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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o Natsume Tesoro 테조로 - 오노 나츠메 초기 단편집 1998 - 2008
오노 나츠메 지음, 조은하 옮김 / 애니북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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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을 부르도록) 셔츠 일부러 뒤집어 입기,  
보폭을 맞추어 나란히 걷기, 
꼭  끌어안고 사랑한다고 말해주기,
따뜻한 초콜릿잔 건네기,
가족을 위해 소박한 도시락 싸기.  

오노 나츠메의 <테조로>는 이런 소소한 일상들이 때로 우리 삶을 빛나게 하는 가장 훌륭한 보석들임을 이야기한다.
따뜻한 초콜릿잔 안에, 소박한 도시락 속에, 빠른 걸음을 부러 늦추는 그 세심한 마음씀 속에 지친 우리의 일상을 위로하는 커다란 힘이 있음을.
한 편 한 편 조용히 미소짓게 하는 단편들을 읽고 나면, 옆에 있는 누구에게라도 따뜻한 차 한잔을 건네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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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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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을 생각하려 한다. 구름을 생각하려 한다.  
나는 소박하고 아담한 공백 속을, 정겨운 침묵 속을 그저 계속 달려가고 있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은 여간 멋진 일이 아니다. 

추운 날에는 어느 정도 추위에 대해 생각한다. 더운 날에는 어느 정도 더위에 대해 생각한다.
슬플 때는 슬픔에 대해, 즐거울 때는 즐거움에 대해 생각한다. (...) 괜찮은 아이디어가 문득 떠오를 때도 있다. 그렇지만 실제로 제대로 된 것은 거의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달려가면서 그저 달리려 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원칙적으로는 공백 속을 달리고 있다.
거꾸로 말해 공백을 획득하기 위해 달리고 있다. (...) 인간의 마음속에는 진정한 공백 같은 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루키는 언제나 조금은 우울한 표정의 후드티를 입은 장년의 모습으로 기억되곤 했다. 몇 년 전, 하루키가 거의 예순이 다 되어간다는 걸 새삼 확인하고 나서, 잠시 멍했던 적이 있었다.(하루키는 1949년생, 올해로 만 예순이 된다.) 나와는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처음 봤을 때의 그 인상으로 오랫동안 기억되게 마련이지만, 처음 <상실의 시대>를 접한 것도 벌써 이십 년 가까이니, 새삼 놀랄 것이 없을 것 같기도 한데, 언제나 젊은 감각의 글쓰기를 유지하는 그였기에, 순간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책에서 받은 인상 역시 마찬가지다. 한결같음. 놀랄 만큼 신선하지 않으나, 이 세상의 모든 젊은이가 가져야 할, 그리고 가지고 있는, 느끼고 있는, 딱 그만큼의 새로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이미 경험한 사람만이 이야기할 수 있는 솔직함과 여유가 그 안에 있다. 
그리스에서 첫 마라톤 풀코스를  마친 후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아무튼, 나는 혼자서 마라톤 코스를 주파한 것이다. (...) 그러나 그런 일은 지금 이 순간 아무래도 좋다. 아무튼 더이상 한 발짝도 달릴 필요가 없다--뭐라고 해도 그것이 가장 기쁘다. 아아, 이제 더이상 달리지 않아도 괜찮다.

무엇보다, 달리기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그의 글쓰기와 곧장 닿아 있다. 서른 즈음에 첫 소설을 발표한 후 지금까지 쉬지 않고 작품을 쓰고 있는 그의 글쓰기는 장거리 러너의 레이스에 다름아니다. 무리해서 스피드를 내지 않고, 천천히, 페이스를 유지하며, '끝까지' 달리는 것이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트럭 가득히 있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단련하는 것.  

나는, 지는 일에 길들여져 있다. 세상에는 내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산만큼 있고, 아무리 해도 이길 수 없는 상대가 산더미처럼 있다.  

그의 이런 말들이 대부분의 '어른'들이 세상의 모든 젊은이들에게 할 수 있는 그저그런 가르침으로 읽히지 않는 것은 이러한 그것이 그의 글쓰기와, 달리기와, 직접 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책장을 덮고 나면 새삼 그의 소설 속의 어떤 긍정적인 힘을 느끼게 된다. 앞으로 한참은 더, 그의 작품을 읽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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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주노 디아스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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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끌어안기 위해 팔을 뻗었다. 자신의 집을, 어쩌면 온 세상을.

어쩌면 도미니카 공화국과 독재자 트루히요가 없었다면 탄생하지 않았을 이 길고 긴 이야기는, '푸쿠'에 인질로 잡힌 삶을 온몸으로 끌어안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렇게 된 거였다, 벨리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결정'은, 그렇게 된 것였다. 그건 그저 이런 거였다. 난 그냥 춤을 추고 싶었을 뿐이야. 춤 대신 내가 얻은 거? 에스토! 그녀는 두 팔을 펼치며 병원과 두 아이, 암과 미국을 가리켰다.  

지나고 보면, 삶을 결정짓는 건 언제나 그런 것들이다. 문득 올려다본 밤하늘의 붉은 달이나, 오랜만에 집어든 책 속의 한 구절, 우연히 들어간 작은 카페에서 보낸 커피 한 잔의 시간. 그리고 바로 그 순간들은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내 것'이다.

포레스트 검프의 초콜릿 상자도 좋고 하루키의 비스킷 통이어도 상관없다. 문제는 쓰디쓴 초콜릿도 맛없는 비스킷도, 일단 집어든 이상, 입안에 넣은 이상, 결국은 삼켜넘겨야 한다는 것, 뱉어낼 수 없다는 것.
더 나쁜 건, 어쩌면 그 상자 속이 온통 럼으로 가득 채워진 초콜릿뿐일 수도 있다는 것. 비스킷 통인 줄 알고 열었더니 온통 낡은 구슬들만 가득한 재활용상자였을 수도 있다는 것.
더더더 나쁜 건, 일단 받아든 이상 상자는 바꿀 수 없다는 것. 맛없는 비스킷을 억지로 다 씹어넘긴 뒤에도, 두번째 상자는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    

막연히 내 상자 안에는 달콤하고 향긋한 초콜릿들로 가득하리란 환상과 근거 없는 희망에 가득한 시간은 의외로 짧다. 일찌감치 크고작은 좌절과 불운들을 겪으면서, 우리는 이제 '하필이면', 그 상자를 건네준 그 사람을 원망하고, 내 발부리에 차이는 그 불운의 돌멩이를 탓하기 시작한다.        

안타까운 사실은, 오스카와 룰라, 벨리 가족에게 주어진 과자상자는 처음부터 반죽이 잘못되었거나--이들이 도미니카 공화국에 태어난 것부터가--, 누군가 그 상자를 열고 설탕가루 대신 모랫가루--푸쿠푸쿠푸쿠--를 뿌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스카는 그 푸쿠로 가득한 초콜릿들을 주저없이 입안에 털어넣는다. 끝없이 발에 채는 불운의 돌멩이들을--다른 누구의 것이 아닌 제 것을--오히려 제 초콜릿상자에 주워담는다.
  
이 비극적인 이야기가 (한없이 슬프지만) 오히려 희망적인 건 바로 그래서이다. 이 비극적인 시간이, 이 쓰디쓴 초콜릿들이, 초콜릿 대신 알 수 없는 잡동사니로 가득한 과자상자가,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나의 것이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그 상자는 단 하나뿐이라는 것. 그러니, 온몸으로 끌어안아야 한다는 것. 그것을 오스카는 스물일곱 해, 그 짧고 놀라운 생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도미니카 공화국의 오스카를 만나기 전에, 뉴욕 한복판의 오스카가 이미 말해주었던 것처럼.  

우리가 살아야 한다는 건 치욕이지만, 우리 삶이 한 번뿐이라는 건 비극이란다.(『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이 가까운』, 185p)  

결국 이 책이 모종의 '사파'인 것은 바로 그래서가 아닐까.
삶의 무게란 누구에게나 제 것이 가장 크고 무겁다. 내 손톱 밑에 박힌 가시 하나가 타인의 잘린 팔목보다 더 아프고 견디기 어렵다. 내 손가락의 고통과 네 팔목의 고통을 저울질할 수는 없다. 그러니 언제나 내가 견뎌야 할 것은 네 잘린 팔목이 아니라 내 손가락이다.
그리고 오스카에 따르면, 그 고통은 견뎌야 할 것이 아니라, 끌어안아야 할 것이다.
푸쿠로 가득한 삶을 살아내야 하는 건 치욕이지만, 그 삶마저도 한 번뿐이라는 것은 비극이므로. 온몸으로, 주문을 외우며. 사파!   
저주 따윈 믿지 마. 삶, 그것으로 충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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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거짓말을 하는가? - 거짓말을 사랑한 어느 심리학자의 고백
로렌 슬레이터 지음, 이상원 옮김 / 에코의서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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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은 병이다. 태양은 태양, 웃음은 웃음, 눈물은 그저 눈물일 뿐이다. 신의 세상을 더 나은 것으로 바꿀 필요는 없다." 

쓰러지지 않는 법, 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쓰러지되, 뼈를 부러뜨리지 않는 법. 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 말이지. 

"자신을 알고 자신을 설명하는 것은 역사적 진실이 아니라 서사적 진실이다."
그 서사적 진실은, 그렇지만 '사실'은 아닐 터. 이 책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그렇다면 '나'를 만들어갈 서사적 진실, '나'를 완성할 이야기의 진실은 때론 '희망/소망으로 가득 찬 거짓'일 수도. 진실이란 조정 가능한 것이며, 희망하는 모습이 때론 진짜 모습보다도 더 현실적인 것이다.   

이쯤 되면, 독자를 혼란스럽게 하는 저자의 간질발작이 거짓인지 은유인지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재스민 향기로 시작되어 갖가지 소리들을 무지갯빛으로 바꾸어주는 그 질병은, '거짓말'이 만들어 쌓은 내 삶의 '진실'을 더욱 풍요롭게 해줄 테니까.
  

 20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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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다는 것의 의미 동문선 현대신서 16
존 버거 지음, 박범수 옮김 / 동문선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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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히트가 자신의 시편들 가운데 한 편을 통해 연기에 관해서 피력한 것은 그러한 것을 실행에 옮기는 데 적용해볼 수 있는 것이다. 순간에 대해서 우리는 사진을 읽어낼 수 있고, 연기에 대해서는 맥락을 재창조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당신은 그저 그 순간을 두드러져 보이도록 만들어야만 하리라.
(이하 브레히트 인용)

그것들 스스로의 힘으로 이러한 것을 실제로 성취해내는 위대한 몇몇 사진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어떤 사진이라도, 만약 그것을 위하여 적절한 맥락이 창조된다면, 그러한 '현재'가 될 수도 있다. (......)
그러한 맥락은 시간 속에서 그 사진을 대신하게 되는데--그것은 불가능한 것인 그것 자체의 원래 시간이 아닌--서술되는 시간 속에서이다. 서술된 시간은 그것이 사회적 기억과 사회적 행위의 성격을 띠게 되면 역사적 시간이 된다. 짜맞추어진 서술되는 시간은 그것이 자극하고자 하는 기억의 과정을 존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기억되는 어떤 것에 대하여 유일무이한 단 한 가지의 접근방식만이 존재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기억되는 것은 노선의 한쪽 끝에 있는 종점과 같은 것이 아니다. 수없이 많은 접근방식들과 자극들이 그것을 향하여 모여들거나 그것에 이르게 된다. 이야기들 비교들 기호들이 거의 동등한 방식으로 인화된 사진들을 위한 맥락을 창조해내는 데 필요한데, 다시 말하자면, 그것들은 다양한 접근방식들을 구분하고 그럴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사진이 동시에 개인적 정치적 경제적 극적 일상적 그리고 역사적인 측면에서 보여질 수 있도록 사진을 둘러싼 방사체계가 구성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 부분은 존 버거가 수전 손택을 옹호하며 쓴 글이다. 이외에도 존 버거는,
동물원 우리 속의 동물들을 바라보는 인간들의 시선에서, 동물과 인간 사이에 오가던 시선이 단절되어버렸음을, 그리하여 더이상 마주 보지 못하고 동행이 없이 각각의 동물들을 바라보게 되는 결국은 혼자인 관람객에 대해, 그러니까 여럿이서 함께 구경하고 있지만 마침내 고립되어버린 인간이라는 종에 대해,
조용히 서서 가만히 응시해야 가 닿을 수 있는,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자코메티의 작품(/고독)에 대해,
어떠한 사건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하나의 '배경'이었던 벌판(/공간)이 그 자체 하나의 '사건'으로 변하는 순간/시간/경험/자각... 그리고 그 모든 것,
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세계는, 과연, 눈에 보이는 그대로 실재하는가.
다시 또 이 어리석은 질문을 던져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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