 <매듭>에서부터 심상치 않았다. 펄펄 끓는 육수 속에 던져지는 낙지를 보며 고통과 통증, 삶과 죽음을 이야기한다. 결혼한 지 3개월 만에 남편 윤은 사고로 전신마비가 되어버린다. 헤어지자는 남자와 헤어질 수 없다는 여자. 그 이후부터 서로에게 지옥 같은 날들이 이어진다.

"내게서 벗어나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니? 하긴, 옆에 들러붙어서 매 순간 비참한 현실을 일깨워주는 내가 끔찍했을 거야. 무슨 짓이든 하고 싶었겠지. 하지만 넌, 네가 매듭 따위, 끝내 묶지 못할 거라는 거 알고 있었어. 그러니까 결국, 그 매듭을 내 손으로 묶게 할 생각이었던 거야, 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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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루에 낙지 대가리를 몇 개나 자르는지 알아? 손목이 시큰대고 손가락에 물집이 잡히도록 낙지 대가리를 자르면서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당신은 모르지?"

.

"우리가 놓쳐버린 미래를 생각해. 우리가 지워버린 과거를 생각하고 대책 없이 무너져내리고 있는 현실을 생각해. 당신은 왜 나아지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을까 생각해. 나는 왜 그때 도망치지 않았나 생각하고 당신은 왜 더 적극적으로 나를 밀어내지 않았는지 생각하기도 해. 다 까먹어버린 보증금을 생각하고 그 보증금을 마련하기 위해 받은 대출을 생각해. 밀린 이자와 하루 열두 시간씩 낙지 대가리를 잘라도 갚을 수 없을 원금을 생각해. 낙지 대가리 자르듯 당신 모가지를 잘라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차라리 내 모가지를 자르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을 해. 그런 생각들을 해. 나는."

p. 33-34



어떻게 이렇게 지독하고 처절하게 두 사람의 감정을 표현했을까. 솔직히 처음부터 너무 힘들었다.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고 탈출구 없는 아득한 심연 속으로 함께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어서 책을 다 읽을 수 있을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가끔 책을 읽다 보면 너무 힘든 책들이 있다. 그리고 잔상이 오래도록 떠나지 않고 남는 경우도 삶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조금 버거운 경우가 있는데 첫 이야기 <매듭>에서 덜컥 겁이 날 정도였다. 어떻게 작가는 이런 생각을, 이런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가 있을까... 싶을 만큼.

죽을 만큼 힘듦 속에서 안간힘을 쓰는 삶이 처절하다 못해 가슴을 후벼파고 드는 이야기들. 상처 난 부위에 소금을 마구 뿌려대는 듯한 이야기들이 깊은 통증을 느끼게 했다.

<어떤 이별>은 어쩌면 가장 상처를 후벼파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짧은 단편이지만 한편씩 읽어나가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떤 이별>에서는 3명의 여성이 나온다. 각자의 지옥 속에 사는 여인들의 삶을 보면서 삶이란 무엇일까... 그래도 살아가야 하는 것이 삶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가정폭력, 장애인, 고독사, 성매매, 학교폭력, 가출 등 사회적 문제들을 이야기 곳곳에서 만나게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과 사건들이지만 외면하고 싶고 관심을 두지 않는 사회의 아주 어두운 불편한 진실들을 드러내고 있을까. 내가 잊고 있었던 세상, 내가 몰랐던 세상을 책을 통해 경험하게 하는데 지독하고 숨 막힐 정도로 집요하다. 믿기지 않지만 세상엔 이런 삶도, 이런 사람들도 있구나.



모든 내용을 다 읽고 나니 내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평화롭고 행복한지 새삼 느끼게 만들었다.

내 삶은 이리도 평온한데 타인의 지옥 같은 삶을 들여다보고 나니 삶의 애착과 감사 그리고 미안한 마음까지 들 지경이다.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는지 황시운 작가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마지막 작가의 말이 없었다면 그저 끝도 없이 추락하는 삶의 그 끝을 보여주는 지독한 소설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작가의 말을 읽고는 지금껏 이야기 속의 죽을 만큼 힘들고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쓴 이야기들이 작가 본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절로 눈물을 쏟고 말았다. 너무너무 가슴 아픈 소설 속 이야기들이 황시운 작가가 절망의 바닥에서 살기 위해 건져 올린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들자 너무나 아팠다.

작가의 경험, 감정들이 이야기 속 곳곳에 녹아 있음을 작가의 말을 통해 뒤늦게 알 수 있었다. 야간산행을 갔다가 불의의 사고로 추락하여 하반신 마비가 되어버린 작가. 수시로 밀려오는 통증 속에서 매일매일 죽고 싶은 생각을 하면서도 그래도 삶을 이어가며 써 내려간 이야기들. 죽을 만큼 아프고 고통스러운 날들 속에서 그래도, 아직은 봄밤이라고 이야기하는 작가.

눈물겹다.

삶의 절망에서 끝내 살아남아 삶을 이야기하는 황시운 작가의 조금 남다른 삶의 이야기를 여러분들도 꼭 만나보길 바란다.

지금 삶이 힘겹고 '왜 나에게만 이런 시련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그래도, 아직은 봄밤"이라고 황시운 작가는 위로를 건넨다.

작가의 사연과 9편의 이야기들을 다 읽고 나면 <그래도, 아직은 봄밤>이라는 제목이 더 크게 눈물겹고 감동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래도"가 가지는 힘은 참 대단한 거 같다.

책을 읽은 지 한참 되었지만 쉽사리 서평을 할 수가 없었다. 작가의 삶의 무게가, 고통이 얼마나 큰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고 가늠할 수도 없었기에 감히 무어라 글을 쓰겠나 싶어 오래 망설였던 거 같다.

조금 다른 감동이지만 굉장한 작가를 만났다.


K는 남편의 죽음을 목격한 후부터 밤에는 잠을 잘 수가 없게 되었다고 했다. 날이 훤히 밝아온 뒤에야 가까스로 아주 잠깐 잠들 수 있을 뿐이라면서, 남편이 밤이 아닌 낮에 죽었더라면 지금보다는 나았을 거라는 말도 했다. 그때 나는 그런 끔찍한 말을 그토록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그녀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도 같았다. 방향을 잃은 분노는 아무런 힘이 없다는 것을. - P104

돌연히 찾아오는 것들은 하나같이 고독하기 짝이 없다. 아내와의 만남이 그랬고 이별 역시 그러했다. 그것들 앞에서 나는 매번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만은 달라야 했다. 돌연히 찾아올 마지막 순간을 위해서라도 아직은 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더이상 손 쓸 수 없을 만큼 틈이 벌어지기 전에 금간 벽을 손봐야 했다. 고개를 수그리고 가슴을 누르며 크게 심호흡했다. 세차게 뛰던 가슴이 진정되면서 차츰 시야도 맑아졌다. 저만치 버스정류장으로 들어오고 있는 버스가 보였다. 어쩐지 이번만은 버스를 놓쳐선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어디로 가야 할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나는 무턱대고 뛰기 시작했다. -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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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만은 공중부양 - 오늘도 수고해준 고마운 내 마음에게
정미령 지음 / 싱긋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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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고 물속을 유영하듯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마흔을 맞은, 그림 그리고 글 쓰는 정미령 작가. <마음만은 공중부양>은 불혹의 나이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떻게 사는 것이 평범하게 사는 것인지 스스로 고민하며 자신의 감정에 집중하며 해결 방안을 찾아가는 솔직한 에세이다.


그녀는 40대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뭔가를 포기하기에는 이르고

나아가기에는 두렵고

살아온 건 지치는 나이.




작가는 책에서 자신을 무리씨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책 중간중간에 그림을 곁들여 이야기를 더욱 재미있게 만들기도 하고 중간중간 휴식 같은 여유를 제공하기도 한다.




마치 40대를 맞기까지의 과거에서 현재까지의 기록을 보는 느낌이었다. 굉장히 솔직하고 담백하게 풀어낸 이야기는 마치 작가의 일기를 훔쳐보는 기분이랄까... 조금도 포장하지 않고 자신의 속내와 감정에 솔직한 내용들이 공감되었고 읽다 보면 내 이야기 같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우리는 누구나 멋지게 살아가고 싶은 꿈을 꾸지만 현실은 생계를 걱정해야 하고 매달 카드값을 걱정하며 살아가고 있다. 작가의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는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고 우리 모두는 또 다른 무리씨라는 생각이 들었다.

맨날 부딪치고 맨날 흘리고 걸리는 덤벙대는 자신을 보면서 스스로를 향한 타박을 멈추고 '똑 부러지고 완벽한 것보다는 조금 비어 보이더라도 무르고 부드러운 게 좀더 좋더라~'며 긍정하는 모습에서, 욕심부린다고 나아질 것 없다며 느려도 괜찮다고 다독이는 모습에서, 비록 일하지 않아 돈은 부족하지만 시간 부자라고 말하는 작가를 보면서 공감과 동시에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것에 동질감? 같은 걸 느꼈다.

아마도 어떤 이들은 이 글을 읽으며 이와 반대로 살기에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로와 다독임으로 느껴지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의 짝꿍과의 첫 만남 에피소드는 무척이나 웃겼다. 허당미 넘치는 작가의 모습이라니... 뭔가 인간적이고 친근한 캐릭터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의 진솔한 이야기가 더 깊이 마음을 파고들고 차마 내가 하지 못했던 말들, 차마 내가 표현하지 못했던 것들을 대변해 주는 듯하기에 '나만 그런 게 아니야'라는 생각과 함께 그 글들이 위로가 되고 용기를 전해준다. 또한 책을 읽는 동안 '나'에 대해 더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




항상 완벽해야 하고 남들보다 뛰어나야 하고 세상의 흐름 속에 뒤처지지 않고 살아가야 한다는 강박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작가는 느려도 괜찮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살아도 괜찮다고 말한다. 남들처럼 똑같이 살아가지 않아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만의 속도로 자신을 소중히 여기며 자신의 인생에 답을 찾아가며 몸은 현실에 묶여 있을지라도 마음만은 공중부양하며 가볍게 살아가자 말한다.

어차피 인생은 정해진 답도 없고 스스로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결정되고 수많은 선택을 통해 인생이 만들어져가는 것이기에 오늘의 나는 잘 살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문득 돌아보게 된다.

진솔하면서도 담담하게 풀어놓는 작가의 이야기가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따뜻한 격려와 위로를 주기에 충분하다.




괜찮다 괜찮다 스스로 되뇌어보면서도

작은 파동에도 흔들리는 나를 보곤 하다.



그랬다.

어쩌면 괜찮다 하면서도 괜찮지 않았고

괜찮지 않다 하면서도 괜찮았다.

내 안의 여러 모습과 생각들이 어떤 순서로 드러나는지

알 수가 없다.

유연한 물과 같이 흐르고 싶은데

그 속에는 언제나 흔들리는 모습이 비칠 뿐이다.

심술이 난다.

흔들리는 나를 보며 짓궂게 물을 튕겨본다.

삶에 초연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내가 싫다.

가끔은 그렇게 굳이 파동을 일으켜가며

스스로에게 심술을 부려본다. -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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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리바의 집 히가 자매 시리즈
사와무라 이치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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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도 추리, 스릴러 소설을 좋아하지만 특히 여름철에는 책 속에 푹 빠져들기 좋은 책이라 흥미진진한 추리소설이나 심리 스릴러, 호러소설 등을 즐겨 읽는다. 아르테에서 이번 여름을 책임져줄 공포소설이 나왔다. 사와무라 이치의 <시시리바의 집>이다. 일본 호러소설 작가로 기억하는 "사와무라 이치"는 <보기왕이 온다>가 참 인상적이어서 그의 신간 소식이 반가웠다. <보기왕이 온다>는 읽고 아이들에게도 읽어보라고 권해주었고 아이들도 읽었던 (만화책으로도 읽음) 책이라 그 작가의 책이 새로 나왔다고 하자 아이들도 반기는 모습이었고 무슨 내용인지 궁금해서 물어보기도 했다. 기괴하면서도 오싹한 공포를 느끼게 만드는 호러소설이나 공포영화들은 여름날에도 소름 돋게 만드는 오싹함을 전함으로 무더위를 한방에 날리게 만드는 서늘한 위력은 선사한다. <보기왕이 온다>에서 디테일한 묘사 덕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에 대한 상상력이 어우러져 진짜 몰입하면서 책을 읽게 만들었기에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영화로 제작되었다는데 나는 아직 영화는 보지 못했다. 주말쯤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이 봐야겠다.


이번 <시시리바의 집>은 제목에서 약간 느낌이 오겠지만 집에 관한 이야기다. 어릴 적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귀신을 보게 된 이야기를 시작으로 이상한 집에 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곳에 살던 친구와 가족은 어느 날 야반도주를 했고 비어있는 그 집에는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 집에 들어가면 저주를 받아 머리가 이상해진다고.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귀신을 본 '나'는 그날 이후로 진짜 이상해지기 시작한다.

위 내용의 프롤로그를 시작으로 새로운 이야기들이 1장부터 펼쳐진다. 결혼 후 지방에서 살다가 남편의 본사 발령으로 인해 도쿄에서 생활하며 살림만 하고 있는 가호와 쉴 틈 없이 업무로 바빠 늦은 퇴근이 일상이 되어버린 유다이 부부의 모습이 그려진다.

남편은 직장 일로 바빠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없어지자 가족도 아는 사람도 없이 오로지 남편만 의지한 채 도쿄에서 생활하는 가호는 점점 외로움과 고립된 느낌을 갖게 된다. 그런 상황에 처해있는 가호는 우연히 고향 친구 도시를 만나게 된다. 누군가와 소통이 필요했던 가호에게 고향 친구 도시는 삶의 활력소가 된다.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어릴 적 친구이자 종종 집에 놀러 갔을 때 반겨주었던 할머니도 계시다고 하여 가호는 도시 집에 가게 된다. 하지만 그 집은 이상하게도 집 곳곳에 모래가 있고 그의 아내는 생기가 없어 보이는 데다 어릴 적 반겨주시던 할머니는 치매를 앓고 있고 알아볼 수 없는 상태였다. 뭔가 이상한 기운을 느낀 가호는 이후 그 집에는 가지 않으려 하지만 계속 그 집에 발을 들이게 되면서 걷잡을 수없이 휘말리게 된다.

온통 모래가 가득하고 이상한 소리가 나지만 정작 살고 있는 친구 도시는 아무렇지도 않아 한다. 그 집에 발을 디디면서 점점 밝혀지는 비밀과 프롤로그에서 나왔던 어릴 적 그 집에 갔다가 점점 이상하게 되었다는 '나'의 이야기가 맞물리면서 그 집에 대한 비밀을 파헤치면서 그 집의 수호신이라 불리는 "시시리바"의 정체를 알아내게 된다. 그리고 옛 친구 히가와 함께 시시리바를 봉인하기 위한 목숨을 건 사투가 벌어진다.

책을 펼치자 놓을 수 없게 책 내용에 빠져들었다. 단숨에 읽었다. 흥미롭고 오싹하며 <보기왕이 온다>에서처럼 기괴함도 있다.

하지만 마지막 결말에 가서는 단순히 오싹한 공포만 느끼게 하는 공포소설이 아닌, 여운을 남긴다. <보기왕이 온다>에서도 가정이라는 것, 가족이라는 것, 의미를 되새겨보게 만들더니 공포라는 장르를 통해서 이번에도 가족의 의미와 여성의 외로움과 쓸쓸함에 대해 돌아보게 하고 가족이지만 그 안에 숨겨진 슬픔과 아픔을 돌아보게 하는 소설이었다.

또한 <보기왕이 온다>에서 등장한 영매사 히가가 어떻게 영매사가 되었는지, 히가에 대한 어린시절 이야기가 더해져 더 흥미로웠다.

호러소설 좋아하는 이라면 재미나게 읽을 수 있을 책이다. 또한 단순히 무섭고 오싹한 느낌만이 아니라 작가가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가족 이야기에 공포를 더한 일본 소설이랄까.



우리는 거의 대화를 하지 않게 되었다. 한밤중에 집에 온 유다이는 항상 시든 배추처럼 축 늘어졌고,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밥을 차리고 배웅한다. 한밤중에 집에 온 그에게 수고했다고 말한다. 그것 말고는 대부분 문자 메시지로 연락하고, 가끔 잡담 같은 이야기를 하는 날이 이어졌다.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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