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꾼 미로 온 가족이 함께 읽는 이야기 2
천세진 지음 / 교유서가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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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문화비평가인 천세진 작가의 소설 <이야기꾼 미로>는 한편의 판타지 동화 같은 이야기다.

총 3부로 나누어진 구성으로 1부에서는 다른 세상에서 온 미로를 만나게 된 사건과 이후 홀연히 사라진 미로, 미로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글로 써놓고 여행을 떠난 외삼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2부에서는 외삼촌이 쓴 미로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그리고 3부에서는 호수 세계의 이야기를 맺으며 소감과 함께 마무리 짓고 있다.


"꽃들의 숨안개를 만나기는 어렵지. 무척이나 어렵지만, 그렇다고 만날 수 없는 건 아니야."

"꽃들의 숨안개를 만나면 무슨 일이 생기나요?"

"당연히 생기지. 꽃들의 숨안개를 지나면, '그리움거울 호수'로 가는 길이 열리는데, 나는 그 길도 걸어보았지. 모든 이야기꾼에게 허락되는 건 아니지만, 나는 운좋게도 꽃들의 숨안개를 지나 그리움거울 호수에 갈 수 있었지. 그곳에서 내가 보고 싶었던 걸 보았어. 만났다고 말하는 게 맞겠지."

"그리움거울 호수에서 무엇을 만났는데요?"

"그리움거울 호수에서 만날 수 있는 건 사랑하는 존재야. 그게 꽃들의 숨안개가 허락하는 비밀이야."

"그럼...... 꽃들의 숨안개를 지나면, 그리움거울 호수에 가면...... 엄마를 만날 수 있어요?"

"있지! 너에게서 이야기가 꽃처럼 피어난다면!"

p. 46~47


어쩌면 <이야기꾼 미로>의 탄생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엄마를 잃은 슬픔은 엄마를 잃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엄마를 잃은 아이는 그리움과 슬픔에 울고 또 울었다. 아이의 눈물은 눈물호수를 넘쳐흐르게 하고 아이 울음소리가 함께 넘쳐 구불구불 이어진 마을 골목마다 울음으로 가득 찼다. 호수가 범람하고 마을이 침수될 위기에 몰린 정도의 슬픔. 그것이 엄마를 잃은 아이의 슬픔의 무게이자 슬픔의 깊이일 것이다. 마을이 아이의 눈물로 침수될 상황에서 이야기꾼이 건넨 이야기가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했다. 엄마를 만날 수 있다는 말에 아이는 이야기꾼과 함께 먼 여행을 떠나게 되고 그것이 바로 <이야기꾼 미로>의 중심 내용이 된다.

미로야, 살아 있는 모든 건 이야기를 갖고 있어. 죽은 것으로 보이는 것도 이야기를 갖고 있지. 세상에 죽은 것은 단 하나도 없어. 사람들 눈에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야. 그리고 세상에는 아주 많은 말이 있다는 것 정도는 너도 알고 있겠지?

p. 50-51


열한 살의 미로는 이야기꾼 구루 할아버지와 크고 작은 호수마을들을 둘러보기 위해 여행을 떠나게 된다. 이야기꾼 할아버지와 나누는 이야기를 통해 미로는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 잔잔하면서도 술술 읽히는 이야기는 시인의 감성으로 그려진 아름다운 호수마을의 풍경들과 어우러져 평화로운 마음으로 미로와 함께 여행하는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우리가 사는 세계와 전혀 다른 세상 속에 살아가고 있는 호수마을 사람들. 그리고 미로와 구루 할아버지가 만나는 호수 세계 이야기는 딴 세상 속 이야기 같지만 다름 속에서도 우리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들을 발견하게 된다. 사단의 모습을 통해 세상은 어디서든 악이 존재하고 양면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니?"

"나무 이름들이요! 밤나무하고 나도밤나무, 너도밤나무가 서로를 소개한다면 웃기는 대화가 이어질 거 같아요. 밤나무가 '나는 밤나무다!'라고 말하면, 나도밤나무가 분명히 '나도밤나무다!'라고 말할 테고, 밤나무가 자기하고 모습이 다른 나무가 '나도밤나무'라고 하는 말을 듣고 기가 막혀서 '너도밤나무라고?'하며 물을 거 아니에요. 그러면 그 옆의 나무가 '그래 너도밤나무다!'라고 대답을 하며 끼어들 거고, 그러면 세 나무가 말다툼을 벌일 거 아니에요. 그러다가 셋 중의 어느 나무가 '먼 나무야, 대체 이 나무는?'하고 말을 하면 이번에는 '먼나무'하고 '이나무'가 끼어들어, '밤나무면 밤나무지 왜 너도나도 밤나무라고 난리들이야, 밤나무들은 너도나도 꽝꽝 막혔어'라고 할 거고, 그러면 옆에서 가만히 구경하던 꽝꽝나무가 어안이 벙벙해져서 왜 자기를 물고 늘어지냐고 그럴 거고, 점점 더 난장판이 되는 장면이 떠올라요!"

p. 140 ~141


이 장면이 참 인상적이었다. 작가는 이름을 일일이 붙여가며 언급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나무의 이름에서도 재미난 이야기를 상상하며 풀어놓듯 호수 마을마다 아름다운 이름들이 참 인상적이다. 마을, 나무, 호수, 버섯 등 수많은 사물에 이름을 붙여 저마다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또한 이름은 아무렇게나 붙이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부족한 것보다 넘치는 것이 더 위험하다고 이야기하는 내용은 부족함이 없이 넘쳐나는 세상 속에 살아가는 현실을 꼬집는 듯, 공감과 반성하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이야기꾼 할아버지와 여행을 하면서 미로는 이야기꾼이 되기로 결심을 한다. 그리움거울 호수에서 그토록 그립던 엄마를 만난 미로.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이 영원할 수 없지만 이곳에서 언제나 기다리고 있다는 말에 이별의 슬픔을 딛고 나아가게 된다. 그리움거울 호수의 이야기와 소금기억 호수의 이야기가 특히 아름답고 인상적이었다.



미로는 여행을 통해 한층 더 성장하고 삶에 대해 많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두 사람. 두 사람이 이야기꾼의 집이 보이는 언덕에 도착했을 때 서산으로 넘어가는 태양의 기운, 마을 여기저기 저녁 불빛이 밝혀지고 집집 굴뚝마다 저녁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풍경, 골목 어귀에서 아직도 놀고 있는 아이들의 목소리와 '밥 먹게 들어와~'하는 엄마의 소리에 후다닥 집으로 뛰어 들어가는 아이들의 소리.

마지막 장면들은 마치 영화처럼, 장면 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들이었다. 어릴 적 어디선가 경험했던, 실제 만났던 그 풍경들을 작가가 그대로 글로 옮겨놓은 듯한 내용이 그때의 추억과 함께 가슴 뭉클함을 전해주기도 했다.





참 따스한 이야기다. 잔잔한 호수에 물결이 이는 파문 같은 감동이 여운을 남기는 소설이다. 시인의 감성으로 써서 그런지 책의 문장과 내용이 너무 아름답고 아름다움 속에 삶의 지혜와 작가가 전하고픈 메시지가 곳곳에 묻어나서 이 또한 좋았다. 엄마를 잃은 열한 살 꼬마 미로는 이야기꾼 할아버지를 따라 떠난 호수 세계 여행을 통해 슬픔을 딛고 일어서게 되고 세상을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 미로 같았던 미로의 삶이 여행을 계기로 삶의 방향성을 찾게 된달까. 책을 읽고 나니 문득 <모모>도 생각나고 정채봉 시인의 시도 생각나게 된다.

살아 있는 모든 건 이야기를 갖고 있는 것처럼 미로가 들려준 이야기 말고 이젠 나만의 이야기를, 우리들이 이야기를 써 내려가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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