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 (양장) 새움 세계문학
조지 오웰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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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아홉 살, 오른쪽 발목 위에 정맥류 궤양을 가진 윈스턴 스미스는 도중에 몇 번을 쉬며 자신의 집이 위치한 7층을 향해 계단을 올랐다. 승강기를 이용하면 좋겠지만 최근엔 전류가 아예 차단되어 있었다. 그것은 ‘증오주간’에 대비한 소비 억제 운동의 일환이었다. 사방이 텔레스크린으로 가득했고 오세아니아 사람들은 더 이상 자신이 텔레스크린으로부터 안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윈스턴은 아마도 책장 같은 가구가 들어가 있어야 할 비워진 작은 공간에 탁자를 배치했다. 가끔은 혁명 이전의 삶을 기억하기 위해 애썼고 자신의 생각을 진짜 종이로 된 노트에 옮겨 적기도 했다. 오세아니아, 이스트아시아, 유라시아 삼국은 여전히 타국에 대한 증오로 국민을 선동했다. 전쟁은 끊임이 없었지만 실상 전쟁에서 죽어가는 사람들보다 내부 감시에 의해 숙청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만 같았다. 그것은 죽음이라기보다 사라짐에 가까웠다.

윈스턴은 층계참에 붙은 거대한 포스터를 응시했다. ‘빅 브라더께서 당신을 지켜보고 계신다.’라는 문구가 있었다. 그는 창가로 움직였다. 바깥세상은 닫힌 창유리를 통해서조차, 차가워 보였다. 1킬로미터 밖에 그가 일하는 곳인 ‘진실부’가 음울한 풍경 위로 크고 하얗게 솟구쳐 있었다. 윈스턴이 외부당원으로서 진실부에서 맡은 일은 현재와 과거를 지우거나 또는 바꾸는 일이었다. 그는 보도될 수 있는 모든 자료들이 검열된 채 바꾸어야 할 항목들이 전달되면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로서 현재와 과거를 바꿨다. 그래도 외부당원인 윈스턴의 삶은 비교적 나은 편이다. 그렇지 못한 이들이 훨씬 많은 세상이다. 그럼에도 당에서 결코 용서치 않을 행동들을 그는 쉬엄쉬엄했다. 진짜 종이로 된 노트를 불법적인 경로로 구입하고 일기를 쓴다던가, 당에서 정해주지 않은 여인 줄리아와 밀회를 즐긴다던가 하는 일들 말이다. 행동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지난 7년간 윈스턴을 감시했던 내부당원에 의해 적발된 윈스턴은 기어코 사상개조에 오른다. 그가 죽음을 바랐는지 독자로서 알 길이 없으나, 빅 브라더의 세계에서 죽음은 그다음의 문제다. 그는 더 이상 당원이 아닌 반혁명분자로서 온갖 고문 속에 빅 브라더를 칭송하고 체제에 순응하게 될 것이다.

조지 오웰의 『1984』는 세계 3대 디스토피아 소설로 유명하지만, 한편으로 이것은 미래 예언서에 가까울 만큼 현대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 워낙 좋아하는 소설인데 서평으로는 처음 옮기다 보니 나름의 욕심이 생겨 새롭게 출간한 새움 버전과 민음사 버전 그리고 더스토리 버전을 한 챕터씩 돌아가며 동시에 읽었다. 익숙함 때문인지 민음사 버전이 가장 편하게 읽혔고, 오늘 소개한 새움 버전은 무언가 더 고전적이며 나름의 개성을 안고 있었다. 예를 들어 냉전시대의 분위기라던가 보수적인 분위기에 오히려 더 잘 맞는 느낌이다. 소설을 풍성하게 느끼기 위해 그래픽노블 『조지 오웰』과 동 작가의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도 함께 읽었다.

인간의 품위가 실종되고 서로 간의 유대를 불러오는 감정이 공포로 돌변한 전체주의 사회는 독자로 하여금 극단적인 공포를 선사한다. 그것은 무언의 폭력과도 같은 것이다. 조지 오웰이 만든 1984년의 세계에는 문학과 언어가 정치에 종속되고 생각과 사상의 자유가 허용되지 않는 사회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표출하고 타인과의 유대를 통해 인간다운 삶을 위해 투쟁하는 윈스턴의 모습을 그린다. 그러나 이것은 자유를 박탈당한 한 개인의 모습으로부터 한걸음 물러나 통제된 언론과 매체, 빼앗긴 의지로부터 문명이 얼마나 기계화될 수 있는지에 대해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지금은 냉전시대도 아니고, 우리가 전체주의 사상 속에 살아가는 것도 아니지만 『1984』를 읽는 내내 지금의 우리와 크게 다를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수많은 언론 매체로부터, 집권한 당으로부터 또한 교육으로부터 일종의 획일화 과정을 거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뿐만 아니라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CCTV를 비롯하여 우리 곁에 있는 스마트 디바이스들은 사상과 체제에 따라 언제든 우리를 옥죄는 감시 장치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1984』는 섬뜩하리만치 현대의 삶을 그대로 조명하고 있다. 『1984』와 이 시대에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사상’에서 ‘자본’으로 소재를 옮긴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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