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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알베르 카뮈 전집 2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198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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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햇볕의 뜨거움을 견디지 못하여 나는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 나는 그것이 어리석은 짓이며, 한걸음 몸을 옮겨본댔자 태양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한걸음, 앞으로 나섰던 것이다.  
   

  
다시 읽는 뫼르소의 이야기는, 그 숨은 뜻을 이해하려 애쓸 필요가 없다. 한줌 햇살의 뜨거움을 견디지 못해서, 찌는 듯한 더위 속 맨살에 닿는 바람 한줄기 때문에도, 불면의 밤 어느 사이 귓가를 떠나지 않는 시계 초침소리나 냉장고의 울음소리에도, 그 순간,
우리는, 누군가를 향해 방아쇠를 당길 수도, 방금까지 누워 있던 침실에 불을 놓을 수도, 오늘 아침까지도 사랑을 속삭이던 연인의 등에 칼을 꽂을 수도 있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내 삶의 중요한 순간을 결정지었던 것은, 이런 바람 한줌, 햇빛 한 조각이었을지도 모른다, 라고 쓰려고 하니, 그래도 좀 서글픈...

199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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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에서 연애를 꺼내다
박주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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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에 있어서도 자기 인생에 있어서도 미지근하고 결단력 없고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 인 주인공 나영의 모습이 많이 비슷해 읽는 내내 킥킥거렸다. 언제고 드라마 속 주인공 같은 근사한 연애를 해보리라, 생각해보지만 그야말로 생각뿐이다.

무언가를 무리하게 욕심내기보다는 순리에 맞게 흐름에 맞게 바르게 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즈음이라  그런지 주인공의 연애의 방식, 을 포함한 삶의 방식에도 어느 정도는 공감하게 된다. 주인공의 주변인물들 또한 주위에서 볼 수 있는 모습들이라 연애를 통해 나름 다양한 이야기를 전달하려 하는 듯하다.

가벼운 연애소설쯤으로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책을 덮고 나니 잠깐이나마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게 된다. 싸워서라도 얻어내어야 할 만큼 욕심낼 것과 지금 내 주머니 속에 든 것 중에서도 내려놓아야 할 것들, 은 무엇일까.  

좀 다른 얘기. 냉장고 속에서 연애를 꺼내다, 그래, 대충 알겠다. 하지만, 그 안에서 무언가를 골라 꺼내기 전에 이미, 각각의 냉장고는, 그 안에 든 내용물은, 백이면 백 모두 다를 터. 에고, 지금 냉장고 속엔 물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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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뻐?
도리스 되리 지음, 박민수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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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 뜨겁게, 차갑게, 그리고 유연하게 삶을 바라보고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을까?

한 걸음 떨어져서 내 삶을 바라볼 수 있는 저 힘은 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 편협하고 고집스럽고 어쩔 수 없이 자기 중심적인 '나'를 더없이 정확하게 바라보게 하는 책. 내 삶에 대한 반성조차 타인의 사유를 빌려와야 가능한 오늘의 나를 발가벗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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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퉁이의 중국식당
허수경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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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잘 모르는 시골마을, 햇빛 따스한 골목길을 걸어본다. 낡은 담장 위에 아이들이 써놓은 낙서도 읽어보고, 장난스럽게 그려진 화살표도 따라가보고...

시인의 글을 읽는 동안, 천천히 그렇게, 시인의 뒤를 따라, 소박한 길을 걷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아니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저 천천히, 걷는다, 그게 중요하다.

멀리 타국에 있는, 가끔은 모래바람 속에, 또 가끔은 누군가의 무덤 속에 서 있는, 시인의 작고 여린, 그래서 더욱 강하기도 한 어떤 힘이 오롯이 느껴진다.
길지 않은 글들이 때로는 시와 같은 느낌으로 또 때로는 시와는 다른 느낌으로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부드러운 외피 안에 단단한 알맹이가 꽉 들어차 있어 아깝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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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벤자민
구경미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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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뭘?”
여자의 환심을 사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는 안수철의 물음에 무뚝뚝한 별장 관리인 녀석은 그렇게 말한다.
“이유 같은 거 없이 그냥 잘해주세요. 아침에도 잘해주고 저녁에도 잘해주고 꿈속에서도 잘해주고. 이유 같은 거 없어도.”

철없는 어른들의 동화 같은 이 이야기 속에서 나는 반짝이는 사랑(?)의 이야기를 발견했다.

자신과 결혼해주지 않는 이연주를 납치했던 안수철이 떠난 다음날부터, 관리인은 아침마다 김밥을 만다. 특이한 것은 아침에 만든 김밥을 저녁에 먹는다는 것이었다. 그는 저녁마다 딱딱해진 김밥을 입에 넣고 우물우물 힘들게 씹어 삼켰다. 그러면서도 이연주에게는 꽁다리 하나 주지 않았다. 이연주가 같이 먹자고 할 때마다 그가 말한다.
“아닙니다. 내가 다 먹을 겁니다.”
......
안수철도 떠나고, 별장에서 떠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밖으로 나서지 못하던 이연주가 드디어 별장을 떠나 세상 밖으로 나갈 결심을 한 날 아침.
“오늘 떠나요.”
“그럴 것 같았어요.”
“막을 건가요?”
“네.”
“그래도 떠난다면요?”
“어쩔 수 없죠.”
“직무유기로 해고당할지도 몰라요.”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현관문이 잠긴 것도 아니고, 나는 해야 할 일이 많으니까요.”

“배웅은 못 합니다. 보다시피 할 일이 많거든요. 현관 앞에 배낭을 둘 테니 가져가세요. 일주일은 버틸 수 있을 겁니다. 김밥은 먼저 먹고 과자는 나중에 드세요. 우유는 먼저 마시고 물은 나중에 마시세요. 산짐승이나 집짐승을 만나더라도 음식은 나눠주지 마세요. 제 먹이는 알아서들 챙기니까요.”
어느새 그는 김밥을 다 말고 배낭을 채우고 있다. 그리고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배낭을 들고 식당을 나간다.

관리인은 언젠가 이연주가 세상 밖으로 나갈 것을 알고, 스스로 그것을 깨달을 때까지 기다려주고, 또 그의 홀로서기를 남몰래 준비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사랑이어도, 온정이어도, 연민이어도, 혹은 그 무엇도 아니어도 좋겠다. 어느 날 문득 우리는 깨달을지도 모른다. 달콤한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는 연인보다, 수시로 전화해서 안부를 묻는 친구보다, 주위에 아무도 보이지 않는 밤길,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나에게 잠시잠깐 손을 빌려주고 사라져버린 그 사람이 더 큰 힘이 되어주기도 한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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