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 (라틴어 원전 완역본) - 최상의 공화국 형태와 유토피아라는 새로운 섬에 관하여 현대지성 클래식 33
토머스 모어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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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9. 토머스 모어 『유토피아』 : 현대지성


오늘날 문학이나 영화에선 하나의 장르로도 인정받는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뜻으로 현대에는 ‘이상적 세계’를 의미하는 단어로도 종종 사용된다.

저자 토머스 모어는 헨리 7세의 전제왕권에 대한 반감이 상당했다. 어려서부터 장미전쟁(1455~1485)의 후유증을 온몸으로 겪은 모어는 ‘안정된 국가 권력’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한다.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모어는 전제왕권의 국왕이 전쟁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고 믿었으며, 이러한 불필요한 소모전을 막기 위해서라도 국왕에게 권력이 집중되지 못하도록 견제해야 한다고 믿었다. 한편으로 모어는 전제왕권을 견제하면서도 권력의 존재 자체는 필요하다고 여겼는데, 이는 안정된 정치질서가 유지되기 위한 최소한의 권위라고 생각했다. 그런 토마스 모어가 창조한 『유토피아』는 실제로 일종의 창조적인 정치적, 사회학적 희곡이다. 1516년 간행된 이 책은 장기간에 걸친 일련의 사회비판에 관한 노작의 하나로, 플라톤의 아틀란티스의 신화에서부터 근대 과학소설에 이르는 상상의 국가와 사회의 창조를 위해 만들어진 시도이다. 이러한 장르가 유토피아라고 불리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현대 영미문학의 거장으로 일컫는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나 『증언들』이 전형적인 디스토피아 소설로 꼽힌다면, 그와 정반대로 사회학의 사고실험을 자유롭게 행할 수 있고 스스로 사회를 비판하면서도 허구라는 구실 하에 비난을 면할 수 있는 장점에 더해 사회의 어떤 특징을 끊임없이 염두에 두면서, 다른 특징은 논리적 극단으로 생각하고 그 결과를 의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장르로서의 ‘유토피아’의 목적성은 ‘디스토피아’와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책 속 ‘유토피아’의 사회상을 전달하는 인물 라파엘 히슬로데아우스는 ‘헛소리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유토피아’라는 단어의 의미와 ‘라파엘 히슬로데아우스’의 의미를 살펴보면, ‘어디에도 없는 섬(환상)에 대한 헛소리’를 토머스 모어는 책으로 써낸 것이다. 그리고 저자 스스로 자신의 소설을 ‘헛소리’로 풍자했던 만큼이나 그의 생애 역시 자신이 그려낸 이상적 사회와는 거리가 있었다.

일찍이 『리처드 3세』라는 역사서를 통해 전제 권력의 잔인함을 고발한 모어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유럽 전역의 문제점을 재미있게 풍자하면서, 본인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국가를 그려간다. 그러다 마침내 1516년 라틴어로 쓴 『유토피아』라는 소설을 통해 저자가 생각하는 이상세계를 상세하게 묘사한 것이다. 『유토피아』는 모어가 친하게 지냈던 네덜란드 출신 휴머니스트 에라스무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점에서 대표적인 휴머니즘 문학으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최근 일부 연구자들은 모어의 『유토피아』가 휴머니즘의 영향을 받은 학문적 글이 아니라, 단지 본인의 유머감각을 뽐내기 위한 글이었다는 평가를 내놓기까지 한다. 이유는 10년 가까이 수도사가 되고자 고행의 길을 걸었던 모어가 만난 지 얼마 안 된 17세 소녀와의 결혼으로 성직자의 꿈을 포기하거나, 전제적인 왕권을 부정하면서도 권위에 복종할 줄 아는 소시민성을 갖추고, 한때 종교적 관용을 주장했음에도 직접 개신교도를 잡아들여 집에 가두어버리고, 사형 판결이 두려워 본인의 신념을 포기하면서도 막상 사형을 앞두고서는 농담이나 주고받는 대담함 등이 내포한 그의 이중성과 복잡성이 풍자로 가득했던 저서 『유토피아』만큼 유머러스하기 때문이다.


사회학적 사고실험이라는 말이 다소 어렵게 다가올 수도 있으나 실상 책은유토피아라는 단어에 어울릴 만큼 희곡적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 소설 중에서도 상당히 유머러스한 편에 속하는 『유토피아』는 쉽고 재미있게 읽히면서도, 역설적으로 당시의 사회, 정치, 문화 14세기 반항의 이데올로기로서 종교 정치적 원망, 묵시적이며 구세주적 몽상의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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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인생 - 전혀 다른 시대를 준비하는 새로운 인생 설계 전략
린다 그래튼.앤드루 스콧 지음, 안세민 옮김 / 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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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4. 린다 그래튼 『100세 인생』 : 클


인류는 바야흐로 100세 인생 시대의 서막을 열고 있다. ‘80세 젊은이’라는 농담이 더 이상 농담으로만 들리지 않는 현세대에게 장수는 과연 선물일까, 저주일까. 우리가 이 시기를 제대로 인식한다면 진정한 선물이 되겠지만, 무시하거나 준비하지 않는다면 저주가 될 것이다. 세계화와 기술이 인류의 삶과 일을 변화시켰듯이,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인간의 수명 증가도 그럴 것이다. 오늘날 서구 세계에서 태어난 어린이들이 105세 이상 살 가능성은 50%가 넘는다. 이에 반해, 100년 전에 태어난 어린이들이 이 나이까지 살 가능성은 1%도 채 되지 않았다. 기대 여명은 지난 200년에 걸쳐 10년마다 2년 이상 꾸준히 증가했다. 이는 지금 나이가 20세인 사람이 100세 이상 살 가능성, 40세인 사람이 95세 이상 살 가능성, 60세인 사람이 90세 이상 살 가능성이 50%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가 맞이한 이 이례적인 전환기에서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여전히 현세대는 100세 시대로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점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이러한 선물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을까. 이 책의 저자 린다 그래튼과 앤드루 스콧이 『100세 인생』을 집필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100세 인생을 살아가야 할 현세대에게 삶의 계획을 제대로 세우고 활용함으로써 저주를 선물로 바꾸고, 기회로 가득한 시간들을 보낼 수 있는 방안에 대하여 말한다. 100세 인생에 대한 핵심적인 대책은 시간을 어떻게 구성하여 사용할 것인지로부터 시작한다. 시간 구성에 관한 바로 그 질문이 이 책의 핵심 주제인 것이다. 20세기에는 삶을 3단계로 바라보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었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교육을 받고, 두 번째 단계에서는 직업 활동을 하고, 세 번째 단계에서는 은퇴(퇴직)를 한다. 그런데 기대 여명이 증가했음에도 퇴직 연령은 여전히 60대로 맞추어져 있다. 지금의 우리에게 가장 큰 현실적인 문제는 당장의 경제 흐름이 아닐 수 있다.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퇴직 연령에 들어설 것이다. 그러나 아직 열리지 않은 100세 시대를 앞둔 우리는 퇴직 후의 삶을 계획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시간의 재구성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100년을 살면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얻는다. 이 말은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다. 1주일이 168시간이니, 70년이라는 수명이 다하면 613,200시간을 사는 것이다. 100년이라는 수명이 다하면 876,000시간을 사는 것이다. 우리는 새로 얻은 시간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길어진 삶에서 시간의 구성은 예전과는 다른 배열로 나타날 것이고, 사회 구조의 결과물도 다시 설계될 것이다. 앞으로 열릴 100세 인생 시대에 대한 저자의 관점을 들여다보면 우선 사람들은 70~80세까지 일을 하게 될 것이고, 당연히 수많은 새로운 직업과 기술이 세계를 지배할 것이다. 재정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며, 전환기를 보내는 것이 표준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다단계의 삶으로부터, 새로운 단계가 등장할 것이고, 젊음을 더 오랫동안 간직할 것이다. 일과 가정의 관계가 대폭 변화될 것이고, 세대 간의 간극은 더 커져만 갈 것이다.


린다 그래튼, 앤드루 스콧은 저서 100 인생』을 통해 전혀 다른 시대를 준비하는 새로운 인생 설계 전략을 펼친다. 그들이 말하는 인생 설계 전략은 자금의 조달을 시작으로 , 무형 자산, 시나리오, 삶의 단계, 시간, 인간관계 다채로운 관점에서 완전히 새로운 인생관에 대해 말하며 다가올 100 인생을 저주가 아닌 선물이 되기를 바란다. 어쩌면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도 한편으로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100 시대의 청사진을 그리는 일은 우리 모두에게 가장 우선 되어야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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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 The Old Man and the Sea 원서 전문 수록 한정판 새움 세계문학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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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6.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 새움


세상에 산티아고 노인만큼 운이 없는 노인이 또 있을까. 적어도 그가 살아온 마을에서만큼은 가장 운이 없는 노인일지도 모른다고 노인은 생각했다. 어부인 그는 여든 하고도 나흘째 되는 날까지 단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했다. 고기를 잡지 못하면 먹을 것도, 입을 것도, 그러니까 삶을 살아가는 데에 꼭 필요한 그 어느 것도 쉽게 구할 수가 없다. 실은 먹는 것조차 귀찮아 끼니를 거르는 일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커피 한 잔으로 공복 허기를 달래고 배를 타고 나선 노인은 밤하늘에 달이 뜰 때까지 노를 저어 보지만 여전히 고기는 잡히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노인은 팔십오가 행운의 숫자라 떠들며 오늘이 되길 기다린다.


드디어 여든 나흘째가 지나고 노인은 기쁜 마음으로 내일을 준비하며 잠이 든다. 보통의 날들보다 더 일찍 새벽을 맞는 노인은 여든 닷새가 된 오늘의 희망을 가슴에 안고 다시금 배에 오른다. 하루 반나절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던 낚싯줄이 움직이자 노인은 다급했다. 이 녀석은 지금까지 노인이 만나온 그 어떤 녀석보다 크고 아름다운 녀석이 분명했다. 노인은 생각했다. 지금까지 최고로 크고 아름다웠던 400킬로그램이 넘는 그 녀석을 말이다. 지금 것은 족히 그 녀석의 두 배는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노인에겐 희망만큼이나 절망도 가득했다. 노쇠한 지금의 몸으로 과연 이 길고도 지루한 투쟁을 이겨낼 수 있을까.


길 잃은 세대의 대표 작가이며 이제는 영미문학의 상징이 된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특유의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는 하드보일드 문체로 노인이 맞은 여든 닷새째의 하루를 짧고도 강렬하게 그려냈다. 간결하면서도 현실적인 표현 속에는 헤밍웨이의 깊은 메시지가 잘 담겨있고 순간에 대한 서사는 물론, 강건한 문체 속에서도 허무주의를 극복한 인간상과 실존적 투쟁에 대해 섬세하게 묘사한다.

헤밍웨이의 실존주의는 투쟁을 통한 문명인의 의지와 함께 자연과 싸우며 깨닫는 실존적 성찰을 서사의 깊숙한 곳에서부터 점진적으로 표현하는데 단순한 플롯에 장치한 이 실존주의는 특히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초기계 문명과 메커니즘적 조직화로 인하여 개개인의 개성을 잃은 채 집단화되고 소외되어가는 현 상황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미국 문학사에 있어 헤밍웨이만큼 우상적 지위를 누린 작가가 또 있을까. 짙은 주름에 덥수룩한 턱수염, 스웨터와 깊은 눈빛은 독자에게 오히려 그의 수많은 소설보다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영미문학의 상징으로 남았다. 미국 모더니즘의 총아로 떠오르며 20대 시절부터 ‘파파’로 불리던 그가 중년이 되어 술, 질병, 우울증에 노출된 노인으로 전락해 평단에선 헤밍웨이는 작가로서의 수명이 이미 끝났다고 평가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노인과 바다』로 명성을 되찾으며 퓰리처상과 노벨 문학상을 받는다.


안타깝게도 『노인과 바다』를 끝으로 엽총 자살한 헤밍웨이가 소설의 출간 직후 당시 출판사 사장이었던 찰스 스크리브너에게 편지에 이렇게 말한다. “ 소설은 내가 평생 동안 작업해 산문 작품입니다. 쉽고도 단순하게 읽힐 있고 길이가 짧은 같지만 가시적 세계와 인간 영혼 세계의 모든 차원을 담고 있습니다. 지금 현재로서 제가 있는 가장 훌륭한 작품입니다.” 헤밍웨이에 관한 많은 서평과 논평을 읽었음에도 정작 헤밍웨이 자신이 스크리브너에게 전한 문장만큼 완벽한 평은 없었다. ‘가시적 세계와 인간 영혼 세계의 모든 차원 권의 소설에 담은 헤밍웨이에게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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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양장) 새움 세계문학
조지 오웰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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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아홉 살, 오른쪽 발목 위에 정맥류 궤양을 가진 윈스턴 스미스는 도중에 몇 번을 쉬며 자신의 집이 위치한 7층을 향해 계단을 올랐다. 승강기를 이용하면 좋겠지만 최근엔 전류가 아예 차단되어 있었다. 그것은 ‘증오주간’에 대비한 소비 억제 운동의 일환이었다. 사방이 텔레스크린으로 가득했고 오세아니아 사람들은 더 이상 자신이 텔레스크린으로부터 안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윈스턴은 아마도 책장 같은 가구가 들어가 있어야 할 비워진 작은 공간에 탁자를 배치했다. 가끔은 혁명 이전의 삶을 기억하기 위해 애썼고 자신의 생각을 진짜 종이로 된 노트에 옮겨 적기도 했다. 오세아니아, 이스트아시아, 유라시아 삼국은 여전히 타국에 대한 증오로 국민을 선동했다. 전쟁은 끊임이 없었지만 실상 전쟁에서 죽어가는 사람들보다 내부 감시에 의해 숙청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만 같았다. 그것은 죽음이라기보다 사라짐에 가까웠다.

윈스턴은 층계참에 붙은 거대한 포스터를 응시했다. ‘빅 브라더께서 당신을 지켜보고 계신다.’라는 문구가 있었다. 그는 창가로 움직였다. 바깥세상은 닫힌 창유리를 통해서조차, 차가워 보였다. 1킬로미터 밖에 그가 일하는 곳인 ‘진실부’가 음울한 풍경 위로 크고 하얗게 솟구쳐 있었다. 윈스턴이 외부당원으로서 진실부에서 맡은 일은 현재와 과거를 지우거나 또는 바꾸는 일이었다. 그는 보도될 수 있는 모든 자료들이 검열된 채 바꾸어야 할 항목들이 전달되면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로서 현재와 과거를 바꿨다. 그래도 외부당원인 윈스턴의 삶은 비교적 나은 편이다. 그렇지 못한 이들이 훨씬 많은 세상이다. 그럼에도 당에서 결코 용서치 않을 행동들을 그는 쉬엄쉬엄했다. 진짜 종이로 된 노트를 불법적인 경로로 구입하고 일기를 쓴다던가, 당에서 정해주지 않은 여인 줄리아와 밀회를 즐긴다던가 하는 일들 말이다. 행동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지난 7년간 윈스턴을 감시했던 내부당원에 의해 적발된 윈스턴은 기어코 사상개조에 오른다. 그가 죽음을 바랐는지 독자로서 알 길이 없으나, 빅 브라더의 세계에서 죽음은 그다음의 문제다. 그는 더 이상 당원이 아닌 반혁명분자로서 온갖 고문 속에 빅 브라더를 칭송하고 체제에 순응하게 될 것이다.

조지 오웰의 『1984』는 세계 3대 디스토피아 소설로 유명하지만, 한편으로 이것은 미래 예언서에 가까울 만큼 현대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 워낙 좋아하는 소설인데 서평으로는 처음 옮기다 보니 나름의 욕심이 생겨 새롭게 출간한 새움 버전과 민음사 버전 그리고 더스토리 버전을 한 챕터씩 돌아가며 동시에 읽었다. 익숙함 때문인지 민음사 버전이 가장 편하게 읽혔고, 오늘 소개한 새움 버전은 무언가 더 고전적이며 나름의 개성을 안고 있었다. 예를 들어 냉전시대의 분위기라던가 보수적인 분위기에 오히려 더 잘 맞는 느낌이다. 소설을 풍성하게 느끼기 위해 그래픽노블 『조지 오웰』과 동 작가의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도 함께 읽었다.

인간의 품위가 실종되고 서로 간의 유대를 불러오는 감정이 공포로 돌변한 전체주의 사회는 독자로 하여금 극단적인 공포를 선사한다. 그것은 무언의 폭력과도 같은 것이다. 조지 오웰이 만든 1984년의 세계에는 문학과 언어가 정치에 종속되고 생각과 사상의 자유가 허용되지 않는 사회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표출하고 타인과의 유대를 통해 인간다운 삶을 위해 투쟁하는 윈스턴의 모습을 그린다. 그러나 이것은 자유를 박탈당한 한 개인의 모습으로부터 한걸음 물러나 통제된 언론과 매체, 빼앗긴 의지로부터 문명이 얼마나 기계화될 수 있는지에 대해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지금은 냉전시대도 아니고, 우리가 전체주의 사상 속에 살아가는 것도 아니지만 『1984』를 읽는 내내 지금의 우리와 크게 다를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수많은 언론 매체로부터, 집권한 당으로부터 또한 교육으로부터 일종의 획일화 과정을 거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뿐만 아니라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CCTV를 비롯하여 우리 곁에 있는 스마트 디바이스들은 사상과 체제에 따라 언제든 우리를 옥죄는 감시 장치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1984』는 섬뜩하리만치 현대의 삶을 그대로 조명하고 있다. 『1984』와 이 시대에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사상’에서 ‘자본’으로 소재를 옮긴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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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국
도노 하루카 지음, 김지영 옮김 / 시월이일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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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요스케. 모교 럭비부의 코치로도 활동 중인 그는 탄탄하고 수려한 외모와는 다르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매사에 규율을 적용하며 깔끔한 성격인 그는 상식과 규칙이 일상화된 인물로 감성적이기보다 이성적이며 논리적인 인물이다. 소설의 제목인 『파국』은 일반적으로 비참하고 불운한 결말이라는 뜻으로 ‘역전’을 뜻하는 그리스어가 어원인데, 예기치 못한 일, 정반대로 뒤집히는 것을 의미한다. 문학, 연극 용어로는 ‘비극적인 결말’을 가리키고 특히 비극에서 중요시되어 클라이맥스에 대한 최후적 해결로서 극 전체의 인상을 종합하여 관객에게 깊은 감동을 주도록 구성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막상 소설을 접해보면 대체 ‘파국(破局)’은 언제 일어나는지 의문이 생길 정도로 요스케의 일상을 잔잔하게 다룬다.

소설의 초반부를 막 지나갈 즈음 요스케는 친구의 공연에서 우연하게 신입생 아카리와 만나게 되고, 애인인 마이코와는 이별을 하면서 요스케의 일상에 균열이 생긴다. 인물이 바뀐다는 것은 소설에서 대단히 큰 변화를 예고할 수 있다. 본 소설에서는 요스케의 심리적 변화와 동시에 모든 인물들의 사정을 통해 이야기의 흐름을 변화시키는데 이것이 바로 소설 『파국』의 장점이라 할 수 있다. 보통 장르 소설에서는 ‘사건’의 발생을 시작으로 긴장감을 형성시키는데, 『파국』은 그와 반대로 인물의 내적 요소에서 심리적 갈등을 통해 긴장감을 형성시킨다. 일상적인 의미에서 볼 때 사건이란 매일매일 생겨나기 마련이다. 소설에서 역시 잔잔한 사건들을 다루고 있지만 사건의 발생과 해결 사이의 과정에서 파생된 불안보다 각기 인물들의 심리를 통해 독자를 죄어온다.

소설의 제목인 『파국』은 결국 인물에서 시작하여 인물로 끝이 난다. 내가 해석한 제목의 의미는 소설에 나오는 주요 인물들이 치닫는 형국을 의미하는 것 같다. 그것은 외부적인 요인이 아닌 내부적인 요인으로서 작용한다. 소설에서 가장 중요하게 일컬어지는 인물, 배경, 사건에 있어서도 역시 이 소설은 인물에 초점을 두고 있다. 감정이 절제되고 상식과 규칙, 규율 같은 것에 스스로를 가두어 누구에게나 필요한 만큼의 친절을 베푸는 요스케를 1인칭 시점으로 풀어내다 보니 심리적 요소가 가장 중요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사건을 통해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대신 각각의 주요 인물들의 관계에서 발생되는 긴장감을 극대화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동류 소설들과는 결이 상당히 다르다.

단 두 편의 작품으로 일본 문학상을 휩쓸었다는 사실보다 놀라운 것은 91년 생이라는 많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내면을 깊이 해부하여 섬세하게 묘사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소설이다. 출판사의 홍보를 보면 2020년 제163회 아쿠타가와상 논란의 수상작이라는 문구와 함께 심사위원 간 격렬한 찬반 논쟁과 독자 평점 5점 혹은 1점이라는 문구가 실려있는데 소설을 다 읽은 시점에서 두 가지 홍보문구 모두 마음에 와닿았다. 그들이 수상작을 놓고 찬반 논쟁을 벌인 이유라던가, 독자 평점이 갈린 이유는 『파국』이 일상이 평범한 모든 인물들이 내면적으로 비극을 향해 치닫는 모습을 깊이 있게 담았음에도 인물의 관계와 사건으로 이어지는 개연성이 부족하며, 어떠한 사건에 대한 근거 역시 부족한 모습이기 때문일 거라 생각한다. 이 소설은 1인칭 시점이고 주인공 요스케의 성격으로 볼 때에 분명히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측면으로 그려져야 하는데, 정작 소설은 감성적(또는 감정적) 측면을 서사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감정의 변이를 일으키게 한다. 이 두 가지 측면은 장치와도 엇갈리게 되는데 나는 소설에서 주요 장치로 활용한 것 또한 배경이나 사건이 아닌 인물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러한 이질적 서사가 일부 독자들에게 거부감을 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결론을 말하자면 수작이다. 적어도 평작은 아닌 소설이며,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에 부끄럽지 않을 소설임에 분명하다. 다만 평범한 인물, 평범한 사건, 평범한 전개를 원한다면 이 소설을 권하고 싶지는 않다. 어색하더라도 보다 신선한 전개를 원하는 독자에게는 충분히 새롭고 멋진 소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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