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을과 두 갈래 길을 지나는 방법에 대하여 - 교유서가 소설
한지혜 지음 / 교유서가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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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혜 작가의 이번 소설집 <한 마을과 두 갈래 길을 지나는 방법에 대하여>는 신춘문예 등단 후 7년간 발표한 소설들을 묶어서 낸 <안녕, 레나>의 개정판이다.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20년도 전에 쓴 소설을 다시 꺼내 읽고 당대의 시대성을 반영할 수 있도록 적당히 수정된 결과물이다.

총 9개의 소설이 등장하는데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작품을 꼽자면 <자전거 타는 여자>와 <사루비아>와 <호출, 1995>였다.

짧은 9편의 단편소설이지만 하나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흐름은 소외되고 힘들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야기라는 점이다. 대학을 나와도 여전히 취업이 힘들어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는 청춘의 삶은 글을 쓴 그때나 지금이나 더 나아진 것도 없다. 마찬가지로 내 집 마련의 꿈을 꿔 보기도 전에 포기해야 하는 현실은 말할 것도 없다.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가난하고 여전히 버겁게 살아가는 인생들의 이야기가 쓸쓸함으로 다가온다.

 

서른두번이나 이력서를 냈지만 자신을 원하는 곳이 없어 마치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한 나,

교수직을 퇴임하면 여행이다 즐기며 살겠다던 남자는 갑자기 쓰러져 꿈꿔온 인생을 펼쳐보기도 전에 죽음의 문턱에 임한다.

<외출>

임대 아파트 입주와 내 집 마련의 꿈을 여전히 꾸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아파트로 사람의 등급을 나누는 문화.

<이사>

사람에게 받은 상처와 아픔을 아파트라는 공간 안에서 식물을 키우며 위로받는 여자.

<사루비아>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자신의 박복한 인생을 해학적으로 이야기하는 여자.

<목포행 완행열차>

자살을 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

<햇빛 밝은>

식물인간이 된 아버지를 좁은 집에서 돌보는 모녀

<자전거 타는 여자>

<한 마을과 두 갈래 길을 지나는 방법에 대하여>에서는 우리의 삶에서 어딘가에 흔하게 존재할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담아내고 있다.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아버지. 엄마와 딸은 언제 돌아가실지도 모를 아버지를 돌아가며 간병하게 되고 행여 엄마가, 딸이 간병 일이 지쳐 도망가지 않을까 서로를 의심하게 된다. 간병 일이 얼마나 힘든지, 오랜 투병생활에 가족들이 얼마나 지칠지 짐작이 되기에 모녀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서로가 서로의 감옥이 되어 옥죄는 삶을 살던 모녀. 젊은 딸은 이러한 삶이 더 괴롭고 공포스럽게 느껴졌으리라 생각된다. 아버지의 상을 치른 후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엄마의 모습과 그것을 지켜보는 딸. 숨 막히던 삶에서 이제 해방되어 자유롭게 되었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서글픈 삶을 살아가고 각자의 버거움으로 버티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 이야기들이 작은 위로와 공감이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가끔은 유서를 쓰기도 했다. 그렇다고 정말 죽을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죽음에 대한 상상은 권태랄까 나른함이랄까 하는 것들을 잠시 소멸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죽는다고 생각하면 세상은 별것 아닌 것이 돼버리는 까닭이었다.

죽는 이유는 유서를 쓸 때마다 달랐다. 어떤 날은 가난을 견딜 수가 없어서 죽고, 어떤 날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서 죽고, 어떤 날은 나를 받아주지 않는 이 사회에 대한 분노를 표시하기 위해서 죽었다. 그리고 대부분은 지루해서 죽었다. 마지막 이유는 언제나 마음에 든다. - P30

왜 아파트에서 살긴요? 그래도 맘만 좀 독하게 먹으면 아파트가 살기는 편해요. 그냥 안에서 문 단단히 걸어 잠그고 누가 와도 나 몰라라 하면 되거든요. 잡상인이 찾아와서 띵동 해도 모르는 척, 부녀회에서 띵동 해도 모르는 척, 관리실에서 띵동 해도 모르는 척. 몇 번만 그렇게 살면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 없어요. 그냥 자기들 관심 밖에 내놓는 거죠. 어쩌다가 모여서 입이 심심하거나 길 가다 우연히 마주치면 우르르 모여서 입을 댓발이나 내밀고 궁시렁거리겠지만, 뭐 섞여 산다고 안 그러겠어요. 사람 사는 데서 말 나오지 어디 딴 데서 나오나요. 살면서 젤 무서운 게 사람이에요. -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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