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십에 읽는 노자 - 오십부터는 인생관이 달라져야 한다
박영규 지음 / 원앤원북스 / 2023년 3월
평점 :
노자에게 가는 길은 있다.
[오십에 읽는 노자/ 박영규/ 원앤원북스]
나이로 인해 느끼는 삶의 무게를 덜어내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무엇보다 타인의 삶을 통해서 가장 큰 변화점을 삼는다.
스스로의 경험 속에서 깨닫는 것이 있다면 성인(聖人)과 다를 바 없는 경지의 경우에 한해서다.
겪고 난 이후, 감정과 마음가짐의 변화를 누군가의 강한 말씀 하나를 발판삼아 포용하거나 인정하기도 한다.
그리고 삶의 지표를 삼으면서 무게를 덜고자 하는 또다른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어한다.
‘오십에 읽는 노자’ 이 책도 그런 경우가 아닌가 한다.
『마흔에 혹은 오십에 읽는』이라는 제목이 반영하는 삶.
결국은 마흔과 오십을 맞이하고 지나온 사람들이 인생을 반추하는 기회를 가장 많이 갖거나 가졌을 가능성이 크다.
알고보면 서른 둘에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람이 있음에도.
알고보면 일흔 아홉에도 마냥 욕심을 부리면서 잘 살아가는 사람이 있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돌아보고, 내다본다면 백세시대의 절반인 오십에 이정표를 만들어 보는 것이 가장 적당하지 않나 싶다.
춘추전국시대의 학자였던 노자는 패권다툼의 황실을 지켜보기 힘들어 사표를 던지고 길을 떠나려 했다.
성지기 윤희는 그에게 떠나기 전에 말씀을 듣고자 했고, 즉석에서 도(道)란 무엇인가에 대해 약 5000자 가량의 강연이 있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모아서 만든 것이 바로 상경과 하경, 81훈으로 이루어진 도덕경이라고 한다.
저자는 삶의 파도를 여러 가지로 겪으면서 십여년 전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인문학공부에 열중했다. 그런 과정 속에서 노자를 만나고 기독교인이지만 삶의 방향을 노자의 말씀으로 가다듬은 경험을 책으로 엮었다.
81훈 중에서 『오십에 읽는 노자』라는 제목처럼 50개의 훈(訓)을 골라서 글을 썼다.
다섯 개의 큰 꼭지에는 멈춤, 성찰, 용서, 비움 그리고 조화라는 단어가 글의 얼개를 나타낸다.
각 단어에는 도덕경 속에서 고른 10가지의 경(經)이 다시 나뉘어져 있고, 각 경마다 저자가 겪고 생각하고 깨달은 것들이 자세히 나열되어 있다.
책 한권에서 하나의 깨달음을 얻어서 내 삶에 투사하기란 쉽지 않다.
하물며 도덕경의 81가지의 가르침 중에서 50가지를 모두 받아들여 적용하는 것은 무리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는 현재 가장 결핍으로 느끼는 것, 가장 힘든 부분으로 생각되는 것을 골라서 마음에 담아두는 것이 최선의 일이 아닌가 한다.
저자의 삶은 굴곡진 편이다.
정치권의 공보특보로도 활약했고 한국승강기대학교의 총장까지 지내신 분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는 ‘무위자연’의 뜻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으리라 본다.
단번에 이뤄진 것은 없다.
저자가 책 속에서 논하는 글과 사람들을 보다보면 얼마나 많은 인문학을 접했으며 스스로를 닦기 위해 애썼음을 느낄 수 있다.
법정스님, 공자, 장자, 톨스토이, 삼국지, 류시화, 비틀즈, 다산 정약용, 이어령, 명리학, 주역, 그리스신화, 유발하라리, 영화 대부, 태조 이방원, 사마천, 황희. 일리아드,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헤르만 헤세......
익히 알려진 분들의 사례까지 거론할 정도라서 숨이 찼음을 고백한다.
때로는 노자에 대한 서술인지 주역인지 헷갈릴 때도 있다.
무소유를 위한 책인지, 장자를 위한 책인지 흐려지는 순간도 있다.
‘오십의 주역공부’와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월든’, ‘무소유’ 등을 읽은 나로서는 겹쳐지는 부분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의 인생에 커다란 지침을 준 책들에 대한 오마주로 서술했으리라 짐작을 해본다.
노자의 ‘도’는 우리가 교과서 배운 『무위자연(無爲自然)』으로 마무리를 짓는 듯 하지만 결국 노자가 춘추전국시대를 마주하면서 만든 열매는 부쟁(不爭)이라고 한다.
다투지 않는 것.
다투지 않는다는 것은 권력에 한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주변인과의 사리사욕에 얽혀서 다툼이 없어야 하는 것이 있다.
물론 헛된 감정싸움이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다툼도 허망한 일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생의 리더는 바로 자신이다.
자신과의 싸움을 하지 않는 것이 바로 노자가 말한 ‘무위자연=부쟁’이라고 생각한다.
경쟁을 위해 물불가리지 않고 나아가려는 마음.
더 갖기 위해서 손에 쥔 것을 틀어쥐고 놓지 않으려는 마음.
남들보다 나은 자식의 미래를 위해서 박차를 가하는 마음.
자신을 돌아보기 보다 타인의 탓부터 내세우는 마음.
결과에 매진하여 감정이 먼저 나서 상대방에게 상처를 내는 마음.
수많은 이기심과 싸우지 않는 것이 곧 부쟁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위자연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다.
자연에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는 태도이다.
아무런 노력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쓸데없는, 무모한, 격렬한, 때로는 집요한 집착을 버리라는 뜻이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일 때 가장 아름답고 자연답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나다울 때, 주어진 것에 순응하고 받아들일 때, 부정하고 싶은 상황 속에서도 안정된 부분을 바라보고 포용할 때, 타인의 상처를 내 상처로 인식하고 이해할 때.
얼마든지 우리는 도를 실행할 수 있다.
거창한 깨달음만이 노자의 뜻을 따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간소한 마음, 법정스님의 무소유와 같은 마음이면 된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에 자족하는 마음이다.
감정이나 욕심도 무소유에 기초하여 살아가면 노자의 도덕경 81훈을 모두 삶의 기준으로 삶지 않아도 충분히 노자의 정신을 이어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나이와는 무관하게 노자를 읽어도 좋음을 말하고 싶다.
덧붙이자면, 저자 박영규님의 자택 근처에는 식물원이 있다고 한다.
그 곳을 산책하면서 자연의 사계를 자연스럽게 지켜보게 되어 누구보다 가까이서 노자의 마음을 품에 담을 수 있었다고 본다.
도시에서, 직장인으로, 혹은 환자나 전업주부, 그리고 퇴직자 등 다양한 경우를 가진 독자들은 식물원이나 자연이 가깝지 않아서 산책과 사색의 시간을 갖기 힘들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연은 도시에도 얼마든지 있다.
매일 같은 자리에서 같은 시간 하늘을 바라봐도 된다.
도시 곳곳에 꾸며진 거리의 정원도 있다.
사무실의 작은 화분을 매일 살펴보는 것도 가능하다.
멀리 가고, 큰 것과 거창한 것을 환경으로 삼지 않아도 충분히 우리는 자연속에 있다.
그러므로 노자를 만나기 위해서라도 오늘은 하늘 한번 쳐다봐 주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 한다.
쓰러졌을 때 가장 좋은 해결법은 일어서는 것이다. 그동안에는 그게 무척 힘들었는데 이젠 별것 아닌 게 되었다. 쓰러졌을 때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길을 간다 - P120
말없는 가르침과 무위의 유익함에 미칠 만한 게 없다. -도독경 43장- - P137
자연을 닮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공에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놓으면 자신을 용서할 수 있다. 나를 용서하기로 한 후 내 마음이 편한 걸 보면 ‘도덕경‘의 가르침이 공허한 빈말 같진 않다. - P154
그러므로 성인은 거친 삼베옷을 걸치고 있지만 아름다운 구슬을 품고 있다. - P316
|