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카운슬링 - 인생의 불안을 해소하는 10번의 사적인 대화
체사레 카타 지음, 김지우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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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체사레 카타』, 이탈리아인이다.

철학자이자, 교사, 작가, 연극연출가이고 미국 하와이 대학에서 방문학자로 연구 및 강의를 했다. 독일에서 중세 및 르네상스 플라톤 텍스트연구를 했다. 이 글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많은 인용이 이를 증명해줄 것이다.

동양 및 비교철학, 선불교 연구 등 만능학자답다.

체사레 카타가 우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훌륭하다가 아니다.

그녀가 윌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셰익스피어가 우리에게 넌지시 던진 의미를 찾지 못함이 안타까워서 콕콕 집어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긋나긋한 선생님 앞에서 읽었던 혹은 읽지 않은 열 개의 셰익스피어 작품에 대한 속내를 들어야 한다.

 

셰익스피어 카운슬링이라는 대제목 아래 ‘인생의 불안을 해소하는 10번의 사적인 대화’라는 소제목이 있다.

차례에도 나타나 있듯이 10개의 심리상태를 셰익스피어의 10개의 작품과 함께 대화하듯 풀어주는 글이다.

 

제1막 하는 일마다 족족 꼬인다면

누구나 막다른 골목에서 하늘마저 닫히는 느낌 때문에 “왜 나야? 왜 내게만! 하필 이럴 때!”장탄식이 나올 때가 있다.

엎친 데 덮치고, 자빠져도 코가 깨지듯이 되는 일 없이 줄줄이 꼬이는 실타래를 만날 수 있다.

끊어버릴 수도 없는 인간관계라면 좌절감으로 잠수부가 될 지경이다.

이럴 때 만나는 책, 〈한여름 밤의 꿈〉이 있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보여준 학생들의 연극을 기억한다면 더 반가울 것이다.

요정 퍽의 실수로 사랑하는 연인들이 얼키고 설켜 종잡을 수 없게 되지만 결국은 하나의 매듭을 풀면 쌀자루가 스르륵 열리는 것처럼 모든 문제는 해피엔딩으로 가게 된다.

셰익스피어가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상냥한 인간’을 원한다.

상냥함이란 예의바르고 다정한 태도가 아니다.

《세상 일과 거리를 두면서 나오는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이다.

긍정이란 부정의 반대말이 아니라 부정을 인정한 후에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의 따스함을 말하는 것이다.

죽고 싶을만큼 꼬인 삶이라도 한걸음 물러서서 바라보면 매듭의 시작을 볼 여유가 생긴다.

조금은 여유롭고 조금은 따스하게 손을 내밀면 풀리지 않은 문제는 애당초 없다고 셰익스피어는 숲의 요정, 퍽을 통해 보여준다.

 

제2막 문득 타인이 괴물처럼 느껴진다면

대인기피증이 달리 생기는 것이 아니다.

소심하고 예민해서 사람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말과 행동이 어느 순간, 사람이 아닌 괴물로 느껴질만큼 괴로울 때 생긴다.

밤의 적막과 어둠에서 안전을 보장받는 기분.

이럴 때 만나는 책, 〈맥베스〉!

맥베스는 세 마녀로부터 예언을 듣는다.

마녀는 맥베스의 내부에 드러나지 못한 욕망을 읽었던 것이다.

권력에 대한 욕망은 맥베스 못지않게 맥베스 부인은 더 강했다.

마녀의 예언을 부추키는 부인에게 이끌려 마침내 손에 피를 묻히고 권좌를 차지한다.

하지만 불행은 욕망에서 시작되어 의심으로 전이되어 피는 더 큰 피를 찾는 괴물로 진화시킨다.

셰익스피어는 인간 누구라면 가지고 있지만 꺼내기를 두려워하는 《욕망》을 말하려 한다.

욕망 아래 깔린 집착과 의심을 거름삼아 겉잡을 수 없이 괴물로 변하기 전에 자신의 욕망을 읽어야 한다.

누군가가 풀무질로 바람을 넣더라도 영혼을 다잡아야 한다.

유명한 짐바르도의 ‘스탠퍼드 교도서 실험’을 보면 안다.

누구나 사악한 인간이 될 수 있다.

상황이 그를 불안과 불행의 코너로 몬다면 말이다.

 

제3막 평생 사랑하지 못할까 봐 두렵다면

결혼 32년차, 지금은 평생 사랑하지 않아도 삶이 두렵지 않을 무모함이 있다.

젊다면 말은 달라진다.

사랑 한번 못해 보고 처녀귀신으로 죽을 수는 없다.

원한으로 구천을 떠돌고 싶지 않아서 두려움에 벌벌 떨 것이다.

이럴 때 만나는 책, 〈헛소동〉이다.

결혼에 대한 질문을 만났다.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는 법이 어디 있나?’

‘혼자 사는 것보다 결혼해야 더 행복하다는 것이 진리일 수 있나?’

대답은 백인백색(百人百色)을 내고 싶다.

하지만 사랑을 원한다면, 사랑에 대해 확신하고 싶다면 헛소동을 만나면 도움이 될 거라고 셰익스피어는 들려준다.

《사랑은 사소한 것을 눈여겨 보는 것》이라고도 하고 《자신의 잃어버린 자아를 되찾는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라고도 한다.

운명의 짝은 함께 발전할 수 있는 상대다.

‘융’도 말했다.

“사랑이란 무엇보다 잃었던 자아를 상대방에게서 발견하는 것”이라고.

운명같은 만남이 바로 그것일 것이다.

보이지 않는 반쪽짜리 사랑의 징표를 두 사람만의 방법으로 찾아 맞춰보는 것.

나의 잃어버린 자아를 얼마나 깊숙하게 숨겨놨는지 아직도 나는 못 찾고 있다.

혹시 선녀처럼 하늘로 올라가 버릴까 봐 보여주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제4막 스스로 그 무엇도 해낼 수 없다고 생각된다면

자괴감이 깊어 자책감으로 무기력으로 이불삼게 되는 기분이다.

자존감은 구멍없는 굴 속으로 빠져서 도무지 찾아올 수 없는 감정이다.

이럴 때 만나는 책, 〈헨리 5세〉다.

헨리 5세는 왕이 되기 전에는 불량기 가득한 왕족으로 살았다.

주점에서 사고나 치고 한량과 어울리며 손가락질을 받았다.

그랬던 그가 헨리 5세(알로 불리던 왕자시절)로 불리게 되자, 삶의 태도를 완전히 바꾼다.

그야말로 인생대반전이다.

그리스도 기사도의 격언을 목숨처럼 지키면서 ‘과거의 자신과는 절연했다’고 당당히 말한다.

셰익스피어는 말하고자 한다.

《용기》를 꺼내라고.

누구나 용기를 가지고 있으나 있는 줄 몰라 찾지도 않는다.

무릎 꿇는 자신을 일으켜 세우려면 자기 신뢰가 있어야 한다.

자신을 믿지 않으면 인간은 자아실현을 할 수 없다.

자아실현을 넘어서는 자아초월욕구가 바로 용기를 가져야만 이룰 수 있다.

과거의 어두운 자신을 뛰어넘는 것이 자아초월욕구다.

무너져가는 나를 두려워 하거나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으려면 내 안의 용기를 꺼내서 과거의 자신과 과감히 헤어져야 한다.

헨리 5세처럼 말이다.

셰익스피어는 신(무엇을 믿든)과 같은 존재일 수 밖에 없다.

 

제5막 이유없는 불안이 내 마음을 지배한다면

두려움에 이유가 필요한가?

불안에 이유가 꼭 있어야 마음껏 느낄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알 수 없는 세상으로부터 밀려온 불안이 나를 덮쳐 떨어질 줄 모르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온다.

영문도 모르고 당하는 뒤통수 가격처럼!

이럴 때 만나는 책, 〈오셀로〉다.

바로 그, 오셀로.

흔히 질투에 눈이 멀어서 사랑하는 아내를 처참하게 질식사시킨 무어인.

그런 남편을 죽는 순간까지 감싸는 아내.

질투를 말하고 싶어서 셰익스피어를 썼을까?

오셀로는 감수성이 풍부해서 타고난 본성에 불안이 큰 캐릭터라고 한다.

작은 말에도 흔들림이 생길 수 있는 사람이다.

이 때, 이아고처럼 비열하고 거침없이 때로는 함구하듯 안개를 피우면 오셀로는 흔들린다.

의심이라는 괴물을 꺼낸다.

진실을 보는 눈을 감는다.

귀만 열어 쿵쾅대는 심장의 소리를 따라서 행동을 하는 사람이 되고 만다.

현실을 제 눈으로 확인해 보지 않고 오로지 소리에 이끌려 불안속으로 파묻힌 오셀로다.

단 한번 만이라도 데스데모나에게 진실의 말을 해다오~ 부드러운 말투로 말을 했다면 이아고의 거짓을 금방 알아챘을 텐데 말이다.

오셀로는 자신의 눈으로 귀로 직접 확인할 진실(사실은 거짓)을 외면하고 싶었던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불안과 상상은 쌍둥이와 같아서 오셀로를 우리에게 보내 《진실을 자각하는 능력을 키우라》고 한다.

초능력 대신 키워야 하는 진실자각력!

 

제6막 감당하기 힘든 일이 폭풍처럼 밀려온다면

폭풍이 몰아치면 튼튼한 곳으로 도망을 쳐야 한다.

하지만 폭풍을 어디서 만났는 지 생각해 봐야 한다.

집안에서? 거리에서? 산에서? 들판에서? 아니면 바다에서?

이럴 때 만나는 책, 〈템페스트〉를 보자.

작가 체사레 카타는 2016년 아일랜드에서 노어부(老漁夫)를 만나 그가 마주친 폭풍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바다에서 만난 끔찍한 폭풍우로부터 어떻게 살아왔는지 들려준 노어부는 이렇게 말했다.

뱃머리를 해안으로 돌리려고 안간힘을 쓰는 대신, 폭풍의 심장을 향해 돌진했다고.

헤어지면서 강조한 말.

“목숨을 건지려면 폭풍의 심장을 향해 몸을 던져야 한다네!”

나는 어려운 일이나 상처받아 쓰러질 때도 참았다.

피하고 눈을 감으면 내가 살아남으리라 생각했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딱 이 심정이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는 그러지 말라고 했다.

폭풍(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를 바꾸라고 말이다.

용서할 것은 하고 구원이 된다면 과감하게 두려움도 벗으라고 한다.

삶의 본질을 마주하여 볼 수 있다면 폭풍의 피해는 막을 수 없을 지라도 적어도 폭풍을 두려워하지는 않게 된다는 작가의 결론에 행복했다.

나도 폭풍의 중심으로 당당하게 걸어 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결심이 행동으로 되려면 “헨리 5세”처러 용기도 챙겨야 한다.

 

제7막 이별의 상처로 그 누구와도 만나고 싶지 않다면

헤어짐은 아프고 슬프고 괴롭다.

그래서 타인의 시선은 바늘끝처럼 괴롭히기 마련이라 피하고 싶다.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이럴 때 만나는 책,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어도 전혀 변하지 않을 세상이다.

어쩌면 더 혹독한 세상이 왔을 지도 모른다.

그런 클레오파트라가 사랑한, 서로가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않고 미친듯한 열애사를 만들었다.

사랑타령을 들려 주려고 대문호 윌선생님께서 이 연극을 쓰셨을리 만무하다.

사랑은 역사를 만들고, 이전의 관계는 종말을 만난다. 사랑이 끝나면 역사도 끝난다.

이 말이 맞을까?

《과정법》을 가르치려 쓴 글은 아니지만 “상대방을 소중하게 생각하되 지나친 이상화는 피해야 한다”라는 뜻을 품은 연극이라고 한다.

이별은 물과 흙으로 만나지 말고 불과 공기로 승화시키라고 한다.

클레오파트라가 죽어가는 안토니에게 말하듯이.

이는 사랑의 상처를 대하는 자세에 해당한다.

불과 공기는 소멸되어 사라지는 것.

이별의 아픔도 그렇게 보내고 다시 태어나듯 새로운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인가 보다.

불과 공기로 사라지더라도 화상과 습기는 남아 있다는 것이 문제로다.

 

제8막 삶에서 가장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다면

가장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나면 가장 밝은 세상이 나온다는 약속만 한다면 기꺼이 지날 것이다.

하지만 인생은 연극이고, 연극의 연출자는 운명이라 알 수 없다.

내가 선택하지만 타인의 선택도 영향을 주는 터널일 것이다.

이럴 때 만나는 책, 〈햄릿〉.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로다”의 패러디가 잔치를 벌이던 시절도 있다.

먹느냐 마느냐 이것이 문제인 것은 다이어트의 고통이다.

자느냐 깨느냐 이것이 문제인 것은 수험생의 고통이다.

앉느냐 서느냐 이것이 문제인 것은 빈자리 앞의 청춘의 고통이다. 청춘도 아프니까 앉고 싶다.

셰익스피어는 햄릿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헛소리나 해대는, 결단력없는 무모한 청년으로 우리에게 보여주려 하셨을까?

「햄릿적」이라는 형용사가 있다.

이는 “결정하기 힘들기에 해답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문제”를 뜻한다고 한다.

너무나 마음에 드는 형용사다.

나는 햄릿적인 것을 가진 적이 있다.

햄릿은 화를 낸다.

아버지를 죽인 숙부가 왕이 되고, 어머니와 재혼하는 것을 감당하지 못하여 감정을 드러낸다.

부여에는 형사취수제도 당당히 있었는데......

햄릿의 화는 가장 강력한 인간의 권리라고 한다.

그동안 나는 이 권리를 마음대로 써보지 못했으니 인간답지 못했음을 시인한다.

햄릿의 화는 삶을 자기주도적으로 사는 것을 보여준다고 한다.

즉, 알선생님께서는 햄릿으로부터 《자기주도적으로 사는 사람》을 들려주시는 거라고 작가는 말한다.

자신의 주도권에 대한 이야기라는 뜻이다.

햄릿의 복수가 아니라 주도적인 삶에 대한 것이다.

살면서 높은 파도를 만나면 절망하는 기술을 잘 쓰면 파도에 부딪치더라도 잘 넘길 수는 있다는 말씀이다.

미래는 모르지만 주도적으로 기술을 잘 쓴다면 깊고 긴 어둠의 터널쯤은 헤매지않고 똑바로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당황해서 함부로 움직이면 왔던 길을 되돌아 갈 수 있음을 명심하자.

 

제9막 내 감정을 원하는 대로 관리하고 싶다면

햄릿이 되면 가능하지 않을까? 화만 관리될 지도.

그럴 때 있다.

이리 재고 저리 재고 계산하다보면 정작 표현해야 할 순간을 놓칠 때.

뒤돌아 서서, 혹은 집에 와서 ‘에잇~ 이렇게 말해 버릴 걸.’ 후회를 한다.

멍청이 소리를 서너번은 해야 풀리는 억울함이 생긴다.

기왕이면 사랑처럼 좋은 감정이었다면 덜 억울할텐데 말이다.

아무튼 관리받고싶은 감정이 있다.

이럴 때 만나는 책,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단체관람으로 봤던 영화다.

레오나드 위팅과 올리비아 핫세가 나오는 묵은 영화다.

이도령과 춘향이처럼 해피 엔딩이 아니라서 엄청 울었던 기억이 난다.

용감하지 못한 로미오가 미웠고, 예쁜 줄리엣이 죽어서 슬펐다.

진짜 죽었는지 확인하지 않고 약을 홀딱 마시는 로미오에게 “안돼~~~”소리쳤었다.

바보 멍청이!

윌 선생님은 그런 두 십대의 무모한 사랑을 쓰면서 교훈이나 메시지는 넣지 않았다고 한다.

해석은 각자 알아서들 하시라구~라는 뜻이다.

사랑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엄청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끝내 죽음 아니면 죽을만큼 아프게 헤어지면 어쩌나~ 지레 겁 먹을 테니까.

사랑에 빠지면 타자(他者)를 절대화 한다고 한다.

거의 신격화라고 해야 할까.

도덕을 초월하는 개념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동시에 해석은 독자의 몫으로 남긴다.

그말인즉은 좋은 것은 만들어지니까 잘 만들도록 좋게 보라는 뜻이고, 감정은 내 맘대로 안되는 깨볶는 것과 다름없으니 힘조절을 잘 하라는 뜻이란다.

교훈이나 메시지를 넣지 않아도 독자가 알아서 만들 수 있는 좋은 책임이 분명하다.

 

제10막 한번은 원하는 인생을 살고 싶다면

죽었다 깨어나도 이번 생은 다시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는 반면, 이번 생은 죽고싶지 않을만큼 좋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죽기 전에 끝내주는 인생을 갖고 싶은 사람이 훨씬 많겠지만 말이다.

이럴 때 만나는 책, 〈뜻대로 하세요〉다.

제목이 주는 직설적인 뜻은 그대로다.

"IT'S UP TO YOU."

혹은

“THAT'S NOT MY BUSINESS."

누구나 뜻대로 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은 사회적인 규약 때문이다.

규약 혹은 시선, 체면, 도리, 의무, 관습, 암묵적인 지시 등등.

작가는 셰익스피어의 ‘뜻대로 하세요’라는 연극에서 공적인 정체성과 내밀한 정체성이 정면대결하는 상황임을 보여준다.

현실의 정체성은 내가 아닌 것을 내가 아는데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

내밀한 정체성은 내가 나로 살기를 발버둥치지만 차마 꺼내지 못하는 경우.

불협화음으로 인생은 엉뚱한 곳으로 흐르고 원하는 삶을 살고 싶어 한다.

이럴 때는 전혀 다른 내가 되어 살아봄직 하다고 작가는 설명해준다.

물론 알선생님의 연극으로부터 꺼낸 메시지다.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우리는 연기하는 배우다.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현실이라는 엄격한 감독이 배정한 배역을 연기하는 것》 이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하지만 무엇을 선택하고 버릴 것인지, 어떻게 용서하고 어떻게 화해할 것인지, 쓸쓸한 기억은 어떻게 잊을지 등등 인생을 연기하는 배우가 충분히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뜻대로 하세요를 외쳐주는 셰익스피어님에게 영광을!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줄거리만으로 평가했다면 그것을 모두 버려야 할 것이다.

우리가 아는 셰익스피어는 누구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는 대체 어떻게 읽었길래 말귀가 이렇게 어두운가를 깨달아야 할 것이다.

셰익스피어를 읽었다면 이 책을 읽고 다시 읽을 것을 권한다.

읽지 않았다면 먼저 읽고 이 책을 읽기를 권한다.

그 이후에 다시 셰익스피어의 글을 만나면 좋겠다.

참으로 좋겠다.

사족을 붙이자면, 외화에서 보는 교육현장이 우리에게 없음이 아쉽다.

하나의 작품으로 토론을 하고, 에세이를 쓰고, 단어를 확장시키고, 마음에 드는 구절을 암기하는 수업을 봤다.

우리는 작가와 작품의 줄거리와 문법과 주제,소재 등을 외우기 바빴다.

그래서 행간에 숨어있는 가르침을 미처 보지 못한다.

하나를 제대로 알면 모든 곳으로 갈 수 있는 열쇠를 지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머리말에 나오는 말씀 하나 더 추가!

오디세이아, 신통기, 헤라클레이토스의 책, 베르길리우스의 책, 성서, 주역, 셰익스피어의 작품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서적점(書籍占)을 보는 것이다.

서적점이란 신이 내린 영감이나 예언의 힘으로 집필된 성스러운 책에서 고민의 해답을 찾는 점의 일종이라고 한다.

서적점을 보는 방법은 간단하다.

책을 믿는다.

나를 더 잘 안다고 생각한다.

책이 내게 전하는 바를 그대로 믿기로 한다.

책 위에 손을 얹고 눈을 감은 채 내면의 질문에 집중한다.

손이 가는대로 페이지를 펼친다.

그때 들어온 문구, 문단, 시와 시굴절이나 주역의 육효 등이 신탁을 전하는 사제의 목소리가 되어 우리의 고민에 대한 답을 주고 내면의 번뇌를 풀어줄 거라고 한다.

셰익스피어의 희곡도 서적점에 사용하기 유용하다는 작가의 말을 긴가민가 했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생각했다.

“그래, 결심했어. 나도 힘들 때 해보자.”

그러려면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다 사놔야겠다.

  

작가는 『체사레 카타』, 이탈리아인이다.

철학자이자, 교사, 작가, 연극연출가이고 미국 하와이 대학에서 방문학자로 연구 및 강의를 했다. 독일에서 중세 및 르네상스 플라톤 텍스트연구를 했다. 이 글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많은 인용이 이를 증명해줄 것이다.

동양 및 비교철학, 선불교 연구 등 만능학자답다.

체사레 카타가 우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훌륭하다가 아니다.

그녀가 윌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셰익스피어가 우리에게 넌지시 던진 의미를 찾지 못함이 안타까워서 콕콕 집어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긋나긋한 선생님 앞에서 읽었던 혹은 읽지 않은 열 개의 셰익스피어 작품에 대한 속내를 들어야 한다.

 

셰익스피어 카운슬링이라는 대제목 아래 ‘인생의 불안을 해소하는 10번의 사적인 대화’라는 소제목이 있다.

차례에도 나타나 있듯이 10개의 심리상태를 셰익스피어의 10개의 작품과 함께 대화하듯 풀어주는 글이다.

 

제1막 하는 일마다 족족 꼬인다면

누구나 막다른 골목에서 하늘마저 닫히는 느낌 때문에 “왜 나야? 왜 내게만! 하필 이럴 때!”장탄식이 나올 때가 있다.

엎친 데 덮치고, 자빠져도 코가 깨지듯이 되는 일 없이 줄줄이 꼬이는 실타래를 만날 수 있다.

끊어버릴 수도 없는 인간관계라면 좌절감으로 잠수부가 될 지경이다.

이럴 때 만나는 책, 〈한여름 밤의 꿈〉이 있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보여준 학생들의 연극을 기억한다면 더 반가울 것이다.

요정 퍽의 실수로 사랑하는 연인들이 얼키고 설켜 종잡을 수 없게 되지만 결국은 하나의 매듭을 풀면 쌀자루가 스르륵 열리는 것처럼 모든 문제는 해피엔딩으로 가게 된다.

셰익스피어가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상냥한 인간’을 원한다.

상냥함이란 예의바르고 다정한 태도가 아니다.

《세상 일과 거리를 두면서 나오는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이다.

긍정이란 부정의 반대말이 아니라 부정을 인정한 후에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의 따스함을 말하는 것이다.

죽고 싶을만큼 꼬인 삶이라도 한걸음 물러서서 바라보면 매듭의 시작을 볼 여유가 생긴다.

조금은 여유롭고 조금은 따스하게 손을 내밀면 풀리지 않은 문제는 애당초 없다고 셰익스피어는 숲의 요정, 퍽을 통해 보여준다.

 

제2막 문득 타인이 괴물처럼 느껴진다면

대인기피증이 달리 생기는 것이 아니다.

소심하고 예민해서 사람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말과 행동이 어느 순간, 사람이 아닌 괴물로 느껴질만큼 괴로울 때 생긴다.

밤의 적막과 어둠에서 안전을 보장받는 기분.

이럴 때 만나는 책, 〈맥베스〉!

맥베스는 세 마녀로부터 예언을 듣는다.

마녀는 맥베스의 내부에 드러나지 못한 욕망을 읽었던 것이다.

권력에 대한 욕망은 맥베스 못지않게 맥베스 부인은 더 강했다.

마녀의 예언을 부추키는 부인에게 이끌려 마침내 손에 피를 묻히고 권좌를 차지한다.

하지만 불행은 욕망에서 시작되어 의심으로 전이되어 피는 더 큰 피를 찾는 괴물로 진화시킨다.

셰익스피어는 인간 누구라면 가지고 있지만 꺼내기를 두려워하는 《욕망》을 말하려 한다.

욕망 아래 깔린 집착과 의심을 거름삼아 겉잡을 수 없이 괴물로 변하기 전에 자신의 욕망을 읽어야 한다.

누군가가 풀무질로 바람을 넣더라도 영혼을 다잡아야 한다.

유명한 짐바르도의 ‘스탠퍼드 교도서 실험’을 보면 안다.

누구나 사악한 인간이 될 수 있다.

상황이 그를 불안과 불행의 코너로 몬다면 말이다.

 

제3막 평생 사랑하지 못할까 봐 두렵다면

결혼 32년차, 지금은 평생 사랑하지 않아도 삶이 두렵지 않을 무모함이 있다.

젊다면 말은 달라진다.

사랑 한번 못해 보고 처녀귀신으로 죽을 수는 없다.

원한으로 구천을 떠돌고 싶지 않아서 두려움에 벌벌 떨 것이다.

이럴 때 만나는 책, 〈헛소동〉이다.

결혼에 대한 질문을 만났다.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는 법이 어디 있나?’

‘혼자 사는 것보다 결혼해야 더 행복하다는 것이 진리일 수 있나?’

대답은 백인백색(百人百色)을 내고 싶다.

하지만 사랑을 원한다면, 사랑에 대해 확신하고 싶다면 헛소동을 만나면 도움이 될 거라고 셰익스피어는 들려준다.

《사랑은 사소한 것을 눈여겨 보는 것》이라고도 하고 《자신의 잃어버린 자아를 되찾는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라고도 한다.

운명의 짝은 함께 발전할 수 있는 상대다.

‘융’도 말했다.

“사랑이란 무엇보다 잃었던 자아를 상대방에게서 발견하는 것”이라고.

운명같은 만남이 바로 그것일 것이다.

보이지 않는 반쪽짜리 사랑의 징표를 두 사람만의 방법으로 찾아 맞춰보는 것.

나의 잃어버린 자아를 얼마나 깊숙하게 숨겨놨는지 아직도 나는 못 찾고 있다.

혹시 선녀처럼 하늘로 올라가 버릴까 봐 보여주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제4막 스스로 그 무엇도 해낼 수 없다고 생각된다면

자괴감이 깊어 자책감으로 무기력으로 이불삼게 되는 기분이다.

자존감은 구멍없는 굴 속으로 빠져서 도무지 찾아올 수 없는 감정이다.

이럴 때 만나는 책, 〈헨리 5세〉다.

헨리 5세는 왕이 되기 전에는 불량기 가득한 왕족으로 살았다.

주점에서 사고나 치고 한량과 어울리며 손가락질을 받았다.

그랬던 그가 헨리 5세(알로 불리던 왕자시절)로 불리게 되자, 삶의 태도를 완전히 바꾼다.

그야말로 인생대반전이다.

그리스도 기사도의 격언을 목숨처럼 지키면서 ‘과거의 자신과는 절연했다’고 당당히 말한다.

셰익스피어는 말하고자 한다.

《용기》를 꺼내라고.

누구나 용기를 가지고 있으나 있는 줄 몰라 찾지도 않는다.

무릎 꿇는 자신을 일으켜 세우려면 자기 신뢰가 있어야 한다.

자신을 믿지 않으면 인간은 자아실현을 할 수 없다.

자아실현을 넘어서는 자아초월욕구가 바로 용기를 가져야만 이룰 수 있다.

과거의 어두운 자신을 뛰어넘는 것이 자아초월욕구다.

무너져가는 나를 두려워 하거나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으려면 내 안의 용기를 꺼내서 과거의 자신과 과감히 헤어져야 한다.

헨리 5세처럼 말이다.

셰익스피어는 신(무엇을 믿든)과 같은 존재일 수 밖에 없다.

 

제5막 이유없는 불안이 내 마음을 지배한다면

두려움에 이유가 필요한가?

불안에 이유가 꼭 있어야 마음껏 느낄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알 수 없는 세상으로부터 밀려온 불안이 나를 덮쳐 떨어질 줄 모르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온다.

영문도 모르고 당하는 뒤통수 가격처럼!

이럴 때 만나는 책, 〈오셀로〉다.

바로 그, 오셀로.

흔히 질투에 눈이 멀어서 사랑하는 아내를 처참하게 질식사시킨 무어인.

그런 남편을 죽는 순간까지 감싸는 아내.

질투를 말하고 싶어서 셰익스피어를 썼을까?

오셀로는 감수성이 풍부해서 타고난 본성에 불안이 큰 캐릭터라고 한다.

작은 말에도 흔들림이 생길 수 있는 사람이다.

이 때, 이아고처럼 비열하고 거침없이 때로는 함구하듯 안개를 피우면 오셀로는 흔들린다.

의심이라는 괴물을 꺼낸다.

진실을 보는 눈을 감는다.

귀만 열어 쿵쾅대는 심장의 소리를 따라서 행동을 하는 사람이 되고 만다.

현실을 제 눈으로 확인해 보지 않고 오로지 소리에 이끌려 불안속으로 파묻힌 오셀로다.

단 한번 만이라도 데스데모나에게 진실의 말을 해다오~ 부드러운 말투로 말을 했다면 이아고의 거짓을 금방 알아챘을 텐데 말이다.

오셀로는 자신의 눈으로 귀로 직접 확인할 진실(사실은 거짓)을 외면하고 싶었던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불안과 상상은 쌍둥이와 같아서 오셀로를 우리에게 보내 《진실을 자각하는 능력을 키우라》고 한다.

초능력 대신 키워야 하는 진실자각력!

 

제6막 감당하기 힘든 일이 폭풍처럼 밀려온다면

폭풍이 몰아치면 튼튼한 곳으로 도망을 쳐야 한다.

하지만 폭풍을 어디서 만났는 지 생각해 봐야 한다.

집안에서? 거리에서? 산에서? 들판에서? 아니면 바다에서?

이럴 때 만나는 책, 〈템페스트〉를 보자.

작가 체사레 카타는 2016년 아일랜드에서 노어부(老漁夫)를 만나 그가 마주친 폭풍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바다에서 만난 끔찍한 폭풍우로부터 어떻게 살아왔는지 들려준 노어부는 이렇게 말했다.

뱃머리를 해안으로 돌리려고 안간힘을 쓰는 대신, 폭풍의 심장을 향해 돌진했다고.

헤어지면서 강조한 말.

“목숨을 건지려면 폭풍의 심장을 향해 몸을 던져야 한다네!”

나는 어려운 일이나 상처받아 쓰러질 때도 참았다.

피하고 눈을 감으면 내가 살아남으리라 생각했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딱 이 심정이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는 그러지 말라고 했다.

폭풍(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를 바꾸라고 말이다.

용서할 것은 하고 구원이 된다면 과감하게 두려움도 벗으라고 한다.

삶의 본질을 마주하여 볼 수 있다면 폭풍의 피해는 막을 수 없을 지라도 적어도 폭풍을 두려워하지는 않게 된다는 작가의 결론에 행복했다.

나도 폭풍의 중심으로 당당하게 걸어 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결심이 행동으로 되려면 “헨리 5세”처러 용기도 챙겨야 한다.

 

제7막 이별의 상처로 그 누구와도 만나고 싶지 않다면

헤어짐은 아프고 슬프고 괴롭다.

그래서 타인의 시선은 바늘끝처럼 괴롭히기 마련이라 피하고 싶다.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이럴 때 만나는 책,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어도 전혀 변하지 않을 세상이다.

어쩌면 더 혹독한 세상이 왔을 지도 모른다.

그런 클레오파트라가 사랑한, 서로가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않고 미친듯한 열애사를 만들었다.

사랑타령을 들려 주려고 대문호 윌선생님께서 이 연극을 쓰셨을리 만무하다.

사랑은 역사를 만들고, 이전의 관계는 종말을 만난다. 사랑이 끝나면 역사도 끝난다.

이 말이 맞을까?

《과장법》을 가르치려 쓴 글은 아니지만 “상대방을 소중하게 생각하되 지나친 이상화는 피해야 한다”라는 뜻을 품은 연극이라고 한다.

이별은 물과 흙으로 만나지 말고 불과 공기로 승화시키라고 한다.

클레오파트라가 죽어가는 안토니에게 말하듯이.

이는 사랑의 상처를 대하는 자세에 해당한다.

불과 공기는 소멸되어 사라지는 것.

이별의 아픔도 그렇게 보내고 다시 태어나듯 새로운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인가 보다.

불과 공기로 사라지더라도 화상과 습기는 남아 있다는 것이 문제로다.

 

제8막 삶에서 가장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다면

가장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나면 가장 밝은 세상이 나온다는 약속만 한다면 기꺼이 지날 것이다.

하지만 인생은 연극이고, 연극의 연출자는 운명이라 알 수 없다.

내가 선택하지만 타인의 선택도 영향을 주는 터널일 것이다.

이럴 때 만나는 책, 〈햄릿〉.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로다”의 패러디가 잔치를 벌이던 시절도 있다.

먹느냐 마느냐 이것이 문제인 것은 다이어트의 고통이다.

자느냐 깨느냐 이것이 문제인 것은 수험생의 고통이다.

앉느냐 서느냐 이것이 문제인 것은 빈자리 앞의 청춘의 고통이다. 청춘도 아프니까 앉고 싶다.

셰익스피어는 햄릿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헛소리나 해대는, 결단력없는 무모한 청년으로 우리에게 보여주려 하셨을까?

「햄릿적」이라는 형용사가 있다.

이는 “결정하기 힘들기에 해답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문제”를 뜻한다고 한다.

너무나 마음에 드는 형용사다.

나는 햄릿적인 것을 가진 적이 있다.

햄릿은 화를 낸다.

아버지를 죽인 숙부가 왕이 되고, 어머니와 재혼하는 것을 감당하지 못하여 감정을 드러낸다.

부여에는 형사취수제도 당당히 있었는데......

햄릿의 화는 가장 강력한 인간의 권리라고 한다.

그동안 나는 이 권리를 마음대로 써보지 못했으니 인간답지 못했음을 시인한다.

햄릿의 화는 삶을 자기주도적으로 사는 것을 보여준다고 한다.

즉, 알선생님께서는 햄릿으로부터 《자기주도적으로 사는 사람》을 들려주시는 거라고 작가는 말한다.

자신의 주도권에 대한 이야기라는 뜻이다.

햄릿의 복수가 아니라 주도적인 삶에 대한 것이다.

살면서 높은 파도를 만나면 절망하는 기술을 잘 쓰면 파도에 부딪치더라도 잘 넘길 수는 있다는 말씀이다.

미래는 모르지만 주도적으로 기술을 잘 쓴다면 깊고 긴 어둠의 터널쯤은 헤매지않고 똑바로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당황해서 함부로 움직이면 왔던 길을 되돌아 갈 수 있음을 명심하자.

 

제9막 내 감정을 원하는 대로 관리하고 싶다면

햄릿이 되면 가능하지 않을까? 화만 관리될 지도.

그럴 때 있다.

이리 재고 저리 재고 계산하다보면 정작 표현해야 할 순간을 놓칠 때.

뒤돌아 서서, 혹은 집에 와서 ‘에잇~ 이렇게 말해 버릴 걸.’ 후회를 한다.

멍청이 소리를 서너번은 해야 풀리는 억울함이 생긴다.

기왕이면 사랑처럼 좋은 감정이었다면 덜 억울할텐데 말이다.

아무튼 관리받고싶은 감정이 있다.

이럴 때 만나는 책,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단체관람으로 봤던 영화다.

레오나드 위팅과 올리비아 핫세가 나오는 묵은 영화다.

이도령과 춘향이처럼 해피 엔딩이 아니라서 엄청 울었던 기억이 난다.

용감하지 못한 로미오가 미웠고, 예쁜 줄리엣이 죽어서 슬펐다.

진짜 죽었는지 확인하지 않고 약을 홀딱 마시는 로미오에게 “안돼~~~”소리쳤었다.

바보 멍청이!

윌 선생님은 그런 두 십대의 무모한 사랑을 쓰면서 교훈이나 메시지는 넣지 않았다고 한다.

해석은 각자 알아서들 하시라구~라는 뜻이다.

사랑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엄청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끝내 죽음 아니면 죽을만큼 아프게 헤어지면 어쩌나~ 지레 겁 먹을 테니까.

사랑에 빠지면 타자(他者)를 절대화 한다고 한다.

거의 신격화라고 해야 할까.

도덕을 초월하는 개념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동시에 해석은 독자의 몫으로 남긴다.

그말인즉은 좋은 것은 만들어지니까 잘 만들도록 좋게 보라는 뜻이고, 감정은 내 맘대로 안되는 깨볶는 것과 다름없으니 힘조절을 잘 하라는 뜻이란다.

교훈이나 메시지를 넣지 않아도 독자가 알아서 만들 수 있는 좋은 책임이 분명하다.

 

제10막 한번은 원하는 인생을 살고 싶다면

죽었다 깨어나도 이번 생은 다시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는 반면, 이번 생은 죽고싶지 않을만큼 좋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죽기 전에 끝내주는 인생을 갖고 싶은 사람이 훨씬 많겠지만 말이다.

이럴 때 만나는 책, 〈뜻대로 하세요〉다.

제목이 주는 직설적인 뜻은 그대로다.

"IT'S UP TO YOU."

혹은

“THAT'S NOT MY BUSINESS."

누구나 뜻대로 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은 사회적인 규약 때문이다.

규약 혹은 시선, 체면, 도리, 의무, 관습, 암묵적인 지시 등등.

작가는 셰익스피어의 ‘뜻대로 하세요’라는 연극에서 공적인 정체성과 내밀한 정체성이 정면대결하는 상황임을 보여준다.

현실의 정체성은 내가 아닌 것을 내가 아는데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

내밀한 정체성은 내가 나로 살기를 발버둥치지만 차마 꺼내지 못하는 경우.

불협화음으로 인생은 엉뚱한 곳으로 흐르고 원하는 삶을 살고 싶어 한다.

이럴 때는 전혀 다른 내가 되어 살아봄직 하다고 작가는 설명해준다.

물론 알선생님의 연극으로부터 꺼낸 메시지다.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우리는 연기하는 배우다.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현실이라는 엄격한 감독이 배정한 배역을 연기하는 것》 이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하지만 무엇을 선택하고 버릴 것인지, 어떻게 용서하고 어떻게 화해할 것인지, 쓸쓸한 기억은 어떻게 잊을지 등등 인생을 연기하는 배우가 충분히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뜻대로 하세요를 외쳐주는 셰익스피어님에게 영광을!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줄거리만으로 평가했다면 그것을 모두 버려야 할 것이다.

우리가 아는 셰익스피어는 누구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는 대체 어떻게 읽었길래 말귀가 이렇게 어두운가를 깨달아야 할 것이다.

셰익스피어를 읽었다면 이 책을 읽고 다시 읽을 것을 권한다.

읽지 않았다면 먼저 읽고 이 책을 읽기를 권한다.

그 이후에 다시 셰익스피어의 글을 만나면 좋겠다.

참으로 좋겠다.

사족을 붙이자면, 외화에서 보는 교육현장이 우리에게 없음이 아쉽다.

하나의 작품으로 토론을 하고, 에세이를 쓰고, 단어를 확장시키고, 마음에 드는 구절을 암기하는 수업을 봤다.

우리는 작가와 작품의 줄거리와 문법과 주제,소재 등을 외우기 바빴다.

그래서 행간에 숨어있는 가르침을 미처 보지 못한다.

하나를 제대로 알면 모든 곳으로 갈 수 있는 열쇠를 지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머리말에 나오는 말씀 하나 더 추가!

오디세이아, 신통기, 헤라클레이토스의 책, 베르길리우스의 책, 성서, 주역, 셰익스피어의 작품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서적점(書籍占)을 보는 것이다.

서적점이란 신이 내린 영감이나 예언의 힘으로 집필된 성스러운 책에서 고민의 해답을 찾는 점의 일종이라고 한다.

서적점을 보는 방법은 간단하다.

책을 믿는다.

나를 더 잘 안다고 생각한다.

책이 내게 전하는 바를 그대로 믿기로 한다.

책 위에 손을 얹고 눈을 감은 채 내면의 질문에 집중한다.

손이 가는대로 페이지를 펼친다.

그때 들어온 문구, 문단, 시와 시굴절이나 주역의 육효 등이 신탁을 전하는 사제의 목소리가 되어 우리의 고민에 대한 답을 주고 내면의 번뇌를 풀어줄 거라고 한다.

셰익스피어의 희곡도 서적점에 사용하기 유용하다는 작가의 말을 긴가민가 했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생각했다.

“그래, 결심했어. 나도 힘들 때 해보자.”

그러려면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다 사놔야겠다.

 

 

 

 

 

여기서 퍽의 대사는 셰익스피어 세계관의 중심축을 이루는 사상입니다. 연극과 삶이 결국 똑같다는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근본적으로는 비현실 같은 현실을 비롯해,우리가 살면서 겪는 모든일이 덜 심각하게 느껴집니다. - P41

인간의 감정에는 마법과도 같은 힘이 있다는 말이죠 - P87

이기적으로 구는 사람에게 예의를 차리는 건 같은 괴물이 되지 않으려는 것, 즉 자신을 위한 행동이죠. 괴물에 영향받지 말고 자신을 독립된 존재로 나누어 그를 대하세요. -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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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같이 뛰어내려 줄게 (여름 낙서 에디션) - 씨씨코 에세이
씨씨코 지음 / 다산북스 / 2023년 6월
평점 :
품절


 

 

귀여운 그림이 잔뜩 그려진 책을 제공받았다.

이름하여 “내가 같이 뛰어내려 줄게”, 그리고 띠지에는 〈힐링에세이 여름 낙서 에디션〉이 딱 박혀 있다.

유난히 장마가 길고 폭염이 올 거라는 기상청의 엄포에 지레 겁을 먹어서 ‘앗싸! 시원한 여름맞이다’라고 생각했다.

역시 일본인답게 그림도 작고 앙징맞다고 생각했다.

작가의 이름이 씨씨코니까.

150만명의 구독자 어쩌고 누적 조회 5억 뷰 저쩌고 하길래 우왕~대단한 분이시구나 했다가 국내 틱톡커 랭킹 상위 1%라는 말에 빛과 같은 속도로 검색을 했다.

짧은 시간에 후다닥 지나가는 영상과 빠른 말투와 영어와 한국어 자막이 꼬부랑꼬부랑 지나갔다.

자그마한 여자아이라고 밖에 표현되지 않는 씨씨코씨였다.

여름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바다로 함께 뛰어들어가서 잘 놀아준다는 젊음의 글이라는 추측을 하면서 덤덤하게 읽었다.

대 반 전!

 

막내딸같은 어린 사람이 어떻게 이런 삶의 힘과 지혜가 있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나는 꼰대다.

고정관념이 확실하다.

절대로 그런 것은 없다고, 없을 거라고, 있어도 꺼내지 않으리라 결심했건만 선입견이 불쑥 나왔다.

어리다고 함부로 생각한 나를 멍석말이하고 싶었다.

 

총 5장으로 이루어져있고 각 장마다 10~13개의 짧은 글이 씌어져 있다.

『바들바들 덜덜덜 떨린다』는 1장은 내일에 대해 겁 먹는 누구나를 위한 글이라고 말하고 싶다.

2장, 『뭐야 인생 생각보다 기네』는 죽고싶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지만 지나고보면 누구나 다 겪는 일, 생각보다 인생이 기니까 실패해도 괜찮다, 다음 기회가 있잖아와 같이 ‘아님 말고’로 퉁쳐도 좋은 글이다.

3장,『두 발 딱 붙이고 검을 뽑아보자』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고, 내 몸에 힘을 줘서 마음을 잘 일으켜 세우고 싶은 사람이 읽어보면 어떨까 궁리했다.

4장,『푸하하가 모여서 행복이 되는구나』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말하고 싶다.

연애하는 사랑이 아니라 사람, 가족, 친구에 대한 사랑을 무심한 듯 그러나 가슴 찌릿하게 느끼도록 가볍게 툭 던지는 이야기다.

5장,『가장 행복한 순간은 아직 안 왔다』를 읽으면서 울 뻔 했다.

씨씨코를 진작에 만났어야 한다는 생각과 이런 친구 하나 있으면 인생이 조금 더 진한 행복으로 버무려졌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사를 하고 누군가에 들려 줘야 한다면 어느 곳이 아니라 전부 다! 라고 말하고 싶은 씨씨코의 마음이야기다.

불치하문(不恥下問)이라고 했다.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라.

삼척동자에게도 배울 것이 있으면 기꺼이 고개숙여 배우라고 했다.

그녀의 책을 만났으니 그녀를 만나면 고맙다고 인사를 전하고 싶다.

오늘을 살면서 내일을 바라보는 그녀의 맑고 투명한 눈은 나에게 아직도 늦지 않았으니 걱정말라고 했다.

손을 내밀면 “내가 같이 뛰어내려 줄게요”해 줄 것 같다.

물론 700년 후에나 가능한 일이지만.

 

친구가 힘들다고 무인도로 가서 아무도 모르게 뛰어내리고 싶다고 했다.

씨씨코는 힘내라고, 열심히 하자고, 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다.

“내가 같이 뛰어내려 줄게.” 그랬다.

근데 어차피 뛰어내릴 거면 하고싶은 거 다 하고 오라고 했다.

밀린 드라마도 다 보고, 하고싶었던 꿈도 좇아보고, 좋아했던 사람과 밥도 먹고, 회사도 때려치고 여행도 실컷 하고, 학교 책 말고 읽고 싶은 책도 맘껏 읽고.

그러고나서도 살기 싫으면 같이 무인도로 가준다고 했다.

그대신 치킨도 한 마리 시켜먹고 딸기라떼를 좋아하는 친구에게 라떼도 사준다고 약속한다.

치킨이 질릴 때 까지 먹고 죽을 거라서 700년 정도 걸린건데 그때까지 친구니까 같이 먹어줄 거냐고 묻는다.

혼자 밥을 먹지 못하는 씨씨코니까 같이 먹자고.

먹다보면 또 행복해질 거라고.

 

이 책의 마지막 이야기가 너무 좋았다.

스타는 항상 마지막에 나타나듯이 처음에는 피식피식 웃다가 곰곰 생각하는 내가 되었다.

나도 그랬어, 그랬지 공감하다가 이 어린 여자아이는 대체 어느 별에서 왔을까 부러웠다.

마침내 마지막 이야기에서 나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같이 뛰어내려 준다고 했다.

같이.

 

십년 전쯤이었다.

씨씨코의 친구처럼 나도 사라지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한강물을 내려다보면서 저 깊은 물 속에 들어가면 아무도 나를 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편안해 보였고, 그 곳만이 안식처 같았다.

그때는 누구에게도 그런 마음을 말할 수 없었다.

친구에게조차도.

혼자서 버텼다.

그때의 내가 씨씨코가 말한대로 “내가 같이 뛰어내려 줄게”를 들었을 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면 타임리프로 씨씨코가 과거의 내게 찾아왔을 것 같다.

 

아무 곳이나 펼쳐서 읽어도 편하고 안녕한 책.

아무 곳이나 읽어도 웃음이 났다가 눈물이 나는 말랑한 책.

아무렇지 않게 시작했다가 쓰다듬게 되는 따스한 책.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다면 젊은 사람에게는 반드시 손에 쥐여주고 싶은 책.

 

직접 읽어보면 안다.

왜 힐링에세이인지.

 

참고로 씨씨코의 틱톡영상은 내 스타일이 아니다.

정신없이 보다가 웃는 타이밍을 놓쳐서 결국은 ‘뭥미?’라는 느낌이다.

난 그렇게 나이든 사람이었음을 깨닫게 하는 씨씨코다.

한번쯤 만나서 깨발랄한 젊음을 보고 싶다.

그리고 씨씨코의 허리가 아플 때 나도 과감히 서서 밥을 먹어줄 자신이 있다.

진짜다.

행운이 나타나는 시기가 그 모든 것의 마지마 ㄱ끝에 있어서,
희망 다음에 희망 다음에 실망이 찾아오고,
실망 다음에 실망 다음에 절망이 찾아오고,
절망 다음에 절망 다음에 포기가 찾아온다.

그 마지막 포기 순서에서 희망을 가지면
행운이 찾아오는 것이다.

내가 친 막판 스트라이크가 말하는 것 같았다.
너의 인생도 아직 포기하기 이르니 희망을 가지라고. - P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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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스프 스티커북
다산북스 편집부 지음, 네오위즈 원작 / 다산북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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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입니다]

 

 

냥이든 뭉이든 집사라면 “못살아, 못살아. 사야 해. 사야 해.”를 방언처럼 터뜨리고 말 책이다.

책이라고 했지만 책이라고 불러도 되는지 고민하게 하는 책이다.

책이 아니라면 노트쯤으로 자리매김하도록 놔둘까 갈등하게 만드는 출판물이다.

이름하여 스티커북이다.

『고양이와 스프 CATS & SOUP』

상상하건대 마음이 달콤새콤 달달 콤콤해지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책 속의 스티커를 이리 저리 뗐다 붙였다 하고싶은대로 놀 수 있는 책이려니......했지만 역시 꽝이다.

온전히 스티커만 있다.

이야기는 없다.

프롤로그에는 꿈꾸는 시간이 기다린다는 뉘앙스가 가득한 문장이 쓰여 있다.

 

“별고양이 숲의 모든 고양이는 별에서 옵니다. 사람들이 별을 보고 빈 소원들은 빛이 되어 별에 쌓이고 그 소원의 빛들이 가득 차면 별에 잠들어 있던 고양이가 땅으로 내려옵니다.”

 

드디어 시작되는 이야기인가 보다~라고 두근대는 가슴을 누르면서 펼치면 그냥 스티커다.

예쁜 스티커다.

막 써버리기에는 고운 스티커다.

반짝이고 빛나는 고양이와 스프와 요리재료와 수많은 고양이들과 동물친구들이 ‘장화신은 고양이’보다 더 반짝이는 눈을 보여준다.

‘이걸 어떻게 쓰지?’

스티커를?

아니, 서평을 말이다.

 

고양이는 스프를 끓이고 있다.

외로운 친구들에게 좋아하는 재료를 넣어서 맛있게 휙휙 저어서 행복한 미소를 양념으로 넣고 있다.

빈손으로 와도 좋고, 친구손을 잡고 와도 된다.

고양이가 아니어도 물론 환영이다.

계절불문하고, 밤이든 낮이든, 그곳이 숲속이든 바닷가든 고양이는 스프를 끓이면서 친구를 생각한다.

“누구에게든 먹여야 해.”

그런 단호한 사랑을 품고 커다란 주걱으로 넓직한 냄비 속을 스윽스윽 젓는다.

감기를 앓아도, 사랑의 열병을 앓아도, 외로움을 앓아도, 혹은 실연의 상처가 곪아도 고양이의 스프를 먹으면 다 나을 것 같은 은근한 열기가 느껴진다.

내 일기장에, 내 편지에 스티커를 쓸 것이 아니라 고양이와 스프의 스티커를 이용해서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들만큼 다정하고 상냥하다.

꿈 속 이야기가 떠올라 홀로그램 스티커를 쓴다면 훨씬 빛이 날 거라는 확신도 든다.

 

 

어릴 때 스티커가 갖고 싶었다.

가난은 가져야만 하는 것조차 가질 수 없는 현실을 365일 매일 뜯어내는 일력에 붙어서도 떨어지지 않게 한다.

스티커 대신 연필로 그린 그림을 오려서 밥풀로 붙였다.

문방구에 걸린 스티커와 칼라로 그려진 종이인형을 갖고 싶었던 어린 시절은 색도 바래지않고 기억의 방안 벽에 딱 붙어 있다.

아이들이 스티커를 환장하도록 좋아하는 시절을 만났을 때 덩달아 좋았다.

500원, 1000원이면 백여장이 넘는 스티커를 원하는 곳에 붙일 수 있었다.

쓰고 또 써도 남는 스티커를 간직했다.

손편지가 이메일이 되고, 이메일이 메신저로 변해서 스티커의 위용이 바닥을 쳤다.

그러던 어느 날, 다꾸가 툭 내앞에 떨어졌다.

다이어리 꾸미기!

매일 다이어리를 꾸밀 시간은 없었지만 ‘다꾸’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뛰었다.

시간만 생겨라! 스티커와 내 글이 엇박자가 되어도 막 써 주리라!

그렇게 나에게 스티커가 끈적하게 다가왔다.

그 유혹에 나는 은근슬쩍 넘어가 줬다.

나이불문 스티커는 한번 달라붙으면 그 특성상 쉽게 떼지 못한다.

 

고양이와 스프의 스티커는 한동안 책처럼 들여다보고 읽을 것이다.

책장마다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내 음미한 후에 스티커는 ‘다꾸’로 환생할 예정이다.

 

“이 책 어때?”

아들에게 자랑했다.

“이거 모바일 게임 같은데?”

검색해 보니 게임의 캐릭터다.

 

어쩐지~ 스티커로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니!

모바일 게임에서 고양이의 스프를 맛있게 끓이고 고양이마다의 특징을 배우면서 이름도 짓고 여차저차 이야기를 풀어나가나 보다.

나는 게임보다는 책!

글자없는 그림책같은 ‘고양이와 스프’ 스티커북은 꿈을 꾸려는 분에게 강추한다.

미소짓지 않을 수 없고,

마음 두근대지 않을 수 없고,

저절로 책장이 넘어가고,

어디에 붙일까 고민에 빠진 미간에게 주름 하나 선사하고,

오묘한 분홍색깔 표지에 손바닥을 올리면 스프의 따스함이 느껴진다.

 

근사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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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봄날인 너에게 - 인생의 꽃샘추위에 지지 않는 햇살 같은 위로
여수언니(정혜영) 지음 / 놀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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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봄날인 너에게/여수언니 정혜영 에세이/다산북스

 


 

 

 

갓난아기도 살아가는 고통이 있다고 한다.

젖은 기저귀를 제때 바꾸지 못하는 불편함, 배고픔의 의사를 울음 이외에는 표현할 길 없는 막막함 심경 말이다.

다섯 살 아이도 힘들어 한다.

누구와 친구를 할 것인지, “딱 5분만 더!” 놀고 싶은 진심과 “안돼!” 엄마의 기준 사이에서 갈등을 한다.

살면서 힘들지 않고 온통 행복으로 가득한 사람이 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과연 그렇게 살 수 있을까?

그렇다면 진짜 행복한 삶일까?

두터운 벽 앞에 서 있는 것 같은 마음이 들 때마다 고민을 한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돌밭에서 엎어져서 상처투성이가 된 마음이 들 때마다 슬프다.

‘다시 일어났을 때 또 엎어지면 어쩌지?’

그래도 생각을 한다.

 

일어날 때마다 나 자신에게 남은 힘이 있음을 알아챈다.

넘어질 때마다 내가 걸어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다시 주저앉고 싶을만큼 힘들 때마다 나를 일으키고 싶어하는 나를 발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존감이 쉽게 무너지고 자괴감이 들 때가 많다.

 

여수언니 정혜영은 낯선 작가다.

유튜브 크리에이터이자 ‘봄날엔’이라는 디저트 브랜드의 대표라고 한다.

여수에서 딸 은채와 달콤하게 살아가는 싱글맘.

그녀의 딸이 그린 그림책과 함께 나에게 온 알록달록 에세이집을 반가이 만났다.

여수언니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기 때문에 더욱 궁금한 그녀의 속내였다.

선입견없이 만나는 사람은 낯설기 때문에 설렘이 있고, 궁금함이 있기 때문에 가슴이 뛴다.

 

이 책, ‘나의 봄날인 너에게’는 글을 다 쓴 이후에 딸을 위해 남기기로 작가는 결심했다.

그리고 ‘누구나’를 위한 책이라는 것을 충분히 감지하고도 남는다.

여수언니는 자신을 가장 먼저 사랑하는 사람이다.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는 생각을 바탕에 깔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스스로를 무조건 사랑하고, 매일 응원하며,완벽하지 않아도 충분히 감사하고, 모든 일을 먼저 시도하는 꿈꾸는 사람이 되라고 말한다.

 

능력껏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해서 최선을 다하는 자세.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아껴주는 마음으로 대하는 태도.

식사나 기분도 자신의 마음이 기우는 것으로 선택하는 자신감.

과거의 실패나 실수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내일을 바라보는 긍정마인드.

시련이라는 꽃을 ‘터닝포인트’라는 꽃말로 인정하면서 다시 일어서는 용기.

 

여수언니 정혜영은 말한다.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알아내고, 자신을 대접하고, 무조건적으로 지지해주는 사람을 곁에 두며,주변 사람을 잘 돕는 사람이 되는 거라고.

나를 위한 말로 들렸다.

지금 가족의 병환으로 부족한 내 능력을 자책하는 나에게, 그런 생각은 버리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완벽은 없고 충분한 마음은 있는 거라는 말을 들려줬다.

 

나의 봄날은 바로 내가 나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 자존감을 키우는 시간들로 올 것이다.

여수언니 정혜영은 나와 사랑을 나누는 시간은 제철이 없으니, 나를 아낌없이 키우는 양육자로 자신을 선택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

과자 맛동산의 반죽에게 20시간 이상 국악을 들려준다는 신기한 말.

맛동산이 맛있는 이유는 행복한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라는 글귀는 마음이라는 밭에 씨를 뿌리는 느낌이었다.

씨를 뿌려놓고 저절로 잘 자라길 바랄 것이 아니라 행복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옳다.

내 마음속의 감정들 중에서 저절로 행복한 것만 나오도록 할 것이 아니라 행복이 나오도록 내가 나를 잘 관리해야 한다.

 

나보다 젊은 여수언니는 ‘어른’에 대한 미숙한 생각에 단단한 기둥을 세워줬다.

‘다 자라서 자신의 일에 책임을 지는 사람’인 ‘어른’은 단단한 가치관을 가져야 하고, 스스로의 기분을 잘 풀어줄 수 있어야 하며,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고, 정신적 성장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과연 나를 사랑하면서 봄날을 살아갈 제대로된 어른인가?

 

‘나의 봄날인 너에게’를 쓴 여수언니 정혜영 작가님께 감사드린다.

당근을 주기만 하는 사람보다는 채찍을 들어주는 사람을 만난 책으로 충분조건을 가졌다.

 

#마음이 단단해지고 싶은 분에게

#자신을 사랑하고 싶은 분에게

#흔들리고 싶지않은 분에게

#말보다는 스스로 알아채기를 바라는 분에게

#무엇보다 단단한 사랑의 힘으로 아이를 키우고싶은 분에게

춥고 시리기만 한 계절은 없고 영원한 어둠도 없다. 얼음을 깨고, 차가운 바람을 뚫고, 봄은 소리 없이 온다. - P10

어떤 선택을 해도 항상 응원하고 격려하고 싶다. 우리는 지금 그대로도 괜찮고 소중한 사람이다.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콕 집어서 칭찬해 주자. 잘하고 있다고, 오늘 하루도 멋지게 해냈다고. - P36

지금을 살아가는 나를 위해 지나간 것을 후회하는데 너무 오랜 시간을 쓰지 말자 - P54

나는 시련에도 꽃말이 있다면, 그건 바로 ‘터닝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은 시련이 다가오면 좌절하거나 주저앉는 대신 ‘내가 뭔가를 놓치고 있나?‘하고 차근차근 되짚어본다. - P110

내가 나를 아끼는데 어떻게 남이 나를 함부로 대할 수 있을까. -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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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에 읽는 노자 - 오십부터는 인생관이 달라져야 한다
박영규 지음 / 원앤원북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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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에게 가는 길은 있다.


[오십에 읽는 노자/ 박영규/ 원앤원북스]

 

나이로 인해 느끼는 삶의 무게를 덜어내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무엇보다 타인의 삶을 통해서 가장 큰 변화점을 삼는다.

스스로의 경험 속에서 깨닫는 것이 있다면 성인(聖人)과 다를 바 없는 경지의 경우에 한해서다.

겪고 난 이후, 감정과 마음가짐의 변화를 누군가의 강한 말씀 하나를 발판삼아 포용하거나 인정하기도 한다.

그리고 삶의 지표를 삼으면서 무게를 덜고자 하는 또다른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어한다.

‘오십에 읽는 노자’ 이 책도 그런 경우가 아닌가 한다.

『마흔에 혹은 오십에 읽는』이라는 제목이 반영하는 삶.

결국은 마흔과 오십을 맞이하고 지나온 사람들이 인생을 반추하는 기회를 가장 많이 갖거나 가졌을 가능성이 크다.

알고보면 서른 둘에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람이 있음에도.

알고보면 일흔 아홉에도 마냥 욕심을 부리면서 잘 살아가는 사람이 있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돌아보고, 내다본다면 백세시대의 절반인 오십에 이정표를 만들어 보는 것이 가장 적당하지 않나 싶다.

 

춘추전국시대의 학자였던 노자는 패권다툼의 황실을 지켜보기 힘들어 사표를 던지고 길을 떠나려 했다.

성지기 윤희는 그에게 떠나기 전에 말씀을 듣고자 했고, 즉석에서 도(道)란 무엇인가에 대해 약 5000자 가량의 강연이 있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모아서 만든 것이 바로 상경과 하경, 81훈으로 이루어진 도덕경이라고 한다.

 

저자는 삶의 파도를 여러 가지로 겪으면서 십여년 전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인문학공부에 열중했다. 그런 과정 속에서 노자를 만나고 기독교인이지만 삶의 방향을 노자의 말씀으로 가다듬은 경험을 책으로 엮었다.

81훈 중에서 『오십에 읽는 노자』라는 제목처럼 50개의 훈(訓)을 골라서 글을 썼다.

다섯 개의 큰 꼭지에는 멈춤, 성찰, 용서, 비움 그리고 조화라는 단어가 글의 얼개를 나타낸다.

각 단어에는 도덕경 속에서 고른 10가지의 경(經)이 다시 나뉘어져 있고, 각 경마다 저자가 겪고 생각하고 깨달은 것들이 자세히 나열되어 있다.

 

책 한권에서 하나의 깨달음을 얻어서 내 삶에 투사하기란 쉽지 않다.

하물며 도덕경의 81가지의 가르침 중에서 50가지를 모두 받아들여 적용하는 것은 무리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는 현재 가장 결핍으로 느끼는 것, 가장 힘든 부분으로 생각되는 것을 골라서 마음에 담아두는 것이 최선의 일이 아닌가 한다.

저자의 삶은 굴곡진 편이다.

정치권의 공보특보로도 활약했고 한국승강기대학교의 총장까지 지내신 분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는 ‘무위자연’의 뜻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으리라 본다.

단번에 이뤄진 것은 없다.

저자가 책 속에서 논하는 글과 사람들을 보다보면 얼마나 많은 인문학을 접했으며 스스로를 닦기 위해 애썼음을 느낄 수 있다.

법정스님, 공자, 장자, 톨스토이, 삼국지, 류시화, 비틀즈, 다산 정약용, 이어령, 명리학, 주역, 그리스신화, 유발하라리, 영화 대부, 태조 이방원, 사마천, 황희. 일리아드,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헤르만 헤세......

익히 알려진 분들의 사례까지 거론할 정도라서 숨이 찼음을 고백한다.

때로는 노자에 대한 서술인지 주역인지 헷갈릴 때도 있다.

무소유를 위한 책인지, 장자를 위한 책인지 흐려지는 순간도 있다.

‘오십의 주역공부’와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월든’, ‘무소유’ 등을 읽은 나로서는 겹쳐지는 부분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의 인생에 커다란 지침을 준 책들에 대한 오마주로 서술했으리라 짐작을 해본다.

 

노자의 ‘도’는 우리가 교과서 배운 『무위자연(無爲自然)』으로 마무리를 짓는 듯 하지만 결국 노자가 춘추전국시대를 마주하면서 만든 열매는 부쟁(不爭)이라고 한다.

다투지 않는 것.

다투지 않는다는 것은 권력에 한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주변인과의 사리사욕에 얽혀서 다툼이 없어야 하는 것이 있다.

물론 헛된 감정싸움이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다툼도 허망한 일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생의 리더는 바로 자신이다.

자신과의 싸움을 하지 않는 것이 바로 노자가 말한 ‘무위자연=부쟁’이라고 생각한다.

경쟁을 위해 물불가리지 않고 나아가려는 마음.

더 갖기 위해서 손에 쥔 것을 틀어쥐고 놓지 않으려는 마음.

남들보다 나은 자식의 미래를 위해서 박차를 가하는 마음.

자신을 돌아보기 보다 타인의 탓부터 내세우는 마음.

결과에 매진하여 감정이 먼저 나서 상대방에게 상처를 내는 마음.

수많은 이기심과 싸우지 않는 것이 곧 부쟁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위자연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다.

자연에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는 태도이다.

아무런 노력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쓸데없는, 무모한, 격렬한, 때로는 집요한 집착을 버리라는 뜻이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일 때 가장 아름답고 자연답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나다울 때, 주어진 것에 순응하고 받아들일 때, 부정하고 싶은 상황 속에서도 안정된 부분을 바라보고 포용할 때, 타인의 상처를 내 상처로 인식하고 이해할 때.

얼마든지 우리는 도를 실행할 수 있다.

거창한 깨달음만이 노자의 뜻을 따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간소한 마음, 법정스님의 무소유와 같은 마음이면 된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에 자족하는 마음이다.

감정이나 욕심도 무소유에 기초하여 살아가면 노자의 도덕경 81훈을 모두 삶의 기준으로 삶지 않아도 충분히 노자의 정신을 이어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나이와는 무관하게 노자를 읽어도 좋음을 말하고 싶다.

 

덧붙이자면, 저자 박영규님의 자택 근처에는 식물원이 있다고 한다.

그 곳을 산책하면서 자연의 사계를 자연스럽게 지켜보게 되어 누구보다 가까이서 노자의 마음을 품에 담을 수 있었다고 본다.

도시에서, 직장인으로, 혹은 환자나 전업주부, 그리고 퇴직자 등 다양한 경우를 가진 독자들은 식물원이나 자연이 가깝지 않아서 산책과 사색의 시간을 갖기 힘들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연은 도시에도 얼마든지 있다.

매일 같은 자리에서 같은 시간 하늘을 바라봐도 된다.

도시 곳곳에 꾸며진 거리의 정원도 있다.

사무실의 작은 화분을 매일 살펴보는 것도 가능하다.

멀리 가고, 큰 것과 거창한 것을 환경으로 삼지 않아도 충분히 우리는 자연속에 있다.

그러므로 노자를 만나기 위해서라도 오늘은 하늘 한번 쳐다봐 주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 한다.

 

쓰러졌을 때 가장 좋은 해결법은 일어서는 것이다. 그동안에는 그게 무척 힘들었는데 이젠 별것 아닌 게 되었다. 쓰러졌을 때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길을 간다 - P120

말없는 가르침과 무위의 유익함에 미칠 만한 게 없다.
-도독경 43장- - P137

자연을 닮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공에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놓으면 자신을 용서할 수 있다. 나를 용서하기로 한 후 내 마음이 편한 걸 보면 ‘도덕경‘의 가르침이 공허한 빈말 같진 않다. - P154

그러므로 성인은 거친 삼베옷을 걸치고 있지만 아름다운 구슬을 품고 있다. - P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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